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4일 월요일,
백두대간 5차次 순례巡禮를 위해 집을 나선다. 지난번 4차 산행을 한 후로 비오는 날도 많았고 또, 여름 휴가 등으로 미루어 오다 보니 거의 한 달이 지나가고 말았다. 어제가 바로 매미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 그래서 그런지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선선하다. 올 여름은 장마가 길어 큰 더위 없이 지나가고 어느새 가을 문턱에 들어선 것 같다.
이번 산행구간은 지난 4차 순례의 종점인 화령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 24구간 중 제8~9구간을 가게 된다.
제8구간; 화령~봉황산~속리산~문장대~늘재(26.9m)
제9구간; 늘재~청화산~대야산~희양산~백화산~이화령(41km)
이번 산행계획을 다음과 같이 4박 4일이나, 4박 5일로 잡았다.
1일째; 화령~봉황산~비재~갈령삼거리~갈령~상주시 화북면에서 1박
2일째; 화북면~갈령~갈령삼거리~형제봉~속리산~문장대~밤티재~늘재~상주시 화북면에서 2박
3일째; 화북~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밀재~대야산~버리미기재~문경시 가은읍에서 3박
4일째; 가은읍~버리미기재~장성봉~악희봉~희양산~시루봉~백화산~이화령에서 4박하고 귀경
그런데 넷째 날 산행거리가 26.4km나 되기 때문에 하루에 가기가 벅찰 것 같다. 중간에 숙박할 곳이 있으면 끊어가겠지만,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힘들어도 야간산행을 하여 이화령까지 간 다음 수안보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올라 올 예정이다.
이번 순례巡禮 구간에는 속리산을 비롯하여 대야산, 희양산 등 백두대간의 중앙부中央部에 해당하는 험난한 구간이 기다리고 있어 긴장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한 편으로 험한 만큼 수려하기도 하기에 기대가 되기도 한다.
지도를 검토해 보니 첫 날과 둘째 날 숙소를 상주시 화북면에 정하면 둘째 날 속리산 산행 때는 일부 짐을 숙소에 두고 도시락과 물만 가지고 배낭을 가볍게 해서 산행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할 참이다.
백두대간 18일째: 화령~봉황산~비재~갈령삼거리(10.7km)
아침 6시 30분에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화령행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5시 15분에 집을 나선다. 남부터미널에서 정시에 출발한 우등 고속 버스는 청주, 보은, 화령을 거처 상주까지 가는데...,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승객들이 거의 전 좌석을 체웠다.
[보은 버스터미널]
[보은 버스터미널 앞...]
버스가 8시쯤 청주에 도착하자 승객이 거의 다 내린다. 주말에 서울 갔다 오는 회사원, 학생 등이 많은 듯..., 다시 청주를 떠난 버스는 남청주, 미원, 창리에서 승객을 갈아 태우고 보은에 도착했다.
잠시 터미널 대합실을 나와 본다. 터미널 앞 자그마한 골목길에는 사람들이오가고 있다. 보은에서 20여분 정차해 있는 동안 해장국을 시켰더니 짜고 뜨거워 거의 먹지 못한다.
버스는 보은을 떠난 후에도 관기, 적암 등 나에게는 생소한 몇 곳을 더 들리고 10시가 넘어서야 화령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화령 터미널은 지나번에 이어 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터미널 대합실에 배낭을 내려놓고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 캔커피와 포도를 사서 대합실로 오니 산우山友와 아주머니 둘이 얘기를 하고 있다.
아주머니 1 ; 요새 송이 철인데다 그 지역이 송이가 나는 곳이니 가시면서 송이가 있나 한번 살펴 보세요. 송이 하나에 만원이나 하니 몇 개만 따도 괜찮지요.
산우山友 ; 그래요? 송이가 어떤 곳에, 또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
아주머니1; 솔밭에 떨어져 쌓여 있는 소나무 낙엽을 들치고 올라오고 있으니 잘 봐야 할거예요.
아주머니2; 송이를 어떻게 따, 뱀한테 물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화령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화령으로..., 기본요금이라는데 4천 원을 받는다. 우리는 지난번 점심을 먹
었던 화령정에 올라 산행채비를 하고 10시45분, 봉황산 들머리에 들어선다.
[화령, 봉황산 들머리]
[솔밭 길]
다시 찾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솔 향기 그윽한 시원한 솔밭 길..., 송이가 있음 직한 솔밭 길이 이어진다. 그러
나 송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간 길을 벗어 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송이를 찾아 다닐 수도 없고.., 나로서는 식탁에 놓여 있는 송이만 보았지 산에 있는 송이는 본 적이 없으니.., 그러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뱀을 보았는데 뱀은 언제 보아도 오싹해진다. 문득 터미널에서 두 아주머니가 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다가오는 봉황산]
봉황산이 머리를 내민다.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살포시 내려앉는 형상이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화서면]
오늘 아침 버스에서 내렸던 화령.., 화서 면소재지이기도 하다.
[봉화산을 오르며 돌아본 대간길..]
지난번에 지나온 윤지미산, 무지개산, 백학산이 줄지어 있다.
[봉황산, 740.8m]
[봉황산]
화령을 떠난 지 2시간여 만에 4.6km를 걸어 봉황산에..., 상주시에서 세워둔 백두대간 안내판에는 봉황산의 유래 에 대하여 설명을 해 놓았다.
'상주시 백두대간 도상거리는 68.5km..., 봉황산은 1,300여 년 전 봉황새가 날아들어 30여 년을 살았다는 전
설傳說이 있으며 산의 정상은 봉황이 머리를 빼어 올린 형상이고 양 날개를 펼쳐 무룡리와 상현리를 감싼 봉황과 같다고 하여 봉황산이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가오는 형제봉에서 시작하는 속리산 마루금...]
[우측으로 따라오는 49번 지방도]
우측에는 낙동강 상류인 이안천이 대간大幹 마루금과 나란하게 흐르고 이 하천을 따라 49번 지방도가 화북
으로 달려가고 있다.
[삼형제봉]
아까부터 대간 마루금 좌측으로 다가오는 산, 대간 마루금이 그 산을 지나나 했는데, 우측으로 비켜 간다. 지도에는 삼형제봉으로 되어 있다.
[비재 날머리]
봉황산에서 2시간여 걸어 비재로 내려선다. 비재(364m)에는 장자벌로 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암봉]
[암봉 오르기...]
비재를 떠나 50여분후에 만난 암봉을 오르자 어느새 봉황산은 저만치 물러나 있다.
[봉황산은 멀어져가고...]
[갈령과 49번 지방도]
백두대간 우측으로 따라오며 상주시 화서면과 화북면을 이어주는 49번 지방도.., 오늘 대간 마루금에 있는 갈령삼거리에서 순례를 끝내고 앞에 보이는 암릉선巖陵線을 따라 갈령으로 하산하여 화북에서 묵을 예정이다.
[갈령 삼거리로...]
[49번 지방도]
[갈령 삼거리와 형제봉...]
[백두대간에서 시작되는 충북알프스...]
[두루봉, 873m]
[두루봉]
[충북알프스 갈림길]
[갈령 삼거리]
[갈령삼거리, 721m]
비재를 떠난지 4시간여 만에 오늘 대간 마루금 상의 산행 목적지 갈령삼거리에..., 갈령삼거리는 대간마루금에 있는 삼거리이고 갈령葛嶺은 여기서 이정표를 따라 1.3km 내려가야 한다.
숙박 예정인 화북면은 갈령에서 4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6km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화북
면에 가는 길은 여기서 대간 마루를 따라 조금 더 가서 형제봉을 넘은 다음 피앗재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더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시간이 6시..., 욕심부리지 않고 당초 계획대로 여기서 갈령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내일 다시 여
기로 와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大幹 길을 가게 된다.
[두루봉, 873.0m]
49번 지방도 갈령 너머로 두루봉이 우뚝 솟아 있다. 갈령으로 내려 가는 등산로는 거의 대간 길 만큼이나 뚜
렸한 것으로 보아 갈령은 속리산 종주를 위한 주요한 나들목인 듯....
[갈령으로 내리며 바라본 화북면...]
멀리 화북면이..., 화북면은 우측에는 도장산, 좌측에 속리산 그리고 뒤에는 청화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속리산 마루금...]
속리산 마루금이 아스라이..., 내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헬기장...]
갈령에 내리기 직전에 있는 헬기장에서 114를 통해 화북 개인택시를 소개받아 통화를 시도했더니 딸이 전화
를 받더니 자기 아빠가 외출했단다. 딸이 알려준 휴대폰으로 연결을 시도해 보았으나 받지 않는다. 114에 등록된 번호가 하나 뿐이라, 하는 수없이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아빠랑 통화해서 연락이 되면 전화를 해달라고 해 놓고 갈령으로 내려간다.
-- 오늘 산행거리 12km, 산행시간 8시간...,
시간은 7시가 되어 가는데 화북까지는 6km, 개인택시로부터 연락도 없고 걸어가기는 멀고..., 궁여지책으로 지나가는 차를 세워 보기로 했다. 봉고 트럭 1대가 지나기에 손을 들어 봤지만, 그냥 지나간다. 이어서 카니발이 오기에 손을 들었더니 2~3m 지나쳐 선다. 산우山友가 가서 예기하더니 고맙게도 타라고 한다. 백두대간 순례를 한 이래 처음으로 차량 편의 보시를 받는 순간이다. 차 속으로 스틱과 무거운 배낭을 던져넣고 차에 올랐다.
차車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차주에게 "고맙습니다" 인사했더니 나보다 연장年長으로 보이는 차주의 첫마디
가 상주지방 억양으로 "와 그리 고생하고 다녀요?" 한다. 얼떨결에 "글쎄 말입니다. 별난 취미 때문에 고생하고 다닙니다."고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가 이어진다.
- 그래 지금 어디 갈려고 합니까?
- 화북면에 있는 화북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근처에 내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 화북장? 화북장이 어디지? 거기는 뭐하러 가요?
- 아, 거기서 자고 내일 다시 산행하려 합니다.
- 우리 집에서 자요. 우리 집도 민박해요.
- 아, 그렇습니까? 마침 잘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틀 밤을 자려 합니다.
- 이틀 자면 되지요 뭐...,
- 여기 개인택시가 전화를 안 받던데요? 내일 아침에 일찍 갈령으로 와야 하는데...,
- 그 개인 택시 요새 영업 안 해요. 내일 오면 되지요 뭐, 일찍? 4시요? 5시?
- 6시면 됩니다. 오늘 댁에서 다른 사람도 민박하나요?
- 아마 없을 끼요. 없으면 넓게 쓰고 좋지요 뭐.
이윽고 화북에 와서 도로 변에 있는 2층 집 앞에 서더니 "여가 우리 집이요. 2층으로 올라가요" 한다. 아래층
은 방앗간, 건강원이고 2층이 민박 숙소인 듯...., 2층에 올라가니 거실, 2룸, 주방, 욕실 겸 화장실로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은 없다. 배낭을 방에 던져놓고 보일러 급탕이 되지 않아 찬물로 경기를 해가며 샤워를 했더니 온몸이 얼얼하지만 상쾌하기 그지없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아직은 여름이라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고 한다. 2틀치 민박비 6만 원을 지불하고 서둘러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식당]
근처에 있는 문장대 식당에서 삼겹살, 막걸리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한다.
[민박집]
식사하고 민박집으로 오니 아주머니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빨갛게 익은 마른 고추를 닦고 있다. "아니 고추
를 이렇 게 하나하나씩 다 닦으세요? 고추농사를 짓나요? 이곳에는 오래 사셨어요?"하고 몇 마디 얘기를 했더니 이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어쩔 수 없이 한참 동안 아주머니의 살아온 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주머니는 올해 63세라는데 공기 좋은 곳에 살아서 그런지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그런데도 고생을 엄
청했단다. 문경에서 여기로 시집와서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문제는 조금전에 우릴 태워온 남편이 척추병으로 5년 간이나 자리에 드러 누웠단다. 남편 병 수발을 하며 민박집 바로 옆에 있는 수퍼를 해서 자식들 모두 대학 보내고 출가도 다 시켰단다. 그동안 남편도 병석에서 일어나 조금 전처럼 운전하고 다니고.., 그러고 보니 차주는 몸이 약했고 걸을 때 허리도 약간 굽어 있었다.
지금은 수퍼는 장남에게 물려 주고 자기는 남편 건강도 챙길 겸 건강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연배 한 산
골 여인의 여자女子의 일생一生을 들었다. 그렇게 고생해도 곱게 보인다고 했더니 그건 그렇다며 좋아한다. 아직도 차려입고 나가면 10년이나 젊게 본다며 으쓱해 한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산 덕택이 아닌가 했더니 우리보고 인심 좋고 공기 좋은 이곳으로 이사 와서 함께 이웃하며 살잔다. 아닌게 아니라 이런 데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며느리 셋 중에 누가 제일 좋아요 했더니 큰 며느리가 제일 믿음직하고 좋단다. 나는 큰 며느리가 운영하는 선양마트에 가서 생수 2병과 참외 한 개를 사서 2층으로 올라왔다. 여기 가게들은 가게 문을 열어둔 채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골라 놓고 큰소리로 주인을 불러 돈을 주고 나와야 한다. 도둑이 없다는 얘기다. 잠시 후 민박집 아주머니가 찐 옥수수를 갖고 2층으로 올라 와서 방금 찐 거니 먹어 보라며 주고 간다.
구수한 옥수수 냄새에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배어난다. 내일은 속리산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설레
이며 잠을 청한다.
첫댓글 힘든 고행길 속에는 살 맛 나는 세상을 두루 만끽하는 감상을 어찌 글로써 다 표현하리오.... 내 내 한 발 한 발 조심하길,,,
감사 합니다.
소생도 몇년전에 화령 형제봉 속리산,문장대 코스를 무박 등정했었는데 땀 께나 흘렸지요. 아무튼 손선생, 대단하시고 든든한 산우를 두셔서 부럽고 건투를 빕니다.
통상 피앗재에서 만수리로 내려가 1박하고 가는데..., 힘 들었겠수, 장 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