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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낙태전문의의 회개
임마뉘엘 마이야르 수녀
스토얀 아다세비치박사는 이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리드의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능란한 수술 솜씨로 명성을 떨치면서 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궁지에 빠지고 말았다. 유능한 실력자 의사인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었다!
사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몇 달 전부터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정신 이상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온갖 종류의 약을 먹어보고 심지어 민간요법까지 동원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매일, 매주, 매달 꿈속에서 그는 다채로운 빛깔의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햇빛이 가득한 넓은 초원으로 갔다. 공기는 온화하고 쾌적했으며, 온갖 색깔의 물결무늬 나비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천국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그는 왜 고뇌에 사로잡혀야 했을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이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한 마음에서 왜 벗어날 수 없을까? 그 이유를 그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스토얀 아다세비치 박사는 누구인가?
스토얀 아다세비치 박사는 갓 개원한 1960년대에 이미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로 평판이 자자했다. (편집자 주,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독립하면서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베오그라다는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 이념의 무신론적 상황 속에서 그는 의과대학에서 배운 그대로, 낙태는 맹장염 수술과 비슷한 단순한 외과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맹장은 장의 일부이고 낙태된 태아는 일종의 배아 조직이었다.
그런대 그가 의대생일 때 이런일이 있었다. 그날 그는 의과대학 진료실 대기실에 있는데, 환자들의 파일을 정리하러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 방에 들어왔다. 서류 더미 뒤에 웅크리고 있는 이 학생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료 행위에 관해 자유롭게 나누기 시작했다. 그중 라도 이그나도비치는 어떤 여자에 대한 쓰라인 기억을 상기했는데, 낙태 시술을 하다가 완전히 실패하여 그녀의 아기가 살아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했던 전직 치과의사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스토얀은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던 중, 갑자기 너무 깜짝 놀라서 얼어붙어 버렸다. 그 여자가 다름이 아닌 자신의 어머니 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 의사가 말했다.
“그녀는 지금 죽고 없어.”
그 순간 스토얀은, ‘엄마가 원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됐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바로 그때 그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서, 벌떡 일어나 그 선배 의사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내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이 말에 그곳은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흘렀고, 이내 의사들은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반복되는 꿈의 장면
세월이 흘러도 스토얀 아다세비치 박사는 자신이 낙태 실패로 인애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런 크나큰 실책은 그에겐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능란한 수술 솜씨와 명성으로 마침내 지도교수를 재빨리 능가하게 되었다. “그 비결은 훈련과 숙련된 경험 그리고 손의 위치에 있었다.”라며 그는 말했다. 그는 하루에 20-30건의 낙태를 시술했으며, 26년 동안 약 50,000건을 시술했다.
1980년대 어느 날, 그의 마음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음파를 사용하는 새로운 기술이 유고슬라비아에 도착했던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숨겨져 있던 현실을 USG 모니터를 통해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자궁 한에서 아기가 엄지손가락을 빨며 팔과 다리도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낙태 시술 중 떼어낸 아기의 신체 일부를 옆의 탁자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두곤 했다.
그럴 무렵 그는 똑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고 있었는데, 그 꿈이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주 동안 꿈속에서, 그는 자기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자제하는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그 아름다운 초원에는 웃으며 뛰어다니고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아이들의 나이는 세 살에서 스무 살 까지 다양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들의 모습에 무척 놀랐다.
특히 한 소년과 두 소녀에게 눈이 갔는데, 그 얼굴들이 이상하게도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보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그 아이들과 얘기해보려고 다가갔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은 공포에 질린 듯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게 아닌가! 그때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스토얀의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보호자인가? 하지만 거기까지, 스토얀은 꿈에서 깨어났지만 아침이 올때까지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속에서 아이들을 뒤쫓고 있었다. 아이들은 미친 듯한 불안감에 떨며 그에게서 달아났다. 그가 가까스러 한 아이를 붙잡았지만 아이는 겁에 질려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살인자! 이 암살자의 손에서 구해주세요!”하며 소리 질렀다.
바로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독수리로 변하더니 그에게로 날아와 아이를 낚아챘다. 스토얀은 극심한 공포감메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베오그라드의한겨울 날씨에 침실 기온은 낮았지만, 그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고.....
그날 아침, 그는 정신과 위사에게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악몽은 가혹하게 계속됐다. 그래서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신비한 남자에게 누구인지 물었는데, 이 대답을 들었다.
“설사 내 이름을 말하더라도 당신은 아무 흥미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계속 묻자 마침내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무신론자인 그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이름은 생소하고 아무런 느낌도 안겨주지 못했다. ‘낯선 녀석이군!’
그러나 검은 옷의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히려 당신은 아이들이 누군지 왜 내게 묻지 않습니까? 그 아이들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스토얀이 모른다고 하자 남자의 말은 계속 되었다.
“아니죠, 당신은 그 아이들을 아주 잘 압니다! 당신이 낙태로 죽인 바로 그 아이들입니다.”
이말에 스토얀은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아이들의 키가 큰데. 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죽인 적이 없어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했다.
“여기 저승에서, 내세에서는 아이들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의사 스토얀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겼다.
“하지만 난 스무살 먹은 청년을 죽인 적은 절대 없다니까요!”
“당신은 20년 전에 그의 어머니 뱃속에서 이 아이를 죽였습니다. 이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이 말에 비로소 스토얀은 명백한 사실 앞에 굴복했다. 그는 스무살 청년과 어린 소녀 두명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기이하게도 스토얀이 잘 아는 사람들, 과거에 그에게 낙태 시술을 요청했던 사람들과 혼동하리만큼 닮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스토얀의 친구와 얼굴 모습이 비슷했는데, 20년 전에 그 친구의 아내에게 낙태 시술을 해주었다. 두 소녀 중 한 명은 스토얀의 사촌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토얀은 잠에서 깨자마자, 자신의 인생에서 절대로 다시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맙소사, 아직 손이 움직이네.”
그날 아침, 스토얀 박사가 병원에 출근했을 때 사촌 형제가 여자친구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태 시술 예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임신 4개월이었고, 아홉 번째 낙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토얀은 즉시 거부했지만, 사촌의 강요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스토얀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궁 속의 아기가 엄지손가락을 빠는 모습이 USG 모니터를 통해 그의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배를 열고 태반을 찢자 일종의 물주머니가 터졌으므로 낙태 핀셋으로 내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잡고 찢고 꺼내서 수건 위에 던졌는데, 얼핏 보니 손이, 상당히 큰 손이었다. 아기는 4개월째였다. 이 단계에서는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이요 모든 장기가 형성된다. 누군가가 탁자 위에 던져둔 그 손가락에 요오드를 부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아직 손이 움직이네’”
그 순간 그는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낙태 시술을 계속했다.
“나는 기어코 핀셋으로 계속 진행했다, 다른 부분을 붙잡아서 잘라냈다. ‘다리가 아니길,,,’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꺼내서 보니 한쪽 다리였다! 나는 그 다리를 아직 움직이는 손 가까이에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탁자 위에 살그머니 올려놓으려는데, 바로 그때 간호사가 내 뒤에서 수술 기구를 담은 쟁반을 떨어뜨렸다. 그 격렬한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들고 있던 핀셋을 놓아버렸는데 아기의 다리가 굴러 먼저 떼어둔 손 가까이에 떨어졌다. 그때 손과 다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때껏 우리 팀과 내가 결코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탁자 위에서 사람의 팔다리가 빠르게 경련을 일으키며 수축했다. 그래도 나는 내 일을 계속 진행했다. 자궁 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 모든 것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마음에 걸리면 최악일 거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모조리 짓이겼다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짓이기고 짓이겼다. 그리고 다시 핀셋을 꺼내, 분명 뼛조각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짓이겨져 죽처럼 된 것을 아마포 위에 놓았다. 그런데 그건 심장이었다. 인간의 심장이 수축하고 이완되고 박동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내 미치는 것 같았다. 완전히 멈출 때까지 심장 박동이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 다 보였다. 그 누구도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보지 못했고, 또한 나보다 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한 인간을 죽였으니까!”
의사인 그의 마음이 흔들리자 주위의 모든 것이 암흑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간호사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그를 마비상태에서 끌어냈다. “박사님, 박사님! 환자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하며 간호사가 울부짖었다.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는 기도했다. “주님! 저를 구하지 마시고 이 여자를 구해주십시오!”
시술을 끝내고 장갑을 벗었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낙태 시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미 예상한 대로 그에게 박해가 가해졌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베오그라드의 어떤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의사가 낙태 시술을 거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압력에 더하여 그의 급여도 삭감되었다. 그의 딸은 직장에서 해고 되었고, 아들은 이상하게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그는 언론과 국영 텔레비전에 의해 명예를 손상당했다. 국가는 그에게 낙태 시술을 위한 연구를 허용했는데, 지금은 국가에 대한 방해공작을 주도한다며 언론은 떠들었다.
그렇게 2년이 흐르자 스토얀 박사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다시 근무하면서 낙태 시술도 해볼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러나 그의 천상의 친구인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꿈에 다시 나타났다. 그 남자는 스토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당신은 내 친구이고, 나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당신의 투쟁을 계속하십시오!”하였다. 때문에 그는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스토얀 아다세비치 박사의 근황
스토얀 사다세비치 박사는 즉각 생명옹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세르비아 전역을 다니며 낙태의 실상을 전했다.
“낙태는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포한 진짜 전쟁이다. 나는 이 전쟁에서 여러 번 최전선에 서있었다. 처음에는 죽음의 선고를 받은 태아로서, 그 후에는 나 자신이 낙태 의사로서, 그리고 지금은 생명을 지키는 사도과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기가 태어나 첫 숨을 쉬기 바로 전까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산주의자 교수글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과는 반대로, 정자가 난자와 만나는 그 순간부터, 태아가 형성되는그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된다.”
그는 영화 <무언의 절규 The Slient Scream>에 두 번이나 출연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영화는 엄마 배 속에서 헤엄치던 아기가, 낙태 전문의가 삽입한 기구를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궁 반대편 끝으로 피신하지만, 결국 그 죽음의 도구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공개했다.
그의 투쟁 덕분에, 1990년대 초 의회는 태아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령을 가결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은 그 법령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으며, 그런 다음 발칸반도의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국가들끼리 전쟁이 벌어지면서 그 법령은 세상에서 잊혔다.
그 전쟁 중에 스토얀 박사는 “여기 발칸 반도에서 벌어지는 학살은 우리가 오만하여 하느님을 망각하고 인간 생명을 경시한 탓이지 않겠는가?”하며 자문했다.
박 아가다 수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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