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10대의 성 "낙태를 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나여?"
2005.11.04 00:10
‘네이버 지식IN’ 등 각종 검색 사이트에는 “질외사정을 했는데 임신이 되나요?”, “낙태를 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등을 묻는 10대 청소년들의 질문 수천건이나 올라와 있다. ‘뽀뽀를 했는데 임신이 되나요’와 같이 10년 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질문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 아직까지도 학교내에서 피임법 등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달라진 10대’들은 이러한 사이트들을 이용해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다.
서울 남녀공학 S중학교. 3학년 남학생과 1학년 여학생끼리 ‘커플’이 되는 것이 최근 유행이 되다보니 수업 중 여학생들이 ‘커플일기’를 쓰다 선생님에게 들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난지 1주일도 안 됐는데 키스를 비롯한 각종 스킨십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경우도 많아 선생님이 민망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라고. 이학교 김모교사(28·여)는 “수업중 남녀 학생이 마치 ‘샴 쌍둥이’처럼 온몸을 밀착시키고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통제가 쉽지 않아 ‘예전과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질문 : 안녕하세요. 17살 남학생인데요. 질외사정을 했는데도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습니다. 제 여자친구는 3달 전에도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로 입양을 시켰거든요. 이번에는 낙태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낙태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고 싶어요.
답변 : 전 오늘 낙태했는데요. 여의사 있는 병원으로 갔구요. 비용은 영양제까지 합해서 30만원쯤 나왔습니다. 낙태 후에 힘들고 이런건 없어요. 아직 태아 얼굴도 제대로 안보이는 상태라서 별로 죄책감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돈이 꽤 나올테니 빨리 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 낙태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나?
지난해 말 ‘낙태는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태아의 머리를 으깨 죽인 뒤 꺼내야 하는 명백한 살인’이라는 한 간호사의 고백이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낙태에 대한 윤리성 논쟁이 연초부터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행법상 낙태는 명백한 불법임에도 여전히 1년에 150만건 정도가 행해지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의 낙태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 그렇다면 우리는 10대 여고생이 얼마나 쉽게 아이를 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이는 청소년 낙태를 바라보는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도 될 것 같았다. 스포츠서울은 한 독자에게 10대 여고생을 가장, 서울시내 100곳의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칫 불쾌할 수도 있는 이번 취재에 기꺼이 도움을 준 독자는 바로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영은씨(가명·25·여). 과연 몇 군데 병원에서 10대 여고생의 낙태수술을 거부할지, 그리고 의사들이 10대 여고생의 한 순간 실수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살펴봤다.
◇ “고3 수험생인데요. 수능 끝나고 남자친구와 뒤풀이하다가 그만….
마지막 생리 뒤 10주 정도 지났어요.”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나간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씨에게 “얼마나 많은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할 것 같냐”고 묻자 “예를 들어 ‘성모산부인과’처럼 종교적 의미를 가진 이름을 가진 병원들은 수술을 안 해주지 않을까요”라며 빙그레 웃는다. 기자 역시 ‘박OO산부인과’라는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병원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낙태에 부정적이지 않겠냐고 응대했다. 김씨에게 각 구별 인구비례에 맞춰 무작위로 선정한 서울시내 산부인과 100곳의 전화번호를 건네자 “새로운 체험을 해 보게 흥미롭다”며 눈을 반짝였다. 김씨의 임신 주수를 10주로 설정한 것은 8주가 넘으면 수술이 어려워지는 만큼 의사와 본격적인 상의를 요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좀 더 어렵게 만들어 가급적 의사와 직접 통화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 “처음이시라구요? 수술시간은 10분입니다. 수술비 25만원을 꼭 현금으로 준비하셔서 아무때나 오세요.”
맨 처음 전화한 곳은 강동구 D산부인과. 여고생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간호사가 가장 먼저 건넨 말은 바로 ‘수술비는 현금’이라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간호사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응대한다. “낙태가 불법이라는 건 그쪽도 잘 아시죠? 카드로 계산해 흔적을 남기면 저희나 지금 전화하시는 분이나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수술을 해 주겠다는 모든 병원에서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 수술비는 20만원에서 40만원선. 특히 중구 M산부인과의 경우 김씨가 ‘임신 10주째’라는 말을 하자 “8주까지는 30만원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8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고3이라서 그만한 현금은 없다고 사정하자 “정 그렇다면 카드로 결제할테니 100만원을 내라”고 말했다.
◇ “이 산부인과는 기독교 정신으로 지어진 병원인데…. 그래도 수술은 해 드리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대학 이름을 그대로 병원에 사용하는 산부인과에서도 10대의 낙태에는 관대했다. 부모 등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말도 없다. 졸업한 학교 이름을 그대로 병원 이름에 쓰고 있는 송파구 모산부인과는 “4시간 전부터 금식만 하면 언제든 수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불임클리닉으로 유명한 서초구 모클리닉도 ‘남자친구와 같이 오라’는 말만 하고는 바로 수술날짜를 잡아 줬다. 이 곳은 명성과 찬사와는 달리 각종 임신관련 시약들을 규정의 100배나 희석해 사용해 폭리를 취하기로 업계에서도 ‘악명’이 높다. 한쪽에서는 새 생명을 탄생시켜주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한 생명을 지워간다고 생각하니 그 병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병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강동구 모산부인과도 마지막 생리일을 확인하고는 “현금 23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무성의한 답변 뒤에 전화를 끊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병원들 역시 낙태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중랑구 P산부인과는 “아이가 커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럴 경우는 자궁을 여는 약물을 주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렸다가 빼내면 돼요”라며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 김씨는 “기독교인들마저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전화를 하는 내내 안타까워했다.
◇ “실력이나 시설 면에서는 우리가 최고입니다. 수술은 꼭 우리 병원에서 하세요.”
낙태를 문의하는 10대 여고생과 직접 상담을 해 준 의사들 중 당시 피임상황을 물어보거나 김씨의 앞날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 병원에서 수술 하세요”라며 유치에 열을 올리는 곳이 상당수였다. 노원구 J산부인과는 “(학생들은) 평일에 시간 내시기 힘드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요.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 있게 푹 쉬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강서구 J산부인과는 다른 병원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 병원은 회복실 침대가 옥돌매트로 돼 있어요. 수술 끝나고 영양제 맞으면서 옥돌에 2시간 몸을 푹 지지면 얼마나 몸이 가뿐해지는데요. 회복이 빨라요. 꼭 우리병원에서 하세요”
◇ “그래도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다행이네요.”
전화 거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김씨는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점점 무서워진다”고 말했다. 은평구 모산부인과. 이름에서 의사가 기독교인이라는 인상이 풍긴다. 전화를 거니 컬러링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이런 병원에서조차 수술을 해 주겠다고 하면 정말 절망스러워서 어떻게 하냐”며 얼굴을 흐리는 김씨. 다행히 “우리 병원에서는 그런 이유로는 수술을 해 주지 않는다”는 간호사의 말에 “아직 양심이 남아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반가워했다.
◇ 10대 여고생이 서울 시내 병원 95%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사회
100군데에 달하는 전화예약상담을 끝낸 김씨. 하루가 꼬박 걸린만큼 힘든 기색이 역력하지만 할 말이 많은 듯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10대 여고생의 낙태가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어요.” 전화 취재 결과 수술을 거부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남자친구나 부모님 등 보호자와 함께 올 것을 요구하는 병원도 10여곳에 불과했다. 특히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등 이른바 ‘강남지역’은 전화를 건 21곳 중 단 한 곳도 수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취재를 시작하기 앞서 기자는 결과를 바탕으로 각 구 별 차이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었지만 취재를 끝내고 보니 그런 것들이 모두 무의미했다. 거의 모두가 똑같은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10대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병원들 역시 도덕 불감증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첫댓글 지송아, 정말 우리나라가 걱정스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