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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사랑 이순신대교 답사
■ 때 : 1월 28일(토) 오후 1시 30분 ■ 모일 곳 : 선원동 금호아파트 앞 시내버스 정류장 ■ 이동 : 오후 1시 오동도 출발 신월동 거쳐 오는 61번 버스 ■ 답사 과정 : 월내 선착장 - 도선 승선 - 묘도선착장 - 창촌마을 - 선장개 - 봉화산 - 광양포 - 이순신대교 - 도독포 - 온동마을 - 지름머리 지층 - 온동산성 - 준설토 투기장 - 창촌마을 - 묘도 선착장 - 월내 선착장 - 61번 버스 탑승 - 시청앞 하차 - 걷기 - 나의살던고향 저녁식사 ■ 대상 : 풀꽃과 여수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
고양이섬 묘도
우리 지역에서는 묘도(猫島)하면 누구나 고양이섬이라고 한다. 고양이섬 묘도에는 쥐가 살지 않고, 고양이 때문에 섬에는 살지 못하고, 그 앞에 서치도, 쥐섬이 있다. 더욱 발전해서 묘도에는 서씨(徐氏)가 살면 해를 입는다고 해서 서씨가 살지 않는다는 전설까지 있다. 이것은 서씨가 쥐 서(鼠)자와 음이 같아서 지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묘도동 사무소가 있는 창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창촌은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옛날은 ‘창몰’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몰'이란 마을이란 뜻의 옛말이다. 이 마을에 묘도목장의 관사와 창고의 역할을 하던 좌기청이 있었기에 창이 있던 마을의 뜻인 ‘창 몰’로 불려지게 되었다. 창촌에는 조산이란 작은 산이 있다. 조산이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산으로 풍수지리에서 마을의 부족한 기운을 채워준다는 전통 신앙 때문에 만들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바다를 막아 농경지나 개천을 만들면서 나오는 흙이나 돌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창촌마을 서북으로 병선을 숨겨놓았다는 뜻의 선장개란 포구가 있다. 이곳에서 월내동과 세구지에서 발견된 것과는 전혀 다른 '슴베식 돌칼' 2점이 고기잡이 하던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창촌 마을 선장개는 임란당시 마지막 해전을 앞두고 이 충무공께서 조선함 대를 이끌고 진을 친 곳이다.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 “유도에 진을 쳤다”고 기록한 유도가 지금의 선장개라고 한다. 지금의 간척지에 조선함대가 정박하고 장군막사 등 군사지휘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246m 높이 묘도 봉화산에는 봉수대가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했던 봉수대이다. 원형의 복원이 가능하도록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도 광양만의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 '이순신대교'가 개통되면 봉화산 자체가 전망대가 된다. 여수시에서도 봉수대의 복원과 광양만 전망대 설치사업을 계 획하고 있다. 이곳에 전망공원이 만들어지면 이순신대교 못지 않게 여수산단과 광양제철 등 산업단지 야경이 멋있을 것으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봉화산 자락에는 특이하게도 광양포라는 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갱개’라고 하였는데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광양포'가 되었다. 광양으로 가는 포구의 뜻으로 바꾸어 '광양포 마을'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이순신대교'를 예고한 것 같다. 마을 입구에 개구리를 닮은 퇴적암이 있고, 바위에 박혔던 자갈들이 침식작용이나 염분에 의해 빠져나가 '타포니'가 형성되어 있다.
조, 명, 일 삼국의 격전지 도독포
웅장한 '이순신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면 '도독포 마을'이 있다. 언뜻 들으면 '도둑'으로 들려서 기분이 나쁠 도독골 또는 도독개라고 불렷던 도독포(都督浦)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은 임진왜란당시 명나라 수군도독인 진린장군이 주둔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도독골'이란 땅이름은 여러 곳에 아주 많이 나타나는 땅이름이다. 산이나 작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란 뜻이다. 임란말기 이충무공과 조선함대는 창촌 선장(船藏)개에, 진린장군과 명나라 수군은 '도독포'에 주둔하여 순천왜교성에 있던 왜군을 공략하였다. 왜군들의 마지막 퇴로를 차단하고 있다가 통영쪽에서 구원하려오던 왜군과 지금의 지신도와 남해사이에서 벌어진 전투가 임란 최후의 전투가 되었다. 묘도는 이순신 장군께서 마지막 밤을 보내신 의미 깊은 충무공 유적지이다.
묘도의 도독골도 진린도독이 오기 전부터 ‘도독골’로 불려지다가 조.명 연합군이 머물고 간 뒤에 명나라의 장수 직급인 도독의 뜻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 휘날리며 온동산성까지
'도독포'를 지나면서 '이순신대교'의 멋진 모습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멀리 컨테이너부두와 끝이 안보이는 광양제철 공장을 보면서 걷게 된다. 그 갯가에 다른 지역에서 보기 드문 바닷가에 돌로 쌓은 밭 모양이 있다. 이곳은 묘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조개 양식장이다.
갯가길을 걸어서 돌아가면 태극기가 휘날리는 온동마을이 나타난다. 지금은 묘도 어느 마을이나 집집마다 태극기를 연중 게양하고 있으나 처음 태극기를 단 마을이 온동마을이다. 1년내내 태극기를 달아놓고 있어서 일부는 훼손되거나 더러워져 있어서 보기가 흉한 집도 있다. 온동마을에는 복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시내에서나 볼 수 있는 빌딩 '마을회관'과 '마을복지회관', '마을스포츠센터'등이 있다. 온동마을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왼덜개’나 ‘외돌개’로 불리던 것을 따뜻한 '온돌개'란 뜻의 '온동'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온동마을을 지나서 갯가쪽으로 걷다보면 채석장이 있다. '지름머리 지층'으로 그 산이 유두산이어서 '지름머리'라고 부른다. 이산이 지름산 '유두산'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건너에 GS칼텍스가 들어온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지층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서 학생들이 지층 공부를 하기 위해서 많이 찾아온다.
유두산에는 '묘도동산성'이라고도 하는 '온동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130m 유두산 정상에서 해발 75m까지 연결되는 테메식 산성이다. 성의 총 둘레는 699m이고, 성안은 부정형으로 동쪽이 좁고, 서쪽이 넓다. 문이 있었던 문지가 2개 있고, 발굴된 기와류가 고려시대 것으로 보아서 이 산성은 고려 시대와 그 이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부터 묘도에 광양만 일대를 관장하는 치소인 읍동을 설치하였다. '온동산성'은 광양만으로 드나드는 선박을 관리하고 외적의 침투를 감시하던 군사기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말에는 정지 장군의 관음포 대첩이 이 산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임란전쟁 당시에는 마지막 해전인 노량 해전을 치른 곳이 이 산성 앞 해상이므로 이곳이 호국 역사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묘읍과 준설토 투기장
유두산 남쪽으로 묘읍마을 앞바다를 준설토 투기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묘읍마을은 ‘골개’라고 하던 마을로 이를 '고을'과 '개'로 나누어 읍포 또는 읍동이라고 하다가 묘읍이란 이름을 1962년부터 사용하였다고 한다. ‘골개’란 지명은 골짜기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고을로 해석하여 이곳에 큰 고을이 있었다는 뜻으로 하여 주민들은 '적량부곡'의 옛터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록이나 유물유적이 나타나지 않는고 한다.
배가 광양만을 안전하게 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항로의 퇴적 물질을 퍼내 쌓아둘 곳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묘도 준설토 투기장이다. 한 때 투기장에서 모기떼가 날아들어 묘읍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매립이 되면서 모기가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순천만과 같은 널따란 갈대밭과 호수가 만들어졌다. 재두루미와 오리떼가 많이 날아다니고 있어서 자연 환경 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묘도 준설토 투기장은 A지구 113만㎡가 2006년 매립 완공되었고, B-C지구 195만㎡는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 여의도 면적이 8.48㎢의 절반 정도인 3㎢이니 엄청난 규모이다. 골프장과 조선 수리소 등이 거론되었는데 앞으로 국토해양부에서 이곳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역에서도 좋은 의견을 정리해두어야 할 것 같다.
서해대교의 행담도인 이순신대교 묘도
수도권에서 서해안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들리는 곳이 바로 행담도이다. 서해대교에 행담도가 있다면 이순신대교에는 묘도가 있다. 앞으로 묘도에도 봉화산에 여수시가 추진하는 전망 공원이 들어서고, 묘도에 각종 휴게 시설들이 들어서면 이순신 대교 덕을 톡톡히 볼 것으로 본다. 당장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통해 가장 돋보일 묘도, 지역민들이 나서서 손님을 맞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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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묘도가 고양이 섬으로 알려진 까닭은 고양이와 관계가 없는 땅이름이다. 묘도의 옛 이름은 ‘괴 섬’이고, ‘괴 섬’에서 '괴'는 굴이란 뜻의 고어이다. 묘도를 ‘괴 섬’으로 부르게 된 것은 섬의 서쪽해안에 바위굴 ‘괴 입’이 있기 때문이다. '괴 입'의 괴를 본래의 의미인 굴로 생각하지 않고 고양이로 생각하면서 한자표기도 고양이 묘(猫)자로 표기하면서 고양이섬 묘도가 되어버렸다.
머지 않아 그리울 묘도 도선
이제 더 이상 묘도는 섬이 아니다. 2012년 5월이 되면 묘도대교로 월내동과 연결되고, 이순신대교로 광양시와 연결된다. 시내에서 61번 시내버스를 타고 월내 선착장에 도착하면 바로 묘도 도선을 타고 건넌다. 한번 들어가면 언젠가는 다시 이 도선으로 나와야 하므로 들어갈 때 요금을 받지 않고, 묘도 선착장 매표소에서 나올 때 선표를 끊고 승선을 한다.
마을에서 운영을 하는 도선 2척은 이제 묘도 주민의 발이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옛 향수를 생각해서 도선을 이용하거나 마을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이순신대교와 묘도대교를 구경할 수 있는 관광 유람선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준공하기 전에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도선을 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순신대교로 유명해질 묘도
도선을 타면서부터 웅장하면서 돌아가는 다리가 처녀 엉덩이처럼 미끈한 묘도대교를 보고서 감탄을 한다. 묘도 '이순신대교'는 정확히 말하면 묘도에서 월내동을 잇는 '묘도대교'와 광양에서 묘도를 잇는 '이순신대교'로 되어있다. '이순신대교'의 정확한 이름은 '여수국가산단 진입도로'이다. 총길이가 9.58km로 공사비는 1조 636억원이다. 여수에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묘도대교'는 사장교로 길이가 4차로 1,410m이고, 교각과 교각 사이 주경간 길이는 430m이고, 높이는 52m로 '이순신대교'보다는 작고 다른 모습이다.
'이순신대교'는 순수 국산기술로 시공한 최초의 다리로, 세계에서 6번째로 자국 기술로 현수교를 건설한 나라가 되었다. 바다에서 상판까지의 높이가 최대 85m, 평균 71m로 주탑 사이 선박 운행이 가능한 폭은 1,320m로 초대형 컨테이너선 2척이 교차 운행할 수 있다. 교량 상판은 강풍이 심하고 태풍이 잦은 지리적 여건을 감안하여 초속 44m 이상의 대형 태풍 2개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끄덕없도록 내풍 안정성은 높이고, 중량은 크게 감소시켰다.
'이순신대교'는 이름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4,933억원을 들여서 만드는 '이순신대교'는 현수교 길이가 무려 4차로 2,260m이고, 바다에서 높이는 평균 71.3m로 아찔해서 내려다 보기가 힘들다. 콘크리트 주탑은 그보다 훨씬 높은 세계 최고 높이인 270m이다. 교각과 교각 사이인 주경간 길이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인 1545년을 기념해서 1,545m이다. 이것은 일본 아카시대교(1,991m), 중국 시호우먼교(1,650m), 덴마크 그레이트벨트교(1,624m)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긴 현수교이다.
이순신대교 전망대 봉화산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