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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16
#1 거리(밤)
-연욱, 차창을 다시 두드린다.
연욱 : 실례합니다, 음주측정이 있겠습니다.
-운전자, 앞만 꼴아본다. 바로 앞에는 마악 측정을 마친 차가 출발하고 있다.
-연욱, 안되겠는지 차 문을 연다.
연욱 : 실례지만 잠깐 내려주세요. 음주하셨죠?
-그 순간, 확 출발하는 차.
-차문과 차체에 양 손으로 짚고 있던 연욱, 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군다.
#2 권투도장(15회 엔딩. 동 밤)
-샌드백 치며 연습중인 필승.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인데...
어느 순간 한곳이 터져 모래가 줄줄 흘러내린다.
-벙찌는 필승.
-바닥에 흘러내리는 모래.
필승 : (어이없이 웃고만다. 중얼거리듯)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보네. 오늘 일진이 왜 이래?
-F.O
#3 강력반 사무실(오후. F.I)
-수화기 들고 있는 동희, 갸웃하더니 수화기 내려놓고 핸드폰 들어 단축 누른다.
안내음 : (F) 이 번호는 결번이오니...
동희 : (핸드폰 덮으며 갸웃) 이상하네. (이형사 보며) 형 필승이형이랑 언제 통화했어요?
이형사 : 지난주에. 왜.
동희 : 결번이래요.
이형사 : 결번? 이 자식 이거 우리하고 인연 끊을려고 작정을 했나.
김형사 : 뭐 급한 일 있어?
동희 : 연욱이 땜에요.
이형사 : 그럼 집으로 가봐, 도장으로 가든가.
김형사 : 가지 마라. 괜히 쑤셔서 좋을 거 없다.
동희 : (고민스런)...
#4 병원 전경(오후)
#5 병실
-목 지지대를 하고, 왼 팔에 기브스(상희,동주,오반장과 세형사의 싸인이 있는),
뺨과 이마에 각각 아물어져가는 찰과상의 흔적이 있는채로 침상에 앉아있는 연욱.
누군가를 향해 혀를 쏙 내민다.
-맞은편 침상의 여덟살짜리 계집아이(머리에 붕대 칭칭 감은)가 따라서 혀를 쏙 내민다.
-연욱, 원숭이같은 인상을 짓는다.
-아이도 따라하다가 히- 웃는다.
연욱 : 너 언니가 남자친구 하나 소개해줄까?
아이 : 잘 생겼어요?
연욱 : 그러엄. 내가 얼마나 눈이 높은데. 근데 너보다 어리거든? 연하도 괜찮아?
아이 : 몇 살인데요?
연욱 : 여섯 살.
아이 : 애기잖아요.
연욱 : 야, 지금 애기라고 평생 애긴 줄 알어? 니가 키워서 데리고 놀면 되잖아.
-그때 문 열리고 상희가 들어온다.
상희 : 연욱아.
연욱 : 벌써 퇴근했어?
상희 : 이번달은 오픈조거든.
아이 : 안녕하세요.
상희 : 응, 안녕. (침상 옆에 앉아 스테이크 도시락 펼치며) 아직 저녁 안먹었지? 이거 먹자.
공주야, 너두 일루와. 같이 먹자.
아이 : 뭔데요?
상희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테이크.
아이 : 공주는 고기 안먹어요.
-어머머? 깔깔 웃고마는 연욱과 상희.
연욱 : 그래, 언니는 공주가 아니라서 먹어야겠다. (포크 들고 먹는다)
상희 : 근데 너 요즘 형부한테 전화한 적 있어?
연욱 : (쓴웃음 지으며 담담하게) 전활 뭐하러 해.
상희 : 핸드폰 번호도 바꿨나보더라? 결번이래.
연욱 : !...
상희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러니. 내가 다 서운하더라.
연욱 : (참 서운하다)... 서운할 게 뭐 있어. 이젠 정말 남인데. (먹는다)
상희 : (안스럽게 보고)
#6 권투도장(동)
-관장이 벽에 포스터를 붙인다.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이 주최하는
'제24회 회장배 전국중고 아마츄어복싱대회'를 알리는 포스터다. 나란히 보고 서서.
필승 : 옛날 생각 난다. 내가 처음으로 띈 경기가 이거 아니냐.
관장 : 뛰었다고도 할 수 없죠. 예선에서 한방에 물먹고 내려왔는데.
필승 : 얌마, 울렁증 때문에 그랬다니까? 울렁증만 아니었으면 챔피언 트로피는 내 거였어 임마.
(옆에 와서 공고문을 보는 고딩을 보며) 니가 이번에 나갈 거냐?
고딩 : 네.
필승 : 너 열심히 하더라? (어깨 툭툭 치며) 잘 해봐.
실력은 딸리지만 연습상대 필요하면 언제든 나 써먹고.
동희 : (E) 형.
필승 : (돌아본다)
동희 : (다가오며 초면이 아닌 듯 관장에게 눈인사한다)
필승 : (반갑다) 야- 니가 여기까지 왠일이냐.
동희 : 전화번호 왜 바꿨어요.
필승 : 신비주의 한번 해볼려고 바꿨다. 됐냐?
동희 : (핸드폰 내밀며) 빨리 찍어요.
필승 : 싫다. 당분간은 신비주의 할 거다. 근데 여긴 뭐하러 왔어.
동희 : (망설이는)
필승 : 왜. 나한테 고귀한 자문을 구할 일이라도 생겼어?
동희 : 연욱이가 교통사고 당했어요.
필승 : ?!
동희 : 음주단속하다가 된통 잘못 걸렸대요.
필승 : (놀랍고 걱정스럽다. 내색하기 싫어 운동기구로 가 운동하는)
동희 : (보는)...
필승 : (운동하며 무심한 척) 얼마나 다쳤대.
동희 : 다행히 크게는 아니구요, 목 조금 삐끗하고 팔이 부러졌대요.
필승 : (무의식중에 화가 나는) 뼈가 부러졌는데 다행이야?
동희 : (찔끔하고)
필승 : (얼른 감정 추스르고 운동하며) 언제 그랬는데.
동희 : 한 일주일 됐어요.
필승 : 그래서 지금 병원에 있어?
동희 : 네. 며칠 더 치료 받고 퇴원할 건가봐요.
필승 : (곰곰 생각하다가) 핸드폰 줘봐.
동희 : (전화번호 찍어줄려나부다 얼른 건네는)
필승 : (번호를 꾹꾹 눌러 건넨다) 저장해, 성준이 전화번호야.
동희 : (받으며) 네?
필승 : 이제 그런 일 갖고 나 찾지 말고 성준이한테 전화하라구.
동희 : 성준이하고는 헤어졌잖아요.
필승 : 잠깐 다툰거야. 다시 만난다 그랬어.
동희 : 그 후에 완전히 헤어진 거 같던데.
필승 : (놀라서 휙 본다) 정말이야?
동희 : 상희한테 들었으니까 정말이겠죠.
필승 : (이 자식들이?)...
#7 공원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원들이 진기명기를 선보이고 있다.
-적당한 곳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성준. 예전 같으면 자신도 스케이트를 신고 내달렸을 터,
지금은 그저 미소 띈 채 담담하게 구경만 하고 있다. 조금은 허탈하고 쓸쓸한 모습...
-(회상)연욱과 스케이트를 타던 때의 밝고 경쾌한 모습들...
-씁쓸해지는 성준. 그때 벨이 울리자 확인하며 받는다.
성준 : 네, 차성준입니다.
동희 : (F) 나 강동희 형산데요.
성준 : !...
동희 : (F) 기억 나세요?
성준 : 네, 말씀하세요.
동희 : (F) 저... 이런 전화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성준 : ?...
#8 권투도장(동 저녁)
-필승, 링에 걸터앉아 곰곰이 생각중이다. 다친 것도, 성준과 헤어졌다는 것도 온통 걱정투성이다.
이윽고 핸드폰을 열어 번호 누른다. 잠시 후,
필승 : 선영아 난데, 부탁 한번 더 하자.
#9 복도 (다음 날 오후)
-선영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홋수를 확인하며 온다.
#10 병실
-상희, 연욱의 목 지지대를 빼고 있다.
상희 :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빼도 될까?
연욱 : 간지러워서 그래. 이따 다시 낄께. (노크소리 들리고)
상희 : 네 들어오세요.
-문 열리고 선영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연욱, 보고 놀란다.
-상희, 연욱의 표정에 놀라 선영을 쳐다본다.
선영 : 미안해요, 연락도 없이 와서.
연욱 : (어색하지만 친절하게) 아녜요, 들어오세요.
선영 : (다가와 과일바구니 놓으며) 필승씨한테 소식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상희 : (형부가?)
연욱 : (상희에게) 형부랑 재혼하실 분이야.
상희 : (놀라고)
연욱 : 제 친구예요.
선영 : 예, 안녕하세요.
상희 : (얼떨결에) 안녕..하세요.
연욱 : 상희야, 잠깐 나가있을래?
상희 : 어? 어... (나간다)
연욱 : 이렇게 안오셔도 되는데...
선영 : 몸은 괜찮아요?
연욱 : 네, 금방 퇴원할 거예요. 저기... 준영이 잘 지내죠?
선영 : 그럼요.
연욱 : 네에... (형부도 묻고 싶지만 차마 못묻고 어색해서 비싯 웃는데)
선영 : (미소로) 우리 결혼날짜 잡았어요.
연욱 : !...
선영 : 다음달 첫 번째 토요일인데 그냥 가족끼리 모여서 간단하게 식사만 하기로 했어요.
연욱 : (그렇구나, 완전히 가는구나)...
선영 : 우리 축하해줄 거죠?
연욱 : (애써 웃으며) 그럼요, 축하드려야죠. 두 분 정말 잘 어울리니까 잘 사실 거예요.
선영 : 고마워요.
#11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리는 필승. 답답한 듯 차 문 열고 나와 서성인다.
#12 병실 복도
-문 열고 나오는 선영. 서성이며 기다리다가 돌아보는 상희.
상희 : 가시게요?
선영 : 네. (목례) 그럼 안녕히 계세요.
상희 : 예, 안녕히가세요. (참하네,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들어가고)
-걸어오는 선영. 또 한번의 연극에 잔뜩 긴장해 있었던 터라 긴장 풀며 후 숨을 내쉰다.
#13 병실
연욱 : 이쁘지.
상희 : (그저 속상한)
연욱 : 착하게 생겼지.
상희 : 그래두 연정언니만큼은 아냐. 근데 왜 왔대?
연욱 : 결혼날짜 잡았대.
상희 : !... 어쩜, 형부 참 못됐다. 니 마음 뻔히 알면서 아주 독침을 놓네.
연욱 : (쓰게 웃는)
상희 : 난 사실 형부가 너 땜에 맘에도 없는 결혼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막상 보니까 그게 아닌가봐.
연욱 : (씁쓸한) 준영이한테만 잘 하면 됐지 뭐... 잘 된 거야.
#14 병원 주차장
-성준의 차가 달려와 멎는다. 성준,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가다가 멈칫 선다.
-저만치서 서성이고 있는 필승이 보인다.
-성준, 고민한다. 볼까 말까... 곧 접고 현관으로 가다가... 마음 돌려 돌아서서 필승 쪽으로 간다.
차들 사이를 빠져 가까이 다가간 순간, 또 멈칫 서고만다.
-선영이 필승에게 다가온 것이다.
필승 : 어때. 괜찮아?
선영 : 응. 기브스만 풀면 괜찮을 거 같애.
필승 : 수고했다.
선영 : 오빠, 나 이제 이런 연극 안할래. 아주 피 말라 죽겠어.
필승 : (웃으며)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신 부탁 안할게.
-두어대의 차를 사이에 두고 의아하게 듣고 있는 성준.
선영 : 근데 결혼식은 어떡할 거야. 가족들끼리만 식사한다고 하긴 했는데,
오빠 동료들이라도 온다 그러면 그거까지 속일 수 있어?
필승 : 내가 알아서 해.
선영 : 어쩌자구 가짜결혼을 한다구 해서는... 하여튼 난 다신 못하니까 알아서 해요.
-성준, 충격 받는다.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필승의 차가 떠난다.
-바라보는 성준. 정말 어이가 없다. 휙 돌아서서 차로 간다. 화난 듯 차에 올라 거칠게 문을 닫는다.
그리고 생각에 빠져든다.
#15 오피스텔(회상)
필승 : 서내에 약간 문제가 생겼어. 아마 다른 서로 전보조치 될 거야. 그때 멀리 가도록 하지.
성준 : !... (의아함 감추고) 연욱이가 찾아낼 수도 있죠.
필승 : 재혼도 할 거야.
성준 : !!!
필승 : 가장 확실한 정답 아닌가.
성준 : (얼떨떨한)... 그러네요, 정답이네요. (잠시 진정시키고) 근데 그걸 어떻게 믿죠?
지난번에도 약속하고 두 번이나 어겼는데.
필승 : 자네가 무릎이라도 꿇라면 꿇수도 있어.
성준 : !... (어이없어 피식 웃고만다) 형님이요?
필승 : 그래,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지.
성준 : 글쎄요. 제가 아는 형님은 하늘이 두쪽 나도 남 앞에 무릎 꿇을 분이 아니죠.
필승 : ...
성준 : 일단 앉으세요, 짧은 얘기가 아닌 것 같네요. 뭐 마실 거 드릴까요? (하며 냉장고로 가는데)
필승 : (털석 무릎을 꿇는다)
성준 : (인기척에 돌아보고 놀란다) !!!
필승 : (시선은 바로 앞을 보고)...
성준 : (충격이다)...
필승 : 이제 나만큼 연욱일 잘 아는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받아줄 수 있는 사람도 자네 밖에 없고.
날 죽도록 패도 좋아. 연욱이만 데려 가. 데려가서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만 해.
#16 차 안
-성준, 무릎까지 꿇고 가짜여자까지 내세우는 그의 의도가 새삼 충격적이다.
#17 병실(동 밤)
-침상의 불만 켜져 있다. 연욱, 베개 받히고 기대어 앉아 핸드폰을 연다. 정말 결번일까? 눌러본다.
-(E)결번이라는 안내음.
-연욱, 가슴이 쿵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서글픈 표정으로 다시 눌러본다. 안내음. 다시 누른다.
안내음. 또 누른다. 안내음. 연욱, 그가 그리워 받지도 않는 전화를 계속 해본다. 서글프다.
아이 : 언니.
연욱 : (깜짝 놀라서) 안잤어?
아이 : 시끄럽잖아요.
연욱 : (웃으며) 미안. (핸드폰 한쪽에 치우며) 그만 자자.
-연욱, 한 손으로 힘겹게 눕고 이불을 덮는다.
-아이의 엄마가 보조침상에서 자고 있다.
아이 : 언니.
연욱 : 왜.
아이 : 언니는 왜 맨날 혼자 자요?
연욱 : (픽 웃으며) 같이 자줄 사람이 없으니까.
아이 : 엄마 없어요?
연욱 : 없어.
아이 : 아빠는요?
연욱 : 없어.
아이 : 오빠랑 동생도 없어요?
연욱 : (문득 서러워진다)... 없어.
아이 : 그럼 고아예요?
연욱 : ... 아니. 언니도 있고, 형부도 있고, 너같은 조카도 있고... 그러니까 고아 아냐.
아이 : 근데 왜 안와요?
연욱 : (핑글 눈물이 돈다)
아이 : 언니.
연욱 : 다들 비행기 만들러 갔어.
아이 : ? 비행기요?
연욱 : 그만 자자. (이불을 뒤집어 쓴다)
-곧 이불이 들썩인다. 이불 속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는 연욱.
#18 병실 복도(동 밤)
-조용히 걸어오는 성준. 병실 앞에 멈춰 환자 이름(공주, 서연욱)을 확인하고 망설인다.
들어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등 돌려 서성이는데 문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아이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그러게 아까 화장실 가자니까' 하며 복도 저쪽으로 사라진다.
-성준, 열린 문을 보다가 들어가 문을 닫는다.
#19 병실
-성준, 조용히 침상 곁으로 다가와 선다.
-이불이 들썩이고 연욱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새어나오고 있다.
-울고 있나? 의아한 성준.
성준 : ... (낮은 목소리) 연욱아.
-이불의 움직임이 멈춘다. 성준, 가만히 이불을 들춘다.
-눈물 젖은채 올려다보는 연욱.
-성준, 아프게 작은 한숨을 쉰다. 왜 또 우나...
-연욱, 눈물 닦고 한 팔로 일어나 앉는다. 이하 두 사람 모두 목소리 낮춰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연욱 : 앉어.
성준 : (의자에 앉아 깁스한 팔을 들어본다)
연욱 : 상희가 전화 했어?
성준 : (말없이 깁스 끝자락에 나와있는 손가락을 만진다)
연욱 : (물끄러미 본다. 반갑다)...
성준 : 나 안보고 싶었어?
연욱 : (멋적은 미소)... 보고 싶었어.
성준 : (미소)
연욱 : 병문안 안오면 퇴원하자마자 쫓아가서 이걸로 때려줄려 그랬는데.
성준 : 그럴 줄 알고 얼른 왔지.
연욱 : (미소) 어떻게 지냈어?
성준 : 잘 지냈지.
연욱 : 회사도 잘 있고?
성준 : 그럼.
연욱 : 다행이다. 나 땜에 잘 못지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성준 : 나도 싸인해줄까?
연욱 : 응.
성준 : (매직 찾아 싸인한다)
연욱 :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본다)
성준 : (힐긋 보고) 왜 또 그렇게 봐.
연욱 : 볼수록 잘 생겼어.
성준 : (웃으며) 꼬시지 마라.
연욱 : (따뜻하게 웃는)...
성준 : 방금 왜 울었어.
연욱 : (멋적은)...
성준 : 아파서 운 건 아닐 거고, 설마 나 보고 싶어서 운 것도 아닐 거고...
연욱 : 방금 나간 꼬마 봤어?
성준 : 응.
연욱 : 내가 저만할 때 부모님 돌아가셨거든? 아플 때 엄마가 옆에서 이마 짚어주고 배 쓰다듬어주고,
그런 애들이 제일 부러웠다?
성준 : (안쓰럽다)
연욱 : 성준씨.
성준 : 응.
연욱 : (허탈해서 시선 약간 비키며) 형부 전화번호가 결번이래.
성준 : ...
연욱 : 결번이래니까 꼭 하늘 아래 없는 거 같아. (시선 떨구며) 이젠 정말 나 혼잔가봐.
성준 : (마음 아픈)...
연욱 : 근데 이상하지? (성준과 눈 맞추며) 그래도 언젠가는 나한테 꼭 돌아올 것만 같아.
성준 : (못내 허탈하고 아픈)...
연욱 : 결혼날짜까지 잡았다는데... 그래도 꼭 돌아올 것만 같아.
성준 : ...
#20 병실 복도
-나와서 문 닫는 성준. 걸어오며 생각에 잠긴다. 참 복잡하고 착잡하다.
#21 병원 주차장
-차에 오르는 성준. 생각이 정리됐는지 거침없이 핸드폰 꺼내 버튼 누른다.
성준 : (잠시후) 저예요 차성준.
#22 상희네 아파트
-침대에서 막 잘려다가 전화받은 상희.
상희 : (놀라서) 예... 말씀하세요.
성준 : (F) 형님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상희 : 그건 저희도 모르는데... 근데 형부 전화번호는 왜요?
동희 : 누군데?
상희 : (가만 있으라고 손짓하고)
#23 차 안
성준 : 좀 뵐 일이 있어서요. ... 그럼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습니까.
#24 도장 앞
-성준의 차가 달려와 멎는다. 성준, 내려서 도장을 올려다본다. 잠시 생각하다가 건물로 들어간다.
#25 도장 입구 (동 밤)
-계단 올라오는 성준. 문이 열리며 서너명의 관원들이 나오자 비켜선다.
-마지막으로 관장이 안을 향해 '살살 하고 일찍 들어가세요' 하며 문을 닫고
성준을 힐긋 보며 계단 내려간다.
-성준, 입구에서 문을 연다. 곧, 좀 놀라운 표정으로 시선 고정된다.
-링 위에서 주먹에 붕대만 감은 채 섀도우복싱 중인 필승.
-그를 바라보는 성준.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한 필승.
-성준, 왠지 마음이 아프다.
-필승, 성준을 발견하고 놀라 동작 멈춘다.
#26 도장 안
-필승과 성준, 링 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있다.
필승 : (붕대 풀며) 어떻게 왔어.
성준 :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필승 : 다신 만나지 말자고 했잖아.
성준 : 저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필승 : 연욱이랑 헤어졌다는 거 정말이야?
성준 : ...
필승 : 난 약속을 지키는데 넌 왜 안지켜.
성준 : 가짜약속이잖아요.
필승 : (보는) ?!
성준 : 재혼한다는 거, 거짓말이죠?
필승 : !...
성준 : 둘러댈 생각 마세요. 아까 병원에서 다 봤으니까.
필승 : (이런! 낭패스럽다)
성준 : 어쩌자구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셨어요.
필승 : 연욱이도 알고 있나?
성준 : 아뇨.
필승 : 절대 말하지 마.
성준 : 왜죠?
필승 : 몰라서 물어?
성준 : 모르겠는데요.
필승 : (휙 본다)
성준 : 꼭 그래야될만큼, 그렇게 두려우세요?
필승 : 까불지 마.
성준 : (일어나며) 연욱이한테 복싱 가르치셨다면서요.
-성준, 샌드백으로 와 무심히 툭툭 친다.
-필승, 고민이다. 어떻게 해결하나...
성준 :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형님이 연욱이한테 복싱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가출했을 때 경주까지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금 형님하고 내가 이러고 있을까...
(동작 멈추고 필승 보며)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짐작이 가시죠.
필승 : ...
성준 :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나한테 오기 싫대요.
필승 :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생각만 깊다)...
성준 : 그 사람이 아무리 무릎을 꿇는다해도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필승 : ...
성준 : 그 사람하고 내가 아무리 약속을 한 들, 연욱이 마음 못돌린다구요.
필승 : (생각이 정리된 듯 침착하다) 그래서. 둘이 완전히 끝난건가?
성준 : (훗 웃는다)... 저는 참 힘드네요. (샌드백을 보더니 그게 필승인 양 주먹으로 확 친다)
-춤을 추는 샌드백.
필승 : (일어나며) 배우고 싶으면 정식으로 등록해, 공짜로 치는 샌드백 아냐.
성준 : 연욱이 어떡하실 거예요.
필승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성준 : 해답을 쥐고 있으니까요.
필승 : 애초에 해답 같은 건 없었어.
성준 : 제가 힘든 건 그거예요. 해답을 연욱이한테 알려줄까 말까.
필승 : !... 쓸데 없는 짓 하지 마.
성준 : 저도 가능하면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그럼 전 완전한 몰패니까.
필승 : 그래 좋아. 니가 연욱이랑 끝낸 거 받아들일께. 나도 지쳤어.
그러니까 우린 이제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착각하진 마.
연욱이랑 내가 혼자 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그만 가봐. (관장실로 들어간다)
성준 : ...
#27 관장실
-필승, 의자에 앉으며 착잡하고...
#28 도장
-성준, 텅 빈 실내를 한번 훑어보다가... 다시 샌드백을 쿵 치고 간다.
-흔들리는 샌드백.
-F.O
#29 조깅코스(새벽. F.I)
-섀도우 복싱하며 조깅하는 필승. 굳은 표정으로 쉼없이, 열심히 달린다.
#30 아파트 안
-필승, 보온밥통의 밥을 푼다.
-서너가지 마른 반찬이 있는 식탁에 앉아 국도 없이 기계적으로 먹는다. 쓸쓸해 보인다.
-설거지하는 필승. 달랑 밥공기 하나, 수저와 젓가락, 물컵이 전부다.
마른 행주 위에 설거지한 걸 반듯하게 엎어놓는다.
-(E)초인종 소리.
필승 : (아침부터 누구지? 돌아보며) 누구세요.
큰형 : (E) 나다.
-필승, 갸웃하며 얼른 손 닦고 나간다. 현관문을 따 열면 큰형이 들어온다.
필승 : 이렇게 일찍 왠일이세요.
큰형 : (안으로 들어서며) 물건 떼러갔다 오는 길이다.
(실내를 둘러본다. 방금 설거지한 그릇이 눈에 띈다. 아침식사를 어떻게 했는지 짐작이 간다.
속이 쓰리다)
필승 : 뭐하세요, 앉으세요.
큰형 : (식탁에 앉고)
필승 : 차 한잔 드릴까요.
큰형 : 대접할 차나 있냐.
필승 : (웃으며) 왜 없어요. 보리차도 있고 옥수수차도 있는데.
큰형 : (못마땅해서) 앉아봐라.
필승 : (앉고)
큰형 : 이번엔 잔말 말고 선 봐라. 이번주 토요일 오후 세시다.
필승 : ...
큰형 : 이번에도 안나오면 어머니 정말 홧병으로 몸져누우실게다.
필승 : 형님.
큰형 : 나올거지?
필승 : 저 재혼 안해요.
큰형 : 이 자식이 정말. 밥그릇 하나 달랑 엎어놓고 이게 사람 사는 꼴이야?
필승 : (그저 웃으며) 밥그릇이 하나든 둘이든 무슨 상관이에요.
큰형 : (속이 터진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 혼자 살겠다는 이유가 뭐야.
필승 : (그저 사람 좋게 웃는)
#31 병실(오후)
-들어오는 상희. 연욱의 침상이 빈 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자 놀란다.
상희 : 공주야, 여기 언니 어디 갔어?
아이 : 오늘 퇴원하는 날이잖아요.
상희 : 글쎄 그래서 언니가 왔잖아. 혼자 나갔어?
아이 : 아뇨, 어떤 오빠가 데려갔어요.
상희 : 오빠? 어떤 오빠?
아이 : 키가 이따만하구요, 무지무지 잘 생긴 오빠요.
상희 : (갸웃하며) 성준씬가?
아이 : 근데요 언니.
상희 : 어.
아이 : 나 그 오빠 소개해주면 안되요?
상희 : (벙 찐다)
#32 강변
-강가 오솔길을 한발짝쯤 떨어진 채 나란히 걷는 성준과 연욱(아직 기브스).
성준 : 이제 좀 시원해?
연욱 : (들뜨지 않고 차분한) 응. 살 것 같다.
성준 : 안추워?
연욱 : 추우면 옷 벗어줄거잖아.
성준 : 안벗어줄건데?
연욱 : 치사하다. 이젠 자기 여자 아니라구.
성준 : (웃고는) 며칠 전에 형님 만났다.
연욱 : (놀라서 멈춰 보는)
성준 : (따라서 멈춰 보며) 할 얘기가 있었거든.
연욱 : 이상해. 왜 나보다 둘이 더 할 얘기가 많은지.
성준 : (훗 웃는)
연욱 : (떠보듯) 무슨 얘기 했는데.
성준 : 그냥 이런저런 얘기.
연욱 : (마음 아파서) 결혼..준비는 잘 된대?
성준 : (아닌데)... 연욱아.
연욱 : 응.
성준 : (불러놓고 차마 말이 안나온다)
연욱 : 왜에.
성준 : (웃으며) 아니다.
연욱 : 싱겁기는. (걷는다)
-성준, 멈춘 채 바라본다.
-연욱, 저쪽 오솔길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문득 돌아서더니 오라고 손짓한다.
-성준, 웃기만 한다.
-연욱, 다시 돌아서서 걷는다. 자꾸 멀어져간다.
-성준, 미소 띈 채 바라만 본다. 새삼스럽다. 처음 만난 열일곱의 모습은 온데간데가 없다.
옛생각들이 떠오른다.
-(플래쉬)파출소의 연욱, 유치장에서 천연덕스럽게 담요를 깔고 눕던, 엉엉 울던,
만두집에서, 첨성대에서, 호텔방에서 형부에게 얻어 맞던, 2년만에 만나 빠에서 술 마시던,
경찰학교 면회소, 입맞추던, 가스총을 겨누던... 등등 인상적인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성준, 마음이 아파 웃음기가 가신다.
-모르고 계속 앞으로만 앞으로만 걸어가는 연욱의 뒷모습.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젠 정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는 성준.
-연욱, 문득 멈춰 돌아본다. 꽤 먼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사람.
성준 : 연욱아.
연욱 : (들릴 리가 없다. 갸웃해서 본다)
성준 : (나지막한 목소리) 후회 안할 자신 있니?
연욱 : (소리 친다) 뭐라구?!
성준 : 후회 안할 자신 있냐구.
연욱 : 뭐라구우!
성준 : (쓴웃음)... 난 완전히 몰패다.
연욱 : (혼잣말) 뭐라 그러는 거야.
성준 : 그만 가자!
-연욱, 싱겁긴 하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성준도 돌아서서 차로 간다.
#33 권투도장 앞(동 저녁)
-차가 달려와 멎는다.
-성준, 연욱을 돌아본다. 약기운에 잠들어 있는 연욱.
성준 : (살며시 흔들어 깨운다) 연욱아.
연욱 : (문득 눈을 뜬다)
성준 : 피곤해?
연욱 : (졸리운) 아니, 아까 약 먹어서... (주위를 살피며) 여기가 어디야?
성준 : 권투도장.
연욱 : ? 권투도장?
성준 : 올라가봐. 형님 계실거야.
연욱 : (정신이 번쩍 든다)
성준 : 형님 결혼 안하셔.
연욱 : ?!
성준 : 너 포기하게 할려구 연극하신 거야.
연욱 : !!!
성준 : 이번엔 놓치지 말고 너 하고 싶은대로 해. 절대 놓치지 마.
연욱 : (놀라움은 접어두고 그의 마음이 어떨까, 아프게 본다)
성준 : 어서 내려. 더 이상 같이 있기 싫다.
연욱 : ... 고마워.
성준 : 그런 말은 형님한테나 해. (단숨에 뱉어버린다) 형님도 널 사랑하니까.
연욱 : !!!
성준 : 어서 내려.
연욱 : (가만 보는)
성준 : 안내려?
연욱 : (벨트 풀고 내린다)
성준 : ...
연욱 : (문을 잡고 못가고 본다)
성준 : 춥다.
연욱 : (아쉬운 듯이 문을 닫는다)
-그러자마자 쌩 출발하는 차.
-바라보는 연욱. 얼마나 힘들까, 안쓰럽게 하염없이 바라본다.
#34 달리는 차 안
-성준, 눈이 붉다. 목에서 뜨거운게 올라온다. 간신히 삼킨다.
#35 도장 안
-링에서는 고딩이 관장과 훈련중이고, 몇몇 관원들도 운동중이고.
-필승은 잡념을 잊으려는 듯 줄넘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관장, 문득 입구를 보더니.
관장 : 누구 찾아오셨습니까.
-입구에 우뚝 선 연욱, 대답은 않고 필승만 바라본다.
관장 : (그 시선 쫓아가다가) 형.
필승 : (못듣고 줄넘기만)
관장 : 형! 손님 왔어요!
필승 : (멈추고 보면)
관장 : 손님 왔다구요.
필승 : (입구를 돌아보고 놀란다)
-연욱, 뚜벅뚜벅 다가온다. 화가 나 있다.
-필승, 놀란 채 본다. 팔의 기브스도 보고, 혹시 성준이 얘길 했나? 걱정스럽다.
-연욱, 다가와 앞에 선다. 가방이 바닥에 뚝 떨어진다.
필승 : (모든 걸 알았구나, 절망적으로) 성준이 만났니?
연욱 : (순식간에 매섭게 뺨을 때리고)
필승 : (뺨 돌아간 채) !...
-관원들, 헉 놀란다.
연욱 : (분이 오르는 걸 억누르며 차분하게) 내가 한 살만 더 많았으면,
나머지 두 대도 지금 다 갚았을 거예요.
필승 : (한숨만 나온다)
#36 오피스텔 복도(동 밤)
-성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모퉁이를 돌아 룸으로 향하다가 멈칫한다.
-커다란 쇼핑백을 들은 화영이 초인종을 누르다가 인기척에 돌아보고 반갑게 웃는다.
성준 : (다가오며, 담담히) 어쩐 일이세요.
화영 :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올라온 김에 잠깐 얼굴이나 좀 보고갈려구.
성준 : (문을 따며) 전화 하시지 그러셨어요.
화영 : 꺼져있던대.
성준 : (아 맞어. 짐짓 웃으며) 죄송해요, 깜빡 했네요. (문을 연다) 들어가세요.
-들어가는 두 사람.
#37 오피스텔 안
-화영, 냉장고에 준비해온 음식들을 넣는다.
화영 : 오랫동안 혼자 객지생활하는게 마음에 걸려서.
성준 : 잘 지내요. 걱정 마세요.
화영 : (냉장고 문 닫고 마주 서며)... 난 얼마 전에야 알았어.
성준 : ?
화영 : 회사, 친구들한테 넘겨줬다며.
성준 : (웃으며) 친구들이 잘 해요.
화영 : 아버지한테 너무 서운해하지 마. 아버지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성준 : 네.
화영 : 근데 아버지 말 들으니까 (조심스런) 그 아가씨하고도 잘 안되는 모양이야?
성준 : (잠시 생각하다가 웃어주며) 헤어졌어요.
화영 : !... 아주 그러기로 한 거야?
성준 : 네.
화영 : (안스러워서) 난 그 아가씨랑 잘 되길 바랬는데.
성준 : 걱정 마세요. 지구의 반이 여잔데요.
화영 : 그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한테 빠지긴 쉽지 않지.
성준 : (그저 웃는)
화영 : 넌 어려서부터 식구들하고 겉돌고 어머니 돌아가신 뒤부터는 더더욱 그렇고...
이상하게 너만 보면 마음이 안좋았어.
성준 : (가슴이 싸아해진다... 참으며 담담히) 싸가지가 없었죠.
화영 : 그렇게 가시 돋힌 말을 해도 이상하게 난 니가 안쓰럽드라.
성준 : (문득 가슴이 쿵)
화영 : 다행히 그 아가씨 만나서 이제야 마음 줄 사람이 생겼구나, 이젠 외롭지 않겠구나, 그랬는데...
성준 : (가슴이 뜨거워진다)
화영 : (눈물이 글썽해져서는) 우리 성준이... 어떡하면 좋을까...
성준 :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돌아서서 딴 청 하며) 어디서 주무실 거예요. 호텔 예약하셨어요?
(하는데 기어이 눈물이 맺힌다)
화영 : (뒷모습 보며 우는구나, 느끼고 짐짓 밝게) 그만 가야겠다. 내려올 일 있으면 전화해?
(하고는 피해주듯 얼른 나간다)
-성준, 인사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 눈물이 그렁하다.
-기어이 어깨가 들썩한다.
-성준, 입을 앙다문다. 굵은 눈물이 뚝 떨어진다.
-뒷모습.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없이 우는 성준...
#38 권투도장(동)
-모두들 가고 없다. 링에 걸터앉아 앞만 보고 있는 연욱과 필승.
연욱 : (차분하고 담담하게) 우리 같이 살아요.
필승 : 안돼.
연욱 : 같이 살아요.
필승 : 안돼.
연욱 : 왜요. 말도 안되는 관계라서요? 사람들 눈 때문에요?
필승 : 그따윈 문제도 아냐.
연욱 : (슬퍼져서)... 언니 때문이죠.
필승 : (단호히) 아니.
연욱 : ?!
필승 : (일어난다. 연욱에게 등을 돌린채 가만 생각하다가)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연욱 : ?...
필승 : 언니한테 그랬다. 나한테 넌 언제나 돌봐줘야 되는 열일곱이라고... 그래, 나한테 넌 그랬다.
항상 보살펴줘야 되는 아이였어.
연욱 : (하염없이 바라보는)
필승 : 갓난아기가 목을 가누고, 두 발로 땅을 짚고 서고, 또 걷기 시작하고... 널 보면서 그런 기분이었어
두 발로 걸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거, 난 그게 좋았다. 그렇게 해서 좋은 남자한테
시집 보내면 내 역할도 끝나고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믿었어.
연욱 : ...
필승 : 그런데... 언제부턴진 모르겠지만... 넌 이미 아이가 아니더라... (뜨거운 게 치민다)
언니 없는 세상에 마음 기댈 데가 어떻게 너 밖에 없는지...
연욱 : !...
필승 : 널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거... 그런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연욱 : (첫고백과 같은 말에 놀라운) !...
필승 : 도저히 용서가 안돼. 가끔은 날... 죽여버리고 싶기도 해.
-연욱, 혼란스러워하는 그가 안쓰럽다. 곰곰 생각하다가 링 위에 오른다.
-필승, 그렇게 등 돌린 채 마음 무거운데.
연욱 : (E) 형부... 우리, 언니한테 재판 받아요.
-필승, 돌아보고 놀란다.
-연욱이 링 가운데에 무릎 꿇고 있다.
연욱 : 형부도 이리와 무릎 꿇어요.
필승 : (아프다)...
연욱 : 어서요.
필승 : (그저 아프게 본다. 흔들린다)...
-연욱, 시선은 약간 든 채 허공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언니에게 용서를 구한다.
연욱 : 언니 봤지? 형부가 너무 힘들어한다. 자기를 용서 못하겠대. 형부를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언니 뿐이야. 우린 각자 용서 안하고 그냥 그렇게 살께. 대신 언니가 용서해줘. 응?
필승 : (흔들리는 채 보는)
연욱 : (보며) 형부도 빨리 와서 재판 받아요.
필승 : (얼른 시선 피하며 마음 다잡는다)
연욱 : 형부.
필승 : (마음 굳히고 다시 보며) 연욱아.
연욱 : 네.
필승 : ... 나한테 넌, 영원한 처제다.
연욱 : !...
필승 : (그저 보는)
연욱 : 다시 한번 말해봐요.
필승 : ...
연욱 : 다시 한번 말해보라구요.
필승 : 넌 처제고, 난 형부야... 영원히.
연욱 : (절망스런)...
필승 : 그만 일어나. 다리 아퍼.
연욱 : (절망적인 표정으로 힘겹게 일어난다)
필승 : ...
연욱 : 형부.
필승 :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연욱 : (차분한) 그래요, 내가 포기할게요.
필승 : !...
연욱 : 그러니까... 자길 죽이고 싶다는 생각... 하지 말아요.
필승 : ...
연욱 : 근데 형부 참 바보다... 사람들은 다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거 하나씩 안고 사는데... 참 바보다...
필승 : ...
-연욱, 링 위에서 힘겹게 내려온다. 가방을 주워들고 터덜터덜 입구로 향한다.
-필승,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굳은 표정이다.
-연욱, 미련없이 나간다.
-필승, 우두커니 서서 그제야 돌아본다. 눈이 아프다.
-F.O
#39 경찰서 전경(오후. F.I)
#40 강력반 사무실
-모여앉아 점심 먹는 오반장과 세형사.
오반장 : 가짜결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동희 : 결혼하는 척 한거라구요.
오반장 : ? 왜 그런 짓을 해?
이형사 : 왜긴 왜겠어요. 연욱이더러 니 갈 길 가라, 그래서 그랬겠죠.
오반장 : 쯧쯧쯧...
김형사 : 짜식 그럼 말로 알아듣게 타이를 것이지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해?
이형사 : 연욱이가 한번 빠지면 물불을 안가리잖아. 자기도 불안했겠지.
김형사 : 참 나, 그래도 그렇지 이자식 간도 크네, 우리까지 속여먹고.
오반장 : (동희 보며) 그래서 둘이 지금 어떡하고 있어?
#41 원룸 현관 앞
-초인종 누르는 상희. 통화도 안되고 걱정스런 얼굴이다. 대답 없자 문을 두드리며
연욱아, 연욱아 불러본다. 대답없자 가만 생각하다가 얼른 뛰어가는 상희.
#42 연욱의 경찰서 휴게실
-마주 선 동주와 상희.
상희 : (놀라서) 네에? 사직서요?
동주 : (흥분했다) 그래, 나도 오늘에야 안 거 있지. 지난주에 기브스 풀고 와서 곧바로 낸 모양이야.
수리도 안됐는데 출근도 안한다?
상희 :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동주 : 통화는 언제부터 안되는데.
상희 : 한 사흘 됐어요. 아주 꺼놓고 안받드라구요. 난 바쁜줄만 알았지.
동주 : 근데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왜 이런데?
상희 : 형부랑.. 좀 안좋았어요.
동주 : 가시나, 정말 속 썩이네. 가만, 집에 숨어서 모른 척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냐아냐, 혹시 쓰러져서 혼자 죽어가고 있을지도 몰라.
상희 : (화들짝 놀라) 어머 언니!
동주 : 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일단 집부터 열고 봐야 돼. 너 키 없어?
상희 : 없는데.
동주 : 그럼 사람 불러서 따야지.
상희 : (문득 생각난다) 잠깐. 어쩜 형부한테 키 있을지도 몰라요. 옛날에 언니가 갖고 있었거든요.
#43 권투도장(동 오후)
-택시가 달려와 멎는다. 급히 내려 건물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가는 상희.
#44 권투도장
-상희, 문을 열고 뛰어든다. 얼른 두리번거리다가 필승을 발견한다.
-필승, 링 위에서 고딩의 펀치를 받아주고 있다.
상희 : 형부!
필승 : (돌아보고 놀란다) 너 왠일이야.
상희 : (얼른 다가오며) 연욱이 혹시 못보셨어요?
필승 : ? 연욱이가 왜.
상희 : 며칠째 안보여요.
필승 : ?!
#45 원룸 현관 앞
-달려오는 필승과 상희. 필승, 키로 문을 따고 얼른 들어간다.
#46 원룸 안
-들이닥치는 필승과 상희. 필승, 불을 켠다.
-정돈된 채 깨끗한...
-상희, 더더욱 불안해진다.
-필승,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살핀다. 깨끗하다. 어딜간 걸까. 너무 걱정스럽다.
-상희, 걱정 반 야속함 반으로 바라본다.
상희 : 혹시 나쁜 맘이라도 먹었으면 어떡해요.
필승 : 너무 걱정 하지 마. 어디 여행 갔을지도 모르니까.
상희 : ... 형부...
필승 : 넌 그만 가봐라. 내가 한번 찾아볼게.
상희 : 그냥 둘이 살면 안되요?
필승 : (놀라서 본다)
상희 : (어려워 똑바로 보지 못하고, 안타까운 채 조심조심) 그렇게 정 들었는데 그냥 살면 어때요.
살다보면 아무것도 아닐텐데...
필승 : ...
상희 : 정말 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필승 : (위엄 서린) 그만 가라.
상희 : (어려워 더이상 말도 못하고) 찾으면 연락 주세요. ...그럼 갈게요.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필승, 방 안을 한번 더 둘러보다가 권투글러브에 눈이 간다. 심란하다.
#47 오피스텔
-블라인드를 모두 쳐서 어둡다.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소파에 뎅그라니 앉아 무표정한 성준. 음악을 듣는 건지,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는 듯 나른해보인다.
-(E)핸드폰 벨소리.
-성준, 신경도 안쓰고 그대로... 벨소리 계속 이어지자 한참 후에야 쳐다보는 성준.
귀찮은 듯이 팔만 뻗어 핸드폰을 집어들고 발신자 확인한다. 한형사라고 뜬다.
성준, 잠시 망설이다가 받는다.
성준 : (귀찮은 듯이) 네.
필승 : (F) 미안해, 또 전화해서.
성준 : (성가신 듯한 한숨 쉬고) 말씀하세요.
필승 : (F) 요즘 연욱이 만난 적 있나?
성준 : (의아하다. 정신차리고 곧추 앉는다) 퇴원하던 날 보고 못봤습니다.
#48 원룸
필승 : (그렇구나)... 알았어. 끊어.
성준 : (F) 근데 왜 그러시죠?
필승 : 신경 쓸 거 없어.
성준 : (F) 신경 쓰게 하시잖아요.
필승 : ...
성준 : (F) 전화를 먼저 거셨으니 저도 알아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필승 : (고민하다가) 그럼 오늘 나 좀 보지.
#49 오피스텔
성준 : 그러죠. ... 예, 알겠습니다. (끊고 생각한다. 또 무슨 일이지?)
#50 고수부지(동 저녁)
-일전의 그 장소다.
-이번엔 성준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
-불빛이 번쩍이며 필승의 차가 달려와 멎는다.
-두 남자, 차에서 내려 마주 선다. 둘 다 조금씩 화가 나 있다.
필승 : 아무 말 하지 말라 그랬지. 왜 일을 저질러.
성준 : 연욱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필승 : (참으며) 며칠째 안보여.
성준 : ?!
필승 : 집에도 서에도 없어. 사직서까지 낸 걸 보니까 단순히 여행 간 거 같지도 않아.
성준 : !...
필승 : 어디 짐작가는 데 없나?
성준 : 없습니다.
필승 : (난감한)...
성준 : 근데 어떻게 하셨길래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필승 : 이유는 알 거 없어.
성준 : 꼭 알아야겠는데요. 제가 연욱이를 형님한테 보냈으니까요.
필승 : !...
성준 : 연욱이한테 그랬습니다. 이번엔 놓치지 말라고.
필승 : ?! 왜 쓸데 없는 짓을 해! 니가 가만 있었어도 이렇게되진 않았어!
성준 : (새삼 분이 난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시는군요. 저도 귀찮아 죽겠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살든 신경 끄고 싶다구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세요 제발!
필승 : 입 닥쳐! 니가 상관할 일이 아냐!
성준 : 상관하게 만들잖아요!
필승 : 그럼 지금부터 상관하지 마! (돌아서서 차로 가는데)
성준 : 비겁하게 어딜 도망갑니까!
필승 : (멈칫, 돌아선다. 저 자식이!)...
성준 : (성큼 다가서며) 이번엔 형님이 어금니를 물어야겠네요.
-필승이 의아해하는 순간 퍽 주먹 날리는 성준.
-무방비로 쓰러지고마는 필승. 쓰러진 채 휙 보면.
성준 : (분노로 숨이 가쁘다) 일어나세요. 저도 한 대 더 남았습니다.
필승 : (일어나 마주 보며) 난 너한테 맞을 이유 없어. 너희 둘한테 할만큼 (했어)
-성준, 또 주먹을 날린다.
-휘청하는 필승.
성준 : 할만큼 했다구요? 사람 마음 억지로 떠다미는 게 할만큼 하는 겁니까?
필승 : (터진 입술을 닦는다)
성준 : 한 대는 내 여자 뺏어간 값이고, 한 대는 가증스러워서 때린 겁니다.
필승 : ?!
성준 : 자길 속여가면서 혼자 깨끗한 척,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아세요?
필승 : 그럼, 마음가는 대로 할까? 마음 가는대로 하면 너 내 손에 벌써 죽었어.
그게 세상이야. 지켜야 할 게 많은 거!
성준 : 여전히 핑계가 훌륭하시네요.
필승 : 너 같음 어떡하겠어. 연욱이한테 동생이 있다고 생각 해봐. 그래도 이럴 수 있어?
성준 : !...
필승 : 난 혈기왕성한 10대도 아니고 20대도 아냐. 낼모레면 사십줄이고
내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인간인지도 뼈저리게 느껴봤어. 마누라도 먼저 보내봤고
세상이 내가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알아. 그래서 받아줄 수가 없어.
이 놈의 세상이 얼마나 개뼉다구 같은지 너무 잘 아니까!
성준 : !... (이해가 간다. 분노했던 마음이 수그러지는 듯하다)
필승 : (진정하는)
성준 : ... 연욱이 찾으면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필승 : 이젠 니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성준 : 그럼... 싸가지 없더라도 한마디 더 하고 싶네요.
필승 : (보는)
성준 : 개뼉다구 같은 세상,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겠어요?
필승 : !... 너 자꾸 나한테 그러는 이유가 뭐야. 뭔데 자꾸 이래.
성준 : 전에 제가 그랬죠.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형님한테만큼은 보낼 수가 없다구.
이젠 아닙니다. 이젠 형님 아니면 아무한테도 보내기 싫습니다.
필승 : ?!
성준 : 연욱이만큼 지독한 사람은 형님 밖에 없으니까요.
필승 : !...
성준 : 두 사람, 정말 지독해요. 지독해서 다신 보기 싫습니다.
필승 : ...
성준 : 찾으면 찾았다는 메시지나 주십쇼. (돌아서서 차로 간다)
필승 : ...
-성준, 성큼성큼 걸어와 차에 오른다.
성준 : (화가 나는 걸 참느라 헛웃음이 난다) 정말 개뼉다구 같다. (시동 걸고 출발한다)
-떠나는 차.
-혼자 남겨진 필승, 생각이 많다. 너무 복잡하다.
#51 원룸(동 밤)
-들어오는 필승. 불도 안켜고 둘러보다가 침대에 우두커니 걸터앉는다.
그녀의 부재가 새삼스럽게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52 회상몽타쥬
-아파트 복도. 13회.
연욱 : ... 내가 그럼... 형부가 행복해지나요?
필승 : ... (목이 아프다) 그래.
연욱 : 나도 행복하고?
필승 : 그래.
연욱 : 준영이도 행복하고?
필승 : 그래.
연욱 : ... 그럼 그렇게 할게요.
-아파트 복도. 14회.
연욱 : 우리 사이에 놓인 건 이 철문 하나예요.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는 거.
이 문 열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지만, 난 두렵지 않아요.
형부하고 준영이만 있으면 평생 따뜻할 수 있으니까.
-공원. 15회.
연욱 : (일어나며) 어차피 할 거면 꼭 그럴 필요 없잖아요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
저 준영이한테 정말 좋은 엄마 될 수 있어요.
필승 : (휙 본다)
연욱 : (담백하게) 나랑 결혼해요.
-동.
연욱 : (담담하고 나지막한) 언니한테 이럴 수 있냐구요? 그럼 언니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우리 언니한테 가서 물어봐요. 언제 갈까요.
필승 : 물어보면. 언니가 널 용서할 거 같애?
연욱 : 그래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언니라면. 나도 그래요.
내가 사랑하는 남자, 언니한테라면 양보할 수 있어요. 우린 한가지에서 났으니까.
-링.
연욱 : 근데 형부 참 바보다... 사람들은 다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거 하나씩 안고 사는데... 참 바보다...
#53 도장 계단(동 밤)
-터벅터벅 올라오는 필승. 생각이 깊다.
성준 : (E) 이젠 형님 아니면 아무한테도 보내기 싫습니다. 연욱이만큼 지독한 사람은
형님 밖에 없으니까요. 두사람, 정말 지독해요. 지독해서 다신 보기 싫습니다.
#54 도장 안
-링 위에서 고딩이 몸을 풀고 있다.
관장 : (관원들 보며) 경식이한테 전화받은 놈 없어?
-관원들, 없는데요 하고.
관장 : 이 자식은 왜 약속 해놓고 코빼기도 안보여? (몸 좋은 고등학생 가리키며) 야, 니가 올라가.
관원1 : (빼며) 싫어요. 맞아죽으라구요?
관장 : 임마, 니가 김득구냐? 죽긴 왜 죽어. 너 얘랑 붙을만 해. 이런 기회도 없으니까 한번 올라가봐.
관원1 : 싫다니까요.
관장 : (다른 관원-성인- 가리키며) 그럼 니가 올라가.
관원2 : 쪽팔리게 어떻게 고등학생이랑 붙어요.
관장 : 임마, 넌 중학생이랑 붙을 실력이야. 어디서 까불고 있어.
관원2 : 어쨌든 못해요.
관장 : 이것들이 정말. 그럼 내가 하리?
필승 : (E) 내가 올라갈게.
-모두들 쳐다본다.
필승 : 실력은 안되지만 한번 해보자.
관장 : (좀 어이없다는 듯이) 에이 안돼요 형.
필승 : 쟤 지금 몸 근지러워서 넘어가겠다. 내가 해줄게. (캐비넷 쪽으로 가며 웃옷을 벗는다)
관장 : (찌푸리며) 안되는데...
-시간경과.
-스파링은 이미 시작됐다. 서로 빙빙 돌며 가볍게 펀치를 툭툭 주고받는 고딩과 필승.
(자세하게 못씁니다. 선수들의 협조 요청. 원래는 헤드가드를 써야하는데 그림이 안되서 어떨지)
관장 : 형, 지금이라도 내려와도 되요.
-필승, 대꾸없이 게임에만 임한다.
-고딩은 계속 날리고 필승은 방어자세로 임한다.
-고딩이 펀치를 날린다. 한방 먹은 필승, 비틀 했다가 얼른 자세 잡는다.
-관장, 어느새 게임에 젖어 고딩 보고 이런 저런 주문을 한다.
-계속 파고드는 고딩. 잘 막아내는 필승. 그러다 강펀치를 한 대 먹고 무릎이 꺾인다.
관장 : 형, 그만할까?
필승 : (얼른 진정하고 일어난다) 덤벼, 괜찮어.
고딩 : (어떡하냐고 관장을 보고)
관장 : 형, 그만해도 된다니까.
-필승, 덤비라는 신호로 무방비 상태의 고딩에게 펀치를 날린다. 쎄다.
비틀하는 고딩. 오기가 생긴다. 불붙는 두 사람. 점점 인정사정 없는 스파링이 되어간다.
목청 높혀 주문하는 관장. 흥미롭게 구경하는 관원들. 점점 맞는 횟수가 많아지는 필승.
그럴수록 정신이 혼미해져 가지만 눈빛만은 살기등등 하다. 강펀치를 먹이는 고딩.
무릎 꺾이며 바닥에 웅쿠리며 쓰러지는 필승.
관장 : 야 그만해. (링 위로 올라와 부축하며) 괜찮아요?
-필승, 관장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난다. 비틀거리면서도 고딩에게 달려든다.
필승 : 덤벼.
관장 : ?! 형, 그만 하자니까.
필승 : 넌 꺼져! (고딩을 쏘아보며) 덤벼!
관장 : (얼빵하고)
고딩 : (겁난다)
필승 : (두 눈 부릎 뜨고 달려가 잽을 날리며) 덤벼! 날 쓰러뜨려! 날 죽여봐!
고딩 : (주눅 들어 방어자세만)
필승 : 날 쓰러뜨리라구! 세계최강이 될 놈이 나 하나 못쓰러뜨려?
-관장과 관원들, 그 기세에 눌려 얼떨떨하게 보고.
-마지못해 툭툭 치며 빙빙 도는 고딩.
필승 :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덤벼! 난 아무것도 아냐! 날 쓰러뜨리란 말야! (한방 쎄게 날리고)
-고딩, 얻어맞자 오기가 생겨 강펀치를 날리고!
-정통으로 맞는 필승.
-허수아비처럼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
-바닥에 털썩 쓰러지는 필승.
-모든 게 정지된 듯 필승의 모습만 잡힌다. 정적... 쓰러진 필승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필승 : ... 연정아... 미안하다...
-그 모습에서 F.O
#55 강력반 사무실(오후. F.I)
-빈 사무실에서 오반장이 자리에 앉아 일 보다가 전화벨 울리자 수화기 든다.
오반장 : 네, 강력반입니다. (약간 놀라며) 어 필승이 니가 왠일이냐. ... 지금? ... 난 괜찮긴 한데...
그러지 뭐. ... 그래, 거기서 보자. (끊고 생각한다)
#56 아파트 안
-외출준비하느라 옷을 갖춰입는 필승의 뒷모습.
자켓을 입고, 지갑도 넣고, 핸드폰도 넣고 하는 뒷모습들. 차키를 쥐고 현관문 열고 나간다.
#57 복도
-나와서 문을 잠그는 필승. 돌아서서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제야 얼굴이 보인다.
알 수 없는 표정에 두 눈만 빛난다.
#58 전통찻집(동 낮)
-필승의 앞에는 찻잔, 오반장 앞에는 술잔.
필승 : (전통주 공손하게 따라주며) 전 차나 한잔 할려 그랬는데.
오반장 : 알어, 나 혼자 마실거야. (술 한모금 마시고) 니가 전화 안했으면 내가 먼저 찾아갔을 거다.
필승 : 하실 말씀 있으세요?
오반장 : 넌 왜 보자고 했어?
필승 : 반장님부터 말씀하세요.
오반장 : (술을 마신다. 중요한 얘긴가보다)
필승 : (좀 긴장해 바라본다)
오반장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그냥 참고만 해. 내 입이 근질거려서 못참고 얘기하는 거니까.
필승 : 네.
오반장 : 실은 우리 먼 친척 중에 그런 케이스가 있다.
너처럼 상처하고 애 둘 데리고 살다가 처제랑 살림을 합쳤지.
필승 : !...
오반장 : 처음엔 양쪽집안에서 반대하다가 유야무야 넘어가더라. 애들이 이모를 친엄만 줄 알거든.
요즘이야 다들 고등교육 받으면서 윤리니 뭐니 까탈스러워져서 그렇지
옛날엔 종종 그런 일이 있었나보더라. 애들이 커서 즈이 엄마가 이몬 거 알면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잘들 산다고 들었다. 근데 법적으로는 인정이 안되니까
불편한 게 많은 모양이야. 호적에 올리지도 못하고.
필승 : ...
오반장 : 필승아.
필승 : 네.
오반장 : (지그시 살피며) 너도 연욱이를 마음에 두고 있냐?
필승 : (굳은 얼굴로 차를 마신다)
오반장 : 내가 너희 둘을 오랫동안 봤잖냐. 정 둘 다 마음이 그러면 한번 생각해봐.
필승 : ... 반장님.
오반장 : 그래, 이젠 니 용건 좀 듣자.
필승 : 이번 발령지, 지방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반장 : 왜.
필승 : 가능하면 서울에서 멀고, 사람도 별로 없는 작은 파출소 같은 데였으면 좋겠어요.
오반장 : 신선놀음 할려구?
필승 : 당분간 우리 셋이 살기에는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오반장 : !...
필승 : (마음이 무겁다)
오반장 : (웃으며) 난 완전히 뒷북 쳤네?
필승 :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리고 반장님, 연욱이 좀 찾아주세요.
오반장 : 내가 무슨 수로 그 말괄량이를 찾어?
필승 : 찾아주세요.
오반장 : 괘씸한 놈들... 기다려봐. (핸드폰 꺼내 버튼 누른다. 잠시 후) 네, 도봉 경찰서에 오제표예요.
예, 지금 흉악범 하나를 추적중인데요.
-필승, 입을 다문 채 미소 짓는다. 마음을 굳힌 그는 이제 마음놓고 웃을 수가 없다.
오반장 : 핸드폰은 꺼져있은지 며칠 됐고, 최종 발신지가 어딘지나 좀 알아봐주세요.
예, 잠깐만요. (필승 보며) 몇번이야?
#59 찻집 앞
-급하게 뛰어나와 차에 오르는 필승.
오반장 : (E) 구체적인 거까진 알 수 없고 대충 여기라는데 어디 짚이는 데 있어?
-출발하는 차.
#60 고속도로
-질주해오는 필승의 차.
-다부진 표정으로 운전하는 필승.
16회 끝.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