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복사꽃 의숙(義塾)*
새끼가 주리는 걸 안 암사자 같던 어무이, 부평에서 소사까지 다라를 인 채 철길을 따라 걸어다녔다 복숭아 낙과(落果)를 받아 당원을 풀어, 사발에 담아 10원에 팔았다 둘째는 정규 중학교는커녕 소사공업기술학교도 게우 갔다 부천의 옛 이름 소사 부모의 취업동의서를 내고도 나이가 어렸던 나는 동네 형, 김용운의 이름을 꿔서 취직했다 소사 시내 국제전광사였다 법랑냄비와 석유곤로를 만들었다
나는 여적지 소사란 말이 간지럽도록 살갑다
어무이는 노점 옷장사로 풀렸고 둘째는 용접공으로 청천동 동양철관에 입사했다 나는 한때 소사본동 서울신학대에 다닌 적이 있다 선한 목자가 되려다 혁명을 꿈꾸었고 숫제 슬퍼서 찬란한, …… 시인이 되었다
소사 복사꽃 피는 시절, 가려운데 손이 닿지 않는 것 같은 꼭 그 만큼 그리운 내 첫사랑
어무이는 내내 구루마 옷장사로 집안을 이끌었고 둘째는 그곳에서 만 41년을 버텼다 어무이는 무소의 뿔처럼 돌진해 집 한 채를 마련했으며 자식들을 성가시켰다 나는 코로나 탓에 둘째 정년식에 코빼기도 못 비쳤다 입때껏 늑골 맨 깊은 데 한 켠이 무겁고 아리다 파평윤가 정정공파 34대손 ‘憲’자 ‘永’자인 둘째, 되레 장남 같았다 난 떠돌았으나 소사를 잊지 않았고, 해서 어무이가 내게 했듯 당금은 아들에게 암사자 노릇을 하고 싶었다 허드레라도 아들에게 복사꽃빛 그늘만은 이어주고 싶었다
소사, 복사꽃 의숙(義塾)
*공익을 위하여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기관
-윤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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