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필리핀에서 얼렁뚱땅 땄던 자동차 면허증이 이제 써먹을 때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운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몇 년이나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인터넷을 찾아 ‘장롱면허 전문’이라는 말에 신청을 해서 도로주행을 담대히 치루었다.
운전강사는 개그맨 안상태를 닮았는데- 툭툭 던지는 그의 말과 지시에 따르며,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첫날, 강사는 떨고있는 내게 운전대를 맡기며, ‘무조건 앞만 보고 가세요, 옆엔 보지 말고 그저 앞으로만 가세요.’ 라고 지시했다.
시키는대로 빗길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니 옆의 자동차들이 알아서 서로 피해간다.
달리다보니 전문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어, 곧 편안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내 삶의 전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니 옆의 문제와 사건들이 알아서 피해간다.
완전 초짜인 내가 삐뚤게 가면 운전대를 즉시 쳐서 원상태로 돌려주고, 급할 땐 브레이크를 대신 밟기도 한다.
그래, 나의 신앙이 어렸을 때는 조그마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주님은 즉시 응답하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대신 싸워 주신다. 그러나 그 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홀로 굳건히 서서 주님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지자, 한가로운 길로 인도하여 우회전, 좌회전, 유턴을 마구잡이로 시켰다.
처음엔 핸들을 잡아 도와주다가 나중엔 환전 삐딱하게 선 차를 세우고 보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사고가 나는 거야, 차가 있었으면 큰 사고였어.’ 강사가 말했다.
“자, 봐라~ 네 생각대로 했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하지 않았니? 이쯤에서 멈춘 것은 너에게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이다. 아무도 손해나거나 다치지는 않았지만 너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가끔 뒤에서 다른 차들이 크락션을 울리면, ‘저것들 다 초보들이야. 피해가지 못하니까 빵빵대는 거야.’ 하며 불쾌한 마음을 삭이지 못했다.
그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앞만 보고 가는데, 딴지 거는 것(?)들은 다 초짜야.
자기들이 피해갈 수 없으니까 내게 덮어씌우려는 거지.
점멸등이 깜빡이는 곳에 승용차 두 대가 서있자, 또 흥분하며 ‘아이고, 왜 안가. 점멸등인데 왜 서있어. 아이고, 내려서 가르쳐 주고 가고 싶네-’ 하며 크락션을 계속 눌러댔다.
서있는 차 뒤에 맥 놓고 함께 서있는 나를 보며 한 말이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나를 향한 불의를 참지 않으시고 ‘원수는 내게 맡겨라, 내가 갚아주마.’ 하시고 내게 설명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때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네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 나는 네게 무조건 참아라, 무조건 지고 살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네가 불이익을 당하면 나도 화가 나고 흥분하게 된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너의 특별한 교과서로 채택하여 사용한단다. 네가 당한 어려움들, 억울하게 당했던 사건들, 사소한 일이 불거져 교회의 어려움으로 번졌던 일들... 나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너와 더욱 가까워 질 뿐 아니라, 네 키가 한자나 더하도록 자라게 했단다. 운전을 연수하는 목적은 너 혼자 운전을 할 수 있기를 바라서가 아니니? 나도 네 스스로 내게로 오는 것을 너무나 기대하고 있단다.”
두 번째 시간은 좀 더 여유가 생겼다.
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신호에 걸려 기다리고 있으면 계속 문자를 받고 보내고 있었다.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 주님도 다른 일에 시간을 보내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자를 치고 있던 강사가, ‘가세요.’ 지시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어 있던 것이었다.
아차,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푸념하는 순간에도 주님의 눈은 언제나 나를 향해 계셨구나.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나’ 한사람 이었구나.
출근시간인지라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 덤벼드는 것 같아 갑작스런 두렴에 있는 내게- ‘모든 차들이 덤벼들지는 않는다.’ 심각하게 말을 해서 웃음이 터졌다.
뒤에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배려해 주고 피해가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새벽에 절박한 기도를 많이 해선지, 직진과 턴도 아주 부드러워 진 것 같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백미러도 보였다. 일단 순종하고 앞만 보고 가다보니 강사의 말대로 옆이 보였다.
내가 옳은 길로 가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음을 배웠다.
내가 내 길을 바로 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다.
내 삶의 전문가, 그 분이 나를 인도하여 주신다.
혹시 착각하고 다른 길로 들어설 때, 그 분은 바로 잘못된 길- 그 자리에서 최선의 길로 다시 인도하여 주신다.
곱슬한 파마머리에 마이콜같이 생긴 친근한 강사는 장롱면허 연수 10년 차라고 자랑했다.
우리 아버지는 50년차 전문 베테랑이신데...
-주님, 나의 삶을 드립니다.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아시고 채워주시는 주님께 나의 두 손을 모두 놓았습니다.
나의 삶의 운전대를 친히 잡아주소서.
잘 순종하도록 제 귓가에 가까이서 말씀하여 주세요.
제가 뒤돌아보지 않도록 늘 제 옆에 계셔 주세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굽은 길도 구름다리도, 오솔길도 고속도로도- 그 어떤 길도 담대히 토 달지 않고 달리겠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목적지를 정확히 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