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서관을 가면 볼만한 책이 없다. 도서관의 책들을 내가 거의 읽어서가 아니라, 많지않은 장서에 주로 오래된 책들이 많아 읽고 싶은 흥미가 가신다는 것이다.
신간도서 코너를 보면 과연 한달에 얼마만큼의 책이 들어 오는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정보에 빠른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선점을 해버리면 찾는 눈만 서글프다. 책을 읽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책 고르기가 더 어려운 현실이다.
정부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예산도 모자란다니 할말도 없지만, 때론 높은 지위에 계신분들 회식비(카드값) 조금 줄이고 책이라도 한권 더 사 놓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말해 보았자 그들의 귓전에 메아리도 못남길 우매한 소시민들의 생각에 지나칠 뿐이다.
그나마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에 밀려 책은 뒷전이다. 미래에는 이러한 종이로 된 책도 없어질 것이라고 하니 머리 좋은 사람들이 미래 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심난한 판에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니 뭐니 하는 것도 좀 웃기는 것 같더라. 다른 것은 자율경쟁을 부추기면서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
나는 최근 필요한 책을 인터넷으로 사면서 최신판이 필요하지 않은 참고서적은 중고서적을 구입한다. 중고서적이라고 해서 누가 책장을 넘긴 것이 아니라, 출판일이 몇년 지난 것을 말한다. 앞에서의 도서정가제에서는 할인 조건이 18개월이 지나면 10%인가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원가의 50%수준 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주장하고 산다면, 비록 외국 애기지만 아래와 같은 책이 눈에 들어 오게된다.
경찰도 나라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의 <국가 없는 사회>가 그것이다. 한 카페에서 부유한 부르주아 프로스페로, 대학생 미켈레, 치안판사 암부로조, 공화주의자 빈센초, 노동자 지노, 사회주의자 루이지 등과 아나키스트 조르조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짜여있다.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 산타마리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4살 때 지역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편지를 국왕에게 보내는 등 사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19살 때부터 아나키즘 운동을 본격화했으며 무장부대를 이끌고 세금장부를 불태우기도 했다. 23년에 걸친 대화 팸플릿이 그의 사상을 그대로 담고 <국가 없는 사회>로 출판되었다.
의회정치는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변한다는다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의 표로 선출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국가의 충실한 대변자가 된다.
그들의 부는 자꾸 늘어난다. IMF 때 서민은 거리로 나앉은 이들이 많았지만 정부요인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재벌들의 자산은 대부분 늘어났다.자신들의 부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라(지배세력)는 제도를 굳건히 하여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대부분 국가를 위협하는 이들은 기득권자가 아니다.
못 가진 자, 노동자, 농어민, 서민들이다. 서민의 정부는 이렇게 권력의 마력 속에 빠지고 서민은 더욱 기득권층과 멀어진다.
"정부는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해요. 정부의 구성원들이 바로 가진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본문 28쪽)
"입법부와 행정부 전체는, 법과 군대, 경찰, 판사 등을 갖춘 정부 전체는 민중을 통제하고 착취를 보장하는 쪽으로만 활용됩니다."(본문 91쪽)
얼마나 실감나는 말이냐. 삼평리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여러 사람 중 한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날 것이다. 최계향 할머니의 말이다.
"경찰이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되는데 한전 앞잡이처럼 한다. 모두 있는 사람 봐주는 거지. 높은 사람은 살기 좋고, 뭐 없는 사람하고 못한 사람은 살기 어렵지. 우리 눈으로 봐도 많이 뭐 보이지.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거지."(<삼평리에 평화를> 146쪽)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와 지배자가 죽음의 전쟁터로 국민을 내모는 일은 정당한가. 범죄자가 많을수록 경찰이 더 필요해지는 '경찰의 권력과 사회적 중요성'은 무얼 말하는 걸까.
정부가 필요로 하는 군대에 모두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아나키즘은 국가가 부과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정부가 없는 사회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 생산과 교환체계의 완전한 변화를 꿈꾼다. 정부로부터는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의 정부는 서민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가진 자와 정부는 생산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값을 더 받으려고만 한다고 여긴다.법과 정부는 우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맺을 때만 유효하다며, 평등한 사람들은 경찰을 부르거나 법정으로 문제들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다고 한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배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 상태든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책은 그러기에 무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무장봉기, 우리 역사의 동학농민 봉기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주장들에 다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희생당한 이들이 겪은 아픔에 대해 국가나 기득권자들이 무얼 했는지, 무얼 할 것인지 묻게 만든다.
실은 한 게 없고, 할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 때문에 더 슬프다. 서민의 아픔과 상관이 없는 정부, 서민들의 표로 대통령이 혹은 국회의원이 된 이들로 구성된 정부지만 서민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높은 나리들, 정부와 정치가 국민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부와 정치를 염려해야 하는 국가, 과연 이 국가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대통령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대통령 자신?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