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 뜻,” “환경적 뜻,” “절대적 뜻”으로 구분한다. 첫째, 하나님의 의도적 뜻은 일종의 “소망적 뜻”과도 같은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본래 모든 인간이 다 잘 되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사실 아무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마태복음 18장 14절,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의도적인 뜻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의도적인 뜻은 인간의 완악함과 죄악으로 인해서 도전을 받고 방해를 받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완악함과 죄악까지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선하지 않은 분으로 만드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신다는 논리적 결론이 나온다. 하나님의 의도적 뜻은 인간의 반응 여부에 따라 조건적이다.
둘째, 하나님의 환경적 뜻은 인간들의 불순종과 반항으로 인해서 달라진 상황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쟁이라는 악한 상황에서는 독자(獨子)임에도 어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국가를 위해 싸우러 나가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본래 뜻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의 의도적인 뜻은 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환경이 달라졌을 때, 아버지의 환경적인 뜻이 나온 것이다. 처음부터 아들이 전장에 나가 피 흘리며 싸우는 것을 원하는 아버지는 없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폐기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적 뜻은 인간들에 의해서 무산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뜻, 즉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뜻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고,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의도적 뜻은 깨졌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뜻은 성취된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뜻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아(의도적 뜻이 무산됨), 그분이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환경적인 뜻),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절대적인 뜻)은 결코 무산되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구분하면 우리 앞에 놓인 고난을 하나님의 뜻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방식으로 접근하면 우리 앞에서 벌어진 모든 고난을 무작정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나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