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의 그늘진 곳에는 베풂과 나눔을 통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이름 하여 ‘소외 계층’이다. 아동문학의 본질 중의 하나로 ‘교훈성’이 있는데, 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동화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통하여 인성을 가꾸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문학 작품의 감동을 통하여 스스로 체득하게 되는 인성의 여러 가지 덕목들은, 어른들의 훈계나 가르침을 통해서 얻는 덕목들보다 그 파장이 크고 깊을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아동문학 작품을 통해 가르쳐야 할 덕목 중에 가장 시급하고 큰 것은 소외 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계절에 발표된 작품들 중에서 최영희의 환상동화「빨간 우체통의 비밀」(격월간 어린이 문예 11 12월호), 안덕자의 생활동화「까치 아저씨 집에 온 손님」(같은 책), 이영득의 환상동화「알록이와 투둘이 기차」(계간 어린이 글수레, 2006년 겨울호) 등 세 편의 단편들은 우리 주위의 소외 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을 통한 사랑의 감동을 형상화하고 있어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①
나에게 맛있는 밥을 넣어준 민수는 이번엔 둘리 문구점 앞으로 갑니다. 둘리 문구점 앞으로 간 민수는 둘리 문구점의 주인아저씨께 공손히 인사를 합니다. 잠시 후 민수는 둘리 문구점 입구에 세워둔 비를 들고 주인 아저씨와 함께 청소를 합니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둘리 문구점 주인아저씨와 민수 얼굴 위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집니다. 눈부신 햇살은 빨간 우체통인 나에게도 쏟아집니다. 나는 그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두 눈을 꼭 감고 행복한 얼굴이 됩니다.
- 최영희의「빨간 우체통의 비밀」
②
얼마 후 까치 아저씨 집에는 동박새 한 쌍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까치 아저씨는 지난 가을 할아버지가 두고 간 쪽지를 떠올렸습니다.
-따뜻한 차, 향기로운 차, 잘 마시고 가네. 따뜻한 이 집의 기운도 듬뿍 담아가 하늘을 훨훨 나는 새가 되어 다시 찾아오겠네. 고맙네. -
까치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동백나무도 더 심고 새집도 더 달아야겠군.”
동박새 한 쌍이 파란 하늘을 정답게 날고 있었습니다.
- 안덕자의「까치 아저씨네 집에 온 손님」
③
알록이가 손뼉을 쳤어요.
투툴이는 멋쩍은 듯 볼을 부풀리더니 꽃 나팔을 더 크게 불었어요.
잠시 뒤, 투툴이는 알록이 앞에 넙죽 엎드렸어요.
“알록아, 내 등에 업혀! 내가 기차가 되어 줄게.”
알록이는 투툴이의 우둘투툴한 등짝을 내려다보며 생각했어요.
‘넌 달리기는 못해도, 참 멋진 친구야!’
- 이영득의「알록이와 투둘이 기차」
위 인용문 ①, ②, ③은 세 작품 모두의 결미(結尾) 부분이다. 인용문 ①은 최영희 단편 환상동화「빨간 우체통의 비밀」의 결미 부분으로,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둘리 문구점’ 건너편에 외롭게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의 시각으로 학교 앞 문구점 주변의 따뜻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빨간 우체통은 움직일 수 없는 그 자신의 속성 때문에 사건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일상의 이야기를 관찰자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라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이다.
최영희의 환상동화「빨간 우체통의 비밀」은 학교 앞 문구점을 중심으로 일상의 기미(幾微)를 포착하여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새씩 초등학교 앞 둘리 문구점의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코 묻은 돈을 들고 학용품을 사러 오는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봉사반 아이들을 위해 골목길을 쓸기도 하는 착한 서민들이다. 그들 부부는 민수가 5천원 상당의 우표를 훔쳐간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눈감아 주는가 하면, 민수의 할머니가 들러 우표의 진위를 확인해도 그냥 민수에게 주었다고 능청을 떤다. 아마도 그들 부부는 민수가 훔쳐간 우표는 인천에 돈 벌러 간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 붙일 용도로 쓰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쉽게 전염이 된다는 것을 이 동화는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민수가 참회의 뜻으로 아저씨와 함께 골목길을 쓴다는 행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이 동화는 베풂과 나눔을 통해 묵시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의 형상화로,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거둔 채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세태를 은유적으로 풍자하면서 그들의 차가운 가슴 속에 관심과 사랑의 불씨를 심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인 미덕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동문학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최영희의 동화는 언제나 그렇지만 막힘이 없이 술술 읽히게 하는 문체의 유연한 리듬을 잃지 않고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주제가 작품 속에 은근하게 녹아들지 못하고 너무나 정직하게 작품의 표층 구조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안덕자의 생활동화인「까치 아저씨 집에 온 손님」역시 나눔과 베풂을 통한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까치아저씨는 시골에서 시간제 집배원 일을 하면서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일을 나가면서 추녀를 이어내어 만든 카페에다 행인들을 위한 커피와 녹차를 준비하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위해 사탕도 준비해 두고, 오소리를 비롯한 동물들을 위해 참나무 구유 속에다 고구마와 무청을 준비해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느 가을 날 이 카페에 할아버지가 들른다. 그는 항공기 사고로 아들 내외와 손자를 잃은 슬픔, 치매로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트라우마를 앓는 소외된 자이다. 그는 하잘 것 없는 따끈한 차 한 잔으로 그동안 잃었던 사랑을 회복하지만, 눈 내리는 겨울 날 카페에서 숨을 거둔다. 까치 아저씨는 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넋으로 다시 태어난 동박새를 위해 새집을 지어주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사랑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까치 아저씨의 나눔과 베풂으로서의 사랑이 소외된 노인에게 전염되고, 다시 노인의 베풂과 나눔으로서의 사랑이 까치 아저씨에게 전염되는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시골로 내려와 나눔과 베풂으로서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까치 아저씨, 그리고 새집을 만들어 달아주는 할아버지의 행위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인물들의 심리적 당위성이 부족하다. 또한, 할아버지의 죽음 등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는 흠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진정한 교감만이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 준다는 아동문학의 본질적 문제를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작품이다.
이영득의 환상동화「알록이와 투둘이 기차」라는 단편도 위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나눔과 베풂의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알록이와 투둘이는 무당 개구리이다. 그렇지만 알록이는 달리기도 못하고 힘도 없으며, 살갗이 우둘투둘한 투둘이를 창피해 하고 따돌린다. 그렇지만 투둘이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알록이를 따르고, 심지어는 갯메꽃 줄기를 이어 붙여 유리 기차 안을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은 알록이의 무관심을 진정한 교감으로 바꾸어 놓는다. 특이한 점은 앞의 작품들과는 달리 소외당하고 있는 자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자를 포용력으로 감싸 안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상대에 대한 베풂과 나눔을 통한 관심과 사랑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한 톤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화라는 서사 미학을 통해 생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무당개구리 알록이와 투둘이의 짧은 여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락 논, 갯메꽃 등의 생태 환경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고 있다. 또한 유아 독자의 흥미를 고려하여 단문의 문장과 부사어와 동사의 어휘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문체, 그리고 대화문을 적절하게 배체하여 서사 구조에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다만 짧은 분량 속에 서사적 전개에만 쫓기다 보니 서술과 묘사가 부족하여 예술적 향기가 미진하여 다소 거칠어 보인다는 것이 옥의 티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다.
관심과 사랑으로서의 연대의식
아동문학은 소외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서의 연대의식을 그 출발의 기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추운 겨울 날 따스한 아랫목에 누워 있으면서도 누군가는 한기와 배고픔의 설움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심, 우리는 떠들썩하게 웃고 있지만 어느 누군가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민 의식을 가지고 창작에 임하는 것이 진정한 아동문학의 사명감일지도 모른다. 즉, 관심과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서의 연대감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동문학의 목표이어야 한다.
①
그때 얼룩달룩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 하나가 창가 쪽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은 벌떡 일어서 복도로 나갑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현민이 엄마 야스미 씨입니다.
“선생님, 여보세요?”
“네?”
선생님은 야스미 씨가 한국어학당에서 배울 때부터 ‘안녕하세요’와 ‘여보세요’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야스미 씨는 현민이가 엄마 얼굴 그림을 찢고 교실 밖으로 달려나간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야스미 씨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입니다.
“여보세요?”
현민이 책상 위에서는 현민이가 잘 먹던 소고기 볶음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식어가고 있습니다.
- 김영호의「현민이는 어디로 갔을까?」
김영호의 아동소설「현민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작품은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혼혈아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통한 정체성의 혼란을 문제로 내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현민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가나인의 어머니 사이에서 생겨난 혼혈아이다. 작가는 표층 구조로서는 혼혈인의 고립감을 다루고 있지만, 심층 구조로서는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모든 것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외모만으로 판단하려 하난 작금의 우리 세태를 풍자하고 야유하고 있다.
현민이는 미술 시간에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고 색칠을 한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색으로 칠하고 있는데, 현민이 어머니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짝지인 민지는 검정색으로 칠한다. 어머니의 겉모습에 대한 열등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몰린 현민이는 민지의 검정색 크레파스를 부러뜨리고 만다. 그리고 나서 야단을 치려는 선생님을 피해 현민이는 그림을 쫘악 찢어버리고 교실 문을 열고 나가 버린다.
위 인용문 ①은 이 작품의 결미 부분으로 현민이 엄마가 현민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교실을 방문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아직 한국어의 구사에 서툰 야스미 씨와 선생님의 어정쩡한 태도를 희화적인 캐리커쳐로 제시하며 끝맺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이렇다 할 만한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여운을 두며 이야기를 끝맺고 있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혼혈인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곱씹어 보도록 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주위의 혼혈인 가정에 대한 냉철한 객관적 시각을 통해, 소외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따뜻한 인류애로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②
해원이는 망설이다가 민들레를 꺾었습니다.
‘달님! 이 민들레를 우리 엄마가 사는 동네로 보내 주세요.’
해원이는 ‘훅’ 하고 민들레 깃털을 불었습니다. 엄마에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민들레 깃털에 담아 힘차게 불었습니다.
민들레 깃털은 하늘거리며 바다로 퍼져 나갔습니다. 하느적하느적 꼭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 깃털은 해원이와 멀어질수록 점점 더 달빛에 물들어 노랗게 보입니다.
‘민들레야, 멀리 멀리 날아가거라. 우리 엄마가 사는 동네까지 꼭 날아가거라.’
해원이는 민들레 깃털이 노랑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보았습니다.
- 신지은의「날개가 있다면」
위 인용문 ②는 신지은의 생활동화「날개가 있다면」의 결미 부분이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돈을 벌기 위해 뭍으로 나간 엄마 때문에 홀로 할머니 품에 맡겨진 해원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성장 통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속의 민들레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건강에 좋다고 하여 장사꾼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할머니가 캐는 민들레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을 의미하고, 뭍을 향해 해원이가 깃털을 날리는 민들레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고 있다. 즉, 할머니가 캐는 민들레는 해원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억제시키는 기능을, 해원이가 날리는 민들레의 깃털은 그리움의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작가는 성장 통을 통한 미열을 앓고 있는 해원이의 애절한 그리움을 통해, 경제적 파탄으로 인한 가정과 가족의 해체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 그리고 사랑으로서의 연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평면적 구성으로 인해 해원이의 엄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심리적 당위성이 미진하고, 장황하고 지루한 서술과 묘사의 반복으로 서사적 전개를 정체시킨다는 흠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③
“그 때부터 술도 끊고 예전처럼 순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었지. 그 동안 신랑은 탈을 씨고 살았던 기라. 예쁜 각시가 병신이 된 자기를 떠날까봐 무십고 세상사는 기 무십은데, 그걸 들키기 싫어서 벌컥벌컥 화를 냈던 기라. 사람들은 그럴 때가 있다. 그 때, 지가 못 벗어믄 누군가 뱃기 줘야제. 탈도 오래 씨고 있으면 지 얼굴이 되뿌는 기라.”
할머니는 이야기를 마치고 또 코를 팽 풀었어요.
난 그 각시가 도망을 가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할머니 손을 꼭 쥐었어요.
엄마는 말없이 다홍색 보자기만 자꾸 손바닥으로 쓸었어요. 보자기는 우리 식구가 모두 들어앉을 만큼 널찍했어요.
아빠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어요. 마치 세수라도 하는 것처럼.
보름달에게 빌 소원이 떠올랐어요.
‘달님, 우리 아빠 탈 얼른 벗게 해 주세요.‘
- 이자경의 「우리 아빠 탈은 누가 벗길까」
위 인용문 ③은 이자경의 생활동화「우리 아빠 탈은 누가 벗길까」의 결미 부분이다. 이 작품 역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과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몰렸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우화로 그러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과정을 따스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아라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각박한 현실적 삶의 무게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동화이다. 이 작품 속의 ‘현실적 무게’는 사람 좋은 아버지가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가 그만 잘못 되는 바람에 경제적 파탄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리적 갈등을 의미하고 있다.
여느 작가 같았으면 그러한 버거운 현실적 삶의 무게에 초점을 맞추어 가족의 해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형상화했을 법 한데도, 이 작가는 긍정적 시각으로 이를 접근하고 할머니의 상징적인 우화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는 행복한 결말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그만치 작가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인본주의적 기저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머니가 수아 가족에게 들려주는 우화는 그 의미가 다소 고답적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해체를 막고 희망을 주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이 우화 속의 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단절과 진정한 자아의 상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시각과,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작가의 따스한 가슴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끝>
첫댓글 김문홍 선생님께서 바쁘신 가운데서도 작품들을 자세히 읽고 짚어주시기에 작가들은 더욱 행복합니다
저의 인상적인 비평이니까 그리 아시고 읽어 주십시오. 설득력이 있으면 받아 들이시고, 그렇지 않으시면 한 귀로 흘려 버리십시오.
두 귀로 다 받아드려야겠지요!
선생님, 부족한 글에 서평까지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콕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박사님, 가끔 동시도 언급해주세요. 부산 아동문학이 큰 날개짓하는 데는 김박사님 공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