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계종 중앙종회의 ‘불기 사용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주경)’의 불기 문제 논의과정에서 조사위원으로 위촉된 동국대 조준호 박사가 “올해 불기는 2551년이 맞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동국대에서 ‘인도불교사’와 붓다의 생애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미숙 박사가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박사는 기고문을 통해 “WFB의 불기는 세계 각 나라와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기준 삼고 있는 불기”라며 “더구나 서구 국가에서 불교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에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어 “현 시점에서 WFB의 불기 산정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며 “WFB는 불기 산정에 있어 남방 전승을 따르고 있고, 특히 인도의 태음력을 산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남방식 불기에 따르면 불기 2551년은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있다”며 “그러나 월일에 대한 표기는 그레고리력이라 불리는 서기에 맞춰 표기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어 2008년 1월 1일은 2551년 1월 1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또 “우리나라의 경우 인도의 태음력을 따르는 남방식 불기 기산법에 대한 몰이해와 한국식 태음력에 따른 북방식 3대 기념일, 그레고리력에 따라 양력 1월 1일부터 바뀌는 한국불교만의 불기 기산법 등이 혼용되면서 결국 불기에 대한 혼돈을 초래했다”며 “결론적으로 2007년 1월 1일부터 2007년 붓다 열반일까지는 ‘불기 2550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미숙 박사의 기고문 전문.
필자는 수년 전부터 동국대를 비롯한 강단에서 인도 불교사 또는 붓다의 생애에 대해서 강의할 적마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불기(佛紀)에 착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물론 그러한 지적은 우리가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ihp of Buddhists, WFB)에서 규정한 불기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론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주된 의도는 불기의 산정에서 드러나는 각 나라별 문화적 전통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있었다.
여기서 불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논급하지는 않겠다. 불교 역사의 시작이 곧 불기인 만큼 그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사족이라 본다. 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불기 산정의 기본 원칙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각기 다른 전통의 역법(曆法)을 통해서 불기를 이해하려다 빚어지는 오해와 오류를 적잖이 접하게 된다. 그러한 오류들 중 몇 가지는 불기를 산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역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해소될 사항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불기 산정의 기준과 원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나면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고 불기를 확정하거나 통일하는 길도 보다 수월하게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붓다 열반한 해부터 기산
불기를 산정하는 데 가장 먼저 선행될 사항은 가우타마 붓다의 생몰 연대를 밝히는 것이다.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또 다른 슈라마나 교단의 마하비라(기원전 599~527년)의 연대가 자이나 교단과 학자 간에 큰 이견 없이 정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붓다에 대해서는 아직도 절대 다수의 학자가 공감하는 설은 없는 듯하다.
불기에 대한 학설이 아직도 그토록 분분한 만큼 WFB의 불기는 세계 각 나라와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기준 삼고 있는 불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서구 국가에서 불교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에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WFB의 불기 산정 방법을 최우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WFB에서는 불멸 연대에 대해서 북방 전승을 따르지 않고 남방 전승을 따르고 있다. 즉 붓다의 열반은 기원전 544년 바이샤카 달 보름날이며, 그 탄생은 기원전 624년 바이샤카 달 보름날이고, 붓다가 정각(正覺)을 성취한 날도 바이샤카 달 보름날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붓다의 탄생과 정각, 열반의 날이 모두 바이샤카 달 보름날로 동일하다. 그래서 열반은 슬프기 마련이지만, 탄생과 정각의 날이기 때문에 바이샤카 달 보름날 거행하는 행사가 축제로 여겨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붓다 탄신일’은 인도 말로 ‘붓다 자얀티’(Buddha Jayanti)라고 한다. 자얀티란 ‘탄생’을 뜻하는 잔(jan)에서 파생된 말로 ‘생일’이다. ‘붓다 자얀티’라고 하는 경우에도 불기를 병기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붓다 탄신 불기 ××××년’(Buddha Birthday BE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예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열반을 기준으로 한 불기 숫자와 탄신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지만 불기가 마치 탄신일부터 헤아린 숫자가 되어 ‘죽은 아이 나이세는 꼴’이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진정한 불자라면 그렇게 오해할 일도 없을 터이다. 기쁘게 기념하는 것은 탄신일이고 햇수의 산정 기준은 열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막론하고 불교의 대표적인 기념일은 붓다의 탄신일이다. 이 점은 다른 종교와도 다를 바 없다. 거의 모든 창시 종교의 경우에 그 교주의 탄신일을 가장 중시하며 첫째가는 축일(祝日)로 삼고 있다.
생일은 기쁘고 기일(忌日)은 슬픈 법이다. 불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남방 전승과 WFB에 따르면 탄생, 정각,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결과가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기의 숫자는 ‘붓다의 열반 해’(BNS, Buddha Nirvana Samvat, “붓다의 열반 해”로부터라는 뜻으로 불기에 해당하는 인도 원어)로부터 기산된 햇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태음력이 기준 역법
WFB의 불기 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과는 다른 인도력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WFB의 불기 산정에 기준이 된 원천적인 달력이 인도력이기 때문이다.
태음력(Lunar Calendar, 태음력)을 토대로 한 인도력의 한 달은 흑분(黑分)과 백분(白分)으로 나뉘어져 있다. 흑분은 흑월(黑月)이라고도 하는데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음력 16일부터 30일까지를 말한다. 백분은 백월(白月)이라고도 하는데, 달이 차기 시작하는 음력 1일부터 15일까지이다. 물론 인도력에서는 각각 흑분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 열다섯째 날이라고 헤아리며, 그와 동일하게 백분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 열다섯째 날이라고 헤아린다. 흑분과 백분의 각 날은 기수가 아닌 서수를 사용한다.
특히 백분 15일째는 만월(滿月, purnima)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붓다 기념일(Buddha Day)을 ‘붓다 만월’(Buddha Purnima) 날이라고 하며, 간단히 ‘바이샤카’ 제(祭)라고도 한다.
바이샤카 달은 아래 표에서 보듯이 인도력 절기상으로는 둘째 달에 해당하지만, 요사이 영문 자료에서는 “네 번째 음력 달”(the fourth lunar month)이라고도 한다.
인도력에 따른 1년
이와 같은 인도력은 우리나라의 전통이나 관습적 달력과는 매우 달라서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달력을 토대로 붓다 당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도를 비롯한 남방 불교 국가들의 주요 행사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서구 열강이 주도했던 근대화 시대에 문물 개방과 더불어 소위 양력을 채용하게 되면서부터 각 나라마다 전통적인 책력과 서양식 양력이 함께 사용됨으로써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대부분의 기념일들은 양력을 기준으로 재조정되었으나 뿌리 깊은 전통과 의례들은 예외적으로 전통적인 역법에 따라 지켜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기는 변함없이 전통적인 역법 특히 인도식을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 국가들은 인도의 산스크리트 식 달 이름을 자기 나라의 말로 바꾸어서 쓸 뿐 기본 구조와 원리는 인도력과 큰 차이가 없다.
불기 산정 방법에 따른 차이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불기는 붓다가 열반에 든 기원전 544년을 기준으로 하여, 기원후 서력 햇수를 더해서 산정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2007년+544〓2551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열반 해는 동일하지만 그 해, 즉 기원전 544년은 “0년”으로 삼고, 서력에 해마다 543을 더해서 2007년은 2550년이 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방식의 혼재는 불기 산정이 매우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산정법이 과연 올바른가? 둘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야 하는가? 일찍이 어떤 연유로 불기를 산정하게 되었던가?
본래, 불기 산정의 기원은 붓다가 입멸한 해, 즉 기원전 544년의 우기철이 되자 승단의 수행자들이 한데 모여 안거(安居)를 보내고 나서 붓다가 없이 처음으로 안거를 마쳤다고 하면서 한 해씩 헤아렸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불기 1년이란 “붓다 없이 하안거를 보낸 첫 해”이고, 불기 2년은 “붓다 없이 하안거를 보낸 2년째 해” …… 불기 2550년은 “붓다 없이 하안거를 보낸 2550년째 해”가 된다.
2007년은 “붓다 없이 하안거를 보낸 2551년째 해”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기원전 544년의 우기가 오기 전인 바이샤카 달 보름날 입멸했고, 수행자들은 그 해의 하안거를 붓다 없이 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후 서력 연수에 544를 더하면 불기가 성립한다.
그런데 기원전 544년을 0년으로 삼고 산정하는 경우는 기년법(紀年法)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본다. 기원전 1년 다음 해가 기원후 1년이 되듯이, 0년은 산정하지도 가정하지도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서력에 543을 더하는 방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만(滿) 나이를 헤아리는 것처럼, 주기(週期)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기념일을 산정하는 기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일단, 불기가 헤아려졌다면 그 시작과 끝은 언제인가? 인도 불교 교단의 전통에 따르면, 하안거의 끝 날이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 다음날부터 새로운 불기가 시작되며 동시에 그 날부터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들은 법랍(法臘)을 하나씩 더하여 계산했다. 그래서 법랍은 하랍(夏臘)이라고도 한다. 요컨대 고대 인도 전통의 불기란 ‘불교식 한 해’를 뜻하며, 그 시작은 하안거가 끝난 다음날부터이고, 그 끝은 그 다음 해 하안거가 끝난 날까지이다.
그러나 WFB의 불기 기산법은 이것과도 다르다. WFB의 불기 산정의 토대가 된 현대의 남방식 불기에서는 바이샤카 달 보름날이 불기의 끝이고 바로 그 다음날을 새로운 불기의 기산점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불기 2551년(2007)은 지예슈타 달 흑분 제1일째 날부터 시작되어 서기 2008년 바이샤카 달 백분 제15일째 날까지이다. 서기로만 보자면 “2007년과 2008년에 걸쳐서” 불기 2551년 한 해가 성립한다. 이것은 1년의 기산이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월일을 표기할 때에는 그 날짜에 해당하는 그레고리력(Solar Calendar, 태양력)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기 2551년 1월 1일은 서기 2008년 1월 1일과 같다. 이런 연유로 인한 표기상의 착각 때문에 서기 연도에 543을 더하면 불기가 산정된다는 얘기가 돌게 되었다고 본다.
불기 1년의 시작 날이 “1년 1월 1일 0시”라는 식으로 새롭게 조정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불기는 햇수의 기산에만 관여할 뿐 월과 일, 시간 등의 기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점은 어느 나라든지 동일하다.
역사-문화전통의 총체적 상징
우리나라에서 WFB의 불기를 채택하기 전에 사용하던 전통적인 불기는 북방식이었다. 불기뿐 아니라 붓다의 탄생일은 음력 4월 8일, 정각은 음력 12월 8일, 입멸을 음력 2월 15일로 정하여 남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남방식 불기인 WFB의 불기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불기만 따를 뿐 기념일은 남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남방식 기념일을 따르지 않은 관계로 불기의 시작점 또한 모호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그레고리력과 동시에 불기가 바뀐다.
요컨대 현재 시점에서 고찰해 볼 때, 우리나라 불기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이 혼재되어 사용됨으로써 결국은 지금의 혼돈을 초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인도 태음력을 토대로 한 남방식 불기 연수(年數) : 그 불기의 산정 방법을 온전히 고려하거나 그것까지 채용하지 않고 불기의 숫자만 따 쓰는 결과를 초래했다. 남방식 불기가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두 해를 걸쳐 있을 수밖에 없는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몰이해가 첫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이 사실은 불교적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2) 우리나라의 전통 태음력을 기준으로 한 북방식 3대 기념일 : 남방식 불기를 채용하면서도 주요 기념일 특히 열반일과 탄생일이 서로 다른 날인 기존의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기의 기산일이 열반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식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 남방에서는 3대 기념일이 같기 때문에 탄신일을 축제로서 기념하고 나서 그 뒷날부터는 열반 다음날이라는 근거로 한 해를 더한 불기를 사용한다. 게다가 연중 한 차례인 하안거만 지내는 남방식 전통과 달리 연중 두 차례, 즉 하안거와 동안거를 지내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안거를 기준으로 법랍을 산정하는 전통도 희미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 그레고리력에 따라 양력 1월 1일부터 바뀌는 불기 기산점 : 우리나라에서는 불기를 채용한 뒤 그 기점을 양력 1월 1일부터라고 정하였다. 결국 우리나라의 불기는 열반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모든 불교식 기념일과 행사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전통 태음력도 아니며, 하안거를 기준으로 삼은 것도 아닌 우리 역사 문화상 가장 짧은 이력을 가진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한 셈이 되어 버렸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시대에 걸맞은 결과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불기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재론의 여지가 없다.
끝으로 강조하건대, 불기 2551년 설 내지 2550년 설 등등, 논란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기(週期) 개념일 경우에 미리 당겨서 산정하는 예는 없다는 것만 밝히고자 한다. 그것이 단지 며칠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거니와 몇 달을 당겨서 주년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본다. 왜냐하면 붓다의 열반을 기점으로 산정하는 불기의 경우에 실제보다 미리 입멸한 것으로 보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2007년 1월 1일부터 2007년도 붓다 열반 날까지는 불기 2550년이 분명하다. 그 기간을 불기 2551년이라고 셈하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 그 어떤 식의 기년법에서도 그런 방식은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다.
924호 [2007-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