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貪大失 (소탐대실)
최경순 est
몇 해 전 기억이 가뭇한 그해
추석날 종일 구름이 끼어 하늘은 흐려있었다
외동딸 지원이는 명절이면 차례상에 온갖 음식으로 풍성해야 좋아했다. 나도 남편도 즐겼다.
든든히 들 먹고 딸은 친구들과 여행 가고 남편과 나는 영화나 보러 갈까 의논 중에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
"누나 오늘 시간 되면 매형과 태안 안면도로 몸만 오세요
저희들도 지금 광주에서 출발하니 거의 비슷하게 도착할 거예요."
남편은 나와 영화 보느니 처남이랑 바다낚시랑 거나 한 술자리도 상상하며 흔쾌히 집을 나섰다.
매번 기다리는 일엔 익숙치 않아시외버스를 한 시간여 기다리는 동안 날씨는 흐리고 조금씩 회색 빚으로 마음에 갈등이 와 남편에게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해도 굳게 버티더니 비로소 태안 가는 버스 승차.
인천에서 태안까지는 천리만큼 멀고 멀었다. 연휴라 그렇겠지 하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도 거기,
또 자고 일어나도 거기,
하루가 다 저물어서야 태안 버스터미널 도착, 다시 또 안면도
창기리까지 가야 했다.
인천 집에서 오전 10시에 나섰는데 버스 안에서 점심까지 거르고 창기리 까지 도착하고 보니
오후 5시
동생이 펜션에서 차를 가지고 나오는 중이었는데 초행길이라 다른 정거장으로 갔다가 우회해서 오느라 더 많이 늦어지는 동안.
낯선 창기리 정거장에서 쌀쌀한 날씨와 허기지고 어둠이 깔리는 주위는 한산하여 슬퍼지려는 찰나. 긴 기다림 끝에 동생 일행들과 만났다.
동생은 염려하는 마음 가득한 채 "많이 기다렸재 얼릉가세"
남편은 무척 배가 고팠으리라.
평소 배고픈 걸 못 참으니,
거기다 나는 늘 준비가 안되어
남편이 손해를 많이 본다.
사흘 동안 시장 봐다 준비한 명절 음식 푸짐한데 아무것도 챙겨 오지 못했다.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몸만 오래서.
누가 중간에 이렇게 길이 막힐 줄 알았단 말인가! 일단 대중교통이라 그랬고 동생이 두 시간 거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승차로 피곤하였지만
전에 광주에서 알게 된 경찰부부 승혜네랑 동생 댁이 횟감이며삼겹살 불고기 푸짐하게 한상
가득 차려놓고 고향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줘서 금방 따뜻한 마음들에 안겨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 어두워져 쉬고 싶었는데
저녁을 먹은 젊음들은 우릴 기다리느라 즐기지 못해서였는지
밤바다로 꽃게잡이 가잔다.
먼 길 힘들게 왔으니 즐겁게 지내자며 폭죽 불꽃 재료들을 그리고 꽃게잡이 소도구들 잔뜩 준비해서 캄캄한 저녁 바닷가로 나가 불꽃놀이도 즐기며 스마트폰 플래시로 뻘밭을 비치고 돌을 들어 올려 고기들이 도망가는 것을 즐겼다.
고동이랑 아기 꽃게 들이
의 평화로운 취침시간을 깨워 오종종 달아나는 모습에서도 긴장된 삶의 현장을 느끼며 피곤도 잊은 채 추석날 추억 한 장을 만들었다.
승혜 엄마는 재밌는 예길 아무렇지도 않게 구수히 잘하여 하하 호호 웃음소리에 게랑 고동이랑 다 도망가 빈 통에 웃음만
가득 채워 숙소로 돌아왔다.
승혜 엄마뿐 아니라 나만 빼고
모두 유모어가 넘친다
그들이 글을 쓰면
대작이 나오리라
해마다 동생네 갈 때마다 그들
부부를 만나 오랜 지인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동생 댁이 안면도 빛의 축제가 유명하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 보자는 것이었다.
다시 일어나 차를 몰고 한 참 돌아 돌아 찾아갔는데 매표소는 마감이었다. 결국 입장도 못하고 밖에서 네온사인으로 온갖 모양의 불빛축제를 배회하다 돌아와 피곤하여 곧 잠들었다.
초대한 남동생은 육 남매 중 가장 부지런하다.
그래서인지 제일 잘 살기도 하지만 해외여행도 이웃집 드나들듯 한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누나 집에 와도 언제나 먼저 일어나 식사를 챙기며 동생이 거의 다한다.
자영업으로 동생 댁도 같이 일을 하니 형편은 넉넉하다.
해외여행 가면서 몇 번이나 내게 가자고 했지만 나는 집 밖에서 잠자는데 익숙치 않아 더욱이나 해외는 제주도 말고는 못 가봤다 그래서 시야가 좁을 수도 있겠다 나의 해외여행은 오로지 티브이 에서이다
다음날 일찍 동생이 깨워 아침을 챙겨 먹고 펜션에서 나오기 전 한 번 더 바닷가에 다녀오자고 했다.ㅜ그리고 물 빠진 뭍으로 다가가 고동이랑 조개 꽃게를 잡다가 나는 깜짝 놀랄 요긴한 물건을 발견했다.
방금 물 빠진 바닷가 바위틈에 물갈퀴 겸용인 새 호미가 마치 내 눈엔 금덩이처럼 반짝이며 뻘 속에 반은 묻혀 눈에 띄었다.
꽃게보다 더 반갑게 호미를 깨끗이 씻었다. 집에 가지고 가서 우리 집 터밭에서 요긴하게 써야지 이 넓은 바다에 이 이른 아침 사람들이 언제 잃었는지도
모를 새 호미를 누구에게도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숙소에 돌아와 호미를 비닐에 잘 싼 뒤 배낭 아래쪽으로 넣으려고 배낭 안에 있는 소지품을 모두 꺼내었다.
그리고 가방 멘 아래에 수건으로 감싸 시가 약 오천 원 하는 호미를 백만 원처럼 뉘었다.
그리고 다시 소지품을 넣었다.
오는 길에 군산에 들려 유명하고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도 먹고 건어물 이랑 젓갈도 사고
인천으로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또 유혹했다.
매형 바로 일 없으니 광주 저희 집으로 가잔다.
연휴도 아직 여러날 남아있고 그대로 헤어지기 섭섭하여 남은 연휴를 동생집서 지내기로 하고 광주 동생 집에 도착해서
안경이 필요해 찾으니 없었다.
동생은 차에도 가 보고는 없다고 한다. 난 5천 원짜리 호미를 갖기 위해 최근에 맞춘 다초점 몇 십만 원 하는 안경을 펜션에
버리고 온 것이다.
사실 호미를 주었을때 그리고 가방에 넣을 때까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냥 펜션에 두고 가도 손님들이 많으니 또 누군가 사용하겠지, 그냥 두고 가자, 했다가, 아니야, 새것이기도 하지만,
바닷가에서 내가 주었으니
우리 밭 풀 뽑을 때 요긴하게 쓸 거야, ㅓ아니야, 몇 푼 안 되는데 그냥 두고 가자 했다가 결국 호미를 가방에 넣고 다초점 안경을 숙소에 놓고 온 것이다.
부랴 부랴 그곳으로 전화해보니 이미 숙소 청소했지만 안경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허망히 웃었다. 때로 우리는 작은 것 에 욕심이 묶여 큰 것을 잃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일도 그와 같은 小貪大失이었다. 즐거웠던 여행은 잃어버린 다 초점 안경으로 잠시 마음이 씁쓸했지만,
깨달은 것도 있다. 어리석고 우매한 우리들은 작은 것에 목숨 걸다 큰 것을 잃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 사람아 자신이 욕심내는 것 행여 (小貪大失)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2014
첫댓글 댓글 올려주신 두 분 선생님께 무한 감사와 죄송함을 전합니다 띄워쓰기 고침 하다 그만 두 분 서생님들의 귀하고 소중한 댓글이 떠나가 버려 흐흑 울고싶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대할게요
맛나는 글 교수님께 배워도 목만 타네요
어쩌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