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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품초등학교 제29회
 
 
 
카페 게시글
음악/유머/수다 스크랩 이성원 - 진주 난봉가
강병권 추천 0 조회 312 13.06.07 14: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용우

 

 

김영임

 

 


노찾사


 



서유석

 

 



이정식(연주곡) 

 

 

 

2007년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에서 초연한 것으로 합창뮤지컬로 공연했습니다.

5년의 기획을 마치고 전곡을 완성하여 2010년 8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8시에서 연주되었습니다.

 

 

국악마을 제4회 정기연주회

 

 

퓨전국악 아나야(Anaya), 북촌 창우극장 공연 영

 

 

퓨전국악 아나야(Anaya), 인천 아트플랫폼 공연

 

 

목원대 이영신교수 가야금병창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

우리나라 유일의 재즈전문프로그램 아르떼TV재즈홀릭의 17회차 손님 재즈크로스오버 편의 진주난봉가입니다.

르떼재즈홀릭은 클래식전문TV 아르떼TV와 사단법인 한국재즈협회가 공동주관하여 제작한 우리나라 유일의 재즈전문프로그램입니다.

 

 

 

 

 

 

 

포크와 국악의 만남, 이성원의 창작 국악가요 앨범, <동쪽 산에>

이 땅과 하늘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엮어낸 12개의 노래들. 구음(口音)만으로
소떼를 불러 모았다는 이성원만의 혼(魂)과 음악세계가 오롯이 표현된 쾌작(快作)이다.
그의 자작곡 앨범으로 구성된 [동쪽 산에]는 이성원 음악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포크와 국악의 접목이 실천되고 있다. 포크 음악이 추구하는 시적인 세계와 한국 전통음악에 함유된 힘과 깊이를 유기적으로 결합, 그의 음악에는 진지한 사유와 신명남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다.

'동쪽 산에'는 고요와 어둠의 나라에 힘찬 빛을 뿌리며 태양이 돌아오는 풍경을 한국
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로 아로새긴 국악가요이며, '휘몰이'는 서양음악에 밀린 우리 음악의 힘을 자랑하는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 작업.

01 동쪽 산에
02 물동이 메고 이고
03 님은 홀로인가
04 구름 타령
05 문 밖에 봄빛은
06 밭
07 휘몰이
08 보아라 수야
09 진주난봉가
10 저기 강물이
11 왜 여기에
12 꿈같은 세월이여

 

 

 

  순수의 메아리 된 우리가락 우리소리

 

불혹의 나이에 동요음반을 발표한 포크가수 이성원. 흔치 않은 동요 가수로 대중들은 그를 기억하지만 사실은 곽성삼, 김두수와 더불어 1980년대 3대 언더 포크가수로 가요 마니아들의 추앙을 받는 아티스트다.

 

덥수룩한 수염에 치렁치렁한 장발은 기인의 향내를 풍기지만 자유로운 영혼에 순응하는 외견일 뿐 실은 맑은 영혼으로 노래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다.

 

그는 포크로부터 출발해 국악과 민요, 동요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노래해 왔다. 최근 동요가수로 제법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화려한 주류무대와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그저 자신의 노래를 듣기 원하는 돈 안되고 소박한 무대만을 찾아 나서는 별난 사람이다.

 

그의 동요는 기억 저편에 실종된 어릴 적 추억과 다정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되살려놓는 마력을 지닌 가락이다. 똑같은 동요도 그가 부르면 가슴이 시려온다. 그래서인가 그의 동요가락은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오히려 즐겨 듣고 눈물을 훌쩍인다.

 

이성원의 노래 가락은 살벌한 생존경쟁사회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아침 이슬 같은 무균질의 결정체이다.

 

이성원은 1961년 4월 5일 경남 진해에서 지방지 신문기자로 활약하다 개인사업을 했던 부친 이석곤과 모친 김기연의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엔 갖기 어려웠던 전축을 갖춰놓고 재즈 등 흑인 음악을 즐기고 노래자랑대회에서 입상을 했을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음악 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윤택한 집안의 외아들 이성원이 음악의 달콤함을 일찍 알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진해 도천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물동이를 지고 가면서 바람에 부대끼는 뒷산 대나무 소리 등 온갖 자연의 소리가 좋았던 이성원. 4학년 때 하모니카를 가르쳐주신 고정엽 선생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부친이 황달과 고혈압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는 모진 고생을 겪으며 어렵게 네 자녀를 키웠다. 진해 중학교 때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수업 중에 집으로 쫓겨와 정학까지 먹을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만도 기적이었다.

 

같은 처지의 여동생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졸업장 없는 졸업생이 되었다.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현실에 순응했다. 진해상고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우연히 접한 통기타소리는 답답한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졸업 후 신문, 우유배달과 가구점 일꾼으로 전전했다. 그러나 우유 배달 중에 어려운 노인이나 아이들을 만나면 우유를 거저 나눠주고 신문 배달 때는 못된 20명의 불량배들과 한판 대결을 벌였을 만큼 정 많고 의협심 넘치는 청년이었지만 일꾼으론 미덥지 못했다.

 

1981년 해태유업에서 전국의 직원을 대상으로 장기자랑대회를 열자 노래로 1등을 해 상금으로 빚진 우유 값을 갚고 나왔다. 이후 세광전지의 지점에 사무직으로 취직해 1년간 근무했다. 어느 날 ‘합창단을 조직하라’며 본사로 부터 기타가 지급됐다.

 

독학으로 기타연습을 하고 있던 터라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러나 업무 시간에 몰래 회사 공중목욕탕에서 매일 기타를 튕기자 구내매점 주인이 고자질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후 음악적 방향도 없이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은 마음에 카페들을 방랑하며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가수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을 했다. DJ 이종환이 운영하는 명동 쉘브르의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했지만 떨어졌다.

 

이후 무명 통기타 가수로 소일하다 빚을 내 이화여대 정문 앞에 ‘쉼표’라는 카페를 열었다. 영화사 ‘신씨네’의 신철과 배우 명계남 등 신촌 쪽에서 놀던 특이한 연예인들이 당시 내 카페를 아지트로 삼고 드나들었다.

 

카페를 작은 공연장으로 삼아 마음껏 노래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며 이성원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당시 김민기, 한대수, 송창식, 양희은 등이 부른 노래 전곡을 ‘파 들어가며’ 연습했다.

 

하지만 양희은이 불렀던 김민기 곡 <밤뱃노래>속의 전통가락이나 특히 <진주난봉가>의 구수한 우리 가락이 가슴을 파며 스며 들어왔다. ‘내가 무엇을 노래해야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가락을 노래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던 시기였다’고 이성원은 회고한다.

 

1985년 어느 날 봉은산에 별을 보러 올라갔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신기하게 움직이던 별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정신을 잃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코밑의 상처는 그때 입었고 한동안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이성원은 말한다. 기이한 경험은 1집 수록곡 <선인장>의 악상이 갑자기 떠오르며 창작의 물꼬를 터트렸다.

 

 

고품격의 우리가락 지킴이

 

이성원은 1986년 정기적인 개인콘서트를 크리스탈 문화센터에서 열며 자신의 음악빛깔에 덧칠을 해나갔다. 창작곡으로 꾸며진 데뷔음반<문을 열고 나서니-아세아,1987년>은 제작사의 야심에 찬 홍보전략으로 제법 촉망 받는 인기가수의 꿈을 키우게 했다.

 

 

그러나 방송국 PD에게 촌지 봉투가 오가는 것을 보자 음악보다 돈이 우선하는 현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1집은 이성원의 국악적 향내를 철저하게 지워내는 편곡으로 제작된 평범한 앨범이었다.

 

 

그는 ‘솔직히 음반을 낸다는 욕심에 상업적으로 타협했다’고 고백한다. 이후 상업적인 음악활동과는 거리를 두며 우리가락을 포크와 접목하는 음악실험에 몰입하며 즉흥 창작 무용곡에도 빠져들었다. 1988년 겨울 평택에서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동화처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소들이 숨쉴 때마다 내뿜는 하얀 김이 장관을 이루자 만져보고 싶어 다가갔다. 소들이 기겁을 하며 달아나자 돌아서기 섭섭해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자 흩어져있던 소들이 신기하게도 스스로 뿔을 들이대거나 혓바닥을 내밀며 몰려들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자 우리 가락은 자연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가슴 뻐근한 감동이 밀려왔다.

신비로운 경험은 더욱 자유로운 음악 날갯짓으로 1989년 첫 국악 가요 발표회로 이어졌다. 2집<나무밑에서-서울음반,1991년>은 자신의 음악색깔을 고스란히 담은 사실상의 데뷔 음반이다. 이정선이 편곡작업을 거들고 김두수는 기타 세션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한편의 시나 다름없는 수록곡 <밭>의 절제된 가사는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2집 발표 후 골수 팬들이 생겨나 지금까지 묵묵하게 도와주는 후원자가 있다.

 

올해 발표한 2장의 신보도 그 분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성원. 수록곡 <보아라 수야><구름타령><밭>은 1980년대를 수놓을 만한 한국적 가락의 정통 포크곡들이다.

 

오선지의 틀조차 깨기 위해 한 음 한 음 직접 기타 줄을 튕기며 곡을 만드는 그의 창작작업은 독특하기만 하다. 이성원은 2집 발표 후 활기찬 활동으로 국악가요의 영역을 넓혀 나가던 중 1993년 인도의 명상음악과 조우하는 음악적 전환점을 가졌다.

 

‘제 3세계음악의 폭풍'이라 불리며 미국과 유럽을 발칵 뒤집었던 인도의 세계적 거장 라즈니쉬와 아쉬람 현지 공연에서 인도 라가풍의 명상음악과 우리민요가락의 충돌은 황홀한 불똥을 튀게 했다. 이때부터 이성원은 인도음악에 대한 관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1996년 어느 날. 일본의 한 유명가수가 그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찾아왔다. 우리가락을 배우겠다는 열의가 예뻐 음악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의 음악을 도용해 음반을 발표해 버렸다. ‘동양의 매력을 내뿜는 새로운 작품’이라며 일본 음악계가 들썩했다.

 

일본에 초청돼 오사카에서 함께 공연하면서 자신과 우리 음악을 도난 당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성원은 ‘나는 역사를 바꿀 힘은 없지만 노래로 표현할 힘은 있기에 답답한 패잔병의 유산이 청산될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동요를 부르게 되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석에서 노래할 땐 언제나 동요를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등이 수록된 1999년 첫 동요음반<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도 어느 조촐한 자리에서 그의 동요를 듣고 감격한 사람들이 강력하게 음반작업을 추진해 맺은 결실이다.

 

올 초 두 장의 음반을 동시 발표했다. 먼저 3집<동쪽 산에>는 2집 수록곡들을 재해석하고 사물놀이의 신명과 휘모리 장단을 현대적 기법으로 채색한 국악 포크 음반이었다.

 

그리고 두번 째 동요집<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에 수록된 티없이 맑고 시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클레멘타인>으로 더욱 대중들에게 다가섰다. 최근 그는 수많은 동요공연과 환경운동 팀과 함께 전국을 도는 환경공연을 3개월간 벌였다.

 

또 5월 부처님 오신날 성북동 길상사에서 불자들을 대상으로 정태춘, 박은옥과 함께 했던 탈북자를 위한 자선공연과 동부 이촌동 강변교회에서 기독교 신자들을 위해 노래했던 찬송예배 공연은 뜻 깊고 이색적인 자리였다.

 

특별한 종교가 없는 그는 모든 종교인들의 화합을 위해 정성스럽게 노래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성원은 ‘동요는 내 많은 음악 보따리 중 한 주머니일 뿐’이라며 인도명상음악과 우리 전통가락을 아우르는 작업에 큰 갈증을 드러낸다.

 

그는 요즘 ‘한국 포크의 정신 김의철 선배와 전통가락을 파고드는 포크 음반작업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며 고 품격의 한국가락을 꿈꾼다. 잊혀져 가는 동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는 가난한 노래꾼 이성원은 한국 대중가요를 살찌우게 할 또 하나의 희망이 아닐까!

 

최규성 가요칼럼리스트

 

 

 

진주낭군가(晉州郎君歌) - 시집살이 노래(진주난봉가)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볼라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게.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니 물도나 좋고 돌도나 좋고.
이리야 철석 저리야 철석 어절철석 씻고나 나니.
하날 겉은 갖을 씨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 못 본 체로 지내가네.
껌둥빨래 껌께나 씻고 흰 빨래는 희게나 씨여.
집에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님 하시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볼라그덩,
건너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바라.
건너방에 건너가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보니,
오색 가지 안주를 놓고 기생 첩을 옆에나 끼고 희희낙낙하는구나.
건너방에 건너나 와서 석 자 시 치 멩지 수건 목을 매여서
내 죽었네.
진주 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첩으야 정은 삼 년이고 본처야 정은 백 년이라.
아이고 답답 웬일이고.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가 : 미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미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민요(부요(婦謠), 서사민요 : 일정한 인물과 사건을 갖춘 이야기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서사 민요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형식 : 4음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한탄적, 애상적, 고백적, 서사적(
화자의 감정을 노래한 서정 민요이지만, 서사적 줄거리를 가지고 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기 : 가난하고 외로운 삶

승 : 남편의 귀가

전 : 화자의 기대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함

결 : 배신감으로 인한 화자의 자살과 남편의 후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표현 : 반복법, 대조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시집살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시집살이의 한(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채집지 : 경북 영양 지방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울[울타리]도 담도 없는 집[시집의 곤궁한 형편을 말함]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기 : 가난하고 외로운 삶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 낭군[
남편]을 볼라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게[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기 자식의 바람 피우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시어머니와 아들이 한 통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니 물도나 좋고 돌도나 좋고.
이리야 철석 저리야 철석 어절철석 씻고나 나니[
남편을 본다는 데에 대한 화자의 설렘을 반영].
하날 겉은 갖을 씨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
한량 남편의 모습, 하늘과 구름은 시적 화자가 우러러보지만 닿을 수 없는 소재들이다. 우러러보아야 하는 소재를 끌어댄 데에서는 멋진 진주낭군에 대한 애정(자랑스러움)을 읽을 수 있지만 시적 화자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거리감도 느끼고 있다.] 못 본 체로 지내가네[남편의 냉대].- 남편을 보러고 남강에 빨래하러 갔는데 남편은 모른 척하고 지나감 - 승 : 남편의 귀가
껌둥빨래 껌께나 씻고 흰 빨래는 희게나 씨여.[
대충대충 씻어, 남편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 반영]
집에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님 하시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볼라그덩,
건너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바라.
건너방에 건너가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보니,
오색 가지 안주를 놓고 기생 첩을 옆에나 끼고 희희낙낙
(喜喜樂樂 :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하는구나. - 집에 돌아와 기생첩을 끼고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남편을 봄 - 전 : 화자의 기대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함
건너방에 건너나 와서 석 자 시 치 멩지 수건[
석 자 세 치 길이의 명주 수건] 목을 매여서
내 죽었네[
화자의 절망].
진주 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첩으야 정은 삼 년이고 본처야 정은 백 년이라.[
남편이 화자가 되고 있는 부분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뒤늦은 후회를 말하고 있음]
아이고 답답 웬일이고[
아내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결 - 아내의 자살과 남편의 후회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와서 삼년을 지내고 나니,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아가 아가 며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만나 보려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려무나"
진주 남강에 빨래를 가니 물도 좋고, 돌도 좋다.
이리 철썩 방망이질을 하여 빨고 나니,
하늘 같은 갓을 쓰고, 구름같은 말을 타고 못 본 체하며 지나가네.
검은 빨래는 검게. 흰 빨래는 희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아가 아가 며느리 아가. 진주 낭군을 보려거든,
건넌방에 건너가서 사랑방문을 열고 봐라."
건넌방에 건너가서 사랑방 문을 열고 보니
갖가지 안주를 놓고 기생첩을 옆에 끼고 희희낙락하는구나.
건너방에 건너와서 석 자 세 치 명주 수건으로 목을 매어 나는 죽었네
진주 낭군이 버선발로 급히 뛰어나와
첩과의 정은 삼 년이고, 본처와의 정은 백년이라.
아이고 답답해라. 이게 웬일인고?

 

이해와 감상

 경북 영양 지방의 한국의 구전민요(口傳民謠)로 남존여비의 유교적 ·봉건적 도덕률 속에서 각종 사회적 구속에 얽매여 시집살이를 하던 부녀자들의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그들의 슬픔과 고난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것이 많아 부요(婦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집살이 노래의 특징은 그 문체나 수사(修辭)가 굳이 유식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평민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한 점으로서, 영남지방에 많이 전해지는 내방가사(內房歌辭)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시부모의 학대, 남편의 배신, 고된 노동 등 시집살이의 고초를 영탄조(詠嘆調)로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나, 그 중에는 압제자의 횡포와 맞서 그들을 비난하며 자유롭고 보람 있는 생활을 관철시키고자 한 내용을 익살과 풍자를 섞어 반항적으로 노래한 것도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남편의 배신을 소재로 한 것이 특이하며, 임을 만나려는 주인공의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으며 줄거리가 있다는 것도 다른 노래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자살로 해결하려는 점은 이 작품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1

 영남지방의 서사민요. 부녀자들이 주로 부른다. 진주낭군을 보려고 진주 남강에 빨래하러 갔다는 대목이 있어 노래 이름을 ‘진주낭군’이라 한다.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남편의 배신 때문에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다.
서두는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년 살고 나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런 형편인데도 남편은 없다. 남편인 진주낭군을 보려거든 진주 남강에 빨래하러 가라 해서, 흰 빨래는 희게 씻고, 검은 빨래는 검게 씻고 있노라니, 남편은 하늘 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 못 본 듯이 지나간다.
 초라한 행색으로 집으로 가 사랑문을 열어보니 남편은 기생첩을 옆에 끼고, 오색가지 안주를 놓고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자살을 하니, 그제서야 남편이 뛰어나와 첩의 정은 잠깐이고 본처의 정은 변하지 않을 터인데 왜 죽었느냐고 나무라는 것이 결말이다.
남편과 아내의 처지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남편의 배신에 대한 항변이 준엄하다. 짧으면서도 묘미가 있는 서사민요이다.≪참고문헌≫ 敍事民謠硏究(趙東一, 啓明大學出版部, 197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2

 옛여인들이 부르던 서사민요의 하나로 〈진주난봉가〉라고도 한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살이 3년 만에/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진주낭군 오실 것이니 진주 남강 빨래가라"로 시작된다. 가난한 시집에서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를 하나 남편인 진주낭군은 기생첩을 데려오고 아내를 외면하자 목을 매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죽은 아내를 보고 진주낭군이 "첩의 정은 3년이요 본처의 정은 100년인데 너 그럴 줄 내 몰랐단다"라고 후회하는 것으로 마친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횡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의미 깊은 사설이다. 같은 내용의 노래는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나타나지만 특히 남편을 진주낭군이라고 한 사설은 경상도지역에서 부른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집살이노래

 시집간 여자가 시집생활에서 겪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노래. 시집살이노래는 민요를 내용에 의해 분류한 명칭으로서, 전문적인 소리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보편적 민요로 부녀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노래는 한 여성의 개인적 체험이면서 모든 여성의 공통적 경험인 ‘시집살이’라는 독특한 생활을 그리고 있어 다양한 유형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설 역시 매우 풍부하다. 다른 민요가 일의 형태가 변함에 따라 사라져 가는 데 비해 시집살이노래는 구체적 일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상의 필요에 의해 불리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비교적 활발히 구연되고 있다.

시집살이노래는 본래 일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이나, 현재에 와서는 원래의 기능을 잃고 비기능요화하고 있다. 본래 시집살이노래는 어느 한 가지 노동을 할 때만이 아니라 여자의 모든 일, 즉 길쌈·빨래·바느질·취사·밭매기 등을 할 때 두루 불려졌다. 이들 일은 모두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계속적으로 해야 하는 단조로운 작업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집살이노래는 동질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에서 개별적으로 부른다. 남성이나 다른 연령층의 여성이 노래모임에 끼어 있을 때 이 노래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노래 가락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 읊조리는 식이어서 다채로운 변화가 적다. 대신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긴 시간 동안 계속할 수 있도록 길고 다양한 사설로 되어 있으며 서사적, 서정적 양식을 아우르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시집살이노래는 주역인 시집간 여자와 상대역인 시집 식구, 남편, 첩, 친정 식구와의 갈등 양상을 그리고 있다. 주로 시집 식구, 남편과의 갈등이 나타나지만 때로는 첩, 친정 식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시집간 여자와 시집 식구의 갈등은 시집 식구가 시집간 여자에게 대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대우에서 비롯된다. 즉, 시집간 여자는 다른 시집 식구는 모두 집에서 편히 쉬는데 혼자 일을 해야 한다든지, 밥을 주지 않는다든지,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든지 등 다양한 형태로 구박을 받는다.

이에 시집간 여자는 시집 식구로부터 벗어나고픈 욕구를 갖게 되는데, 이런 욕구가 〈중노래〉에서 중이 되어 나가거나 시집 식구가 모두 죽는 결말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가동네 찾아와보니 쑥대밭이 되았구나/다둘러보고 시금시금 시어머니 산소를 둘러보니 시살꽃이 피었구나/시금시금 시뉘애기 묏솔보니 여시꽃이 피었구나/서방님 뫼솔보니 함박꽃이 피어갖고/묏등문이 딱벌어져 나비되어 들어가네”, 또는 〈세원수노래〉에서처럼 시집 식구를 호랑이 굴로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웬술래야 웬술래야/집이로들면 세웬수가 웬술래라/세웬수를 당사실로 낫가내어/범의굴로 보내고자라.”

〈양동가마노래〉의 경우에는 실수로 깨트린 양동가마를 물어내라는 시집 식구에게 시집간 여자가 항의하자 결국 시집 식구가 굴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달과같이나 생긴몸을 바늘같이도 헐었으니/요내몸에 천냥주면 양에가매를 물어옴세/아강아강도 며늘아가 나도야야 젊어서는/죽세기 죽반도 깨어봤다.”

이렇게 시집 식구의 우위로 시작된 갈등이 시집간 여자의 우위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시집 식구의 우위를 규정하고 며느리로 하여금 이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하는 사회 규범에 대한 도전이자 시집간 여자를 한낱 일의 도구처럼 여기고 ‘사람됨’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대한 강한 반발이다.

시집간 여자와 남편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주된 원인은 사랑의 결핍에 있다. 이는 남편이 너무 어리거나, 떨어져 있든가, 축첩을 하는 등 여러 가지 경우로 그려져 있다. 〈진주낭군노래〉나 〈서답노래〉는 기생첩으로 인해 시집간 여자와 남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데, 시집간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감수하지 않고 자살하자 남편이 마지막에 후회를 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나마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석자갓끈 명주수건 목에걸고/아홉가지 약을 입에넣고 목을매어 죽었네/시어머니 하시는말씀 진주낭군 얘야 며느리애기 숨졌다 저것보아라/진주낭군 보선발로 뛰어나와보니/여영갔네 여영갔네 기상첩은 삼년이오/우리둘이는 백년뿐이란데 그순간을 못참았던가/당신은죽었고 나비가되어 나는죽어 나비가되어/화초밭에 만내 이별없이 살자구나.”

여기에서 죽음은 남편에 대한 반발이면서, 남편의 외도를 당연시하는 사회 규범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사회 규범은 여자에 대한 남편의 우위를 규정하고, 사랑 역시 남편의 일방적 태도에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어 시집간 여자의 자유롭고 동등한 사랑의 표현을 억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거부하고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런 사회 규범에 대한 정면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첩은 다른 상대역과는 달리 시집간 여자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시집간 여자는 본부인이라는 지위를 지니고 있는 반면, 첩은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팽팽한 대결을 벌인다. 〈첩집방문노래〉에서 첩을 죽이러 첩집에 찾아간 시집간 여자는 첩의 후한 대접에 그냥 돌아오지만, 세간전답을 반분하자는 첩의 요구는 거부한다.

또한 많은 작품에서 결말에 첩의 부고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시집간 여자의 요구를 성취해 낸다. “첩의년 죽었다고 전보가옹게/쇠고기자장에다 밥을먹고 씹어도 안맛나더니/첩의년 전보받고봉게 소금국에다 밥을먹고도/달고도 잘넘어가네.”

친정 식구와의 갈등은 시집간 여자는 친정 부모나 형제를 여전히 가족으로 여기는 데 비해 친정 식구는 시집간 여자를 ‘출가외인’으로서 거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특히 〈부모부고노래〉에서 시집간 여자가 친정 부모의 부음을 듣고 친정에 찾아가나 늦게 왔다고 꾸짖으며 부모의 시신을 보여주지 않는 오빠들의 태도는 가부장제 하에서 빚어지는 남성의 횡포를 그대로 드러낸다.

시집간 여자는 시집 식구를 비롯해 남편, 첩, 친정 식구 중 어느 누구와도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약하고 불리한 존재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시집살이노래는 시집간 여자의 이러한 현실과 이 현실에 대해 ‘여자의 사람됨’, ‘평등한 대우’, ‘자유로운 사랑의 표현’ 등을 요구하는 주체적 인식을 드러내는데, 이 모두는 이를 억제하고 부인하는 현실의 부당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시집살이노래는 억압된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며, 현실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시집살이노래로 하여금 희극적 내지 희비극적 성격을 갖게 하는데, 시집살이노래의 이러한 성격은 시집살이노래가 평민 여성문학으로서 이들 담당층의 현실에 대한 강한 의지와 밝고 건강한 태도를 담고 있는 장르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집살이노래는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내려오면서 점차 여성의 지위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는 전통적인 유교 이념이 정착되어 이에 대한 반론을 억압함에 따라 여러 방면에서 그 모순에 대한 지적과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이 나타난 시기로, 시집살이노래 역시 판소리·사설시조·서민가사 등 다른 문학 장르와 함께 독특한 미적 특성을 이루어 냈다.

즉 시집살이노래는 평민 여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현실감 있게 표현한 문학으로, 이전까지의 문학이나 같은 시기의 양반 여성 문학이 자신의 요구보다는 상대방의 요구에 충실하며 조화를 추구했던 데 비해, 자신의 요구에 가장 충실하여 대립과 갈등을 드러내고 비판과 해결을 모색한 문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敍事民謠硏究 (趙東一, 啓明大學校出版部, 1979 增補版), 韓國婦謠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2), 시집살이노래연구(서영숙, 도서출판 박이정, 1996), 서사민요의 구조적 성격과 의미 : ‘시집식구-며느리’형을 중심으로(서영숙,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199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min-yo-pan-so-ri/si-jib-sal-li-02.htm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 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 하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고개들어 힐끗 보니 하늘같은 갓을 쓰고
 구름같은 말을 타고서 못본듯이 지나더라


 흰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하다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야야 아가 며늘 아가
 진주낭군 왔응께 사랑방에 건너가봐라


 사랑방에 나가보니 왼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 아가 아래방에 물러 나와 
 아홉가지 약을 먹고서 목매달아 죽었더라


 이 말 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 나와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화류객정은 삼년이요 본댁정은 백년인데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푸른 청산 찾아 가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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