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에 비치한 동안(洞案)에 양동은 양좌동(良佐洞)이지만 양동마을도 옛 같지 않다. 지붕이며 담장은 기와로 때 빼고 광낸 셈이다. 초가도 한옥이라 아파트를 닮아 일률적 한식이다. 초가는 초가대로 기와집은 기와집대로 특색이 있지만, 이제는 서로 닮아 엇비슷해 지고 있다.
양동마을에 들어서자 완장 찬 안내원은 벼슬이나 한것처럼 우쭐댄다. 흔한 팸프렛도 입을 떼야 내민다. 없으면 그만일 텐데 무슨 심사로 찾아온 손님조차 외면하는지
양동마을도 유네스코 지정 후 달라졌다. 학교도 그렇고 기념관도 그렇다. 보수를 빌미로 주춧돌까지 깔아 치웠다. 공사비를 부풀어야 떨어질 게 많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의 건축이 아니라 한식 건물은 전국이 일률적으로 둔갑했다. 이는 건축물을 보수할 때 비슷한 목수들이 전국을 다니며 일하기 때문이다. 하회도 그렇고 이곳 양동도 그렇다.
마을 입구 심수정으로 가는 길에서 외국인 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건네고 어디서 왔는지 묻자 이스라엘에서 왔단다. 이들은 심수정으로 드는데 안내원도 없고 해설사도 없었다. 그 흔한 영어안내판조차 없으니 뭘 챙기고 돌아갈까? 그 뒤로 젊은 아줌마가 딸 하나 아들 둘을 데리고 심수정으로 든다.
‘心水亭(심수정)’
마음은 물처럼’, ‘물 같은 마음으로’, 얼마나 멋이 있는가!
심수정 현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초등 2.3학년이 될까 말까 한 아이에게 현판의 가운데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물었더니 입술만 달싹댄다.
마음심, 물 수라 했더니 안다는 표정이다.
탐방할 때 수첩 하나 연필 하나 정도는 챙기라고 했더니 엄마와 아들은 멍한 표정이다.
허울 좋은 학습이요. 정착되지 않은 가정교육이다. 문제는 그때마다 내 직업병이 도진다는 것이다.
심수정은 곡 자로 된 전각이다.
큰방 입구에 三守軒(삼수헌) 현판의 글귀는 세 가지를 지키는 라는 데 뭣을 두고 한 말일 까.
‘한비자 권5 16장’에 三守(삼수)는 첫째, 입을 무겁게 하는 일이요. 둘째는 위업을 지키는 일이며 세째는 상벌의 권한을 쥐는 일이라 했다. 이 3가지가 완벽하지 못하면 군주는 피살되거나 위협을 받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양동의 인재들이 국무나 공무에 처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도리를 일러주고 있었다. 선인들의 베푼 말씀이요 법도라, 살아가는데 행동의 실천 사항이 아닌가 싶다.
심수정을 나와 강학당으로 올라가니 일행은 돌아갈 차비다.
3시간을 봐도 모자랄 판에 겨우 10여 분을 보내고 주차장 행이라니
강학당은 여강이씨 서당이고, 월성손씨 서당은 안락정이다.
두 서당은 인재양성에 쌍벽으로 조선 시대 문과, 무과에 급제한 이들이 116명이다.
대단한 문중이요 집성촌의 위력이다. 입신양명하고 살든 모습이 훤하다.
상민들이야 오지랖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라
상반 가릴 것 없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놀음새가 가관이다.
한마디만 들어보면 그 출신을 알 수 있다.
강학당 대청에 관선료(觀善寮), 명리제(明理齊) 현판이 걸렸다.
관선료는 선을 바라보는 창이란 뜻일 게다.
담 너머 향단과 관가정, 무첨당이 한눈에 든다.
관(觀)의 마음으로 살펴보고 챙겨보고 담아 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꼬?
강학당에 학동들이 글 읽는 소리가 그립지만, 양동을 찾아온 이스라엘 부부가 부럽다.
마을 뒤 물봉 골 쪽으로는 여강이씨의 무첨당, 관가정, 향단이 자리하고 안골 좌우로는 월성손씨의 종가인 서백당를 비롯하여 손씨 고택들이 형성되었다.
안골에 자리한 서백당(書百堂) 대문에 월성손씨 종가라는 간판이 객을 맞는다.
예를 표하고 들어가니 사랑채 마루에 ‘식와’(息窩)라는 현판이 눈을 끈다
‘쉬어가라는 움집’이라, 주인은 보이지 않고 통행 금지판으로 망설이는데 마당에 비켜선 향나무가 서백당의 좌장처럼 묵직하고 듬직하다.
이 집 어디쯤 조선의 5현으로 추앙받았던 회재의 태실이 있을 텐데 어디일까?
종가는 침묵으로 흐르고 헛담만 보고 나오니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일가족이 서백당으로 든다.
누대에 걸친 이 댁을 보면서 느헤미야에 나온 예루살렘 백성들의 가계를 생각해본다.
아무개는 누구의 아들이요, 누구의 손자요, 누구의 증손이요, 누구의 현손이요, 누구의 오대손이며 누구의 육대손이며 누구의 칠대손이라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윗대의 공덕으로 살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동판으로 된 안내판이다.
조상의 유덕을 기리며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양동 명문들이 존경스럽다.
두 문중은 집성촌을 이뤄 계승하고 있는 것이나 심수정에서 만난 이스라엘 부부나 서백당을 찾아 온 아일랜드 가족들이 여기 온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들의 장도를 빌며 양동마을의 향기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