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나눈 대화 / 윌리엄 블레이크]
나의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말했다.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작은 존재여
가서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라는 시로 유명한 영국 시인 월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격언 시편Gnomic Verses』에 실린 시다. 어릴 때부터 블레이크는 창가에서 신과 이야기하거나 나무 위의 천사를 보는 등 신비 체험을 했으며, 훗날 그것을 시로 표현했다. 자신에게서 그림을 배운 남동생이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을 때는 동생의 영혼이 '기쁨의 박수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고통과 상실을 겪지만, 이 세상과 자연 속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몽상가와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으나 20세기에 와서 예언자적 시인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있을 것이다. 연약하고 순진무구한 우리를 세상에 보내며 그 천사가 우리에게 해 준 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우리는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인 그 천사의 말을 잊어버리게 된 걸까?
누가 도와주거나 설명해 주지 않아도 세상은 경이로운 대상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의무는 그것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정체성을 흔들며, 과거의 상처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짧은 생 동안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은 사랑이다.
본래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우리, 가끔은 자신의 탄생을 주관한 그 천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나는가?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