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화이든 경쟁력을 갖추려면 실력자가 많아야 합니다. 정선아리랑도 마찬가지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경쟁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정선읍 원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선아리랑을 비롯한 지역의 각종 민요를 듣고 자랐다는 이현수 정선아리랑 전수조교. 이 조교는 정선종고를 다니던 중 서울로 국악 유학을 떠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정선아라리의 전승현장과 변이양상’을 연구해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하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그리고 사비로 ‘정선아라리 배움터’를 건립할 정도로 열정적인 정선아리랑 전문가 이현수 전수조교를 만나봤다.
◇정선아리랑을 처음 접한 시기가 언제인가요?
아주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어요. 아버지가 마을에서 상여소리를 도맡아 하던 소리꾼이셨고요. 그런 환경 탓인지 어린 시절부터 아라리 가락에 매료돼 이 마을 저 마을로 쫓아다녔습니다. 재능이 있었는지 정선중학교 2학년 때에는 강원도 학생예능실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1등을 했어요. 자신감이 붙어서 고등학교를 예고로 진학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진학정보가 어두워서 시기를 놓쳤지요. 하는 수 없이 예고를 포기하고 정선종고에 다녔는데, 예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커졌어요. 그래서 토요일 하루 수업을 빼고 서울로 올라가 청량리 역 앞에서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지요. 그렇게 찾아간 곳이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이고 다행히 제 실력을 인정받아 편입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성악(민요)을 전공했는데, 부친의 권유로 육군 3사관학교에 입교해 14년 여 동안은 육군 장교로 생활했어요.
◇14년의 군 생활 동안 아리랑을 잊을 법도 한데, 어떻게 다시 정선아리랑과 인연을 맺었나요?
군인의 삶을 살았지만, 아리랑을 잊지는 않았어요. 기회가 되면 장병들 앞에서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들을 부르고 우리 소리의 소중함을 알렸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도에 유영란 선생님을 만났고 그 때 정식으로 정선아라리를 배우게 됐어요. 2000년에는 정선아라리 전수회에 가입하고, 또 정선아리랑 경창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고하신 최봉출 선생께 정선아라리를 사사받고 이수증도 수여받았고, 이후 유영란 선생께도 정선아리랑 이수증을 수여받았습니다.
◇정선아라리배움터는 무슨 계기로 설립하게 됐나요?
대학 강사 생활과 아시아대학교 전임교원으로 근무할 때에도 민요와 연관된 강좌를 개설해 지속적으로 우리의 소리를 가르쳐 왔습니다. 또 ‘우리 소리의 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특강도 많이 했지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정선아리랑, 그리고 우리 민요를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선아라리배움터도 그런 뜻으로 마련했습니다. 2006년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매주 1회 2시간씩 정선아리랑을 전수하고 있지요.
◇정선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정선아리랑은 구조가 단순해 쉬울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어려운 민요입니다. 정선아리랑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전승되고, 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우리 지역 안팎에 실력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실력을 갖춘 소리꾼들이 많아지고, 정선아리랑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자도 많아져야겠지요. 실력자의 수가 결국 정선아리랑의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이에 더해 정선군 공무원이나 중고교생들에 대한 교육의 폭도 넓어진다면, 이들이 결국 정선아리랑 홍보대사가 돼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담당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 공무원에 대한 아리랑 강의가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또 학교에 파견되는 아리랑 강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