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시? 김선달? 뭐지?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꿈꾸던 소망이었다. 때문에 과거 급제 열망은 양반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오늘까지 그 흔적이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한 문학 작품이나 무심코 나누는 대화 속에 녹아 있는 과거 시험과 관련된 흔적 몇 가지를 살펴보자.
‘한량’ 같은 삶이 좋아
저 사람 한량일세! 하는 일 없이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한다.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명단인 방목(榜目)을 보면 합격자 이름 앞에 한량(閑良)이라 쓰인 것이 많다. 한량은 무과 시험 생. 문과 급제자 앞에 쓰여 있는 ‘유학(儒學)’도 같은 의미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와전되어 한량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소녀의 할아버지는 윤‘초시’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윤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며칠째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속에서 건진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하며 던졌다.”
황순원 작가가 지은 소나기의 한 구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린 시절에 누구나 느꼈던 이성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수채화 그리듯이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평화스러운 농촌을 배경으로 도회지에서 온 윤초시 손녀와 시골 소년의 애틋한 감정의 흐름이 주된 골격을 이루는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다 알 것이다. 소설이 주는 정감에 취하다 보면 소설 속 단어들은 별 생각 없이 지나친다. 그런데 ‘초시’가 뭘까?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展試) 3차례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초시는 1차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이란 뜻이다. 윤초시는 1차에만 합격한 윤씨 성을 가진 시골 양반이라는 의미가 된다. 과거 시험 근처에 가 본 양반 행세는 해야 하겠기에 초시라는 호칭을 붙인 것이다. 과거 급제의 열망은 높았지만 넘을 수 없는 실력의 벽 앞에서 멈춰야 했던 양반의 자화상을 반영해 주는 말일 수도 있다. 소나기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소녀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자본주의 경제가 일반화된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후로 보인다. 1894년에 과거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윤초시의 나이를 감안하면 윤초시 윗대가 초시에 합격하였고 그 호칭을 후대도 이어서 부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서‘생원’을 소탕하라
1950~60년대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쥐잡기 독려 기사의 제목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 여름철 땀 흘려 수확한 곡식을 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머리 위를 스쳐간다. 흔히 쥐를 서생원(鼠生員)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에 나약하고 힘없던 생원을 쥐로 의인화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인상과는 달리 생원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생원은 진사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생원은 생원과(生員科)에 급제한 사람에게, 진사는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던 ‘영광스런’ 호칭이다. 생원과는 경전 이해력 시험으로써 경서(經書)를 외우게 하고, 진사과는 문학 능력 시험으로써 시(詩)를 짓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두 시험을 합쳐 사마시(司馬試) 또는 생진시(生進試)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하면 생원이나 진사가 되지만 정식 벼슬은 아니고 일종의 명예직이다. 그렇지만 어엿한 양반으로 인정받는 의미 있는 호칭이다. 그리고 생진과에 급제한 사람은 성균관(成均館)에서 일정 기간 공부를 하면 대과(大科) 즉,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생진과에 응시하는 양반이 많았고, TV사극을 보다 보면 김진사와 김생원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대책’을 내시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시와 문장을 짓는 능력, 그리고 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을 시험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급제할 정도이면 어느 정도 문학적 소양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급제자들이 몸담을 곳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영욕이 점철되는 현실의 세계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가 시시각각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문학적 소양만 가지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또 다른 세계였다. 따라서 과거 시험에는 당시의 주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하는 문제를 내기도 했다. 이것이 책(策), 책문(策問)이다. 문과 2차 시험에서는 33명을 선발하고 마지막 3차에서는 왕이 직접 등수를 결정한다. 등수 결정을 위해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데, 이때 보통 ‘책문’이 제시된다. 그러고 이 책에 대하여 응시자가 제시한 답이 대책(對策)이다. 중종이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을 묻자, 조광조가 ‘임금 혼자 정치를 하기 보다는 신하들과 더불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하였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오늘날 더욱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이 칼럼이 단연 ‘압권’이다
수많은 대상 중 최고를 가리킬 때 압권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것이 과거시험 과정에서 나온 말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응시생 중 2차에 33명을 선발하여 성적순으로 쌓아 올려놓고 임금이 편하게 답안지를 살펴 볼 수 있도록 했다. 보통 2차 시험 최우수자가 최종 시험에도 장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 장원한 답안지를 맨 위에 올려놓는다. 시험 답안지를 시권(試卷)이라 하는데, 장원을 한 답안지는 그야말로 모든 답안지를 위에서 내리 누르고 있는[壓: 누를 압] 모양 곧 압권(壓卷)이다. 이러한 유래로 인해 압권은 가장 뛰어난 것을 이르는 말이 되어 오늘날 우리도 흔히 사용하고 있다.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봉이(鳳伊) 김선달은 조선 후기 구전 설화 등장인물로 평양 출신의 사기꾼이자 건달의 대명사로 불린다. 닭을 봉황이라 속여 욕심쟁이 닭장수를 골탕 먹이고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전설적인 사기꾼이다. 그런데 김선달은 김씨 성의 남성에게 붙인 호칭이지 이름이 아니다. 선달이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벼슬을 했으나, 자신이 원해 벼슬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남은 자리가 없어서 관직에 임명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급제하고도 관직을 하지 않은 사람을 ‘선달(先達)’이라 불렀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을까? 조선 후기에 가면서 과거가 무분별하게 시행되었다. 전기의 성종은 재위 25년 동안 29회, 명종은 22년 동안 26회의 과거를 실시하였다. 반면 조선후기에 와서 헌종은 15년 동안 23회, 철종은 14년 동안 26회 등 전기에 비해 많은 과거를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급제자의 수도 매우 늘었다. 그런데 무과의 경우 관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급제하고도 보직을 받지 못하거나 명예직으로 지내다 은퇴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벼슬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 당파에 속하거나 뇌물을 바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벼슬을 받지 못하거나 벼슬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들을 통칭하여 선달이라 불렀다. 오늘날 이 용어는 웃으면서 말하는 용어가 되었지만 그 유래는 어렵고 암울했던 시대의 소산이었다.
나 죽거든 비문에 ‘처사’라고만 써라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이 죽으면서 한 말이다. ‘처사(處士)’란 무엇일까? 제사를 지낼 때 지방문에 ‘현고처사부군신위(顯考處士府君神位)’라고 쓴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막연히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라는 정도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은 뭘까? 관직이 없었다는 점에서 학생과 처사는 같은 말이 아닌가? 사실 오늘날은 지방을 쓸 때 거의 같은 말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처사’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다. 조선 중기 이후 극심한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계로 나가지 않고 고향에 은둔하며 제자를 기르는 선비들이 늘었는데 이들을 처사, 은사(殷士), 유일(遺逸) 등으로 불렀다. 이 중 처사는 지금까지도 명망 있는 선비를 가리키는 대표적 호칭이 되고 있다. 조식, 서경덕(徐敬德) 등이 대표적인 처사라고 알려진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지방문에 쓰이면서 ‘학생’과 함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통칭하는 것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학식 있는 선비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전통적 의식의 아직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도 곰곰이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의미 있는 유래가 있는 것들이 많다. SNS에 난무하는 정체불명의 단어로 언어생활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동안 고문헌들은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이 만들어 가는 한국학 자료 서비스들과의 만남을 통해, 친숙한 단어의 의미를 알고 쓰면 우리의 안목이 한 층 넓어질 것이다.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