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운정 3지구, ‘늘어나는 집들’
1. 파주 운정 3지구의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작년에 비해서 아파트 단지의 틀이 거의 윤곽을 잡았을뿐더러 일찍 공사를 시작한 아파트들은 입주가 진행 중이다. 파주의 교하와 운정 지구 사이 비워있던 밭과 공터를 아파트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서울 주변 경기 지역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다. 서울을 벗어나 조금만 이동해도 곳곳에서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아파트를 보면서 몇 년 전 경기도 지역을 휩쓸었던 아파트 미분양 사태의 공포가 되살아난다.
2. 몇 년 전 현재 운정 3지구와 가까운 곳에 건설된 아파트가 분양되지 않자 건설사는 분양을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해 분양가를 대폭 인하하였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먼저 분양받고 입주한 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극심한 갈등을 야기시켰다.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의 이사를 막고 아파트 내에서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커다란 다툼은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운정 지구의 많은 아파트들이 미분양의 문제를 겪었다.
3. 현재 아파트 시장은 서울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주택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끊임없이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서울에 살고 싶은 욕구를 인정하지 않고 서울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시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대출을 막고, 고가의 주택에 대한 종부세를 강화시키자 나오는 비판들이다. 최근 주택 시장에서 새로 등장한 용어는 ‘영끌’이다. 30대 젊은 가장들이 엄청난 대출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서울에 있는 주택을 구매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구매하지 못한다면 평생 서울 진입이 어렵다는 인식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언론은 분석한다.
4. 서울 주택 가격의 상승은 젊은이들의 욕망 못지않게 기득권의 방어적 욕망이 한몫하고 있다. 서울 주택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동안 일어났던 ‘탈서울’의 바람은 시들해졌고, 서울을 떠나 생활하는 사람들도 결코 서울의 주택을 포기하지 않게 되자 서울의 집중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산 정약용이 자녀들에게 서울 근처에 거주하는 것이 성공의 기본 조건이라고 가르친 점을 인용하면서 서울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서울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향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추구했던 수도권의 과밀과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을 막으려는 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리이다.
5. 국토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체의 전체적인 관점은 이제 논의에서 점차 실종되고 있다. 누구나 너무도 뻔뻔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면서 ‘욕망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욕망’에 대한 태도는 젊은 세대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표출되고 있다. 20-30대는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학습한 세대이다. 하지만 욕망을 드러내는 젊은이들은 그 세대 내에서는 특별한 힘을 가진 그룹이다. ‘영끌’이라고 하면서 대출을 끌어들여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출을 감내할 수 있는 정규적인 수입을 갖춘 사람들이거나 부모로부터 일정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파업을 강행하는 전공의들은 또래 다른 집단보다도 더 큰 권력을 지닌 집단이다. 최근 벌어진 ‘인천공항’사태 또한 기존의 정규직들의 반발에서 확대되었다.
6. 문제를 제기하는 젊은이들의 기본적 논리 중 핵심은 ‘공정’이다. 정당한 절차 및 객관적인 참여의 기회를 제공되지 않으며 능력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현재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가진 집단이다.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논리, 즉 공동체의 전체적인 선의 증가라든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정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의’에 가장 표준적인 해석인 롤스의 ‘약자에 대한 관심’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정의론이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7. 권력적 젊은 세대 및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격의 대상을 소위 ‘86세대’로 향한다. ‘86세대’의 독점적 권력이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공격한다. 이런 공격의 일면은 분명 사실일지라도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세대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그룹의 헤게모니적 투쟁인 것이다. 앞 선 세대가 뒤따르는 세대의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경쟁자들을 출발점부터 낙오시키려는 전략인 것이다. 힘이 있는 그룹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마치 이들이 그들 세대를 대표한다는 착각을 확산시키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은 은폐화되고 파편화되면서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
8.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은 서로의 ‘자유’와 ‘욕망’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에서 시작한다. 종교적 광신이 다시금 확산하는 것이다. ‘욕망’은 인간적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인간은 결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욕망’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품위있는 삶의 조건으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욕망’은 최고의 가치로 등극했다. ‘욕망’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위하여 수많은 가치적 개념이 동원된다. 자유, 정의, 평등, 인간의 투쟁 끝에 성취한 가치들이 오역되고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의 떼쓰기에 정부가 굴복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에는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하려는 집행자들의 도덕적 위선이 한몫하고 있다.
9. 오늘도 늘어나는 아파트의 숲을 보면서 서울에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의 위험성을 생각한다. 힘을 가진 소수의 욕망을 방치하는 한, 정책 추진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유사한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남아있는 자신의 물질적 재화와 정신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결집을 강화시키면서 인간 관계는 ‘우리들’만의 왜곡된 유대로 표현되고 타인에 대한 관용적 시각을 상실할 것이다. 누가 말한 대로 ‘부족주의’가 시작되고 있다.
첫댓글 서로 얽혀있는 복잡성이 너무 크다. 내 손에 있는 줄만을 잡아당기면 더욱 엉킬 뿐. 언젠가는 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아예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해결책을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선 무시당할 뿐이다. 결국 전진이든 퇴보이든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책임이 따를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앞에서 이해를 위한 설명은 싸움의 도화선만 될 뿐.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의 한계를 모르고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할 때 표현되는 현상은 더욱 상황을 어렵게 한다.
너도나도 너무나도 잘난 세상!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