이글은 한백마라톤 의 문인 문홍규 님 의 글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요트 행사 후 쓰신 글 이랍니다
신화의 바다
경산의 어느 커피숍에 갔다가 서가에 꽂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윤기가 누구인가?
이름을 날리던 소설가이자 번역 작가이고 신화학자 아닌가.
그가 번역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너무 재미있어 560페이지나 되는 분량에도 지루한 줄 모르고 몇 번이나 읽었다.
문장이 내 스타일인데다 읽을수록 작품에 반하고 번역에 반하고 주인공의 호쾌하고 자유분방한 기질에 빠져들었다.
1947년생인 이윤기는 태어나기 바로 전해에 니코스 카잔스차키스가 출간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2000년에 번역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신화는 미궁이다. 어떻게 신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빠져나올 것인가. 상상력의 빗장을 풀어 신화라는 미궁의 진입과 탈출을 시도해보자.
그리스 로마신화를 펼쳐보다가 표지에 발문으로 적은 이 말에 현혹되어 허락 없이 집어와 네 번째 통독하고 있다.
가져올 때는 조만간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어릴 때의 꿈은 장차 책방을 하면서 책을 원대로 읽는 것이었다.
시월 셋째 주 토요일 밤, 우리는 신화 속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신화속의 으뜸 신들이 인간 세상을 순례하는 상상으로 요트계류장 6번 게이트에 들어섰다.
요트에 승선하기는 난생 처음이다.
나하고는 별 볼일 없는 이방지대라 계류장 옆을 수없이 지나치면서 빽빽하게 정박해 있는 요트가 어선 같아 보여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검은 밤바다는 미노스왕의 명령을 받고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이다.
크레타의 아리아드네 공주가 몰래 준 실타래를 쥐고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황회장 제니는 한마음 축제 때 한백 회원들을 요트에 태워주겠다고 지나가는 소리로 흘린 약속을 지켰다.
승선 희망자가 늘어나 한 척을 더 띄워야 했다.
‘시티캅’과 ‘맨발의 요트학교’. 두 대의 요트는 검은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갔다.
시티캅 난간에서 조명을 끈 채 뒤따르는 맨발의 요트학교를 지켜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인간세계를 꿰뚫어보는 신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시티캅이 제우스의 천궁이라 한들 누가 뭐랄까. 어차피 상상은 자유다.
제니는 갑판에 악보대와 음향기기를 장착했다.
구리 빛의 제니가 제우스같이 떡 버티고 서서 색소폰을 불고 있다.
오늘은 평창에서 본 빨간 수영팬티차림의 새미누드가 아니다.
아마도 그에게는 시티캅이 자신의 왕국이자 최상의 행복공간일지 모른다.
철없는 물고기 떼가 들고일어나면 몰라도 바다에서는 시끄럽다고 시비 걸 사람이 없어 좋다.
물고기의 시위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커다란 삼지창을 들고 서서 잠재워 줄 거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구명대를 걸쳤다.
초고층 아파트숲속에 <제니스>와 <아이파크>가 신궁처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엑소르디움(EXORDIUM)이라든가 아라트리움(ARATRIUM)같은 한번 쯤 신화에 나옴직한 영어식이름이 걸린 한국의 맨해튼이자 부산의 랜드 마크라는 마린시티.
높이 301미터의 제니스는 휘황한 불빛을 뿜으며 거대하게 솟아있다.
검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다. 골드맨의 눈빛도 덩달아 빛난다.
그러고 보니 제니스 스카이라인에 다이아몬드 형상의 푸른 별빛이 눈부시게 명멸하고 있다.
이에 질 새라 아이파크옥상에는 비상하는 독수리 날개 형상의 조형물이 황금빛을 쏘아내고 있다.
연전에 제니스 옥상에서 열리는 색소폰 공연에 초대받고 간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까마득히 치솟은 마천루를 올려다보며 제우스, 제우스, 제니스, 제니스, 제니, 제니~~를 되뇌어 보았다. 작명이 신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시티캅의 별명을 '올림포스마운틴'으로 붙여보는 것도 괜찮겠다.
십만 개의 색상으로 컬러 쇼를 연출한다는 광안대교 아래를 맴돌았다.
민락동 수변공원에서 이어지는 광안리 해변의 밸트는 현란한 빛의 도시다.
황령산 꼭대기에 세워진 방송탑이 밤바다를 인도하는 요정의 등댓불같이 깜빡인다.
색소폰소리가 바다 멀리 퍼지면서 황홀한 신화의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맨발학교에서 와~하고 터지는 환호와 휘슬과 박수갈채가 음속보다 빨리 전해온다.
아름다운 정경을 다 담아내기에 내 눈이 너무 작고 욕심은 너무 크다.
머리로 가슴으로 마구 쓸어 담았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영접하려는가.
초승달이 광안대교 주탑 위에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신화는 달빛에 씌어 진다고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때때로 옥죄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진공이 된 육신은 애드벌룬처럼 무한공간을 떠다닌다.
황홀경에 빠져 신화의 세계를 탐색하는데 제우스가 소리친다.
“대마도까지 갑시다”
대마도는 직선으로 여기서 딱 풀코스 거리다. 뻥인 줄 모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가 아니지! 먼 바다로 나가면 너울파도가 장난이 아닐 텐데 은근히 걱정되었다.
마린시티를 지척에 두고 요트를 세웠다.
올여름에 출간한‘인생은 마라톤, 불타는 가슴으로’수필집을 전 회원들에게 돌린 터라 요트를 타고 야경을 감상하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꾀주머니같이 넌지시 숟가락을 걸쳤다. 나보고 낭송을 하란다.
그리스 최고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원래 말더듬이였다,
노자는 “참다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곱게 들리는 말은 믿을 수 없다”고 했겠다.
이에 용기를 얻어 ‘구르몽의 낙엽’과 수필집에 실린 ‘그날 밤에 무슨 일이’를 읊었다.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 초등학교 3학년생의 국어책 읽기 수준이었다.
난 지금 전설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러 시칠리아 섬을 지나는 환상에 부풀어있는데 ‘빨강 머리 앤’이 감미로운 피리소리로 받혀주지 않았더라면 참 썰렁할 뻔 했다.
빨강머리는 바로 며칠 전 일광 어느 사슴농장 유포리아에서 섹시한 몸짓으로 벨리댄스를 선보였다. 오늘 그 프로그램을 끼웠더라면 인기 짱이었을 텐데 아쉽다.
기왕 반짝 파트너가 되었으니 신화에 등장하는 그럴싸한 여신의 칭호하나 선사하는 걸로 립 서비스해야겠다.
여기서는 춘향전의 사랑가에 나오는 중중모리 판소리가락을 삽입해도 괜찮을 성 싶다.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시큼 털털 개살구를 주랴.’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옆지기 <헤라>를 하랴. 사랑과 애욕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하랴. 지혜의 여신이자 정의로운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하랴.’
신화에는 미스 그리스가 누구인지 정답이 나와 있고 그의 심중을 꿰뚫어보면서도 두 여신은 들러리로 내세웠다.
하선하여 계류장 통로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았다.
‘출판기념’이라 새긴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끄고 신들만이 마신다는 술 넥타르를 마셨다.
아직 미궁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신의 행세를 조금 더 한들 인간세상에서 신성한 신들에게 눈 흘길 사람은 이무도 없다.
'돌아온 제니'는 못다 쏟은 격정을 색소폰에 마구 토해내고 있다.
뺨을 어루만지는 밤바람이 부드럽다.
서풍의 신 제퓌로스가 지나가나 보다.
제퓌로스가 누구인가?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를 키프로스로 안전하게 인도해준 인정 많은 신이다.
금발의 미녀 아프로디테는 후에 로마의 신화에서 베누스란 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이다.
뱃전에 찰랑대는 바닷물소리조차 감미로운 음악이 되어 흐른다.
한백가족과 함께 한 색다른 추억의 밤이 깊어간다.
첫댓글 미쉘이 취득하려는게 요트조정면허인 모양이지요?
세월호 선장처럼 안되게 열심히 하시길..
문성형님 조종 면허는 일급 벌써 땃구요
요트 는 준비중 입니다
해적선장 놀이. 해보려구요
보울섬지도 제발 제게 하나만 던져주십시요
보물 찾으면 오대 오?
우리 아부지께서 저한테 상속해주신 황금동굴도 어디 있는지 좀 찾아주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