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8 / 68세
꼬우면 일찍 오지
내가 군대 생활을 했던 중대는 아마 육군에서 병력이 가장 많은 중대였을 것이다. 중대원이 무려 120명 정도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중대의 정식 명칭은 ‘608경장비중대’였다. 이름은 경장비중대였지만 실제로는 중장비중대였다. 아마 군사보안 때문에 중장비를 경장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중대원들은 군번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1’로 시작하는 군번이었다. 나처럼 나이가 차서 정상적으로 입대한 병사들이었다. 내 군번은 13080850이었다.
다른 하나는 ‘7’로 시작하는 군번이었다. 이들은 지원병이었다.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장비 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뒤 지원해서 들어온 병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대원들의 나이 차이가 상당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스무 살 무렵 입대한 병사가 있는가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치거나 결혼까지 한 뒤 서른 살 가까운 나이에 입대한 병사도 있었다.
나이는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더라도 동기가 될 수 있었다.
우리 중대는 두 달 단위로 동기를 묶었다. 1월과 2월이 동기, 3월과 4월이 동기인 식이었다.
나는 1980년 8월에 입대해서 7월에 들어온 병사들과 동기였다. 우리 동기는 모두 열두 명이었다.
그중 나와 입대 날짜가 거의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준권이었다.
나는 경기공업전문대학 기계과를 졸업했고, 선반기능사 2급 자격증이 있었다. 그래서 군 특기번호 402를 받았다. 총기 및 각종 군 장비를 정비하는 병기 특기였다.
이준권도 나처럼 2년제 공업전문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인하공전이었다. 전공은 똑같이 기계과였다.
그의 특기번호는 401이었을 것이다. 용접 관련 특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중대에는 중장비도 많았고 수송부도 있었으므로 용접실이 따로 있었다. 이준권은 그곳에서 근무했다.
군대에서는 먼저 들어온 병사를 사수라 하고, 뒤에 들어온 병사를 조수라고 불렀다.
문제는 나이와 계급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준권은 1957년생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수는 이준권보다 4살 정도 어린 병장이었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군대에서는 조수가 되고, 동생뻘 되는 사람이 사수가 된 것이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임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예외가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까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나이 어린 사람에게 명령을 듣는 일이 늘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나이 많은 후임을 거느린 선임 역시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중대는 가끔 막걸리를 가져다 놓고 회식을 하곤 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평소에는 얌전하던 사람들도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고참들이 술에 취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총기 관리 업무도 맡고 있었는데, 수송부의 어느 고참은 술만 마시면 싸우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병기계, 실탄 가져와! 다 쏴 죽여 버리게!”
물론 술김에 하는 소리였지만, 총기와 실탄을 관리하던 쫄병인 나는 무서웠다..
어떤 병사는 대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는 시늉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살벌한 풍경도 가끔 벌어졌다.
그런데 이준권의 사수는 조금 달랐다.
그는 평소 조용한 편이었다. 후임들에게 특별히 모질게 굴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술이 들어가면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꼬우면 일찍 오지!, 꺽.” (말로 하면 정말 잘 흉내 낼 수 있는데…)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 말에는 군대라는 조직의 묘한 질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으면 형이고 동생이지만, 군대에서는 하루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 고참이었다. 나이도, 학력도, 사회 경험도 소용없었다.
억울하면 일찍 들어 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논리였다.
태어난 순서는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군대에 들어오는 날짜 역시 여러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그것을 두고 일찍 오지 그랬느냐고 하니 말이다.
더구나 우리 중대는 두 달 단위로 동기를 묶었으니 7월에 입대한 병사와 8월에 입대한 병사도 같은 동기였다.
한 달 차이는 동기라는 이름으로 없애 버리면서, 그보다 조금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후임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곳.
그곳이 군대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시절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도 모두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스물두 살이던 나도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그 병장도 이제는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겠다.
그가 지금도 술을 마시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꼬우면 일찍 오지!”
참으로 군대에서나 통할 법한 말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꼭 군대에서만 통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세상에는 먼저 왔다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무리 일찍 왔어도 세월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늙어 간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나이 어린 병장도, 나이 많은 이등병도 이제는 서로 만나면 그저 반가운 노인네들일 것이다.
그때 그 병장을 다시 만난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김병장님, 그때 그렇게 군대에 일찍 와서 지금은 뭐가 좀 좋습니까?”
아마 그도 껄껄 웃을 것이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며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꼬우면 일찍 오지!”
첫댓글 저는 학교 졸업하고 25살 5월 9일
입대, 훗날 자대 배치 받고보니
제 바로 위 선임들은 수송 지원병들,
18에서 20살. 제 동기는 5월 6월
입대라 제가 동기 선임. ㅎㅎ
수송대 120명 중 나이는 제일 많고.
꼬우면 일찍 오지... 그 말,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ㅎㅎㅎ
앗! 그 동네도 아들이 많았군요!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는고로 다른분들 보다 군대를 1년 정도 늦게 갔습니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많다고 크게 부담은 안가졌는데?
나 제대 말년에 우리 소대에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선수가 하사로 전입 왔는데?
하사 대우 해주기 부담 됩디다
그래도 그 하사와 나 제대할때 까지 별 문제 없이 잘 지냈습니다
좌우간 나는 학벌이 있고 등치가 있다고 선배 , 하사관 , 장교들에게 갈굼을 많이 당한게
여전히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공병대 라서 군대 3년동안 작업을 많이 하다가 제대를 했지요
그래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에 갔다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방이 적인 대한민국에서는 군대는 여전히 활성화 되야 된다고 생각합니당
군대 지원제 운운 하는 정치인은 까불지 말고 사라지면 좋겠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1979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슴 쓰린
가정형편으로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그해 가을 해병대 하사관으로 자원입대...
19의 나이에 입대를 했으니, 정말로
저 같은 경우는 군대를 일찍 간거였죠.
그래서 해병대 후배들이 저를 보면
농담으로 "영계선배" 라고 불렀죠.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니
같은 학과 후배들이 애들 같은 느낌....ㅋ ~
저희 기준으로는 군기가 너무 빠진 것 같습니다.
'꼬우면 일찍 오지'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군대에서는 당연한 말인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부터는 순서가 있는 것 같지만,
죽을 때는 순서를 모른다고 하네요.
살면서,
그 순서 때문에 덕 보는 사람도 있고
지금 뒷줄에 있어도 앞설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위치이기도 하지요.
나이들어 좋은 것은
그 순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너무 순서에 마음을 두면,
평생을 각박하게 살게 되겠지요.
고든님이 쓰신 글 중에
제일 장문인 것 같습니다.
수필가의 숨은 뜻이 되겠네요.^^
그러네요. 다시 보니 덜어 내야 할 말들이 많이 보이네요.
‘수필과의 숨은 뜻’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하고 나이는 같지만 6개월을 늦게
들어온 저의 해병대 하사관 후배 한명이
경기공업전문대를 다니다 왔는데
지금도 만나면 선배 대우를 정확히
합니다.
저도 후배 대우를 인간적으로
해주고, 그러면서 같이 늙어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늘 좋은 날 되세요.
해병대는 선후배 관계가 더 엄격 하지요?
잘읽고 갑니다.
꼬우면 출세 하지
꼬우면 돈 벌어놓지
꼬우면 힘이라도 세지
이렇게 들리기도 하네요.ㅎ
이론! 하나도 걸리는 게 없네요.
아, 꼽다!
총기 관리하시던 젊은 날의 아찔했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네요.
그 시절엔 하늘 같았던 계급도 세월 앞엔 참 부질없다는 마지막 대목에 깊이 공감해 봅니다.
추억을 소환한 멋진 글에 마음 따스히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입대동기중에도 대학원졸업하고 오느라
3살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군대시절엔 맘먹었지만 제대하곤
말을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에게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와서 6개월 먼저 제대한 두살 많은 동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부담 없이 맞먹고 지냈는데 나보다 더 어린 동기들은 좀 어려워 하더라구요.
고든님... 어쩌면 그옛날 군대일을 엊그제 다녀온 것처럼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나요? 치매걱정은 전혀 안해도 될듯합니다. 군입대도 학교입학도 사회생활도 제때 제나이에 하는게 최상이고 대접을 받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모든 게 때가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