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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방언의 미학: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의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거칠고 투박할 수 있는 방언을 아주 섬세하고 음악적인 시어로 가꾸어 냈습니다.
고향과 공동체의 재현: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옛 풍속, 명절 음식, 이웃들의 소박한 삶을 한 폭의 풍속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대표작인 《여우난골족》 등이 이에 속합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태도: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을 택하며 내면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고결한 인고'의 태도가 시 곳곳에 드러납니다.
3. 시대를 초월한 대표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나 혼자서 이 많은 외로움과 슬픔을 담아 가만히 눈을 뜨고 먼 산을 바라보면, 그 겨울 하늘에 날이 저물어 가는데, 눈을 맞으며 서 있을 외로운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실제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방)에 세 들어 살며 보낸 편지 형식을 취한 시입니다. 무기력하고 쓸쓸한 처지 속에서도 눈을 맞으며 꼿꼿이 서 있는 '갈매나무'처럼, 맑고 높은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백석 후기 시의 최고 걸작입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 내리는 밤, 가난한 시인이 이상향 속의 여인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현실의 더러운 세상을 떠나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시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필사해서 읽을 정도로 사랑했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4. 파란만장했던 삶과 재조명
해방 이후 고향인 이북에 남았던 백석은 분단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점차 문학적 자유를 잃어갔습니다. 숙청과 복권을 반복하다 결국 양강도 삼수갑산의 집단농장으로 쫓겨나 양을 치는 농부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월북 문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이 금지(해금)되어 있었으나,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습니다.
백석 시인과 기생 자야(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알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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