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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4-3) 생명의 성령의 법의 추가적 해석/ 예수 이름에는 권세와 권능이 따른다
1. 로마서 8장 4-11절의 해석
<성령 안에서 사는 삶>
롬8:4절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육신(=육체)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 육신으로 하나님의 법(율법)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으며, 죄를 정죄하고 죄와 육신의 이중적인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목적은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라는 말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영적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의 계시와 통찰력은 참으로 놀랍다! 바울은 롬8:2절에서 성령을 말하고, 8:4절에서는 성령을 말할 뿐 아니라 사람의 영을 말한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이고, 사람의 영 안에는 성령이 거하고 연합한 영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바로 그러한 영적인 사람의 영이다. 생명의 성령은 사람의 영 안에 있다.
우리가 이 연합된 영을 좇아 행한다면 모든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율법의 요구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자연히 이루어진다. 육신이란 것은 그 자체 안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 실존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처리를 통하여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삶의 중심과 목표가 된다. 이렇게 하여 율법의 원래적 요구, 곧 하나님의 참된 뜻이 우리에게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열쇠가 되는 생각>
5-8절은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5-8절은 두 가지 삶의 방식, 곧 육신을 따라 사는 삶과 영을 따라 사는 삶을 구분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육신은 단지 연약함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7절), 그 때문에 사망으로 인도한다(6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며 그의 삶을 규정하신다.
이 구절에서의 중점은 “생각”에 대한 해석이다. 로마서 7장에 있는 생각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로마서 8장에 있는 생각은 더 이상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영에게 돌아와 영을 의지하는 생각이다. 생각은 아내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아내의 지혜로운 생활 태도는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남편에게서 오는 것이다.
만일 아내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그녀는 자기 힘으로 그것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그 어려움을 자기 남편에게 말해야 한다. 로마서 7장에 있는 생각은 남편처럼 행동하는 독립적인 아내였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 있는 생각은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스스로 나가지 않고 올바른 위치를 유지하며 언제든지 남편에게 돌아와서 의지하는 아내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생각이 영에 두어졌을 때에는 패배도 정죄도 그 어떤 소극적인 느낌도 없다. 오직 생명의 평안과 누림과 안식만이 있다. 하나님의 법을 스스로 지킬 수 없던 바로 그 생각이 영을 생각함으로써 생명과 평안의 생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의 생각이 영의 기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제 생활에서 살아 역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것을 실천한다면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을 지식이나 이론으로 쓴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한 자신의 체험을 따라 썼다. 이것을 실천해 보면 율법이 자연적으로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스스로 이루려고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법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무의식중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율법을 이룰 의도가 없을지라도 무의식중에 이루어짐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의도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라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아내를 사랑한다.
당신이 화를 참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가 사라진다. 당신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온전히 남편에게 순종한다. 이것이 생각을 영에 둠으로써 율법의 요구가 자연적이고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영으로부터 독립될 때에는, 그 인격(혼)이 스스로 행동하며 영에게 의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으로서 우리의 영 안에 거하는 생명주는 영이시다(고전15:45).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독립적인 생각을 따라 우리 스스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죄의 법과 육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요구를 자연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영과 하나 되어야 하며 영을 따라 행동하고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내주하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누리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7).”
당신은 육신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육신은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 육신은 극도로 부패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육신이 끝나야 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셨다. 하나님은 노아의 세대가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 세대를 심판하셨다(창6:3절).
그 세대가 육신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소망 없는 것으로 여기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구하거나 회복하거나 개선할 수 없음을 아셨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은 하나님과 원수이며 육신의 생각도 또한 하나님과 원수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기를 원할지라도 결코 굴복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육신에 대한 판결은 끝난 것이다. 육신은 끝났다. 육신에 관련된 모든 것도 끝났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 우리가 육신에 있는 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결코 당신의 육신을 선하다고 말하지 말라.
7-8절에서 우리는 네 가지 사항을 본다. 첫째로 육신은 하나님과 원수이다. 둘째로 육신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 셋째로 육신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다. 넷째로 육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것이 육신의 상태이다.
<성령이신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9절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육신은 정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집이 법원에 의해 경매개시가 결정되었다면, 이제 당신이 그 집에 거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신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정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에 머물러서도 안 되며, 우리의 육신이 개선되었다고 주장하거나 따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육신에 있지 말고 영에 있어야 한다. 이 영은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사람의 영을 의미한다. 우리가 영 안에 있으려면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9절).
“거하다”라는 단어는 실제로 “거처를 만들다”를 의미한다. 만일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여 자기의 거처를 만든다면 우리는 영 안에 있게 된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아직 하느님의 영이 당신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당신이 왜 아직까지 영 안에 있지 못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 속에 있었을지라도 그분은 당신 속에서 그분의 집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 안에 거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당신의 집에 초대받았더라도 당신의 집을 나의 집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나는 당신의 집에 손님으로 있는 것이지 나 자신을 당신의 집에 정착시킬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은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 안에 거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분은 거주하는 분이 아니라 손님이 된 것이다. 만일 하느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자신의 집을 만들고 우리 안의 적당한 방에 자신을 정착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영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의 영이 기거할 방이 없다면, 우리는 영 안에 있지 않고 육신 안에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영을 갖고 있는 한 당신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느냐 거하지 않느냐는 조건적이다. 우리가 영 안에 있으려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집(거처)을 만들어야 하며 우리의 속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10절은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10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9절의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이제 10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임을 분명히 증명한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있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이다. 로마서 3장에서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분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위하여 피를 흘렸다. 4장에서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분은 부활 안에 있었다. 그러나 8장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다. 6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8장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한 방면이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은 또 다른 방면이다.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다음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한다(요15:4). 먼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때,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하셨다. 그분은 과정을 거쳐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셔야 한다.
롬8:11절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한다.
11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죽은 몸에 관한 마지막 항목을 본다. 우리의 몸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생명은 우리의 죽어가는 “죽을 몸”에까지 주어진다. 우리의 몸은 우리 안에 거하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 안에 동참할 수 있고, 이 생명을 힘입을 수 있으며, 이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다. 11절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 말씀은 결코 우리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를 부활하게 하신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지금 우리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미래 부활을 보증하신다. 실로 성령께서는 구원의 시작이요, 완성의 보증이시다.
2. 예수 이름에는 권세와 권능이 따른다
<나의 체험적 간증>
내주하는 영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은 분명하다(고전15:45; 고후3:17). 내주하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우리 속 각 부분에 생명을 공급한다. 전기를 예로 들어보자. 전기는 건물 안에 설치되어 있지만 그 전류는 끊어질 수 있다. 집 안의 전기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전등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하늘의 전기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혼(생각, 감정, 의지)의 대부분이 스위치가 꺼져있다. 곧 당신의 감정이 그리스도께 막힘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생각과 의지가 생명의 영의 공급을 막고 있다. 축복의 통로가 막혀있다. 당신은 가면을 쓰고, 짙은 색안경을 쓰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생각을 영에 둔다는 것은 우리 전체를 영에게 고정시키며 영을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을 영에 둔다, 혹은 생각을 영으로 항상 돌이키는 것, 영을 좇아 행하는 것, 내 영과 성령이 연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생각을 어떻게 영으로 계속하여 돌이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영의 스위치를 계속 켤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나의 체험적 비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 주 예수님!” 주님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생각을 영으로 돌이키는 비결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오! 주 예수님!” 그 이름을 부르는 즉시 우리는 우리의 영을 만지며, 동시에 우리 영 안에 있는 성령을 접촉한다(요4:24).
그 이름을 부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자동적으로 작동되고, 천군천사가 당신을 호위한다. 그분의 이름에는 그분의 탁월성, 그분의 권세, 그분의 능력, 그분의 영광, 그분의 섭리, 그분의 통치, 그분의 보호, 그분의 치유,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의 이름의 권세와 권능의 신비에 대하여 어쩌면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소개하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가르쳐 주셨다.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눅1:31). 그 예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본래 예수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이때 처음 세상에 나타내 주신 것이다.
요17:11-12절은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란 호칭은 이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믿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도 그 이름을 위해서이고, 부활하신 것도 그 이름을 위해서이다. 또한 하늘에 올라가신 것도 그 이름을 위함이다. 그리고 모든 능력은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는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에 오르셨으니 그가 곧 인자요 우리 안에 계신 이는 성령이신데 예수 이름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 곧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어 우리 안에 있게 하신 것이다.
요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하늘에 계신 이는 인자이시고, 내 안에 계신 이는 예수라고 말한다.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내 안에 계시는 것이다. 구약의 믿음은 전부 상징적인 믿음이요, 신약의 믿음은 전부가 체험이다. 내 안에 계신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으로 예수 이름이 내 안에 계신다. 성령은 바로 예수 이름으로 오셨다.
내 안에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 아들의 이름이 예수, 성령의 이름이 예수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 이름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사람의 영에 들어오신다. 귀신은 사람의 영 속에는 들어올 수 없다. 성령만이 우리 영 속에 들어오신다. 성령은 예수 이름으로 오신다.
성령으로만 예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영 속에 임하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이름 곧 예수가 우리 영 속에 임하시는 것이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인 예수, 내 이름으로 오실 성령,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이다. 할렐루야! 놀랍지 않는가?이런 신비를 들었는 적이 있는가? 예수 이름의 권세와 권능을 아시겠는가?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여호와”라고 하셨다(출3,14-15). 그런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가르치신다. 오늘 로마서의 비밀들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계시이다. 객관적 진리(구속) + 주관적 진리(구원)= 완전한 구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를 법으로 이루신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실행의 비결은 무엇인가? “생각을 영에 두는,” “영을 좇아 행하는,” “그리스도 안에,” “영의 인도와 영 안에,” “내 영과 성령의 연합을,” 살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오! 주 예수님!” 예수의 이름을 수시로 부르는 것이다. 둘째는 방언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는 기도로 성경을 읽는 것이다. 넷째는 누구를 위한 짧은 화살기도이다. 성령이 주시는 영감으로 즉각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드리는 강력한 기도이다.
특별히 당신이 어려울 때(분노가 일어날 때, 당신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나쁜 습관들이 일어날 때, 불안하고 두려울 때, 내 안에 악한 영을 느낄 때) 예수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불러보라! 당신은 이미 승리하고 치유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오늘 나의 글을 읽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당신을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이를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실행의 비결은 무엇인가? “생각을 영에 두는,” “영을 좇아 행하는,” “그리스도 안에,” “영의 인도와 영 안에,” “내 영과 성령의 연합을,” 살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오! 주 예수님!” 예수의 이름을 수시로 부르는 것이다. 둘째는 방언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는 기도로 성경을 읽는 것이다.
특별히 당신이 어려울 때(분노가 일어날 때, 당신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나쁜 습관들이 일어날 때, 불안하고 두려울 때, 내 안에 악한 영을 느낄 때) 예수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불러보라! 당신은 이미 승리하고 치유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오늘 나의 글을 읽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을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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