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양파를 말한다” 제2회 무안학 발표회가 14.7.29(화)오후 2시부터 무안군 노인복지회관 2층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발표회는 무안문화원이 주관하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 에너지작물센터·무안군이 후원했다.
백창석 무안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이날 개최하는 제2회 무안학 발표회는 무안문화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이며, 무안양파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큼에도 양파에 대한 학술적인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문화원이 주최가 되어 무안양파의 모든 것을 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여 정리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표회를 개최하게 됨을 알리고 이후 발표된 사항을 토대로 무안 양파 상징탑 조성이나 박물관 건립 등 양파관련 사업을 무안군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할 예정임을 밝혔다.
첫 번째 발표는 “농촌진흥청 전 작물과학원 목포 시험장 정병춘 농학박사가 양파종자 무안전래와 최초의 재배역사” 에 대해서 양파종자가 무안에 최초로 전래된 경위, 양파 최초 무안 재배역사, 무안에서 양파가 성공하기 까지, 무안양파 생산자 조합 결성, 맺는 말 등의 순으로 발제를 마쳤다.
정 박사에 따르면 1.무안이 양파 명산지가 된 내력 가운데 양파종자가 최초로 무안에 전래된 경위는 무안읍 성남리 강동원(姜東遠)씨는 어머니를 여의고 1930년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던 중 숙부 강대광(姜大光)씨가 여비 20원을, 당시 목포경찰서에 근무하던 숙부 강대원(姜大元)씨가 여행증명을 만들어 주어서 큰 꿈을 품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 양파 재배농가에서 농사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양파재배기술을 배우면서 일본인들이 양파를 즐겨먹는 것을 보고 고향에서도 앙퍄 농사가 잘될 것 같고 일본사람들이 살고 있음으로 판매도 될 것 같아 양파종자 1홉과 재배기술에 관한 책자를 구입하여 여비로 마련해 주신 숙부 강대원(姜大元)씨에게 1932년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이것이 개인을 통해 양파종자가 무안에 처음 들어온 과정이다.
그 후 강동원(姜東遠)씨는 귀국하여 농업에 종사했으나 토지가 적어 어려움이 많았다.
2. 양파 최초 무안 재배 역사
귀중한 양파 종자를 우편으로 받은 숙부 강대광(姜大光)씨는 밤낮없이 재배기술 정착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여 파종·육묘·정식 등의 기술을 단계별로 체계화 시켰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경험이 축척되면서 기술이 정립되어 생산량이 늘어났으나 소비처가 없어 문제가 되었다. 혹시 찾는 사람이 있을까하여 무안시장에 양파를 내놓았는데 마침
그 때 시장을 구경하던 당시 일본인 우체국장이 양파를 보고 깜짝 놀라며 고가로 구입해 주면서 목포 큰 시장으로 가지고 가면 일본인들이 사줄 것 이라고 귀 뜸을 해 주었다. 판매를 고심하던 그는 양파를 마차로 수송하여 목포중앙시장에 내어놓고 팔기 시작했다.
그때 목포에 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에서도 양파가 생산되는구나 하면서 좋은 가격으로 사주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보리농사 보다 5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이웃집에 사는 장의진씨에게 양파농사를 권유하였고 생산된 양파는 같이 마차에 싣고 목포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양파가 소득 높은 작물로 소문이 나자 성남리 인근지역에서 재배하려는 농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무안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로 양파 개별농가 재배 성공사례로 무안을 양파 명산지로 성장시킨 뿌리가 되었다.
따라서 무안을 양파명산지로 성장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은 종자를 전래한 강동원(姜東遠)씨와 시험재배를 통해 재배법을 확립한 강대광(姜大光)씨다,
3.무안에서 양파 채종재배가 성공하기 까지
무안양파를 조명할 때 양파 채종 재배역사를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경남 창녕보다 먼저 양파 재배를 시작하였고 채종재배도 먼저 시도 하였으나 창녕에서 먼저 성공한 것이다.
무안지역에서는 그 동안 줄 곳 비싼 일본산이나 창녕 산 종자 등 외지산 종자를 구입하여 사용하여 왔다. 따라서 무안지역의 양파 재배농가들의 오랜 소망의 하나가 양파 종자 자급으로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이었다.
특히 무안에서 가장 먼저 채종재배를 시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장기운씨(장의진씨 아들)는 스스로 양파 채종관련 일어로 된 책자를 보면서 연구하여 채종재배를 시도하였다.
중학교 교사 이었던 그는 진도로 이동 발령 후 진도에서 양파 채종재배를 시도하여 첫해에는 크게 성공하였으나 다음해에는 부인 사망으로 비운사이 건조과정에서 잘못되어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1970년대 중반기에 무안군 농촌지도소에서 채종재배(간이 비가림식)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고 무안 단위조합에서도 양파 채종사업을 시도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고 이동 등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여러 농가와 농협, 농촌지도소 등의 양파 채종 기술개발의 도전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모구용 양파를 선발하여 저장하였다가 가을에 다시 심어 다음해 6월에 추대·개화·수정시텨 채종 하는데 개화시기의 장마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여 결실률이 낮아지므로 실패하였던 것이다.
창녕에서는 간이 비가림 재배로 가능하나 창녕에 비해 표고가 100m나 낮고 강우가 많으며, 일교차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피해도 종종 있었던 까닭에 무안지역에서 간이 비가림 채종재배는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이 문제는 1994년부터 파속작물 연구를 시작한 호남농업시험장 목포 시험장에서 하우스 채종 재배기술을 95-96년에 개발하여 개화시기를 2주 앞당기므로 성공하였으며, 현재 영농조합법인 무안종묘에서 기술을 전수 받아 1998년부터 채종 사업을 수행, 재배 농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야 말로 오랜 꿈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호남농시 목포 시험장에서 양파 하우스 채종재배기술에 대한 1995년의 최초 설계내용은 정병춘 연구관의 아이디어 이었으며, 시험수행은 최인후 연구관과 이을태, 정미남 연구사 등이 담당하였다.
영농조합법인 무안종묘에서 채종사업을 하도록 하는데 공이 있는 분들은 김병환 당시 무안군농업기술센터 소장, 김영식,나준성, 조건형씨 등이었다.
4.무안 양파 생산자 조합 결성
1930년대에 농림부 산하에 대한원예협회가 있었고 전남도에는 지부가 있어 종자를 수입 배분하는 일들을 하였다.
도지부에서 양파재배기술을 확대 보급하고자 지역별로 양파생산자 조합 결성을 유도 하고 있을 때 무안에서도 생산자 조합을 결성했으면 좋겠다는 배종연(당시 도청출입 신문기자)선생의 권유에 의해 1937년에서 38년 사이에 무안 양파 생산자 조합(조합장에 손필로, 상무이사에 정순달)이 조직되었다.
이것이 조직을 통한 무안 양파재배의 시작으로 후에 원예조합을 탄생시켰고 씨앗과 비료 등은 이 조합을 통해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순수한 농민 즉 소작인들이 뭉쳐서 양파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6.25 전쟁이후에는 대지주와 소작농들이 총궐기하여 폐허화된 무안 농촌을 다시 세우고자 양파농사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앙파조합을 만드는데 공이 많으신 분으로는 당시 신문기자였고 훗날 대한원예협회 전남도지부 기사로 근무하였던 배종연, 초대조합장 손필호, 상무이사 정순달씨 등이며, 그 후 무안양파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 분으로는 박석남 농협조합장 등이 있다.
맺는말
무안 양파의 강동원, 강대광씨, 창녕양파의 조성국, 성재경씨의 업적이 한국 양파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그들은 연구소의 연구원이나 대학교수가 아니고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농민들은 깊이 깨닫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한층 FTA가 어려운 우리농촌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우리 전남 서남부 지역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농업인 스스로 연구조직을 만들어 문제점 해결을 위한 연구를 해 나가야 한다.
연구하다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때 군이나 연구소 등에 건의하고 협력을 구해야 한다. 사업 시작부터 관의 도움을 받게 되는 사업치고 성공한 사업은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발제자인 전남 서남부 채소협동조합장 전영남은 무안농업의 미래와 양파의 미래에 대해서 발표했다.
무안지역 양파·마늘의 문제에 대해서 무안지역은수년간 마늘과 양파를 연작하고 있음, 주산지와 지역 마늘·양파 농가 증가(경기도, 강원도에서 재배), 수확량을 올리기 위해 과량의 농약과 비료를 살포, 토양 떼알 구조의 파괴, 산성화로 딱딱한 토양이 조성되어 간다.
양분 불균형 및 가스 장애로 인하여 작물 피해가 일어남, 경사지 토양의 수분 및 비료의 불균형 시비로 수확량에 영향을 준다,
병충해 발생으로 수확량이 매우 감소됨, 새로 시작하는 지역의 생산성 이 높고 상품성이 좋음, 영남지역의 경우 합천 창녕등지에의 2013년 생산량이 평당 40-50kg으로 무안지역의 2배 정도에 달한다. 수확기 농가의 고령화와 인력부족으로 인건비가 상승되어 생산비가 증가된다.
무안지역 마늘·양파의 문제 극복 방안
1.기반 조성의 문제, 밭 토양의 연작 장해 극복을 토양 소독을 통해 하고 있으나 담수 할 수 있는 밭이나 윤작체계의 개발이 시급하다. 영남의 경우를 보면 여름작물이 벼를 심든, 콩을 심든, 심토 유기물이 들어가면 토양의 입단화(떼알구조)로 인해 부드러운 토양으로 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