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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성령 충만의 신학적 의미
신약성경에서 “충만하다”라는 헬라어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영어나 한국어는 이 두 개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 개념을 성령 충만의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핌플레미”(pimplhmi)와 “플레로오”(plhrovw) 형용사로는 “플레레스”(plhvrh")이다.
1. 신약성경에서의 용례
1) 어원적 의미
“핌플레미”(pimplhmi)는 “충만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말한다.
“플레로오”(plhrovw), “플레레스”(plhvrh")도 “충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한다. 추상적으로 “충만하다”와 사람이 어떠한 것으로 “가득 차다” 또는 “완전함”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그러나 그 단어의 뜻은 문맥에서 결정되므로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아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2) 성령과 관련된 용례
(1) “핌플레미”(pimplhmi)의 용례
“핌플레미”(pimplhmi)는 신약성경에 총 24회가 나온다. 그중에서 성령과 관련된 것은 8회이며, 누가 문서에서만 나온다.
① 누가복음 1:15, pneuvmato" aJgivou plhsqhvsetai e[ti ejk koiliva" mhtro;" aujtou', 침례 요한을 엘리사벳이 잉태했을 때 천사가 한 말과 관련이 있다. 성령의 충만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예배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한 성령 충만을 말하고 있다.
② 누가복음 1:41, ejplhvsqh pneuvmato" aJgivou hJ !Elisavbet,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후에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을 받아 마리아에게 나타난 표징을 해석해주는 것이다.
③ 누가복음 1:67, Zacariva" oJ path;r aujtou' ejplhvsqh pneuvmato" aJgivou, 침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가 성령 충만을 입어 침례 요한에 대해 예언하는 것이다.
④ 사도행전 2:4, ejplhvsqhsan a{pavnte" pneuvmato" aJgivou,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때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아 방언을 말하는 내용이다.
⑤ 사도행전 4:8, Pevtro" plhsqei;" pneuvmato" aJgivou,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에게 설교한 내용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베드로는 성령 충만으로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다.
⑥ 사도행전 4:31, ejplhvsqhsan a{pante" pneuvmato", aJgivou, 위기 가운데서 베드로와 요한이 무리와 함께 기도했을 때 모인 곳이 진동하고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내용이다.
⑦ 사도행전 9:17, plhsqh'/" pneuvmato" aJgivou,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주를 만나 눈이 멀었을 때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하면서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하게 하신다고 선포하였다. 사울은 성령 충만하여 눈을 뜨게 되었고 음식을 먹고 강건하게 된 내용이다.
⑧ 사도행전 13:9, plhsqei;" pneuvmato" aJgivou, 바나바와 사울이 바보에서 거짓 선지자 엘루마를 만나 영적 전쟁을 할 때 성령 충만하여 복음 선포하는 내용이다.
(2) “플레로오”(plhrovw), “플레레스”(plhvrh")의 용례
“플레로오”(plhrovw)의 형용사 “플레레스”(plhvrh")는 누가복음에 1회, 사도행전에 4회가 성령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플레로오”(plhrovw)는 사도행전에 1회, 에베소서에 1회 사용되었다. 먼저 “플레레스”(plhvrh")의 용례를 살펴보자.
① 누가복음 4:1, !Ihsou'" de; pneuvmato" aJgivou plhvrh" ajpo; tou' !Iordavnou, 예수가 침례를 받은 후 광야에 나가기 전의 상황이다. 누가는 예수의 공생애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역을 위한 철저한 순종을 말하고 있다.
② 사도행전 6:3, plhvrei" pneuvmato" aJgivou kai; sofiva",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7명의 일꾼을 선발할 때의 그 기준에 대해서 말한 내용이다. 일꾼의 조건으로서 성령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임을 말하고 있다.
③ 사도행전 6:5, a[ndra plhvrh pivstew" kai; pneuvmato" aJgivou, 이것은 사도행전 6:3의 상황과 동일하지만, 일꾼의 기준이 지혜 대신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역을 위해서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④ 사도행전 7:55, uJpavrcwn de; plhvrh" pneuvmato" aJgivou ajtenivsa" eij" to;n oujrano;n eiden dovxan qeou,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한 후에 평안한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⑤ 사도행전 11:24, plhvrh" pneuvmato" aJgivou kai; pivstew",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할 때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증언하는 내용이다. 성령 충만한 바나바의 인격적인 삶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용례는 “플레로오”(plhrovw)의 형용사인 “플레레스”(plhvrh")에 대한 것이다. 이제 “플레로오”(plhrovw)의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⑥ 사도행전 13:52, maqhtai; ejplhrou'nto cara'" kai; pneuvmato" aJgivou.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는 중에 여러 위기를 만났었는데, 이때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다.
⑦ 에베소서 5:18, plhrou'sqe ejn pneuvmati,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권면한 내용이다. 이것은 주석과 해석이 필요하다. 어떻게 주석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다르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plhrou'sqe는 plhrovw의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므로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충만해라”와 “충만해져라”이다. 그리고 ejn pneuvmati는 세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곧, “성령으로서”(with the Holy Spint)와 “영 안에서”(in the Spirit)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by the Holy Spint)이다. 아보트(T. K. Abott)는 plhrovw와 ejn이 함께 사용될 때는 ejn의 목적어가 plhrovw의 내용물(content)로 쓰이는 용례가 없다고 해석하면서 “성령으로서”(with the Holy Spint)가 아니라 “충만케 하는 수단이 성령”(the Holy Spirit as the means of making full)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케 하는 수단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바르트(M. Barth)는 ejn pneuvmati를 “영 안에서”로 해석한다. ejn pneuvmati가 성령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성령과 교통하는 부분으로서 ‘영’(Spirit)으로서도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plhrou'sqe와의 관련에서는 “영 안에서”(in the Spirit)는 적합하지 않다. ejn pneuvmati라는 용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성령에 의하여”(by the Holy Spirit)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plhrou'sqe의 원형이 plhrovw이며 누가는 plhrovw의 형용사 plhvrh"와 pimplhmi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근거로 누가가 말하는 plhvrh"를 성령 충만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는 plhvrh" pneuvmato"와 plhsqh pneuvmato"를 용어상 구분하여 사용한다. 그러므로 ejn pneuvmati를 “성령에 의하여”(by the Holy Spirit)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 충만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화의 과정으로서의 성령 충만이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pimplhmi처럼 동력적인 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경건하고 성숙한 존재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2. 신학적인 의미
1) 외적 충만
“핌플레미”(pimplhmi)는 성령 충만의 외적 충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외적인 역사를 가리킬 때 일관되게 사용되며, 보통 순간적으로 짧게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시적이며 그 뒤에 역동적인 행동을 준비시키거나 즉각적인 행동이 따른다. 이 단어는 “임하다”라는 말과 호응을 이룬다. 성령은 어떤 순간에 성도를 택하여 그분의 능력 있는 일에 사용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일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영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사역을 위한 능력은 왔다가 떠나가는 것이다. 외적인 성령 충만의 결과는 성령의 은사로 나타난다. 성령의 은사는 주의 일을 부족함 없이 하기 위해 성령이 그 뜻대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선물이요, 능력이다. 성도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그분의 능력으로 사역할 수 있다. 이것은 사역을 잘할 수 있는 기능적이지 성도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어떤 말이나 행위가 믿음의 분량대로(롬 12:3) 또 사랑의 실현으로(고전 13장),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운데(고전 12:3) 수행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은사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성령이 교회를 통해 각 지체에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 (고전 12:11) 성령의 은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야만 한다. 따라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성도들은 은사를 선택적인 개념이 아닌 주님의 사역을 위한 의무요, 필수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성령의 은사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일반적 재능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적인 재능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 재능은 은사로 발전되어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성도는 그 은사를 영적으로 잘 분별하여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 은사의 특징은 성령의 은사를 소유한 성도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 성령의 은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은사를 행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로 안내한다. 즉, 은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언하는 증표가 된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의 부요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한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2) 내적 충만
“플레로오”(plhrovw), “플레레스”(plhvrh")는 성령의 내적 충만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령의 내적인 역사를 가리킬 때 일관되게 사용되며, 보통 속이 푹 젖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충만한 존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치 이스트가 밀가루 반죽에 스며드는 것처럼 느리고 점진적으로 젖어 드는 것으로서의 존재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보통 역동적인 행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령은 성도 안에 계시면서 성도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성령께서 점진적으로 스며들어 역사하신 결과이다. 성령의 모든 내적인 역사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신앙이 성숙하여 감으로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과정이다.
성령의 은사는 부분적으로 주어지지만, 성령의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총체적으로 맺어야 할 삶의 모습이다. 내적인 충만은 외적 충만처럼 역동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내면의 세계를 치유하고 성숙시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의 인격이다. 따라서 예수께 접붙임을 받은 성도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은 성도의 인격 속에 예수의 모습인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은사도 성령이 주시는 것이고, 열매도 성령이 맺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근원적인 출발은 성령이신 것이다. 은사와 열매는 둘 다 궁극적인 목적이 덕을 세우는 데 있다. 개인의 덕을 세울 뿐만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둘리는 것이 목적이다. 은사와 열매는 유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사도 바울은 열매 없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고전 13:1-2)
이처럼 성령 침례로 성령 충만할 때 그 결과로써 외적인 성령의 은사(고전 12장)와 내적인 성령의 열매(갈 5:22-23)가 나타나게 된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각 성도에게 나눠주시는 것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겸손하게 성령의 뜻을 받들어 주의 몸 된 교회의 유익과 복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선물인 성령의 은사를 활용함과 더불어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 속에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인격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 (롬 8:29: 고후 3:18)
성령의 열매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결과이지만, 은사는 성령의 능력 자체이다. 열매는 성령이 성도 가운데 내주하심 그 자체로 맺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은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실 때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지만, 은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같은 것을 갖지는 않는다.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후부터 맺기에 힘써야 한다. 반면에 은사는 성령의 주권적인 뜻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지게 된다. 은사는 일시적이지만, 열매는 영원한 것이다. 은사는 교회 시대 즉 이 세상에 살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일할 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열매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성령 충만은 성령의 외적인 충만과 성령의 내적인 충만이 함께 지속적으로 충만하게 될 때 이를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 즉, 외적 충만과 내적 충만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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