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죽음
평양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내걸린 김씨 3부자의 초상화. 김씨 왕조의 3대 세습에 위협이 되는 ‘곁가지’ 핏줄은 단호하게 제거돼 왔다. 동아일보DB
1997년 남파 간첩에게 피살된 이한영은 생전 ‘김정일 로열패밀리’라는 수기를 남겼다. 수기는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존재를 처음 밝혔다. 이에 따르면 김현은 1971년에 김일성과 제갈 성씨의 전담 안마사 사이에 태어났다. 같은 해 5월 10일 성혜림도 김정남을 출산했으니 환갑인 김일성과 갓 서른에 접어든 아들 김정일이 거의 동시에 아들을 얻은 것이다.
김현은 이후 ‘장현’이라는 이름으로 장성택의 호적에 올랐다. 1979년 김현은 생모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 동갑내기이자 조카인 김정남과 함께 살았다. 김현은 생모를 이모라고 불렀다.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김정일의 저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상당히 신뢰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의 증언에서 거짓은 없다. 이한영이 1982년 한국에 망명했기 때문에 김현에 대한 증언은 모스크바 생활에서 끝난다.
지난해 5월 기자는 미출간된 김정일 회고록을 입수했다. 김일성 90주년 생일을 맞아 김정일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 위주였는데, 여기에 김일성이 아주 허물없이 대했다는 마사지 담당 간호사가 두 차례나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돼 있다. 일개 간호사를 김정일이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회고록에 나오는 김일성 담당 간호사의 이름은 순복이였고, 1962년부터 등장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담당 간호원을 친딸처럼 정답게 찾으며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수령님의 건강은 동무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무하자 간호사가 열심히 손을 단련해 남자 이상으로 손아귀 힘을 키웠다고 한다. 김일성은 늘 “네가 제일이다. 네 덕에 잠을 잘 잔다. 네가 나라의 복을 만든다”고 치하하곤 했다는데, 이 간호사가 김현의 생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신뢰할 수 있는 한 소식통으로부터 김현의 이후 운명에 대해 들었다. 김현은 북한에 돌아와 평양 중심부 서재동초대소에서 살았다. 보통강 인근의 초대소는 1988년 9월 건설됐는데 경치가 매우 좋다. 2000년경 방북했던 한국의 일부 인사들과 기자들도 이 초대소에 머물렀다. 서재동초대소는 150∼170평 규모의 독립식 빌라 21채로 구성됐고, 각 빌라엔 침실이 3개 있다.
김현은 초대소 구내의 한 빌라가 아니라 입구에서 갈라져 들어간 단독 빌라에서 살았다. 2014년 북한은 서재동초대소 옆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지었는데, 소식통은 그 자리가 김현이 살던 빌라 자리였을 것이라고 했다. 지휘소 옆은 김정일의 본처 김영숙이 살던 서장동초대소다.
김현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김정일의 지시였을 것이다. 김일성의 서자인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배다른 동생이니 위협 인물이라 생각해서 무식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컸을 것 같다. 심지어 결혼도 못 하게 했다. 씨를 더 잇지 못하게 한 것이다. 김현은 키가 175cm 정도로 북한에선 큰 키였고, 김일성의 젊은 모습을 빼닮았다고 한다.
김현은 대신 왕족의 대우는 받았다. 최고급 초대소에서 풍족하게 살았고, 차량 번호가 216으로 시작되는 벤츠도 갖고 있었다. 216 번호판은 북한 최고위 간부만 받는 특혜다. 운전수도 있었고, 요리사도 있었다. 물론 감시원들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김현을 한두 번쯤 현지시찰에도 데리고 다녔다. 위협이 될 존재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다.
백수 신세가 된 김현은 난봉꾼으로 변해 벤츠를 끌고 나가 여성 교통안전원들을 유혹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김일성을 닮은 젊은 남자가 216 벤츠를 타고 다니는 데다 경비가 삼엄한 최고급 저택에서 사니 여성들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김현은 김정일에겐 짐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쿠데타라도 일어나 김일성의 핏줄이라며 김현을 옹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로 한 김정일은 결국 2007년 김현을 조용히 죽였다고 한다. 김현은 김일성의 사생아로 태어나 36년을 잘 살고 죽은 것이다.
이렇게 핏줄 정리, 북한말로 ‘곁가지 정리’에 들어가니 김현과 모스크바에서 함께 큰 김정남이 가장 공포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 역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됐다. 외국을 전전하며 동생의 마수를 피하려 했지만, 김씨 왕조에는 자비가 없었다.
주성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