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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줄거리
라스콜리니코프는 생활이 곤란해서 공부를 계속하기가 힘들어, 고리대금 업자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찾아가 시계를 전당잡히고 1루불 15카페이카를 빌린다.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모스크바 출생.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이다.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농노제적(農奴制的)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제관계(諸關係)가 대신 들어서려는 과도기의 러시아에서 시대의 모순에 고민하면서, 그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문학세계는 현대성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으며,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이 점이 바로 러시아 도시문학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굳히게 하는 한편, 훗날의 토양주의(土壤主義:러시아 메시아니즘)의 주장에서 엿보이는 바와 같은 농민이상화의 경향마저 그에게서 싹트게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여, 특히 W.스콧의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16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한 다음에는 공병국에 근무했으나, 싫증을 느껴 1년 남짓 있다가 퇴직했는데, 때마침 번역 출간된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가 호평을 받은 데 힘을 얻어, 직업작가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은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중편으로서,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을 기치로 하였던 당시 비평계의 거물인 V.G.벨린스키에게 인정되어, 24세의 무명작가는 일약 ‘새로운 고골리’라는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곧 이어 발표한《분신(分身)》(1846)과 《주부》(1847) 등은 벨린스키로부터 심리주의로의 병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어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 무렵부터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백야(白夜)》(1848) 《네트치카 네즈바노바》(1849) 등의 가작을 씀으로써, 인간의 정열의 여러 모습을 탐구하는 한편, F.M.C.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M.V.페트라셰프스키의 서클로 접근해 갔다. 이 시기의 혁명가들과의 교류는 그의 생애를 통해 그의 창작활동에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18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 시베리아의 옴스크 감옥에서 지낸 4년간의 생활은, 그가 인도주의자 ·공상적 혁명가에서 변모하여 슬라브적인 신비주의자 ·인종사상(忍從思想)의 제창자로 사상적 전신(轉身)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출옥 후 5년간, 중앙아시아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는 동안 M.이사에바와 결혼하고, 1859년 말 10년 만에 수도 페테르부르크로의 귀환이 허락되었다. 귀환 후 농노해방을 눈앞에 두고 고조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형인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를 창간, 시사문제를 집필하는 한편, 시베리아 옥중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독특하고 참신한 장편 《죽음의 집의 기록》(1861∼1862)과, 그의 전기(前期) 창작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학대받은 사람들》(1861)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으로의 복귀를 확고하게 하였다.
그 다음의 수년간은 농노해방 뒤에 야기된 정치적 반동과 사회적 환멸의 한 시대로서, 또한 그의 개인생활에도 중대한 사건이 겹친 시기였다. 즉, 1862년의 그의 첫 서유럽 여행, 애인 스슬로바와의 이상한 연애체험, 1864년의 그의 아내와 형의 죽음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의 문학상의 전기(轉機)가 되었으며, 후기의 대작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일반에게 인정되는 중편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가 이 시기에 씌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1864년 잡지 《에포하》를 발행했으나 완전히 실패하여 그는 거액의 빚만 짊어지게 되어 생활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1867년 중편 《노름꾼》(1866)의 구술(口述)이 계기가 되어 사귀게 된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한 뒤로는, 빚쟁이의 추궁을 피해 4년이나 해외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그의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남기게 되는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惡靈)》(1871∼1872) 그리고 중편 《영원한 남편》(1870) 등을 발표했다.
외유에서 돌아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만년의 10년간은 장편 《미성년》(1875)과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1880) 이외에도, 1873년 이후 시사적 수상(隨想)과 문예평론 ·단편 등을 포함한 자유형식의 문집 《작가의 일기》를 썼다. 그가 죽기 반 년쯤 전 푸슈킨의 동상제막식에서 행한 기념강연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아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장식해 주었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시대의 첨단적인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킴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점에 그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에 있어서의 인간을 추구한 《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초래할 아름다운 인간 미슈킨 공작(公爵)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묘사한 《악령》, 청년의 야심적 생태를 다룬 《미성년》, 존속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가 다르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죄와 벌》의 양극적(兩極的)인 인물상(人物像)인 소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각기 《백치》의 미슈킨 공작, 《악령》의 스타브로긴으로 계승되며, 나아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의 조시마 장로와 이반의 대결로 발전하는 것 등이 한 예로서, 그의 작품세계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긍정과 부정’의 상극을 작가 자신과 더불어 체현시킨 것이라 하겠다. 이 상극의 생생함을 ‘폴리포닉한 로망’ 형식 속에 그대로 재현시킬 수 있었던 점에서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가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문학과 사상에 끼친 영향은 매우 광범위한 것이지만, 특히 현저한 것으로는 F.W.니체에서 현대의 실존주의자에 이르는 사상의 계보를 들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온갖 적극성을 부정하는 수난의 철학을 신봉하는 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반동작가로 규정하여 왔으나, 근자에 이런 견해는 다소 약화되어 그의 저작집 등도 새로 출판이 허용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1980년 도스토예프스키전집(전7권)이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독후감
죄란 무엇일까?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죄를 지어 가는 존재이다. 죄는 인간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 죄에는 항상 그에 대한 벌이 뒤따른다. '죄와 벌'이라는 말 안에는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외면까지의 삶의 태도가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의를 실연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정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에는 질서가 있고 법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불의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과 질서를 파괴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엇이 진정한 정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복잡하다. 이 책은 나에게 죄에 대한 의미와 진정한 정의실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을 살인하는 추악한 상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전당포 노파를 죽이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 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처해 있는 공포와 가난을 생각하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여기에서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담한 인간의 심리 묘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면서 오히려 작가보다 독자가 설레고, 인간의 보이지 않는 섬세한 손짓, 발짓 하나까지도 눈에 보였다. 그는 계획만으로만 세운 사건을 어머니의 편지로 인해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범죄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사람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누는데 비범한 자신은 노파를 죽일 권리가 있다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 생각은 곧바로 살인이라는 크나 큰 범죄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그러한 사상과 생각에 참으로 가슴 아프고도 안타까웠다. 범죄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숨기기 위해 그의 옷에 묻은 피를 지우고 양말과 옷을 벗어 숨기는 대담한 모습에서 인산의 양명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가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 을 보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커다란 죄의식이 있을 것이다. 그의 불안은 남들로 부터 그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데서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모습과 그 부조리에 크게 분노를 느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만한 배짱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 그는 가족들, 즉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 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들과 관련하여 '표트르 페트로비치' 와 '스비드라가일로프'는 두사람 모두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혼란, 부조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었다. 루진(표트르 페트로비치)은 돈과 권력이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열하고 치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또,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계획적으로 부인을 살해하는, 그런 인물이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가족과 소냐는 그 두 사람으로부터 농락을 당했다. 물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소냐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이 소냐에 마음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는지는 알 수 었는 일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 설득, '뽀르피리'의 방문 등으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시베리아에서 8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두 사람은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숱한 사회경험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 우울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몸을 팔면서도 항상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굳게 살아가는 소냐를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가 소냐 발 밑에 엎드려 소냐에 발에 키스했던 것, '전 인류의 고통 앞에 엎드렸다.' 라고 말하던 것들은, 소냐의 영혼에 대한 감동과 연민, 그런 것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무뚝뚝하고 음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자신을 따르트리라는 소냐에게 감회되어, 대중 앞에서 센나야 광장에 엎드려 '자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맞춤한다. 그는 그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눈믈을 흘리며 환히와 행복을 느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행복감을 느낀 것은, 그 눈물이 그의 내부에 응어리진 죄의식과 고통을 풀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을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데, 이는 군중의 조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명백한 죄의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삐뚤어져 있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에 참사랑을 느꼈고,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새로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부조리는 남아있다.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참된' 정의'의 의미를 한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