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법, 그 천년의 숨결
정락준(한국택견협회 전남지부장)
현암 송덕기는 ‘택견’과는 별도로 실전 격투기법인 ‘옛법’을 일부 가르쳐 주었는데 현재 알려져 있는 송덕기의 옛법은 대략 20여 가지 정도이다. 혹자는 옛법의 가짓수가 너무 적다고 하거나 실전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송덕기의 옛법 20여 가지는 단순하게 가짓수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복잡한 기법도 기본기법에서 응용된 것이고 기본기법은 몇 가지의 신체원리가 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송덕기의 옛법에서도 몇 가지의 신체원리를 추출할 수 있는데 추출된 신체원리를 이리저리 조합한다면 수천가지의 기법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보기 드문 책이 ‘밝터’에서 발간되었다.
1985년 봄부터 송덕기는 ‘한풀’을 창시한 김정윤과 함께 방대한 사진과 동영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송덕기 사후 16년이 지난 2003년, 김정윤은 드디어 이 기록을 책으로 엮어『한국의 옛 무예, 태견』이라 하였다. 송덕기가 체득하고 있던 기법만을 순수하게 취합하였다는 김정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택견인과 다른 무술인에게 많은 비판과 오해를 받았다. 대부분의 기법이 현행 ‘합기도’와 너무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얼핏 보면 합기도의 기법이 송덕기를 매개로 하여 ‘택견’으로 둔갑되었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또, 김정윤이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오해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송덕기의 기법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오해일 뿐이다.
야와라(柔術)를 익힌 덕암 최용술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대구에서 처음 유권술을 가르칠 때(1946), 자신의 기법에 대하여 누구보다 자부심이 강하던 송덕기는 53세로 서울에 살았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6살이나 연하인 최용술에게 대구까지 내려가서 고개를 숙이고 유권술을 배웠을까.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면 혹시 최용술의 다른 제자에게 배웠는가. 1958년 경무대에서 택견시연,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팀이 전통문화로 택견을 선정하고 송덕기를 모델로 하여 택견사진을 촬영함으로써 이미 공인이던 송덕기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김정윤의 요구에 따라 포즈만 취했는가. 송덕기의 기법이 왜곡될까 우려되어 기법에 대한 해설조차 감히 하지 못했다는 김정윤의 인품이고 보면 그럴 일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즉, 김정윤이 편저한 ‘태견’의 모든 기법은 송덕기가 어려서부터 순수하게 체득하고 있었던 기법임은 분명한 것이다.
송덕기는 ‘한국의 옛 무예, 택견’에서 차고, 치고, 때리고, 찌르고, 잡고, 꺾고, 던지고, 치받고, 누르고, 뜯고, 조르고, 막고, 돌리고, 걸고, 찝고, 피하고, 구르는 기법은 물론이고 품밟기, 태견춤, 헛애비달기 등을 선보였다. 기법을 취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고 힘의 안배가 적절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포즈만을 취하고 있지 않았음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송덕기의 기법은 최용술의 유권술은 물론 후대의 합기도와도 전혀 상관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기법인 동시에 전통몸짓인 것이다. 물론 송덕기는 임호에게 ‘택견’과 ‘옛법’만을 익혔다고 했으므로 송덕기가 시연한 방대한 기법 중에서 택견의 기법이 아닌 기법은 당연히 옛법일 것이다.
사실 어떠한 기법이라도 사람의 신체를 떠나 성립할 수는 없다. 즉, 모든 기법들은 당연히 인간의 신체구조 안에서 신체역학의 원리에 맞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맨몸기법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신체원리로 구성되어 있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법은 국경을 초월하여 대략 비슷해 보이는 이유이다.
단일기법이 두 개 이상 연결되어 하나의 기법처럼 사용되는 복합기법도 단일기법을 만드는 신체원리에서 출발한다. 물론 동일한 신체원리라 하더라도 신체의 사용부위에 따라, 사용방법에 따라, 가격되는 부위에 따라 다르게 응용될 수는 있다. 삼인삼색이 나오는 이유이다.
송덕기의 옛법을 관통하는 공통원리는 중심의 원리, 나선의 원리, 지렛대의 원리이다. 중심의 원리는 기법을 전개함에 있어서 ‘중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리이다. 내 몸의 중심은 그 움직임을 최소화 하여 안정되게 하여야 하고 상대의 움직임은 많게 하여 중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중심이 무너지거나 중심이 움직이면 힘을 쓰는 근원이 불안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선(螺線)의 원리는 상대의 움직임은 구심력을 이용하여 나선으로 조이듯이 제압하고 내 힘은 나선이 퍼지듯이 원심력을 이용하여 펼치는 것이다. 상대의 거센 힘을 줄이는 방법이며 나의 적은 힘을 크게 펼치는 원리이기도 하다.
지렛대의 원리는 신체의 관절을 이용하여 적은 힘으로 큰 힘을 제어하는 원리이다. 적은 힘으로 큰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힘점, 받침점, 작용점을 이용해야 하듯이 상대의 관절을 제압할 때도 이 지렛대의 원리를 응용한다. 이 세 가지 원리는 모든 송덕기의 옛법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공통원리이다.
공통원리를 기반으로 손질, 발질의 기본원리가 나오게 된다. 손질의 기본원리는 도리깨질의 원리와 팽이의 원리이다. 도리깨질의 원리는 후려치는 경우의 원리이며 팽이의 원리는 내지를 때의 원리이다. 발질의 기본원리는 제기차기의 원리이다. 제기를 차듯이 발끝을 세워서 앞, 뒤, 옆으로 낮게 또는 높게 찬다. 사용부위에 따라 발끝, 발장심, 발뒤축, 발날, 발바닥, 정강이, 무릎 등을 사용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손질, 발질은 보법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되는데 보법은 사방팔방으로의 직진 및 회전, 그리고 도약과 구르기가 있다. 모두 나아가기와 다가서기로 세분된다. 이 이외에도 무릎 춤의 원리, 지게질의 원리, 시소의 원리 등이 있어서 상황에 맞도록 다양하게 응용된다.
이러한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초 동작이 중요한데 몸틀기, 손목돌리기, 손목꺾기, 어깨돌리기, 제기차기다. 몸틀기는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좌, 우로 몸을 트는 것이며, 손목돌리기는 손목을 서로 걸치고 안으로돌리기, 밖으로돌리기를 하는 것이다. 손목꺾기는 엄지와 검지로 반대쪽 손목을 잡고 위아래로 최대한 꺾어 단련하는 것이다.
어깨돌리기는 어깨던지기, 어깨당기기, 등손목치막기, 손장심눌러막기, 물레돌리기 등이 있다. 제기차기는 실지 제기를 사용하여 한 발, 또는 두 발로 교대로 차는 연습을 하는데 안으로차기, 밖으로차기, 안팎으로차기, 뛰며차는 것이다. 모두 몸에 힘을 빼고 리듬에 맞추어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요령이다.
맨몸무술에 대한 특정한 명칭이 없던 구한말까지 우리의 맨몸기법은 ‘택견’과 ‘옛법’으로 존재하였다. 옛법은 맨몸으로 한다고 해서 ‘체술’(體術) 또는 ‘체기’(體技)라고 하였는데 지방에 따라 ‘잽이’, ‘잽이수’ 또는 ‘차비’라고도 하였다. 옛법은 대개 택견하던 사람이 배웠으므로 택견과 옛법을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택견(=경기)에서 사용되느냐 안 되느냐로 구분될 뿐이었다. 옛법과 택견이 전혀 다른 원리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또한 하나처럼 동일시되고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옛법’은 경기기법(=택견)을 제외한 실전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싸움기술을 의미한다. 상상하되 실지 몸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기법이라면 모두 송덕기가 말하는 옛법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송덕기는 택견의 명인이기도 하였지만 옛법의 명인이기도 하다.
송덕기를 전승한다고 하면서 ‘한국의 옛 무예, 태견’에서 시연한 대부분의 옛법을 현재의 합기도와 외형적으로 유사하다 하여 택견인이 먼저 배척한다면 송덕기의 인품을 믿지 못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납득할 수 없는 모순상황이 발생한다. 후인들이 자신만의 관점에서 어느 것은 송덕기가 제대로 하였고 어느 것은 송덕기의 억지라고 한다면 송덕기에 대한 예(禮)가 아닌 것이다.
옛법을 택견과 동일한 원리에서 파악하려 한다면 옛법은 택견과의 이질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실전성이 결여된 20여 가지의 기법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송덕기를 제대로 전승하려면 이제 옛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칼럼에서 사용된 기법명칭과 원리들은 노들택견을 정리하신 “김영철” 선생님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첫댓글 택견 원리에 흥미가 있어 올려봅니다. 본칼럼을 쓰신분은 잘 모르고 칼럼에 언급한 노들택견 "김영철" 회장님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으로 송덕기옹 신한승옹 師事 이후 부족함을 메우려 택견 원천을 찾아 평생을 바친분입니다. 일전 한번 만나뵈니 여전 택견 말씀만 하시더군요. 뭔가 찾으면 몇날동안은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곤 한답니다. 많은 부분을 찾았고 지금은 정리단계에 계시다는데, 비록 태극권 수련생이지만,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우리 무예 택견이 옛법대로 재현 전승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택견 기본 음양 그다음 삼태극 원리를 이야기 하지 못하면 그냥 죽은 무술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