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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 2011. 11-12월호.
3회 분재
맹문재 연작시
기룬 어린 양들
3회 연재를 하며
김영삼 정권은 금융실명제 등의 개혁을 실시했지만 3당 합당이라는 밀실 야합으로 탄생했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경제전쟁에 대응하는 정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이전의 군사정권처럼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악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등 이전의 군사정권처럼 노동자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급기야 신자본주의의 팽창에 굴복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해고, 명퇴, 부도 등으로 길거리를 헤맨 수많은 어린 양들…… 그들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 제3부 노태우 시대의 기룬 양들
강민호
12시간 주야 맞교대였지만 주인의식으로 일했네
애학투 청년답게 일했네
구로구청 부정 투표함 고발정신으로 일했네
산재 왕국 속에서 노동자의 세상을 꿈꾸었네
* 애학투 :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 학생 투쟁 연합.
* 구로구청 부정 투표함 사건 :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서울 구로갑구의 투표함이 밀반출된 사건.
* 강민호(1966~1990) : 전북 옥구 출생.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소재 대붕전선에서 일함.
이영일
그에게는 밥보다 절실한 세상이 있었네
탄압이 없고
협박이 없고
부정이 없고
불안이 없는 세상
정의감으로
항전으로
단결로 이루어야 할 세상
그리하여 자동차 정비 기능사 자격증을 땄네
노조 활동 자격증도 땄네
* 이영일(1962~1990) : 강원 홍천 출생. 경남 창원 소재 (주)통일에서 일함.
최태욱
노조 얘기를 꺼냈을 때 아내와 세 살 된 아들과 아흔 넘은 부모는 위험하다고 말렸네
천국 가겠다고 수백만 원의 헌금을 내면서 직원들의 월급 몇 푼에 떠는 사장을 고발하며 설득했네
노동조합이 함께 잘살아보려는 합법적 조직이라는 것도 설명했네
그렇지만 노동자답게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고당하면서 알았네
그렇지만 노동자답게 사는 일이 얼마나 운명인지 투쟁하면서 알았네
* 최태욱(1968~1990) : 서울 출생. 고려피혁 성남공장에서 일함.
최동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며
민주노동자회 정신대로 살았네
생존권 쟁취에 앞장서고
단체들과 연합하고
악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네
노동자들 송년 잔치도 열었네
협박받으면서 열었네
고문당하면서 열었네
* 최동(1960~1990) : 서울 출생. 경기도 부천 소재 삼창정밀, 동광정밀에서 일함.
박성호·원태조
그들이 왜 업무방해죄인가?
노조 결성?
임금 요구?
단체 교섭?
자재를 빼돌리는 사장 막아서?
기숙사 봉쇄에 항의해서?
무기한 휴업 공고 낸 사장에게 항의해서?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면 전투경찰이 긴급 출동하는가?
무차별 구타해도 되는가?
노동자는 왜 사장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할 수 없는가?
* 박성호(1961~1990) : 강원 태백 출생. 경기도 안산 소재 금강공업에서 일함.
* 원태조(1953∼1990) : 경기도 안산 소재 금강공업에서 일함.
김봉환
‘이황화탄소 중독의증 및 고혈압’
회사에 산재 요양 신청했지만
거절
노동부에 재신청했지만
접수조차 거부
독가스를 직업병으로 마시고 죽어야 하다니
원진레이온의 소모품으로 쓰이고 말다니
두통에 소화불량에 손발 마비에 말이 뒤틀리는 그는
물러설 수 없었네
* 김봉환(1938~1991) : 경기도 남양주 소재 원진레이온에서 일함.
박창수
나는 안양병원에 갈 때마다 그를 생각하네
노동자의 세상을 염원했던 배관공
임금 가이드라인 철폐!
노동 악법 철폐!
정리 해고 철폐!
직장 폐쇄 철폐!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음
살아오라, 열혈 배관공아
* 박창수(1958~1991) : 부산 출생. 부산 소재 대한조선공사에서 일함.
윤용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벽을 넘었네
중국집 배달원으로 벽을 넘었네
신문 배달부로 벽을 넘었네
가방 공장 직공으로 벽을 넘었네
울며 싸우며 노래하며 넘었네
노동자를 가로막은 벽, 포기하지 않고 넘었네
* 윤용하(1969~1991) : 전남 승주 출생. 성남피혁에서 일함.
석광수
열여섯 살 때 13만원 받는 포장 공장 노동자가 되었네
스무 살 때 인천으로 올라와 어머니를 모시고 자취하며 주차장 일을 했네
스물두 살 때 택시 노동자가 되었네
스물여섯 살 때 친구에게 자리 내주고 또 다른 택시 기사가 되었네
10만 원짜리 사글세방에서 가장의 행복을 꿈꾸었네
혼자만 살지 않으려고 장애자들 후원비도 남모르게 냈네
노동조합 활동도 앞장서서 했네
* 석광수(1961~1991) : 강원도 삼척 출생. 인천 소재 공성교통에서 일함.
유재관
살 만한 세상 이루려면 노동자로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네
대학 도서관에서 구로 공장으로 가 용접공이 되었네
구로 공장에서 인천 공장으로 가 목재공이 되었네
퇴근 뒤에는 자취방에서 유인물 만들어 공단에 뿌렸네
* 유재관(1962∼1991) : 서울 출생. 인천 소재 신흥목재에서 일함.
김처칠
“그것은 법이며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겐 억압이다
겹겹이 철조망을 둘러치고
지배와 복종의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들을 짓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뺏는다”
그는 「철조망」이란 시를 썼네
지입제 철폐!
도급제 철폐!
폭언과 폭행 철폐!
노조 탄압 철폐!
눈물 씹으며 썼네
* 김처칠(1956~1991) : 강원도 인제 출생. 서울 소재 합동물산에서 일함.
권미경
30분 더 일하기 운동!
불황 극복 50일 작전!
3무 운동!
사장은 또 지시했네
몸이 쑤시고 저리고 피곤한데
공장이 해외로 이전한다는데
언제까지 억눌려 살아야 하나……
그는 모질게 일기를 썼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 3무 운동 : 무불량, 무이탈, 무미달 운동. 신발 공장의 경영이 악화되자 사원들의 노동력을 강화시킨 것임.
* 권미경(1969~1991) : 전북 장수 출생. 부산 소재 (주)대봉에서 일함.
박복실
1971년 전북 태창메리야스 입사, 1981년 노조 활동, 1982년 해고
1983년 이리 광전자 입사, 1983년 해고
1985년 군산 경성고무 입사, 1985년 해고
1986년 이후 취직 불가능
이유는 가톨릭 신자
실제 이유는 노동조합원
지워지지 않는 블랙리스트, 노조 활동으로 지우겠다고 그는 나섰네
* 박복실(1971~1992) : 전북 김제 출생. 전북 소재 태창메리야스 등에서 일함.
■ 제4부 김영삼 시대의 기룬 양들
조경천
10년 간 12시간 맞교대하면서
결근 한 번 안 했고
모범 사원 표창까지 받은 그였지만
노조 활동한다고
야근 중 휴식을 빌미로 해고
출근 투쟁하고
법정 소송했네
승소했지만
복직 거부하는 사장
임금도 주지 않고
사표를 강요했네
부당 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그는
굴복할 수 없었네
* 조경천(1945~1993) : 평양 출생. 인천 소재 한양합판에서 일함.
서영호
가두 투쟁 때 항상 선봉에 섰고
최후의 한 사람으로 작업장을 사수했고
진압해오는 군홧발에 바리케이드로 맞선 그였기에
‘햇새벽의 불꽃’ 만장을 만들었네
차량 행진을 했네
해방도(解放圖)를 걸머메었네
동료들이 마련한 최초의 노동조합장
뜨거운 여름이었네
* 서영호(1962~1993) : 울산 소재 현대자동차에서 일함.
김성윤
저는 1971년 7월부터 택시 기사로 일해오고 있는데 현재는 상호운수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무단결근 한 번 하지 않았고 술과 잡기를 금하고 있으며 가정에 충실하려고 애씁니다
그렇지만 억울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정자들은 택시 기사들의 생계를 보장한다고 완전 월급제를 약속했지만 늘 공수표입니다 이제 택시 기사들의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제가 받는 보수는 기본급 302,090원, 승무 수당 46,800원, 야간 수당 47,260원으로 총 396,150원입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규정에도 없는 사납금을 입금하고 있습니다 교통 정체 속에서 헤매다가 입금이 미달되면 급료에서 공제됩니다 삼십구만 육천백오십원으로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킵니까?
쓰러지기 직전의 택시 기사들을 살려주십시오 저를 살려주십시오 파출부로 뛰고 있는 아내에게 안도의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 김성윤(1932~1994) : 강원도 철원 출생. 서울 소재 상호운수에서 일함.
최성묵
직원 절반이 친인척인 회사, 운전사를 점을 봐서 채용하는 회사, 운수 안 맞으면 해고시키는 회사, 눈 밖에 나면 일 주지 않는 회사, 어려운 배차로 퇴사시키는 회사, 운전사를 죄수처럼 감시하는 회사, 어용노조의 표본인 회사
그는 운전대를 돌렸네, 더 이상 노예가 될 수 없었네
* 최성묵(1945~1994) : 경기도 안성 출생. 평택에 소재한 성호여객에서 일함.
김주리
미인들이 모인 회사, ‘미모사’
미인 한 사람 없는 해고 미싱사들의 공장
그는 세웠네
지하방에 재봉틀 네 대 들여놓고
부속품 만드는 하청 일을 했네
주인이 되어 엄격하게 일했네
주인이 되어 엄격하게 쉬었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부르며
주인이 되어 갔네
* 김주리(1964~1993) : 전남 목포 출생. 부평 소재 우진상사, 진영물산 등에서 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