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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여성의병단 조직, 탄약제조소 운영 등의 적극적 의병운동 지원에 힘썼을 뿐 아니라,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제작하며 구국활동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많은 여성들이 의병운동에 참여하도록 ‘안사람 의병가’, ‘안사람 의병노래’ 등을 지어 여성들도 구국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의병을 진압하는 관군에게 “우리나라 좀 벌레 같은 놈들아, 어디 가서 살 수 없어 오랑캐나 쫓는단 말인가, 오랑캐를 잡자 하니 내 사람을 잡겠구나, 죽더라도 서러워 마라 우리 의병들은 금수를 잡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관군을 좀벌레로 취급하였다.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밀고자들에게도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인고, 너희들은 무슨 일로 그다지도 모르는가”라며 힐책했다. 청년들에게는 “우리 조선 청년들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하여 나라 찾자, 조선의기 청년들아, 빨리 나와 의병하여 보세, 아낙네들 나와 의병을 돕는데 하물며 우리 청년들아 나라 잃고 가만히 있을 소냐, 너도 나가고 나도 나가자”라며 구국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선생은 의병을 돕는 일도 고생스러웠지만 의병가, 경고문 등을 가사로 지어 노래 부르도록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남자들이 모르게 하느라 근심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당시 선생은 밤낮없이 자신이 지은 의병가와 경고문을 불러 자녀들, 마을 청년들, 새댁들이 모두 의병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각하길 원했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덧 선생이 지은 가사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선생의 노래 부르기 전략은 많은 사람들을 의병운동에 참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