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서울답사

[유태임(1967.在 / 제주-도련)]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서울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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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서울답사]1화. 답사객 전성시대

  

1화. 답사객 전성시대

정지돈|2015-05-15

4월 26일 오전 10시. 평소라면 숙취에 시달리거나 늦잠을 잘 일요일 오전, 사직단 공원 입구는 일군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나이도 제각각, 옷차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기웃거립니다. 이윽고 사파리의 동물조련사가 쓸 법한 모자를 쓴 키 큰 아저씨가 성큼 걸어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합니다. 맞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입니다.

다들 뭐하냐.
멀뚱히 있지 말고 이리 모여

한국 대표 답사꾼답게 거침이 없는 유홍준 선생님입니다.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을 한방에 정리합니다.

오늘은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하는 서울답사 첫날입니다. 오늘의 답사를 위해 특별히 모신 국문학자 임형택 선생님과 답사를 도와줄 스태프들, 유홍준 선생님의 친구들, 그리고 신청을 통해 모은 18명의 '로또' 당첨자들입니다. 1000명이 넘는 신청자들 중에 딱 18명만 뽑았으니 유홍준 선생님의 표현대로 '로또' 맞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온 곳도 각양각색입니다. 경남 창원부터 진주, 안양, 인천, 양평 등등 멀리서도 왔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앞으로 있을 서울답사를 바탕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을 쓸 계획입니다. 이왕이면 시민들과 함께 서울의 숨은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번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유홍준 선생님, 상기된 표정의 답사 초보들과 함께하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입니다. 얼굴이 싱글싱글합니다.

사직단 - 토지와 곡식의 신을 만나다

이곳이 바로 사직단!

첫 답사지는 사직단입니다. 사극 대사에 늘 나오는 '종묘사직'의 그 사직입니다. 사직단은 토지신('사')과 곡식신('직')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서울뿐 아니라 모든 지방 관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과거 사람들이 토지와 곡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그야말로 청산유수로 사직단의 유래와 현재, 사직단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조선 4대 구라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습니다. 초보 답사객들, 쏟아지는 이야기에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듭니다.

사직단은 이러쿵저러쿵 필운대 - 천지가 이렇게 개벽할 줄 몰랐지

두번째 답사지는 필운대입니다. 필운대는 위치가 그야말로 기묘합니다. 우선 사직단 공원 뒷문으로 나가 배화여고로 향합니다. 골목을 지나 배화여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배화여고 후정에 짠 하고 필운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학교 소각장이 있을 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까요. 

이것이 필운대

학교 안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필운대는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집터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는 장안의 풍류객들이 찾아와 풍월을 읊던 곳으로 유명했답니다. 과거에는 여기서 한양 일대가 내려다보였다는데, 지금은 배화여고에 가려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랄까요. "옛사람들은 천지가 이렇게 개벽할 줄 몰랐지." 유홍준 선생님이 허탈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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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서울답사]1화. 답사객 전성시대

 

               

청전 이상범 가옥

세번째 답사지는 근대 화단의 대표적인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의 가옥입니다. 필운동에서 누하동으로 걸어가는 길 사이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소담하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골목!

청전 이상범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신문에서 일장기를 지운 분으로도 유명합니다. 동도서기의 입장에서 한국화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린 분이랍니다.

청전 이상범 가옥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유홍준 선생님, 한 시간을 꼬박 걸었는데 표정이 밝기만 합니다.

유홍준 & 임형택 노익장 투 샷 서촌 행진 - 답사객 전성시대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다음 답사지인 일세암으로 가기 위해선 요즘 뜨는 동네인 서촌을 지나야 합니다. 서촌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이 가득합니다. 이런 동네에 오래된 문화유산이 있다는 게 신기한 노릇입니다. 신구의 조화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답사객 전성시대

일세암으로 가는 길 와중에 인왕산 다섯 활 터 중 하나였던 백호정도 지납니다.

백호정 일세암 - 서울의 숨은 비경을 찾아서

네번째 답사지는 일세암입니다. 일세암은 그 유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인데요, 그야말로 숨은 비경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가는 길부터 남다릅니다. 

일세암 오르는 길

일세암은 현재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쓰레기와 잡목이 가득합니다. 공간도 좁고 텃밭으로 쓰인 흔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뭘 봐야 하나 어리둥절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유홍준 선생님 혼자 일세암에 올라 주변을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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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서울답사]1화. 답사객 전성시대

   

맹수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포즈로

유홍준 선생님, 지세나 경관이 이만한 곳이 없다고 연신 감탄합니다. 듣고 보니 일세암에서 보이는 서울 경관이며 인왕산 자락이 남다릅니다. "내가 이런 곳 때문에 서울 답사기를 써야 돼."

서울에는 아직 숨은 비경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볼품없는 일세암도 시민들과 서울시의 힘이 합쳐지면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 수 있겠죠. 서촌의 핫 플레이스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거리입니다.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질 수 있는 가능성에 유홍준 선생님도 기쁜 모양입니다. 내려가는 길에 모자에 애기똥풀도 꽂습니다. 꽃할배 등장입니다.

일세암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유홍준과 임형택이 매의
눈으로 풍광을 살피고 있다

모자에 꽂은 애기똥풀 통의동 백송 터

누하동 골목을 지나고 효자동 큰길을 건너 도착한 다섯번째 답사지는 통의동 백송 터. 지금은 고사하고 말았지만 1990년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백송나무가 있던 곳입니다. 이후 종로구청, 서울시, 마을 주민들이 어린 백송을 구해와 심는 등 백송 터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유홍준 선생님 말로는 나중에 백송이 자라면 지금 터는 비좁을 거라고 합니다. "중재위원회라도 열어서 몇 그루는 옮겨심어야 돼." 나무까지 자리다툼을 하는 세상이라니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합니다. 

통의동 백송 터 통인시장

정신없이 유홍준 선생님 뒤를 쫓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스태프들이 갑자기 가방에서 엽전을 꺼냅니다. "줄을 서시오." 통인시장에는 엽전 도시락이라는 명물이 있습니다. 

엽전 도시락

엽전, 이렇게 생겼다

엽전으로 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마음대로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메뉴는 순대볶음, 떡볶이, 국수부터 닭강정, 식혜, 청포도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유홍준 선생님 따라가느라 허기졌던 초보 답사객들, 시장 음식을 거덜낼 기세로 폭풍흡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답사, 아직 반도 안 왔습니다. 오후에 이어질 답사가 진정한 하이라이트. 서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다음주에 이어질 2부 '서울의 자존심' 편을 놓치지 마세요.

여러분의 후원금은 취재비용 외에 우리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으로 사용됩니다.

2만 원 이상 후원해주신 분들에게는 7월 출간 예정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남한강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출간 일정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by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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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