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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오산(鰲山 530.8m) & 사성암(四聖庵)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10월 25일 인시(寅時) 말에 일어나니 주위는 어둑 어둑한데 하늘엔 흰 구름 사이로 별 빛이 뛰엄 뛰엄 새어나온다. 날씨는 어찌나 포근하고 아름다운지 온 몸에 와 닿는 기분이 감미롭게 느껴진다.
간단히 조반을 들고 출발지(반고개)에 도착하니 염종우님은 먼저 와 계시고 곧 이어 이미자님, 안언니 등 여러명이 도착하신다. 반갑게 서로들 인사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시(7시)를 30여 분이나 지나서 차가 도착하여 전후 사정을 여쭈니 아침밥이 늦게 도착하여 어쩔 수 없었다 한다.
게다가 기사님과 차도 예고 없이 바뀌어서 상쾌하고 즐겁던 기분이 많이도 반감된다. 그렇다고 하루 일정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불평들을 다독이면서 칠곡IC를 최종 벗어나니 참석율도 부진하여 37명이다.
그런 날도 있제~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면서 고령을 지나 ‘해인터널’ 오르막 길을 오르는데 차가 힘이 없어 속력을 내지 못한다. 연하여 마이크도 안되고 차내 진행이 순조롭지 못하여 육성(肉聲)으로 진행하는가 하면... 기사님은 차량의 여러 가지 기능들을 다루지 못하여 전화로 묻고 있으니... 하루 일정에 많은 차질이 난다.
거창휴게소에서 준비해 온 조식을 간단히 들고는 줄곧 내 달아 남원IC에서 다시 19번 국도를 따라 구례로 달리니. 넓은 들녘에는 누런 벼들이 황금물결로 다가오고 연변(沿邊)의 코스모스 꽃들은 절정을 지나 시들어 가고 있어 황량한 느낌마져 든다.
마음을 졸이면서~ 그럭저럭 구례 읍내를 지나 문척교(文尺橋)에 이르니 ‘오산(鰲山)’의 모습이 완연하여 거대한 자라가 섬진강에 기어 들어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좁은 지방도를 따라 10여 분을 조심 조심 진행하여 ‘동해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시계는 11시 20여 분을 조금지나있다.
계획보다 많은 시간이 지연되어 “둥주리봉”은 다음기회에 등산하기로 하며~ A,B코스로 나뉘어서 B코스는 하산기점 ‘죽연마을’ 주차장에서 역산행 하기로 하여 되돌아 가고, 정예부대 19명은 ‘약천사’ 계곡으로 출발합니다.
동해마을 길은 좁으나 포장이 잘되어서 걷기에 안전하고 편안하며, 길 옆으로 아람드리 느티나무는 반 단풍은 들어서 노릿 노릿하고, 개울 옆으로 작은 언덕빼기에도 골이 깊어서 인지 생각보다 단풍이 제법이다.
20여 분을 걸어 오르니 작은 개울 건너 산기슭에는 ‘약천사(藥泉寺)’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불을 모셨는지~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독경(讀經)소리가 확성기(擴聲器)에 울려퍼진다. 절이라기 보다는 암자에도 못 미치는 작은 규모이며, 입구 플래카드(Placard)에 ‘팔공산 약사여래불’의 사진이 걸려있다.
하기사~ 삼천대천세계에 부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몇걸음을 더 오르니 우측으로 높은 축대 위에는 “옛솔비 꽃담” 이라는 찻집이 있으며, 그 아래 디딜방아와 단지 하나, 작은 비둘기집 까지... 소담스럽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다시 5분 여를 오르니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오산. 사성암 3.4Km"라 적혀있다. 이정표를 따라 막 들어서니 마을에 사는 ‘크고 작은 백구(白狗)’ 두 마리가 꼬리를 치며 무척이나 반겨 준다.
손을 흔들며 반겨주니 일행들 주위를 빙-빙 돌며 등산길을 안내한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봐서 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귀여움을 받아 왔던 것으로 생각되며, 약 7~800여 미터 까지 앞장서 서 가이더를 해 주는데~ 고맙기도 하고 착찹하던 기분에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그려!
오늘은 모두가 산행에 경험이 많은 분들이 동참하여서 누가 선두랄 것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락 내리락 몇 차례나 선 후미가 교차되어 진행이 순조롭슴니다. 가파른 경사를 백구의 안내를 받아가며 10여 분을 오르니 잘 닦여진 산림도(山林道)가 도로를 방불케 합니다.
시계는 12시 40여 분을 조금 지나고 있어 다소 시장끼도 느껴져서 지근한 거리에 ‘솔봉고개’ 부근의 팔각정자에서 점심을 들고 가자며, 앞서가는 능선님과 벽송대장님께 구호로 몇차례 전달합니다.
모두들 정자에 올라 한자리에 빙 둘러앉아 점심을 드시니 신선(神仙)이 따로 없슴니다 그려! 포근하고 청명한 가을 날씨에 주위는 온통 소나무로 덮여서 솔 향기 그윽하고 저만큼 오산의 벼랑끝에는 사성암의 “유리광전(琉璃光殿)”이 마치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어 보는 눈이 시릴정도입니다.
식후 디저트 까지 곁들여 들며 얼마를 쉬다 다시 자래봉(524m) 방향으로 진행하니, 큰 백구는 되돌아 갔는지 보이지 않고 강아지 백구는 계속 따라 붙는다. 점심 때 여러 음식들을 대접 받드니 그새 정이 많이도 들었나 보다.
앞서가던 염종우님과 이원우님께서 집으로 돌아 가라고 훈계를 하니 왔던 길을 열심히 뛰어가면서 가끔씩 되돌아 본다. 일설에 ‘개(犬)와 소(牛)’는 사람에게 유익하고 충직한 동물이라 전국 곳곳에 ‘우총(牛塚)과 구총(狗塚)’이 있어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것도 사실이제!
점심후라 배도 든든하고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가을산행 날씨로는 짱입니다! 능선길에 바닥은 낙엽이 적당히 깔려있어 약간의 쿠션을 느끼며 완만한 경사에 송림(松林)사이로 걷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그랴!
중간 중간 기념촬영도 해 가면서 매봉(528m) 근처를 바라보니 깍아지런 절벽에 기똥찬 절경의 암벽(巖壁)이 있는데, 접근이 용이치 않아 멀리서 렌즈를 당겨 풍경촬영만 하고 나아가니 아쉬움이 큼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하더니, 오산이 점 점 가까워 질수록 지리산 일대와 섬진강 주변의 풍광들이 서서히 다가 오는데~ 모두들 이야! 이야! 하면서 감탄을 연발합니다!
오산의 정상에는 이층의 육각정자와 그 아래는 전망대가 있는데 안내문에 지리산 반야봉 일대와 노고단 일대, 화엄사 부근, 마산면 사도리 ‘당몰샘’ 부근, 그 오른쪽으로 토지면(土旨面) 오미리 ‘운조루(雲鳥樓)’ 부근 등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정에 많은 차이가 있어 다 답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오래전 기억으로는 사도리 상사(上沙)마을 “당몰샘”은 전북 순창군, 전남 구례군, 곡성군, 담양군의 4개지역의 장수촌에 해당되는 지역이며 예로부터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지역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이 당몰샘의 영험한 물맛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돌담에는 “천년고리(千年古里) 감로영천(甘露靈泉)”이라고 새겨져 있고 또 어떠한 가뭄이나 홍수에도 일정하게 흘러 넘친다고 한다.
연하여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영조52년(1776) 무관(武官) 유이주(柳爾冑1726~1797)가 지은 가옥의 사랑채를 말함인데 지금은 가옥전체를 운조루라 부르고 있으며, 1000여 평의 대지에 건평이 100평이 넘는 가옥으로 지을 당시에는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한다.(현존73칸)
아울러 이 곳 오산(鰲山.530.8m)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장수군) 부근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나온 호남정맥을 따라 800여 리를 달려 광양시와 구례군 경계의 갈미봉(638.8m) 부근에서 서북쪽으로 한 지맥이 흘러나와 매재, 삽재, 천황봉(652m)을 거쳐 다시 둥주리봉, 자래봉을 지나 오산에서 그맥을 섬진강에 떨구고 있으니... 백두의 정기와 호남정맥의 정기가 단단히 뭉쳐있어 천하의 대명당이요, 경치 또한 빼어나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사성암 방향으로 10여 미터 나려오니 오산의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다. 정상표석은 ‘전망대’에 양보하여 이 곳에 세운 것으로 짐작되며 표석을 배경으로 여러 회원님들에게 정상에 오른 ‘인정샷’을 찍어 드림니다.
몇걸음을 더 내려오니 사성암 주위로는 온통 암반으로 뭉쳐있어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않으며, 등산로 좌 우에는 평평하고 넓은 반석(盤石)이 있어 능선님과 벽송님 김명숙님 안언니 등에게 사진을 찍어드리고 능선님에게 필자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드림니다. “훗날 아주 요긴하게 쓸데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잘 찍어달라고 하니...” 모두들 제 뜻을 짐작이나 하셨는지~ 한참을 웃슴니다,
어차피 人生은 나그네 길 아닌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어느 장사가 있어 피하리요! 이렇게 왔다가 또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을... 여러개의 나무계단을 나려오니 시계(視界)는 일시에 탁 트이고 거칠 것 하나 없는 들판을 지나 장강(섬진강)은 좌에서 우로 유유(悠悠)히 휘감아 흐르고, 그 뒤로 지리산 노고단 일대와 구례읍의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 틈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서니 왼쪽으로 천연의 동굴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데 ‘도선굴(道詵窟)’이라 적혀있다. 그 옆으로 좁은 암벽사이에 정면2칸 측면1칸의 산왕전(山王殿)이 모셔져 있는데, 영험하게도 우측 석벽(石壁)에는 ‘관세음보살님’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사물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다가 오는데... 하필 그 곳에, 또 그렇게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 자체가 인연이요, 대자연의 섭리(攝理)가 아니겠는가...! 산왕전에 들어 간단한 예를 드리고 도선굴로 들어서니 굴 중간쯤 석벽아래는 여러개의 촛불이 켜져있다.
이렇게 신비한 천연동굴에 어찌 정성의 촛불을 켜지 않겠는가! 우리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나약해서 거룩한 대자연의 품에 기대어서 오늘날 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굴을 통과하여 다시 좌측으로 돌아드니 거대한 암벽이 있는데 ‘소원바위라’ 적혀있다.
그 앞에는 전(2006년)에 없던 자그마한 ‘약왕보살상’을 모셔 놓았고 그 뒤로 금줄에는 행운을 비는 종이(한장에 천원)가 빽빽이 걸려있다. 귀엽기도 하고 앙증스럽게 보이며 또 우측에는 상당한 크기의 청동판에 ‘약왕보살님’과 뗏목을 타고 건너는 동자님, 기도하는 스님과 사성암의 상징인 ‘유리광전(琉璃光殿)’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선채로 예를 드리고 물러나오니 왼쪽 석벽아래는 높은 축대위에 극락전이 진좌(鎭坐)하고 있으며, 그 뒤 돌틈사이로 비좁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작은 선방(禪房)이 지어져있다. 기발한 착상으로 암반의 기운이 성성하여 기도발이 서겠다는 생각이 들며 목공의 솜씨도 감탄스럽다.
그 옆으로 거대한 암벽에는 100원짜리 동전을 어찌나 붙여 놓았는지 석양빛에 반사되어 섬광이 번쩍 번쩍 빛나고, 또 암반에는 ‘중창인 박병현(重創人 朴炳現)과 화주 이용준(化主 李容準)’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곳 사성암에는 별다른 마당이 없으니 모든 전각들이 돌 틈사이에 지어져 있고 멀리서 보면 꼭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무소(宗務所) 쪽으로 나려오니 수령800년이나 됀 거대한 “귀목나무”가 도량의 전통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떡 버티고 있어 이 또한 사성암의 보물이다.
훗날 대웅전을 건립할 터(유일한 마당) 한켠에는 기와불사를 하고 있어 필자(筆者)도 한 장을 올리고 오산자락을 올려다보니, 깎아지런 암벽에 ‘유리광전’이 네 개의 튼실한 콩크리트 기둥에 떠 받혀져 마치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으며 금강산 보덕굴과 해인사 희랑대를 연상(聯想)케 합니다.
서부장(서경철)님과 황까페지기님, 김해진님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비좁은 돌계단을 올라 유리광전 입구에 이르니 우측으로 거대한 바위에는 담쟁이 넝쿨이 이리저리 얽혀서 말라붙은 바위손과 더불어 천년도량의 향기를 더해 주는데... 난데 없이 많은 사람들이 천원짜리 지폐로 담쟁이 넝쿨에 접어 매달아 놓았다.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하드니... 기복(祈福)인가? 예술(藝術)인가? 옛 성현들께서 “희사(喜捨)는 보이지 않게 상(相)을 내지 말라!”고 하셨거늘...
걸망을 벗어 놓고 법당에 들어 간단히 참배한 후 “마애불(약왕보살상)”을 좀더 가까이서 바라보니,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에 약병같은 것이 들려 있어 “약사여래불”로 부르며 음각(陰刻)됀 선(線) 따라 금 도금을 칠하여서 음각의 기법을 이해 하기가 용이(容易)치 않으며, 게다가 전면이 통유리로 가리워져 있어 마애불(磨崖佛)의 전체 모습을 감상하기도 쉽지 않다.
일설에는 원효스님이 손톱으로 눌러 새겼다고도 하시니... 성인(聖人)의 신력(神力)을 범부(凡夫)가 어찌 다 짐작하리요! 양식으로 봐서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의 작품이라 짐작되며,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이윽히 바라보니 천지(天地)는 황엽(黃葉)으로 물들어 가고 천리를 흘러온 강물은 유유히 도량(道場)을 휘~돌아 흐르니... 과시 대장부의 한 살림을 꾸릴만한 자리가 아니던가!
누런 황금들판에 풍요움은 넘쳐나고 옹기종기 모여사는 중생들은 인정과 따사로움이 충만하여서 아름답고 거룩함이 넘치고 넘쳐서 더는 할 말을 잊슴니다!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계단을 나려와 안내문을 보니, 사성암(四聖庵)은 백제 성왕(聖王) 22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구례 화엄사(華嚴寺) 보다 먼저 창건 하였다고 하며, 조선 인조8년(1630)에 중건됀 기록이 있으나 대웅전(大雄殿)은 현재 옛 건물을 헐고 재건 준비중에 있다.
아울러 사성(四聖)은 ‘원효스님과 의상대사, 도선스님과 연기조사’라 적혀있다. 일설에는 의상대사 보다 ‘진각국사’를 논하는 분들도 있으며, 창건연대가 544년이라고 하시니 남방불교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하겠슴니다.
도량을 한바퀴 휘~돌아 언덕아래로 내려와서 사성암 주차장옆의 이정표를 따라 ‘죽연마을’ 주차장 방향으로 30여 분을 나려오니, 경사도 심하고 아울러 산 비탈에는 돌너덜이 계속 이어지는데... 여러 곳에 정성어린 돌탑들이 많이도 쌓아져 있다.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주차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빼기에 능선님과 그 일행들이 모여 앉아 한잔의 술로 가을단풍을 즐기시는데... 과일(포도) 한점을 주시며 함께 가자신다. 따사로운 인정에 몇 알을 집어 톡 톡 삼키니 퍅퍅하던 입안에 침이 감돌고 기분이 새롭슴니다.
함께 주차장에 당도하여 구윤서 회장님과 김미소 총무님 윤상복님 등이 준비하신 하산주에 돼지고기와 도토리묵으로 시장끼를 달래시니 더는 바랠것이 없슴니다. 어느 덧 해는 서산에 기울어서 넓은 광장, 가을 으스럼에 나뒹구는 낙엽소리에 스스로 놀랍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치유(治癒)는 크고도 무한하여서
아침 나절엔 어두웠던 마음이 하오엔 태양보다 밝고나
이 가을이 가면 또 한 해가 가겠제!
뒹구는 저 낙엽에 내 사랑 실어 천상(天上)에 보내누나
단기 4346년(서기 2015년) 10월 25일
전남 구례군 오산(鰲山. 530.8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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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산님들! 그간 강녕하신지요?
차일 피일 바쁘다는 핑계로 산행후기가 많이도 늦었슴니다.
널리 이해를 바라면서~
산행당일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진행에 수고를 하신
구윤서 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갑용 총무님, 김미소 총무님,
윤상복 부대장님, 능선 운영위원장님 등 많은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아울러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37명)에게도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며,
벌써 오늘이 11월 초 하루입니다. 모든님들! 11월엔 더욱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오산은 명산이면서 추억이 많은 산거움이 가득한 시간을 만들어 주어서...행복 함니다.
사성암을 바위옆에 세울수 있는지...장인들은 재주가 뛰어나고...
건강을 지켜주어서 고맙고
잘 보고 감니다
황까페지기님의 사진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매달산행후기 집필하시느라 수고하십니다.아침부터 마음고생을 많이하셨네요~다행히 너무좋은산을 볼수있어서 좀이나마 위로가되셨네요.참석하지 않아도 산행후기덕분에생생한 오산의 경치를 맘껏즐감했어요~ 감사합니다.늘~건강하세요.^^
경숙님 함께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어요.
동기분들 6~7명이 왕창 불참 하셨으니~
차가 텅~ 빈 것 같았어요.
변변찮은 글을 늘 읽어주시고 또 댓글까지~
앞으로 더 좋은 글 올리도록 노력 하겠슴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긴장문 쓰시느라 수고가 많아습니다.
남산을 위해 변함없이 애정을 아끼지 않는 마음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후일 남산역사의 좋은 자료가 될것 같습니다.
벽송님이 다녀 가셨군요.
당일 진행에 수고 많으셨으며,
늘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를 드림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