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277) - 풍성한 한가위 소묘
풍년을 예약한 듯 느긋한 추석연휴가 5일 동안이나 이어진다. 큰 명절답게 고향과 가족을 찾는 이동인구가 3천5백만에 이른다는 보도인데 오고가는 길 모두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고향 가는 길을 귀향이라고도 하고 귀성이라고도 한다.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라는 노래가사처럼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귀향, 이에 더하여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조상을 찾아보는 길을 귀성이라 일컫는다는 게 국어사전의 풀이다.
추석날 아침, 광주에 사는 가족들이 사촌동생 집에 모여 기도의 시간을 갖고 집안의 전통인 화목과 우애를 다졌다. 기도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는 성경구절을 새기며 하나님께 채권을 갖는 삶을 이루기 원하였고. 얼마 전에 두 차례나 고향과 선영을 찾은 터라 고향 길은 뒤로 미루고 평소에 자주 찾는 천혜경로원에 들렀다. 환경이 쾌적하고 식사의 질이 좋은 천혜경로원은 평상처럼 평안한 분위기, 경내에 있는 교회에서는 어른들을 모시고 일요일에 명절맞이 윷놀이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추석의 상징은 한가위 보름달, 이번 한가위 보름달은 여니 때보다 완전한 형태의 둥근 달이다. 지름이 정월대보름달보다 4% 길고 10% 가까이 더 밝다고 한다. 저녁 7시, 풍성한 추석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밝은 보름달과 금성·토성이 함께 연출하는 우주 쇼가 펼쳐진다는 예보다. 이를 보러 아내와 함께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호숫가로 나갔다. 아파트와 산등성이 너머로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반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그 옆에 있어야 할 토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30여분, 시원한 호수에 앉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소원을 빌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풍요로운 추석을 맞아 TV에서 살핀 아름다운 소재 두 가지를 소개한다.
1. 감동을 안긴 파독근로자들의 위안무대
KBS 1TV에서는 추석날 오전, 지난달에 한독수교 130년과 파독근로자 50년 특집가요무대로 꾸민 '독일로 간 청춘들'이라는 프로를 두 시간 동안 앙코르 방송하였다. 1963년에 처음으로 건너간 파독광부는 총 8천여 명, 1966년에 처음으로 진출한 파독간호사는 1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간호사로 가서 독일인과 결혼한 아내의 친구도 있고 광부로 가서 파독간호사와 결혼한 동료교수부부도 들어 있다. 어느덧 50년 세월이 흘러 청춘은 백발이 되었고 그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있다. 2002년에 독일의 함부르크를 방문하였을 때 현지 안내인이 파독근로자로 와서 정착하여 살다가 그곳 공동묘지에 묻힌 교민들도 많다고 일러주던 말이 떠오른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고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청춘을 불사른 동포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요무대특집의 재방송은 적절한 기획이자 감동적인 무대로 뜻 깊은 추석선물이 되었다. 인기가수들이 부르는 꿈에 본 내 고향, 고향 초, 비 내리는 고모령, 꽃구경, 고향의 봄 등의 가요를 듣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화면에 열중하던 아내는 '꿈에 본 내 고향'이 1954년에 첫 전파를 탔다는 멘트를 보며 여섯 살 때 공중 앞에서 그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그 해에 나온 최신곡인 줄은 미처 몰랐다고 술회한다.
가요 틈틈이 소개되는 성공사례와 애절한 사연에 희비가 엇갈린다.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의 막장에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을 때 신세한탄하며 울기도 많이 하였단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견디게 해준 힘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고 더러는 그곳에서 동포끼리 짝을 이루어 단란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가슴 아픈 사연 한 토막, '여보,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라는 편지를 보낸 후 지하갱도 붕괴로 사망한 김중원 씨의 편지가 마음 저리다. 전보로 믿기지 않는 부음을 접한 부인은 남편을 여인 후 30여 년 동안 열심히 시부모 봉양하고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새삼 남편의 빈자리가 허전하다고 눈물 글썽인다.
1974년에 간호사로 건너가 그리스인과 결혼한 후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한 김영구(61세)씨의 고국방문 사연이 뭉클하다. 딸을 질병으로 여의고 남편은 투병중인 사실을 취재한 방송에서 고국에 사는 언니가 동생을 위해 페티 김의 '이별'을 노래하며 인터뷰한 영상내용은 이렇다. '독일에 가서 엄마 잘 살게 해주고 시집가겠다며 떠났는데 10년 후 엄마가 돌아가셔도 고향에 못 왔다. 맛있는 김치도 먹으며 한 번이라도 한국에서 봤으면 좋겠다. 꼭 보고 싶다.' 사회를 맡은 김동건 아나운서가 언니를 불러보라고 권하자 큰 소리로 '영자 언니, 보고 싶어. 언니~'를 외친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무대 뒤에서 영자 언니가 나타난다. 환갑 때 자녀들이 마련해 준 팔찌를 선물로 안겨주며 39년 만에 동생을 데리고 가러 여비를 마련해 왔다고 말하는 언니의 마음씨가 따뜻하다. 객석에서 격려의 박수가 터지고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독일동포와 간호사협회 등에서 여행 경비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소식이 뒤따른다. 자막화면으로는 이들 자매가 고향을 찾아 어머니 묘소를 참배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재회를 하는 모습을 전해준다.
방송 끝부분의 멘트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김동건 아나운서는 '여러분을 위로하러 왔는데 오히려 위로와 위안을 얻고 돌아간다. 그래서 한 가지 약속을 하겠다. 50년 후 파독근로자 100주년에 다시 오겠다. 그때까지 살아계신 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 꼭 다시 앉기 바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50년 후, 김동건 아나운서와 지금의 출연진은 못 올는지 몰라도 KBS는 그 약속을 지키리라.
2. 추석장사에 오른 장한 형제
추석연휴에 경상북도 경산시에서는 2013 추석장사씨름대회가 열리고 있다. 힘과 기를 겨루며 박진감 넘친 경기 끝에 첫날에는 태백장사(80kg이하), 둘째 날에 여성장사와 금강장사(90kg이하), 셋째 날에 한라장사110kg이하), 마지막 날에 백두장사(150kg이하)가 등극하였다. 남자 4체급 중 첫날과 둘째 날에 치러진 태백장사와 금강장사 경기에서는 문준석(23세), 문형석(25세) 형제가 나란히 추석장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셋째 날의 한라장사에는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성환 군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고 마지막 날 백두장사에는 숨 막히는 혈투 끝에 두 번이나 연거푸 정상에 오른 정경진이 황소트로피를 안았다. 외가 쪽의 조카를 씨름선수로 둔 아내는 경기 내내 흥미 있게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고.
형제가 동시에 장사 타이틀을 차지하기는 처음,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장사에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형과 아우가 동시에 별을 땄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문형석 선수는 '남들은 동생이 먼저 장사에 등극해 부담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부담보단 큰 힘이 됐다. 동생이 힘들 때는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내가 힘들 때는 동생 에게 조언을 구한다. 서로가 힘이 돼 오늘 같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문복현(52세)씨는 "형제가 동반으로 우승해 너무 기쁘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소 한 마리 잡아 동네잔치를 열겠다.'며 활짝 웃었다.
형제가 왕위에 오르거나 기업의 대통을 이어받기도 하는데 이는 가문의 위세나 후광을 힘입은 경우라서 오직 꾸준한 훈련과 자신의 실력으로 장사씨름대회 정상을 차지한 이들의 쾌거는 불법과 혼탁이 난무하는 세태에 신선함과 통쾌감을 안겨주는 한 가닥 청량제가 아닐는지. 그러고 보니 자력으로 학문이나 예능의 정상에 오른 형제와 남매, 자매들이 여럿 생각난다. 성서는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장 17절)며 서로 돕고 우애하기를 권면하거니와 아무쪼록 각 분야에서 성실과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장한 일꾼들이 더 많이 배출되었으면.
* 추석연휴가 끝나가는 주말에 북한이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는 발표를 하여 당사자는 물론 많은 국민을 실망케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북한을 상대로 대화와 협상을 하는 일이 아닐는지. 머리를 식힐 겸 아내가 보내준 유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덧붙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것과
남의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첫 번째 일을 해내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하고,
두 번째 일을 해내는 사람을 사장님이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다 하는 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른다.
선생님과 싸우는 것은 배우기 싫은 것이요,
사장님과 싸우는 것은 돈 벌기 싫은 것이요,
마누라와 싸우는 것은 살기 싫은 것이다.^^;;
-출처, 재미있는 설교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