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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사랑까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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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스크랩 [JMS/정명석목사님] 여호와이레 (아브라함)
천국의돌 추천 0 조회 45 06.08.09 16:5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창세기 22장 1절~19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슬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중략)...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아브라함 하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알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본래부터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버지의 풍습을 따라서 이방의 신앙을 가졌던 사람으로 우상을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모태 신앙자는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서 섭리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계에서 출발했던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했나에 대한 것이 창세기 22장에까지 걸쳐서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 가운데 몇 가지 큰 역사적 사건들이 있습니다. 핵심적인 노정을 성경 본문을 보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간 것입니다.
<창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그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역사의 노정 가운데 크나큰 이변이었습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에게 크나큰 역사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소돔 땅을 심판하러 가시다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창18:1~33>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뒤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진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느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세 번째는 그의 노년에 낳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슴을 듣고 아브라함이 지체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물로 드리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창22:1~9>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보시고 사자로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 외에도 아브라함을 중심해서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특히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을 중심해서 교훈을 삼으며 말씀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다

아브라함이 일편단심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사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22장에 나오는 상황이 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처음 빼내신 후 굉장히 오랜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집을 떠나 가나안에 온 후 바라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 특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지길 원했고, 또 하나 원했던 것은 자손 두기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원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아들을 낳게 도리라" 했습니다(창15:1~4, 창17:15~19, 창18:9~14). 아브라함이 바라던 것을 전달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에게 전달되었을 때 사라가 어떻게 한 줄 압니까.
"좋은 이야기이고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지만 나이 먹은 여인이 어떻게 필 수 있겠습니까.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일단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자료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고 불가능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로 가장 입 싸움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은 아이를 못 낳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으면 남자보다 여자의 고통이 더 큽니다. 아기를 못 낳는 여자들의 그 슬픔과 고통은 엄청난 것입니다. 아마 아브라함 가정에서도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고통을 주었기보다 사라 스스로가 자기에 대한 곤고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어쨌든 자녀를 둬야 되겠기에 사라가 자기의 종 하갈을 허락해서 아브라함으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종을 나기 남편의 애인으로 줄 때 얼마나 심정이 상했겠습니까? 속이 있는대로 다 상했겠지만 자기는 못 낳는데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종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었던 사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들을 낳게 해주리라." 했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어야 되는데 거기서 의심을 했습니다. 사라가 그렇게 심정의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라가 먼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육적으로 생각하면 경수도 끊어졌고 그마만큼 불가능했습니다. 사라가 그렇게 육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했습니다.
대개 보면 아쉬워하고 믿어야 될 사람이 안 믿는 일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했던 일이 왔는데 꼭 믿고 따라가야 할 사람이 오히려 더 안 믿더라는 것입니다.
사라가 안 믿었으나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결국 아슬아슬하게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일의 결국이 되었을 때 사라가 하늘 앞에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이삭에 대한 기대

이렇게 하여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는데 이 집의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태 신앙자가 아니라 중간부터 믿었다고 했는데, 중간부터 믿었던 이들 가정에 이제 자손 대에서는 모태 신앙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집에서 이삭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는 새로이 전환하여 종교 생활을 하면서 경험을 하다 보니까 늙었다. 이 이삭으로 우리가 못한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꼭 철통같이 이루게 하자. 이삭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신앙을 넣어줘서 종교의 경험을 얻다 늙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경험을 다 가르쳐주자. 하나님은 절대 계시니 이렇게 이렇게 믿도록 하라고 가라치자." 하면서 이들은 멋있게 구상을 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시다

아브라함은 늘 이렇게 이삭을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도 수시로 데리고 가서 보게 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실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옵소서."
"네 아들 이삭을 저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단을 쌓아 거기서 번제로 드려라. 내가 그 번제를 받겠노라."
이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깜짝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자기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그 때 처음 들은 것이 아니라 자주 듣고 자주 일 해왔기 때문에 평소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과거에 진행할 때마다 착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밀을 지킨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그 음성을 듣고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 들은 음성은 극비의 일이었고 옆의 사람이 들으면 큰일 날 이야기였습니다. 동네 사람에게 가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고, 부인에게도 할 수 없는 그런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이야기하면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거기서 사라에게 이야기했다면 사라가,
"으악! 잘 못 받은 것이다. 기도를 다시 해봐라. 하나님이 줘놓고 세상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당신이 못 하겠다면 내가 기도하겠다. 내가 다시 하나님께 알아보겠다." 이렇게 하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음성을 이삭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 내일 죽는 날이니 준비하도록 하라."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이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사건이 아브라함이 자기만 알고 아무도 모르게 정신 바짝 차리고 비밀을 간직하고 가면 끝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러 가면서 다만 사라에게 이런 이야기는 했을 것입니다.
"여보, 오늘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을 드린다. 오늘도 종전과 같이 이삭을 데리고 갔다 오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집을 떠나면서 생각이 변치 않게 하기 위해서 결심하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구나. 극적인 사랑으로 이렇게도 사랑하시는구나. 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러면서 굳센 믿음을 먹고 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킨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1장에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한 것입니다.


100점 나오는 믿음은

모리아 산으로 가던 중에 아들 이삭과 아버지 아브라함 간에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준비되었는데 번제할 것은 어디에 있어요?"
이 정도의 질문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을 보면 간단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해서 친히 준비하셨다. 내가 언제 나무에다 불만 지르고 만 일이 있느냐. 제물을 꼭 갖다 놓지 않았느냐."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하나님이 예비했다고 했는데 실상 이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째 아내에게 비밀을 지켰고, 두 번째 자식에게 비밀을 지켰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이고, 하나는 혈통의 자식인데 비밀을 지키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니까 모리아 산에 다 왔습니다. 그 때 사환들은 한 곳에서 기다리게 하고 이삭과 더불어 제물을 드리는 곳까지 올라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은 후 아브라함이 다시금 결심을 내렸습니다. 그 때 순간까지도 아브라함은 조금도 '얘가 제물이 아니고 양이 준비되어 있다.' 하는 것을 천만분의 일도 몰랐습니다. 100% 이삭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믿으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100점 나오는 믿음입니다.


여호와이레

아브라함이 결심을 내리고 칼을 딱 들었을 때 이삭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빠! 나 살려줘!" 했을 것입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이 멈칫 하고 오래 있다가 내리치면 정신의 상처만 더 들기 때문에 순간에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순간에 "아브라함아!" 하고 급히 부르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네 손을 멈추라!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사랑하는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바치니 이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아노라."
아브라함이 결국 그렇게 해서 내리치려던 손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았으니 제물을 드려야 되겠는데 제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수양이 덤불에 뿔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른 움직여서 '저 놈을 잡아서 제물을 드려야 되겠구나.' 하고 그 산양을 잡아다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구나' 하고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 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이삭에게로 이어지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살게 되었지만 그 아들 이삭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를 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해를 시키지 누가 시키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마음을 싹 돌아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해를 시키려고 하면 힘듭니다. 하나님이 감동시키니까 이삭이 그 되어진 결과를 보고서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그러니 저 사람을 따라가면 망할 리가 있겠냐. 우리 아버지는 위대한 사람이로구나.'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을 싹 돌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절대적 믿음을 지켰을 때 그 자녀도 이를 통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이 정도로 사랑해야 되겠구나. 이러한 위치에서 아버지처럼 살아야 되겠구나.' 하고 그 때부터 평소의 개념을 고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믿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키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많은 대적자들이 있었는데 그 문을 얻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적의 문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마음의 문들을 사탄에게 맡겼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맡아서 그 문들로 통과하고 그 문의 주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던 것인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이 없어 애타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고 왜 다시 자식을 짐승을 제물로 드리듯 드리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 중에는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자식만 사랑하고 하나님은 사랑치 않을 것인가 보려고 하셨습니다. 귀하게 얻은 아들이었으므로 아들 사랑하기에 지나쳐서 주신 자에게 신경을 안 쓰고 영광을 돌리려 하지 않는가를 보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면 절대 말씀을 순종하고 바칠 수 있는지 그 신앙을 아시지만, 확인하여 후대에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더욱 입증시키려 하심이었습니다.
이 시대도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이나 애인이나, 어떠한 것일지라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을지 모두 스스로를 깨닫고 절대적인 믿음과 행실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시대입니다. 흔히 믿음은 철저히 가지고 있지만 행실에 항상 문제가 생기고 실패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세 번째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리게 된 원인은,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릴 때 모든 제물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갰으나 새는 쪼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쪼갠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아브라함의 제물이고, 안 쪼갠 것은 세상을 상징하는 사라의 제물이었습니다. 거기서 세상을 상징하는 제물이 열납되지 않았으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화목하지 못한 제물을 드리면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마5:23~26). 그 제물을 드릴 때 아브라함과 사라 간에 서로 심정적으로 걸린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시게 하기 위해 서로 화목하고 서로 꺼림 없는 마음과 행실로 제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제물 실수를 함으로 더 큰 조건을 세우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과거의 실수를 면하게 되고, 후대의 하나님의 역사에 차질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절대 순종하고 자식을 잃을망정 하나님을 잃지 않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미련없이 자식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이삭 대신 수풀에 걸린 수양을 아브라함으로 보게 하고 제물로 바치게 했습니다. '여호와이레'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자들에게 믿음과 행실에 의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그것을 얻도록 하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어도 우리가 뛰고 달리고 땀 흘려 노력하고 책임분담을 하며 행해야만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준비해 놓으시니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준비하고 예비함이 합당하며 그것이 우리가 해야 될 크나큰 일들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각자 끊임없는 노력과 몸부림을 쳐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들입니다. 사명자가 그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을진대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뜻을 위해 사는 자만이 하나님이 준비한 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쓰게 되고, 자신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이레'라 했으니 낙심치 말고 앞날을 생각하며 열심히 뛰고 달려 일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을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임을 절실히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충성된 삶의 가치를 모릅니다.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행실의 조건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역사적인 조건을 세운 곳이므로 결국 하나님은 그 절대적인 믿음과 행실의 제단터에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서게 하셨고, 그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가 끊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 이 시대도 아브라함과 같은 동시성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깨닫고 우리들도 그런 절대적인 믿음과 행실의 신앙생활로 매일 드리는 삶의 제단이 끊이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고, 행실이 없으면 하늘과 자신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물질이나 자식이나 명예나 권세나 환경이나 각종 인간사에 필요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안 됩니다. 받았으면 더욱 감사하고 더 감격하고 더 좋아하고 하나님을 섬겨야지, 그것을 중심함으로 하나님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형제끼리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서로 사랑함의 제물을 드려야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십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최고 사랑하는 것으로 더 큰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시험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장난 것을 고치지 않고는 써먹을 수 없듯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시험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되고, 천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법을 벗어나면 오래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평화가 오고 화평이 옵니다. 서로 미워하면 전쟁이 오고 각자 인생에 괴로움이 옵니다.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조건을 세웠듯 이 시대 우리도 믿음과 행실 조건에 산 자가 되어 시대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과 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주의 사랑과 동행하심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 정명석 목사님
  조은소리 2004. 8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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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8.10 10:48

    첫댓글 아멘 감사^^*

  • 06.08.10 14:19

    감사 퍼갈께요~

  • 06.08.10 15:58

    모든 것은 여호와 이래라 ..^^

  • 06.08.12 17:53

    아~~멘~~

  • 06.08.14 14:4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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