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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대창중 RCY, 민간 외교관으로 노력
대창중학교 적십자단 노춘오 지도교사와 단장이며 학생회장인 황규석 군이 2000년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일본 시마네현에 다녀왔다. 시마네현에서 열린 한일 RCY단원 및 지도자 국제 교환교류사업 차 방문한 대창중 노춘오 교사의 방문기를 <예천신문> 2000년 9월 7일 자에서부터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각현 경상북도적십자사지사 회장을 비롯한 경상북도 청소년적십자단원(RCY)과 지도교사 등 20명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일본 적십자사 시마네현(島根縣)지부를 방문하여 초중고 간부 단원 교육에 참가하는 등 국제 교환 교류전에 다녀왔다. 경상북도와 시마네현은 자매결연을 맺은 후, 지난 1994년부터 한일 청소년적십자 교환 교류가 시작되어 금년까지 7차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격년제로 상호 방문하는 한일 간의 교환 교류는 5박 6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나는 경상북도 청소년적십자 지도교사협의회 부회장 자격으로, 함께 방문한 황규석 학생은 대창중학교 청소년적십자 단장의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국제 교환 교류의 목적은 한일 양국의 상호 이해와 협력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의 적십자 및 청소년적십자 활동에 대한 이해 증진과 청소년적십자 활동에 대한 정보 교환, 프로그램 교환 및 비교, 민박 교류를 통한 상호 간의 문화 이해가 그 목적이다. 한일 국제 교환 교류에 참가하는 우리는 방일 전 2회에 걸친 사전 교육을 통해, 일정과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였으며, 한국 문화를 소개할 내용을 연습하는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자세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
먼저 국제 교환교류 방문기에 앞서 적십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국제적십자운동의 창시자는 '장 앙리 뒤낭'이다. 뒤낭은 1828년 5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31살의 청년 실업가가 된 그는 1859년 6월 24일 사업을 위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고자 이탈리아 북부지방 카스틸료네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문제로 전쟁 중이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반대하는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 이탈리아 연합군은 솔베리노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전쟁터에 버려진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병이 디엉킨 처참한 광경을 보게 된 그는 카스틸료네 근처에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은 형제이다'라고 외치며,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부상병을 돌보아 주었다.
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전쟁터의 비참상을 생생히 기록한, '솔페리노의 회상'을 저술하여, 각국이 전시의 부상병을 돌볼 구호 단체를 평시에 설립하여 훈련시킬 것과 이들 부상병을 돌보는 의무 요원과 의무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약을 제정하자고 제안하여, 국제적십자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다음호 계속- (노춘오, 대창중 교사>(醴泉新聞 2000.9.7)
1901년 '뒤낭'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각종 봉사 활동과 구호 활동을 실시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한 국제적십자사를 창설한 공을 인정받아 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청소년적십자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캐나다, 미국, 호주 청소년들이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는 유럽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학용품, 의류 등의 구호품을 모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22년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에서 청소년 적십자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청소년 적십자는 그 나라의 청소들에게 평화의 이상과 봉사의 실천, 특히 자기 자신과 타인의 건강 보호에 관하여 가르치고, 시민으로서의 또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모든 나라의 청소년들에 대한 우호 협동 정신을 기르고 가꾸어 나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한다."
우리나라의 청소년적십자단(초기엔 JRC(Junior Red Cross), 현재는 RCY(Red Cross Youth))은 1953년 4월 5일,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황폐화되어 가는 국토에 희망을 심기 위해 1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되어 창설되었고, 이날을 청소년적십자 창립일로 제정하였다.
그 후 청소년적십자단(RCY)은 50년대 전후 복구와 재건 활동, 60년대 농촌 봉사를 통한 지역 사회 봉사 활동, 70년대엔 사회봉사 활동과 환경 보호 활동을 하였으며, 80년대엔 평화 순례 대행진,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에 대한 세미나와 캠페인을 전개했다. 90년대엔 북한 어린이 돕기,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모금 활동, 가난한 나라의 청소년을 돕기 위한 우정의 선물상자 제작 등 우리 사회에서 작은 힘이지만 실로 커다란 활동을 하였다. 특히 1963년 스승님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서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스승의 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또한 대창중학교 청소년적십자단(RCY)은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학습과정 외에 참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심어주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향상과 인성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1993년 5월 18일 김교용 교장선생님(현 대창중고등학교 이사장) 및 중학교 선생님들의 뜻을 모아 청소년적십자단을 창단하였다.
현재 130여 명의 단원들이 청소년적십자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보이스카우트, 청소년연맹(누리단)과 함께 우리 학교의 대표적인 동아리라 할 수 있다.
대창중학교 청소년적십자단은 매년 적십자 이념 교육과 응급 처치법 강습, 각종 야영수련 활동, 현충일 행사 참가, 학교 내외에서의 봉사 활동 등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 98년 제24회, 99년에 제25회 경상북도 응급처치 경연대회에서 봉사상과 모범상을 수상하였다. 뿐 아니라 지난 6월 16-17일에는 제6회 전국산악문화제에서 중등부 2위에 입상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생 중 약 76% 이상이 건전 서클에 가입하여, 인성 함양과 함께 진정한 봉사 정신을 배우고 있다. -다음 호 계속-<노춘오, 대창중 교사>(醴泉新聞 2000.9.15)
우리 방문단은 2000년 7월 31일 오전 11시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2시 20분쯤 히로시마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해 주신 분은 히로시 이와타(岩田弘志) 시마네현 적십자사 사무국장과 미시마 가즈히로(三島一德) 총무과장, 이즈카 산요(飯塚三陽) 직원 등 3명이었다. 히로시 이와타 사무국장은 공항에서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이해 주었으며, 우리 방문단을 히로시마 국제평화공원으로 안내하였다. 히로시마 국제평화공원은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여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자 원자 폭탄을 투하한 곳에 전쟁의 참상과 원폭의 피해를 후세들에게 생생히 전하기 위해, 히로시마 국제평화공원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원폭 돔, 원폭 위령비, 평화의 불, 평화 기념 자료관을 비롯하여 많은 역사적 자료를 공원 내에 보존하고 있다.
한일적십자사 대표들은 원폭 희생자 위령탑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탑에 헌화하였다. 잠시 후 평화 기념 자료관을 찾아 원폭의 참상을 전해주는 많은 피폭 자료들을 보았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원폭의 피해를 입은 국가로서, 히로시마는 거의 파괴되었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뿐 아니라, 피폭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피폭자들은 큰 상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는가? 그 많은 전쟁들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특히 원자 폭탄의 투하가 준 피해는 그 어떤 전쟁들보다 인류의 가슴에 크나 큰 상처와 후유증을 주었다. 더욱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인도 등 아직도 많은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폭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날로 증가되고 있는 핵 개발로 인한 우리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기구가 창설되었고, 많은 국가가 핵 폐기 문서에 서명하였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가 핵무기의 보유가 곧 국력 증강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핵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은 인류의 미래를 더욱 불안케 하고 분노케 한다.
히로시마 국제평화공원과 평화 기념 자료관을 둘러보니, 전쟁의 참화와 원폭의 가공할 파괴력에 참담함과 비통함을 느꼈다.
정치, 종교, 이념, 한 지배자의 개인적인 욕망과 야욕에 의한 전쟁이, 이렇게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인류에게 상처를 준 것을 생각하니,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위해서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에 의해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스텔 프라자 국제청년회관에 숙소를 정한 우리 방문단은 저녁 식사를 한 후, 내일의 일정을 위해 토론 시간을 가졌다.
내일은 시마네현(島根縣) 소속 초중고 간부 단원이 마쓰에(松江)시 Sun Lake 트레이닝센터에서 간부 단원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에게 보다 모범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할 것을 당부하였다. 시마네현 적십자지부 직원들의 맑은 미소와 상냥함, 그리고 친절한 태도는 마음에서 우러났고, 몸에 베어있는 행동이었다. 또한 그들은 크고 작은 일에도 계획적이고 조직적이었으며, 치밀하게 행동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호 계속- <노춘오 대창중 교사>(醴泉新聞 2000.9.21)
히로시마에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거리가 굉장히 깨끗하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길거리엔 휴지나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 그들은 휴대용 재떨이를 가지고 다니며,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방문한 일본에서 담배꽁초 처리가 작은 고민이었다.
또한 얼핏 보아도 낡은 전철이, 도심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전철은 비교적 낡았으며, 느린 속도로 운행되어 이용자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일본 관계자는, "전철은 노인 분들이 많이 이용하시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계속 운행합니다."라고 하였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어른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우리보다 한 발 앞선 복지 국가였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만 치우쳐 인간 생활의 편의보다, 경제적인 이익에만 민감한 우리의 모습을 한 번쯤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히로시마엔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자전거를 중요한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이 혼잡하지 않고 공기도 맑고 깨끗하였다.
안심하고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도로 여건, 규정 속도를 지키고 반드시 안전밸트를 착용하며, 정지선을 지키는 질서 의식, 상대방을 위해 양보 운전을 하는 안전 운행 모습 등은 교통 선진국의 모습이었다.
나는 오늘 우리와 다른 일본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눈으로 보며, 지난 역사에 얽매어 무조건적인 거부나 반대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지키며 일본 문화의 장점은 수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8월 1일, 오늘은 시마네현 소속 초중고 청소년적십자 간부단원 교육이 실시되는 날이다. 우리 RCY 단원들은 일본의 JRC 단원들과 함께 간부단원 교육에 함께 참가하여, 일본의 프로그램을 배우고, 정보를 교환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아침 7시 우리 방문단은 히로시마 아스텔프라자 국제청년회관을 출발하여, 시마네현 미쓰에(松江)시 Sun Lake트레이닝센터로 이동하였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개회식 전 환영회에서 우리 방문단은 일본 관계자들과 JRC단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스미다 노부요시 시마네현 지부장의 환영사, 김각현 경상북도지사 회장의 답사 등이 끝나고, 우리 방문단을 소개를 하였다. 특히 한국의 RCY단원들은 일본어로 완벽하게 자기소개를 하여 더욱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곧이어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시마네현 청소년적십자 지도자협의회 회장의 인사말, 교육장 축사, 황재일 경북 지도교사회장의 인사말, 이런 식순으로 개회식은 간단히 끝났으며, 이후 한일 청소년적십자 멤버대회가 열렸다.
한일 양국의 초중고 대표단원은, '적십자와 평화'란 주제 발표를 하였다. 한국의 중학교 단원 대표로 대창중학교 황규석 학생이 '남북 분단과 우리의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여 많은 단원의 박수를 받았다. -다음 호 계속 - (노춘오, 대창중 교사) (예천신문 2000.9.28)
황규석 학생은 주제 발표문에서 최근 한국적십자사가 중심이 되어 북한 식량보내기운동, 비료 지원, 의약품 지원, 북한 어린이 돕기운동 등을 소개하고, "적십자의 숭고한 인간 존중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 사랑과 평화가 꽃피어날 수 있도록 각국의 청소년들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남북한은 냉전 시기의 대결적 자세를 지양하고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확고히 하여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일본 JRC단원들은 OHO와 VTR 등을 이용하여 지뢰에 대한 실태와 피해를 발표하여 많은 공감을 주었으며, 지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후 질의응답 시간과 토론 시간을 가졌으며, 특히 히로시마 국제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난 후의 느낀 점과 일본 학생들이 한국의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고 난 후의 느낀 점도 발표하였다.
일본 JRC 단원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을 수학여행 때 방문했다고 하였다. 그 학생은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후 일본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같은 일본인으로서 놀랐으며, 한국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며, 용서를 구했다.
많은 관계자와 우리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이것이 바로 적십자의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모인 우리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양국 간의 우호 증진에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미쓰에(松江) 뉴 아반호텔에 여장을 풀고 난 뒤, 시마네현지부 주최 만찬회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는 야수히코 이마오카(今岡康彦) 시마네현 출납장, 히로시이와타(岩田弘志) 사무국장, 장성섭 경북도청 파견공무원, 일본적십자 직원 등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만찬회가 열렸다.
만찬회에서 경상북도 적십자사와 시마네현 적십자사 간의 역할, 교류 방안과 성과 등과 지속적인 정보 교환과 우호 증진, 상호 방문의 기회 확대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만찬회가 끝난 후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 오늘 일정에 대한 토론과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 일정을 끝마쳤다.
오늘 내가 느낀 점은 일본인들의 철저함이다. 철저한 시간관념과 철저한 준비 자세다.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시간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준비와 사전 계획, 그리고 연습, 문제점 발견, 해결 등 한 마디로 철두철미한 준비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8월 2일에는 오전 6시 40분에 일어났다. 8시 10분 호텔을 출발한 우리 방문단은 시마네현 혈액센터를 방문하였다. 혈액센터는 적십자 사업 중 하나인 혈액 사업을 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혈액원이라 부르고 경북지역엔 대구에 '경상북도 혈액원'이 있다.
시마네현 혈액센터는 대부분이 컴퓨터화되어, 현대화된 시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마네현 혈액센터에는 소장 이하 60명의 직원이 있으며, 출장소와 이동 헌혈차 3대로 운영하고 있다. 혈액을 공급하는 과정은 체액(헌혈), 검사, 안정 테스트 과정이 이루어진 후 병원에 공급한다. 혈액센터에서는 '얼마나 안전한 혈액 상태로 얼마나 병원에 공급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최근 수혈자는 증가하고 있으나, 헌혈자가 감소하고 있다. 평일엔 20여 명, 토요일엔 50여 명이 헌혈을 한다고 한다. 이는 최근 많이 감소한 것으로 일본도 혈액이 조금씩 부족해지는 경향이라고 한다. 검사 과정에서는 혈액형, 에이즈 감염 여부, 감염 바이러스, 매독 등 성병 검사 등 네 가지가 대표적인 검사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철저히 검사한 후 필요한 부분만 체취해 수혈을 필요로 하는 병원에 공급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다음 호 계속- <노춘오, 대창중 교사>(醴泉新聞 20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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