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별 보고 일어나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드는 노부부는 이 일을 평생 해 오셨다는데요
자전거에 방금 나온 뜨끈한
두부판을 차곡차곡 올려놓고
길을 나서는 할아버지를 보며
"영감 오늘 오후에 비 올 것 같으니 안 팔리면 일찍 들어와요"
"알았어"
퉁명스러운 대답 한 마디를
배웅 삼아 내뱉고는
((((땅그랑 ~ 땅그랑))))
골목길을 나서면서 부터
종을 흔들며
((((두~~부)))) ((((두~~부))))
라는 할아버지의 외침이
동네 곳곳을 돌며 새벽을 깨우고 난 자리에 한 사람 두 사람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두부 한 모만 주세요 "
"저는 두 모 주세요"
"오백 원 여깄어요"
"고맙습니다"
때론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기 힘든
하루를 보내느라 서로의 굽어진 허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하늘을 막아줄
지붕 하나 있는 것만으로
행복이라고 말하는 노부부는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집에서 숨쉬는 행복이 최고라는데요
"영감 이게 뭐예요?"
"오다가 주웠어"
"멀쩡한 붕어빵을 왜 버렸대"
능청 스러운 할아버지의 거짓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오물오물 먹고 있는 할머니는
땀흘리고 움직인 만큼만
욕심을 부리며 살아온 세월속에
하루위에
하루를 더 포개 놓은 듯한 힘듦이지만 서로를 알뜰히 챙기는 마음 하나로 버틸 수 있었기에 세상 길 다 지워져도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잿빛 어둠이 그려진 다음 날
파란 하늘에 투명한 물감이 흘러 내리 듯 날리는 비를 야윈 두 어깨에 올리고 집으로 온 할아버지가 팔고 난 두부판을 부뚜막에 내려놓으며
얼굴에 핀 그늘을 본 할머니는
"어찌 오늘은 많이 못 팔았나
보네요?"
할아버지가 내려놓은 두부판에
얹힌 천을 걷던 할머니의 눈에
흙덩이들이 고명처럼 묻어있는
두부를 보며
"영감 두부가 왜 이래요?"
"차 길에서 넘어졌어"
"어디 다친데는 없슈?"
"멀쩡혀 걱정말어"
절뚝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할머니는 재빨리 수건 하나를 끓고 있는 솥에 담궈 뜨끈히 뎁혀 방으로 따라 들어 가는데요
"영감..
이쪽으로 누워봐요"
"거 괜찬타니까 호들갑이네"
내일 당장이라도 일하러 나갈 것 같이 큰소리를 쳐대던 할아버지가 해와 달이 바쁘게 오가는데도 모습이 보이질 않더니 보름이 다가도록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는데요
"영감 이러지 말고 자식들 오라고 할테니 병원에 갑시다"
"병원에 갈 돈이 어딨어"
"다락에 있는 상자에 매일매일
영감이 넣어둔 돈 있잖아요"
"그건 안뎌"
"알았어요...
영감 죽을때 같이 묻어 드릴테니
저승가서 실컷 쓰구료"
그렇게
시간을 약으로 집을 병원삼아 버티던 할아버지는 언제 아팠냐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임자..
오늘부터 장사 나갈테니까
콩 좀 넉넉히 삶아"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며칠 더 쉬어요"
"쉬면 누가 돈 준데...
몸뚱어리 조금이라도 성 할때
부지런히 벌어야지"
"그 놈의 돈..돈...돈....
쓰지도 못하는 돈 모아서
뭐 할려는지"
행복하자는 약속으로 남은 말을 지키려 오늘도 새벽안개를 헤치며
땡그랑~~ 땡그랑 ~~~
종소리에 맞춰 자전거 폐달을 밟는 할아버지의 뒷 모습을 보며 오늘분의 행복을 벌써 다 받은 듯 할머니 입가엔 미소가 흘러 넘치고 있었는데요
"이정도면 내일 장사하고도 남을 것 같구먼"
하루 온 종일 허리 한 번 못 펴보고 장작을 피워대며 두부를 만든 할머니는 거뭇 거뭇해지는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더니
"영감이 올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늦네 그려..."
그때
저 멀리서
삐그덕....삐그덕..거리며
저물녁 새들이 건너는 하늘가를 따라 고물 자전거 폐달 밟는 소리가 할아버지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고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만..."
두부를 많이 팔았는지
적게 팔았는지 폐달 밟는 소리만
듣고도 안다는 할머니는
느려도 좋으니 그 소리가 멈추질 않기를 마음으로 기도하며 할아버지를 반기는데요
"영감. ,,
오늘 많이 팔았죠?"
"할멈..
두부 만들지 말고 돗자리 깔어"
이제는 서로의 발걸음 하나에
속깊은 마음까지 들여다 볼수 있다는 노부부의 오늘 분의 행복은 또 그렇게 쌓여만 가는것 같습니다.
한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우두커니 머물러 있는 창가만
들여다 보고 있던 할머니는
"영감..
집에가서 쉬지 왜 왔슈?"
늘 할아버지의 건강만 걱정하던 할머니가 굽어진 허리가 펴지질 않아 그만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는데요
"임자 좋아하는 순대 줄려고 왔지"
"영감이나 집에 가서 약주
한 잔하면서 먹으슈"
마주친 어쩔수 없는 슬픔 위로
챙겨온 순대를 할머니 입에 넣으주며
"꼭꼭 씹어.."
"영감도 좀 먹어요"
"난 거기서 많이 먹었어"
필요한 자리 그 자리를 지켜주는 서로가 있어 스치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할머니는 마주하는 똑같은 일상 앞에서도 병원과 집을 오가며 하루분의 행복을 퍼나르는 할아버지의 고마움에 병원에 있는 동안 눈시울이 마를 날이 없었다는데요
어느 날은
길가에 핀 야생화를 뜯어다
소주 빈병에 꽂아놓고 가는 날도 있고
또 어느 날은
잠든 할머니 머리에 예쁜 비녀를 꽂아 주고 가는 할아버지가 주는 행복속에 머물던 할머니에게
"임자 ..
우리 두부장사 그만할까?"
"왜요 죽을때까지 할거라더니
왜 맘이 변했슈?"
"이제 임자 고생 그만 시키고 싶어서 그래"
"그럼 두부장사 그만하고
뭐 하실라고 그러우?"
"이제 임자랑 손잡고 쑥도 캐러
다니고 들판으로 꽃마실도 다니고 그러지 뭐"
"사람이 안하던 짓하면 죽는대요"
"죽긴 왜 벌써 죽어
오 백년은 더 살아야지"
가을바람에 입이 떨어지듯
한 마디 툭 내뱉어 놓고는
미안했는지 할머니의 손에
열쇠 하나를 건네는데요
"이게 뭐유?"
"다락방에 있는 돈 상자 열쇠야"
"이걸 왜 날 주우?"
"임자 퇴직금이야"
부부라는 직장에
아내라는 직함으로 근무한 댓가라며 손에 열쇠를 꼭 쥐어주고는
"이제 그만 퇴사 혀"
그리고
이건 상장이라며 두팔로
할머니를 꼭 안아주며
"임자..
퇴직하면 나랑 놀아줄 겨?"
"그럽시다..."
새벽을 열고 나와
사람들의 아침을 깨워주던
쨍그랑~~ 쨍그랑~~
((((두부))))
라고
외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오늘도
부부라는 행복의 이름으로
두분만의 사랑이 넘쳐나는 곳에서 살아가고 계실거라고 믿으며 노부부의 두부장수 이야기를 끝마치려 합니다
이 세상 가장 큰 축복은
부부의 사랑이라며....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
다녀가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