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오후에 재용이를 만나 산에 올랐다.
오전에 예배당에서 내 손에 16번 째 죽은 젊은 멧 명복을 빌고
연초면 한 차례 신자들 대접하는 이선희권사 운영하는 마달피 가든에서
송어회에 매운탕에 점심밥 먹으니 12시 반이 되었다.
만나기로 약속했든 재용이를 지구대 앞에서 기다리라 해놓고 총 찾으니 오후 1시가 약간 안 됐다.
제원의 명물(원래 감청색 더불캡 화물차를 17년 째 굴리다 보니 화물칸 다 삭아
힌색 칸으로 교체해서 앞과 뒤 색깔이 다른 데다 언제나 네 칸 철망 개장을 내리지 않고
싣고 다녀 제원면 주민들 거의가 차를 보면 알아본다.)
내 차로 두어 달 전 빼빼가 죽은 길곡리로 갔다.
차에서 내려 견 풀고 총 꺼내 막 산에 오르려는 데 내 나이쯤 돼 보이는 사내가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다가왔다.
여기 산을 자기 일행들이 털고 있는 중이란다.
금산의 엽사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데 일면식 없는 남자였다.
당신이 누구냐 따지는 나에게 자신은 이사온지 얼마 안 됐고 산에 들어가 있는 일행들의 이름을 댔다.
금산군에서 활동하는 동절기 유해조수 구제단원들이었다.
생각하면,
그 남자 그냥 그곳에서 총 없이 서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들어와 차에서내리자 총들고 목을 서고 있다가 총은 어딘가에 숨겨 놓고
우리에게 다가와 산에 오르지 못하게 저지했거나 그렇잖음 구린데 있어 단속반이라도
나타나면 손에 들고 있든 무전기로 일행에게 연락하려 그 곳에 있었든 게 분명하다.
그와 실랑이 할 처지는 아니었다.
산은 넓고 어디든 돼지는 있어 발품만 팔면 만날 수 있다.
다만, 그 곳이 내가 찍어 둔 떼멧이 들어간 산이었을 따름이다.
제원면 소재지쪽으로 되돌아 한 고개 넘어 새뱅이 동네 가운데 고샅길로 들어서
임도따라 산 중턱에 차 세우고 견 풀었다.
왼쪽, 발군산 남쪽 양지편으로 돌았다.
오래되지 않은 먹이 흔적은 도처에 있는데 돼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최근 발자국이 없는 걸로 보아 어디론가 이동했음이 분명하다.
까딱 헛산행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허탈감 들려는 때 돼지가 나타났다.
양지편 다 돌아 동곡리 우측산 막 넘어서려 하는 데 세 마리 가량의 멧 발자국이 있었다.
잔솔밭이어서 찍힌 시기는 짐작할 수 없지만 그리 오래 된 자국은 아니었다.
날등에 올라서자 견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바로 그 때,
아랫쪽에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돼지다.
GPS를 보니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머물며 짖고있다.
내려가는 길이 쉽지가 않다.
10여분 걸려 6ㅡ70m 어렵게 바위 깔린 경사지를 내려가 솔밭을 막 벗어나
작은 속 날등에 올라서니 얼핏 돌아서는 돼지가 보인다.
여러마리 떼멧 중 한 마리가 개를 피해 우리있는 곳으로 올라 온 것이다.
돼지는 내닫지 않고 간간 콧바람을 뿜어대며 우리 주변을 맴돈다.
젊은 재용이가 잡아 보겠다고 따라간다.
나는 한 장소에 최대한 동작을 자제한 채 다른 돼지가 접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GPS를 들여다 보니 개들은 터진 돼지를 따라가고 있다.
하발치로 동곡리 방향으로 돌아 우리가 지나왔든 곳으로 한없이 가고있다.
폰이 진동으로 전화왔다고 알려준다.
재용이였다.
뒤따르는 돼지가 산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개가 돌아오면 뒤따라 갈 것이고 재수 좋으면 개에게 쫓긴 멧이 처음 발견 된
나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으니 기다리라 했다.
개들이 돌아왔다.
재용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4시가 넘었다.
해는 기울고 골짜기엔 산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돌아가야 한다.
차 있는 곳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500여m 더 가면 차 세워 둔 곳에 도달할 수있다.
인삼을 캐고 일년 여 묵혀 둔 밭에 이르러 잠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때,
우리 주위에 맴돌던 개들이 없었다.
200m, 가량의 건너편 산에서 뭔가를 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개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지체되어 내가 탄을 빼내고 총을 분해했다.
순간 개들의 다급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고라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짖는 톤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한 곳에 머물며 짖고 있다.
건너편 산 중턱,
지금은 산그늘이 짙어 현장까지 올라간다는 건 쉽지않다.
"재용아 돼지가 분명하다. 저기 저 묵밭 가운데 가서 가다려 봐라"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아랫쪽 묵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재용이는 빼냈든 탄을 재장전 하여 빠른 걸음으로 내가 말한 묵밭으로 갔다.
시간을 두고,
그러니까, 재용이가 묵밭에 이르러 3분이나 됐을까?
와다다닥 소리가 개 짖음을 뒤에 달고 아래로 내달려왔다.
돼지였다.
작은 돼지가 아니었다.
120kg은 돼 보였다.
재용이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오는 돼지,
만약 그 돼지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놓치는 돼지고 왼편 재용이 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잡는 돼지다.
그래, 녀석은 죽으러 재용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됐다,
재용이 정면이다.
어?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땅,
다시 땅,
또 다시 땅.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짧은 겨울낮을 마감하고 골짜기를 채우려는 어둠을 찢는 총성이었다.
"맞았냐?"
"예"
뒤따라 개 두 마리가 달려 내려왔다.
그리고 재용이 있는 곳을 지나쳐 아래 골짝따라 내려갔다.
개들이 몇 번을 간헐적으로 짖어댔다.
겨우 분해했든 총을 조립하여 재용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GPS를 보니 개가 꽤나 멀리 나아가 있다.
어둠은 짙어지는 데,
서둘러 잰 걸음으로 재용이를 부르며 한참을 내려갔다.
300m쯤 아래에서 재용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야 돼지 어디있냐?"
"개가 여기까지 짖으며 달려왔거든요."
개들은 재용이 서 있든 곳 작은 골짜기 훨씬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
돼지는?
어디쯤에 죽어 있을까?
지금은 골짜기 안에서 우리 육안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돼지찾는 일은 개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개들이 찾아 주기만 기다릴 밖에 없었다.
돼지는 없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어둠 진해져 하늘과 맞닿은 앞뒤 산마루선 만이 보일 때까지 개 앞세워 찾았지만
돼지는 없었다.
언젠가 정면에서 달려오는 돼지는 잘 떨어지지 않더라는 내 말을 듣고
돼지가 달려와 측면이 되어 10m 가까와 졌을 때 바로 돼지 코 앞에다 갈겼다는 것이다.
첫 발은 2알들이, 둘 째발은 다섯 알들이 셋째 발은 두알들이를 쏘았다 한다.
세 발을 쏘기까지 30m 안팎인데 단 한 발도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세 발째 쏘았을 때는 돼지가 곤두박질 치기까지 했다는 데 만약 그때 맞았다면
어덩이나 뒷다리에 맞았을 것이다.
탄알이 커 맞았다면 혈흔을 남겼을 것이다.
혈흔 같은 건 없었다.
돌아오는 길,
"아 미치겠네"
"나 오늘밤 잠 못자겠네요"
"멧사냥 시작한 후로 오늘 같은 기회는 첨인데"
놓친 멧에 밀려드는 자책과 자괴감에 안절부절 못하는 촛자 사냥꾼 재용이에게 내가 말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다. 어디 야구선수가 매번 홈런만 치디?
멧사냥도 마찬가지란다. 돼지 잡는 것을 야구선수의 타율로 보면 된다.
오늘 못잡으면 내일을 기약하고 내일 못잡으면 그 다음날이면 잡게 되느니."
집에 도착하니 7시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