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7]“꾸역꾸역” 0.1mm 철펜 그림
어제밤 모처럼 의미 있는 문화행사(안충기 ‘서울 산강’ 펜화전: 3월 22일-4월 3일. 한국미술재단 갤러리 카프) 전야제에 다녀왔다. 내로라하는 문화계인사들과 인사하는 것도 좋았지만, 서울의 산과 강을 그린 22점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기쁨이었다. 그것도 0.1mm 철펜으로 ‘죽어라고’ 꼼꼼하게 “꾸역꾸역” 그림들과 고양이를 그린 소품 몇 점. 소장하고 싶어도 값이 엄청나기에 엄두를 내지 뭇하지만, 눈호사야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어찌 들으면 조금은 격이 떨어지고 비루한 느낌이 드는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재밌지 않은가. 그런데, 꾸역꾸역 그리지 않으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게 그의 펜화 작품들임을 알게 된다.
어엿한 화백畵伯이 된 이 친구는 한때 D일보 편집기자로 5년간 동고동락한 술친구였다. 학창시절 유난히 지리地理과목을 좋아하던 그가 대학에서 역사歷史를 전공했다. “지리에 역사를 얹으니 땅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과 세상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는 그의 말이 재밌다. 그랬다. 신문 편집기자로 마칠 뻔한 언론인의 길에서 2008년 한국펜화계의 대부격인 김영택 화백을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분명 행운이었을 터. “우연과 우연이 만난 것을 필연”이라는 그의 말처럼 초딩시절 그림을 잘 그리던 희미한 기억(충북지역 미술제에서 금상도 받았다)에 불이 붙은 것이다. 습작이 칭찬을 받자 신이 났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다보탑을 그린 펜화를 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고 한다. 그림에 집중하다 보니, 그의 고질병인 귓병도 나아지는 것같았다. 일석이조. 밥은 신문기자가 먹여줬으니 더욱 좋은 일이다.
그로부터 16년, 취미가 특기가 되고 특기가 전업작가 겸 화가로 환골탈태되었다. 개인전만 해도 <비행산수-하늘에서 본 우리땅(2020년)> <안충기 펜화 서울(2023년)>에 이어 3번째이다. 그가 쏟은 각고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아주 준수한 펜화를 감상하며, 우리의 뫼와 가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된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개인전을 경하드린다. 비싼 도록圖錄을 만들지 않은 대신, 그의 전면 인터뷰가 실린 중앙SUNDAY를 30여부 쌓아놓았다. 그 기사 중 한 대목을 옮긴다.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세상에서 안 작가는 흑과 백, 두 가지 색으로만 세상을 담는다. 컬러리스트 자격증이 있을 만큼 컬러 공부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최고는 ‘흑백’이라는 결론이다. 덕분에 안 작가의 그림들은 묵직하면서도 따스하다.”아하- 이제야 알겠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왜 묵직하면서 따스한 지 그 까닭이 흑黑과 백白에 있었음을. 새삼 경탄.
엊그제 쓴 졸문 <아름다운 인연> 11번째 주인공인 안화백(63)은 여전히 동안童顔이고 호주객好酒客이다. 유쾌하다. 제법 위트도 많다. 절대로 전시회를 핑계로 돈봉투를 갖고 오지 말라며, 정 거시기하면 슈퍼에서 5천원 상당의 와인 1병만 가져오라 해놓고, 지인들의 후원으로 전야제 식탁을 거나하게 차려놓았다. 얼씨구. 그의 오랜 지인인 ‘소리대통령’ 구민口民 배일동 명창이 어찌 이런 경사에 가만히 있을 것인가. 좁은 갤러리를 쩡쩡 울리는 소락때기도 반갑다. 또한 전각대통령 진공재, 평전대통령 김택근, 출판대통령 한철희, 문화대통령 정재숙, 생활글 달인 우천 등의 찬사가 2차 뒤풀이까지 이어졌음에야 물어보면 잔소리. 그의 아내는 부군과 어울리게 <전태일문학상>과 <5.18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다. 2차 술값은 그가 쓴 중국집 사장 이야기인 <진진>의 주인공 왕육성 쉐프가 쏘았다는 후문이다.
개인적으로는, J일보 여행전문기자 손민호씨와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씨, 동아시아출판사 대표 한성봉씨 그리고 맛칼럼니스트 박정배씨 그리고 나노기술원 대외협력처장 최원일씨 등을 몇 년만에 안 작가 덕분에 반갑게 만난 것이 너무 좋았다. 그의 건필과 함께 무궁한 화운畵運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