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가자
김태원 마양일 박세웅 이성우 허정구 허헌구
1. 답사내역
상왕십리역 6번출구에 모인 친구들 모두 여섯명이다.
혹시나 싶어 10시 30분까지 기다리다 더 올 친구가 없다고 판단되어 정시에 출발한다.
먼저 무학봉근린공원을 향하며 무학대사와 얽힌 전래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새로운 도읍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지나는데 범상치 않은 노인이 밭을 갈면서
소에게 무학 같이 미련하다고 나무라는 소리에 무학이 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랬더니 여기서 십리를 더 가면 목멱산이 있는데 그 산에 올라 살펴보라고 하여
노인의 말대로 목멱산에 올라 살펴보고 지금의 경복궁 터를 얻었다고 한다.
무학이 그 산자락을 지나 현인의 도움을 얻었기에 무학봉이 되었고 왕십리가 생겨났다.
무학봉 남쪽 산자락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안정사가 있었는데 후일 청련사가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013년 아파트 업자에게 팔려 금호베스트빌 아파트 공사로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 걸으려고 하는 길은 1923년 1월 12일 밤 8시경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후암동 매부 집으로 피신한
김상옥 의사가 그 집에 세들어 살던 여인의 밀고로 포위되자 임시정부 의열단원인 의사는
쌍권총을 뽑아들고 형사부장 다무라를 사살하고 수명의 일경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사라져 버렸다.
의사는 남산으로 피신하여 일경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남산을 넘어 새벽에 왕십리 무학봉 아래 안정사로 숨어들었다.
생면부지의 스님은 지친 의사를 보살핀 후 승복과 짚신을 내어주었다.
승복으로 변장한 의사는 그 길로 짚신을 거꾸로 신고 눈길을 걸어 수유리 이모집으로 피신하였다.
그 후 의사는 효제동 이혜수 집에 숨어 있다 탐지되어 1923년 1월 22일 수백명의
일경들의 포위망에 맞서 일경들을 사상(死傷)한 후 마지막 남은 탄환으로 장열히 자결하였다.
(동국대 교수인 [이한성의 옛절터 가는 길 38] 종로서 피폭 김상옥(金相玉) 의사 피신... 글에서 인용)
상왕십리역 6번출구에서 잠시 직진하면
무학근린공원 300미터 라는 표지판이 좌측으로 오르는 길을 가리킨다.
엄동설한에 신발도 없이 구사일생으로 몸을 피한 김상옥의사의 피신 길을 거꾸로 짚어 오른다.
골목길을 접어들자 잠시후 한진그랑빌 아파트를 지나면서 오른쪽 계단길을 오르면 해발 92m의 무학봉이다.
무학봉 정자 아래엔 주민들을 위한 실내 체육시설인 무학봉체육관이 있다.
체육관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금호베스트빌 아파트를 만나는데 그 남쪽자락에 안정사가 있었다고 한다.
도로건너편에 아이원아파트 표지판이 보이고 남쪽방향으로 직진하면 본향교회 입구에서 언덕을 오른다.
본향교회 뒷편 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넓은 숲 속 운동장과 공원이 나타나는데 응봉공원 안내판이 붙어 있다.
전에는 대현산 배수지공원으로 불리던 곳이란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 배수지가 건설된 곳으로 지금도 지하에는 아리수가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1907년 이곳에 배수지가 건설되고 1908년 뚝섬정수장이 완공되어 상수도 공급원이 되었다.
응봉공원을 내려서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금호공원으로 오르는 길로 서울숲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왼편에 재개발아파트 건설현장을 끼고 잠시 오르면 대경정보고(대경상고)를 지나며 잠시후 군부대를 만난다.
군부대 우측 흙 길을 택하여 잠시 걸으면 전망대를 만나며 서울의 북쪽 조망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눈에 들어온다.
도봉산 오봉 삼각산 비봉능선 북악산 인왕산 무악산 남산 백두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울을 품어 안는다.
길은 숲 속으로 이어지고 체육시설 화장실 휴식처 수도까지 설치되어 불편함이 없고 북쪽은 중구 남쪽은 성동구다.
공원 전체를 응봉근린공원이라 하는데 동쪽은 금호산 구간 서쪽은 응봉(매봉) 구간이라고 한다.
숲 길이 잠시 끝나는 지점에서 서울방송고와 남산 타운 아파트를 만나고
이곳에서 오르막 숲길을 오르면 공원 최고봉 매봉 정상이고 높이는 140m로 팔각정이 있다.
서쪽은 용산구 남쪽은 성동구 북쪽은 중구로 세 구를 나누는 경계 지역이기도 하다.
팔각정에 올라서면 동부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오고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눈을 황홀하게 한다.
아래로는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옥수동 금호동이 발 아래이여
동호대교 성수 영동 청담 잠실대교 한 눈에 잡히며 잠실벌에 우뚝 솟은 서울의 랜드마크 제2롯데월드며
어디 그 뿐이랴 멀리 용문산 예빈 예봉 조조 검단(동) 용마 남한산성 검단(남) 한강 남북 산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버티고개로 내려오는 길가에 누군가 정성드려 쌓아올린 돌탑 3기가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우리를 반겨준다.
버티고개는 벌아령(伐兒嶺)이라고 하는데 북한산 인수봉은 어린애를 업은 것 같은 바위가 붙어 있어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렀는데 이 애가 산줄기를 타고 빠져나가면 나라에 변고가 생긴다고 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벌로 겁을 주려 하였다는 뜻으로 벌아령이라고 했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단다.
버티고개는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금은 생태통로가 조성되어 있어 멈춤 없이 건넌다.
이번 방향은 서울성곽 마루를 향하고 잠시후 팔각정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서울성곽 돌기를 할때엔 바깥성벽을 돌았는데 신라호텔 안쪽 성벽을 돌아 장충체육관 앞으로 나간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장충동 할머니 족발집으로 찾아든다.
식구가 단촐하여 소자 두개를 시키려 했는데 양일이 중자는 해야지 하여 중자 두개로 바뀌었다.^^
우선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고
콜라겐 풍부한 족발에 소주 맥주 점점 행복의 나라로 빠져든다.
마지막으로 곡기 끊지 않으려 떡만두로 해결한다.ㅎㅎㅎ
뒷풀이 채금져 준 양일에게 감사의 박수 보내며 함께 한 모든 친구들 고맙고 감사했읍니다.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웃음꽃 만발한 즐겁고 행복한 시간 함께 만들어 봅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