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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이 '관광특구'가 된 이유 | ||||
[일다 2004-09-07 01:51] | ||||
<일다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www.pinks.or.kr)와 공동기획으로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 김일란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기지촌의 성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편집자 주>
수원에서 평택방향으로 1번 국도를 타고 지나다 보면, 오른편으론 송탄 관광특구를 알리는 갈색도로표시판이 보인다. ‘신장쇼핑몰’이라고 써있는 커다란 구조물은 미국 제 7공군사령부, 일명 K-55의 정문 앞에 위치한 송탄 관광특구의 시작을 알려준다. 경기도 평택시의 신장쇼핑몰 거리는 명동, 이태원, 또는 홍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거리는 각종 패스트푸드점과 화장품가게, 유명 브랜드의 옷가게, 각종 외국 음식점 그리고 외국인 전용 클럽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세련된 소비의 거리에는 외식을 나온 가족들, 10대들, 가벼운 쇼핑을 즐기는 젊은이들 그리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미군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소비를 즐긴다. 송탄쇼핑몰은 한낮에도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요란하며, 상거래가 번창하는 거의 유일한 기지촌이다.
기지촌에서 쇼핑몰로
송탄이 지금과 같은 외양을 갖추게 된 것은 관광특구로 지정된 1997년부터다. 관광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관광특구는 “자유로운 관광사업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광사업과 관련된 관계법령의 적용이 배제되거나 완화되는 지역으로서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곳”으로, 시도지사의 신청에 의해 문화관광부장관이 지정하는 제도다. 관광특구 제도는 1993년에 제정됐는데, 이 제도는 경제특수를 노리는 관광지들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1988년 이후 관광산업은 ‘소비성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각종 규제가 강화되었던 반면, 관광특구에선 심야영업규제완화, 면제조치, 서비스 업종에도 대출을 허용하는 여신금지해제 등 다양한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관광특구 정책이 발표되자 송탄의 클럽업주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1990년대 초부터 기지촌을 떠도는 하나의 소문이 클럽업주들을 자극했다. 곧 미군기지가 재배치될 것이며 동두천에 있는 제2사단이 평택, 특히 안정리의 캠프 험프리와 송탄의 K-55 지역으로 이전될 지 모른다는 것. 미군의 이동으로 인해, 기지촌의 지역경제가 변화를 겪었던 사례는 많다. 따라서 미군의 증감에 따른 이동에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선 다른 경제특수를 노릴 수 있는 안정적인 지역개발 방안이 필요했다. 기지촌 클럽업주들은 상가번영회(관광특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관광특구 지정촉진에 힘을 모았다.
관광특구 지정은 단순히 클럽업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별한 지역경제의 자원이 없는 지방자치단체들에게 더욱 중대한 사안이었다. 지방자치제 이후 각 지역단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했는데, 농업, 공업, 산업단지가 조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경제자원도 없는 동두천시와 평택시는 관광특구 지정을 적극 유치하려 했다.
관광산업으로 공인되는 성산업
1990년대 초, 경제적 기반인 미 육군 제2사단이 완전히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동두천의 지역경제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실제로도 미군이 감축돼 지역경제는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었다. 동두천시로서는 경제발전을 위한 대안이 필요했지만, 시내 한복판에 제 2사단이 위치하고 있고 군사보호지역과 공여지가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토지개발에 제약이 많았다. 동두천시는 이미 마련된 자원인 기지촌 성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즉 국가의 지원을 받아 기지촌 성산업을 관광산업으로 육성하여, 지역경제 회복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지촌 성산업을 관광산업으로 전환하려 한 것은 평택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통의 발달로 송탄 K-55의 미군들이 점차 주말을 서울, 특히 이태원에서 보내게 됐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송탄 기지촌을 이태원처럼 쇼핑과 유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소비공간으로 재개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개발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국가의 지원이 필요했다.
1994년, 경기도는 미군남성을 상대로 하는 클럽들이 밀집되어 있는 동두천시 제2사단 주변지역과 평택시 송탄의 미군 K-55 주변 등 4곳에 대한 관광특구 지정을 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의 전신)에 신청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부는 처음에는 내국인의 소비를 부추길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재검토하기로 하고, 신청을 반려했다. 1996년, 동두천시와 평택시는 다시 경기도를 경유해 문화체육부에 ‘관광특구 변경 및 지정 신청 사유서’를 제출했다.
특히 동두천시는 사유서를 통해, “관광특구 지정 신청지역인 생연4동과 보산동의 일부 지역은 미2사단 주변지역으로 1960-1970년대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 및 상가가 많이 형성되어 경기 활성화와 외화획득을 통한 국가발전에도 적지 않게 기여하였으니, 주한미군감소와 시간외영업제한조치 이후 경기가 침체된 지역으로서 관광특구로 지정돼 관광사업 및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상거래 활동을 통한 외화획득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경기도 관광지역 성산에 유입되는 외국인 여성에 관한 연구, 1999, 백재희)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다른 지역들을 제치고, 경기도의 동두천과 평택시 송탄은 1997년 관광특구로 확정됐다. 그렇게 클럽업주들과 지방자치 단체들의 노력과 문화체육부의 묵인 하에 기지촌 성매매 지역은 관광특구로 거듭났다.
관광특구 지정에 ‘뒷거래’ 의혹도
송탄이 관광특구로 지정될 요건을 별로 갖추지 못했음도 불구하고 관광특구로 지정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송탄 관광특구 지정 반대를 위한 시민대책위’의 전 상임대표였던 고연복 목사는 “송탄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여러 문제를 지적했다. 고 목사는 “송탄의 연간 내외국인 관광객은 클럽에 다녀간 미군남성의 횟수와 클럽업주들이 낸 세금에 기반해 산출한 통계”라면서, “관광특구 지정에 있어서 주민여론 수렴과정은 제대로 이루지지 않았을 뿐더러, 주민투표 역시 클럽업주와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고연복 목사는 관광특구 실사조사단과 상가번영회 사이 ‘뒷거래’ 의혹까지 제시했다. 관광특구 지정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상가번영회 관계자가 녹음테이프를 들려줬는데, 그 안에는 식사대접을 받던 정부인사가 관광특구 지정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의심스러운 대목은 “1996년 당시, 문화체육부와 경기도에 관광특구 실사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의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여러 핑계를 대면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고 목사는 회고했다.
문화체육부는 동두천시와 평택시 송탄을 관광특구로 지정한 이유에 대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유치노력과,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점, 지역경제가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관광개발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주목할 것은 ‘관광개발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의미다. 수려한 자연환경도, 그렇다고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자원을 갖고 있지 않은 동두천과 송탄 기지촌의 관광자원은 오로지 미군남성을 상대로 하는 클럽들이고, 그 클럽에서 판매되는 여성의 성이다. 결국 기지촌의 관광특구 지정은 국가가 여성의 몸을 관광자원으로 인정, 상품으로서 판매될 수 있도록 합법적인 경로를 마련하고 나아가 기지촌 성산업을 관광산업으로서 지원하고 육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바뀌어도, ‘사실은’ 기지촌이야”
동두천시가 미군기지 이전반대를 호소했지만 최근 기지이전이 확정됐다. 그곳은 평택시 안정리의 캠프 험프리, 일명 K-6 근처다. 안정리 상가번영회 관계자인 이모씨에 따르면 “안정리는 2002년에 평택시의 지원을 받아, 송탄 쇼핑몰과 흡사하게 재개발됐다.” 그는 평택시가 안정리 쇼핑몰을 ‘영어마을’로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는 미군들도 있고 대부분이 영어를 쓰니까. 영어교육과 유흥, 그리고 여가가 모두 이루어지는 곳으로 개발을 해야죠.”
‘2004년 신정소도읍 육성방향 및 사업계획-행정자치부’라는 공문서에는 안정리의 재개발 비용이 총 318억(국비 100억원, 지방비 100억원, 기타 118억)으로 제시돼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업계획을 뜯어보면 ‘영어마을’ 개발은 이미 확보되어 있는 미군남성들의 소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내국인 손님들을 클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다. ‘영어마을’은 포장만 그럴듯할 뿐, 실제적으로는 변함없는 기지촌 성산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군기지 이전경비 부담금, 한미외교 속에서의 민족적 자존심, 농민들의 생존권 등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미군의 감축과 재배치, 그에 따라 새롭게 포장되는 기지촌의 변화 속에서 여성의 몸이 하나의 상품으로,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매매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송탄 기지촌과 동두천 기지촌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세련되고 화려한 외양으로 바뀌고 있는 기지촌의 겉모습에 성매매 되는 여성들의 삶이 가려지고 있다. 송탄에 살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은 송탄 쇼핑몰을 이야기할 때, “사실은”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아무리 겉이 바뀌어도, ‘사실은’ 기지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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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일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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