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 꽃/이시하
하늘에서 그녀가 뛰어 내렸어, 알몸으로 까만 눈만 또록 또록 굴리며, 폴짝 그리곤 꼼지락거리며 파고든 곳이 그만 장항아리 옆이래
아아, 피었는데 푸욱 곰삭은 장내음 가득하던 한낮 새악시처럼 배시시 부끄럼타며 피었는데 하필 장항아리 옆이라니 툴툴 불평한 건 패랭이꽃이 아니었어 새악시 치마폭 간들간들 맴돌며 입맞춤 할까 말까 고민한 건 그건 말이야 하얀 날개 눈부신 나비였어.
통 증/이시하
허기가 진다 이것이 순수한 허기인지 의심스러워 진다 담백하게 한 점의 살덩이가 그리운 그 투명한 허기인지가 못내 의심스럽다 이유를 알아야겠다 이 야릇하고 헛헛한 공복의 정체를 알아채야 한다 저녁 무렵이고 해서, 배고플 다른 이유가 없다면 늘상 속을 갈구는 이 뻔뻔한 통증은 무엇인가 팍팍하게 내장을 부풀리고도 끝내 알싸하게 치미는 이 헛헛함이란
별을 태우다 /이시하
붉게 달궈진 석쇠 위에 무언가 태우고 싶어 너무 오래 얼어 있는 가슴 한 조각이나 혹은, 게으른 돼지의 기름 낀 살 한점이라도 태우고 싶어 내 것이거나 아니거나 한 그것들이 연기를 풀풀 피우며 타다가 끝내 진저리치는 그 뜨거운 몸부림이 보고 싶어 저녁 하늘에 첫 별들이 열리면 화다닥 몇 개를 서리해선 꺼져가는 불꽃에게 던져도 줄테야 놀란 별들이 튀어 나가는 소리 타닥, 타다닥.
제 18회 월간 문학 저널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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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 시인 이시하(李翅河) ▒ 1967년 경기도 연천 출생. 현 경기도 의정부 거주. ▒ 제 18회 월간 문학 저널에
'패랭이꽃'외 2편이 당선되어 등단.
▒ 2005년 시집 '푸른 生으로의 집착; 출간
▒ 현재 「빈터」동인으로 활동중임. |
-.심사평.
이시하는<패랭이꽃> <통증> <별을 태우다>에서 무게감을 비산飛散시키는 경쾌한 어투를 구사驅使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발상發想의 이면裏面에 드리운 자의식이 조금도 심각하지 않다. 예리하고 발랄한 재기才氣의 시가 주는 경쾌함이
이향미 시의 덕목이다.
심사위원 : 윤강로, 박경석
-.수상소감.
마음의 짐 없이 그저 가벼웁게 써왔던 시詩란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제 마음 안에 떡하니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버리려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오래된 추억들이 그러하고 오래된 그리움들이 그러하고 오래된 아픔들이 그러합니다 오래도록
낯익은 얼굴로 지내오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제게 있어 시詩는 오래된 벗이었고 늘 제 곁을 지키며 서툴게 그려내는 글도 참아주는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버릴 수 없었나봅니다.
당선 소식을 받으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부터 붉어졌습니다. 빈
가슴에 뭐라도 하나 생명으로 꿈틀대는 것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섭니다. 마음속에 자리잡은 시詩의 텃밭을 재대로 가꾸어 갈 수 있을 지 고운 글 쓰라고 길을 열어주신 분들께 실망이나 안기지 않을
지 부족한 가슴으로 시인詩人이란 이 아름다운 이름을 안아도 되는 건 지 부끄럽고 송구스러워지다가… 다시
부끄러워집니다.
“늘 처음처럼” 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려합니다 배움의 자세에도, 시詩에 대한 열정에도 처음 마음을
간직하려합니다. 일출의 벅찬 설레임 같은 기쁨을 주신 문학저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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