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전환기작가 연구의 전환점에 서서 2. 동요와 동시, 서덕출의 한국동시사적 위치 3. 서덕출 동시의 문학성 4. 서덕출 동시의 지역성 5. 현대동시의 선구자 -서덕출, 한국동시문학의 요람- 울산 |
1. 전환기작가 연구의 전환점에 서서
2006년도였던가, 울산작가회의에서 주관했던 제1회 서덕출문학제 학술토론회 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서덕출을 일러 ‘변방인’ ‘주변인’이라고 표현했다. 우선, 변방 울산에서 태어나 불의의 사고로 입은 척추장애의 몸으로 시혼을 불태우다가 향년 34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서덕출의 불우한 일대기를 들어서였다. 또한, 내로라하는 연구자들이 동시사적으로 동요가 동시로 전환되는 그 무렵 작가들을 논하면서 그의 동요가 지닌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를 ‘기타인물’ 정도로 취급하는 마뜩찮은 현실을 환기시키며 했던 말이다.1)
서덕출이 당대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작품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어린이문학사에서 변방인, 주변인으로 밀려난 까닭은 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당시 함께 활동했던 방정환, 윤석중, 이원수, 강소천 등 쟁쟁한 이름들에 가린 탓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물량과 실증을 중시하는 연구풍토에서 너무나 짧은 생애를 살다간 서덕출이 연구자들의 욕구를 충족할 만한 양적인 실적을 내놓지 못한 점도 빌미가 되었을 테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동시사에서 그의 동요가 지니는 전환기적 가치와 의미를 간과한 세심하지 못한 연구에서 비롯된 측면을 더 주시하며 안타깝게 여겨왔다.
사실, 지금까지 서덕출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의 생애사이거나 작품을 발굴 ․ 수집하여 목록을 만들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 거의 전부였다. 작품분석이라고 해봐야 잘 알려진 몇몇 작품에 대한 피상적인 감상평, 또는 썩 많지 않은 그의 작품을 경향별로 가려 묶는 일이 고작이었다. 이 또한 목록화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서덕출 연구가 세상으로부터 잊히다시피 한 그를 상기시켜 어린이문학사의 한 지점에 자리매김하는 정도의 단계에 머물러있다는 방증이리라.
물론 이런 작업도 초기단계에서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다행히 서덕출에 대한 초기연구 작업들은 꽤 진척되어 그의 일대기나 그가 쓴 대부분의 작품들이 발굴되고 정리되어 마침내 ‘서덕출 전집’이 묶여 나오기까지 이르렀다.2) 이로써 서덕출 연구의 총론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이제 서덕출 연구는 각론, 즉 세부담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전환기적 작가에 대한 연구도 비로소 전환점을 맞게 된 셈이다. 안성길3)과 김지은4) , 한정호5)의 연구는 이미 서덕출에 대한 세부담론의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나도 진즉에 ‘서덕출 창작동요의 동시성’이란 제목으로 서덕출 연구의 방향을 넌지시 암시하며 그 속살을 얼핏이나마 드러내 보인 적이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서덕출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노력과 성과를 집약하고, 이를 바탕삼아 본격적인 세부담론에 들어가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의미와 의의를 지닌다. 서덕출 연구에서는 주변인이나 문외한에 가까운 내 처지에 주제넘게도 선뜻 발제 제의를 받아들인 까닭이다.
2. 동요와 동시, 서덕출의 한국동시사적 위치
서덕출은 한국동시사적으로 창작동요 성장기(1923~1935)의 지점에 놓여 있다. 이 시기는 1923년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 창간에서부터 시작되어 말마따나 한국 창작동요가 형성되고 성장하여 어린이운문문학의 중심으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이 무렵 주요 창작동요작가로는, 방정환, 한정동, 윤석중, 윤복진, 이원수, 김태오, 신고송, 박영종, 임원호, 강승한, 강소천, 그리고 서덕출이 있다. 6)
이후 창작동요는 쇠퇴기를 거쳐 이를 모태로 한 자유동시가 정착됨으로써 어린이문학의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동요는 순전히 동시사적으로 동시가 생기기 이전의 동시 형태, 곧 동시의 전신으로서만 그 지위가 인정되고, 연구될 뿐이지 장르상으로는 어린이문학의 범주에서 이탈하여 음악 분야로 온전히 자리이동을 한 실정이다.7)
서덕출을 한국동시사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그 문학적 성과와 업적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현실인식을 전제로 서덕출의 창작동요와 이 시기, 즉 창작동요성장기에 태동하기 시작하여 어린이운문문학의 중심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자유동시와의 접점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서덕출 동요에서 자유동시의 싹수와 자질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작업, 이를테면 ‘서덕출 동요에서 동시로서의 문학성을 발견해내는 일’에는 문학성이 그 준거가 되는 자질인 만큼, 동요와 동시의 차이점이 무엇이며, 동시에서의 문학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겠다.
‘동요’와 ‘동시’의 뜻부터 밝혀보자. 동시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동시는 어린이다운 심리와 감정을 제재로 하여 성인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를 말한다.”8)는 이재철의 견해로 모아진다. 다른 정의들이 있긴 하지만, 동시의 정의를 이루는 요소, 예컨대, 그 대상이 어린이라는 점9), 그리고 창작주체가 ‘성인’이라는 점, 그리고 ‘동심’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동시에 대한 이러한 정의를 동요에 그대로 적용하면, ‘동요는 어린이다운 심리와 감정을 제재로 하여 성인이 어린이를 위해 지은 노래, 혹은 노랫말’쯤 될 테다.
그렇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가. 바로 ‘시’와 ‘노래’라는 차이를 가진다는 것인데, 이 또한 시와 노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하는 것이 썩 명쾌하지 못하다. 본질적으로 ‘시’도 노래인 탓이다.10) 이점에 대해서는 이재철도 시와 노래의 구별이 애매하고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동요에 견주어 동시의 변별적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동시는 아동에게 그것이 가지는 운율인 내재율을 통하여 언어의 향기․기품․음영․색채 등이 교묘하게 생동하는 것을 음미케 함으로써, 그 속에 흐르는 풍부한 시정에 젖게 할 수 있다.
둘째, 동시는 동요와 달라서 그 속에 높고 깊은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아동으로 하여금 객관적 사상의 의미 파악과 理智的 해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론과 설교를 떠나 찬미와 흠모로 아동의 정서 및 詩心을 육(이 부분부터 인쇄상의 오류로 인해 문장이 끊겼다. 이후 문장은 발제자의 추측에 의해 완성한 것이다.)성할 수 있다.11)
이에 따르면, 동요에 대한 동시의 차이점은 ‘동시는 (동요와는 달리) 내재율을 통하여 언어의 묘미를 느끼고, 시정에 젖게 한다는 것’과 ‘동시는 그 속에 높고 깊은 뜻을 품고 있어서 객관적 사상의 의미파악과 이지적 해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아동의 정서 및 시심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기준 또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의 기준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차이점과 다름없거니와, 뒤엣것은 모든 운문문학에 해당하는 말인 탓이다. 더구나 동시가 어떻게 ‘객관적 사상의 의미 파악과 理智的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론과 설교’를 떠나 ‘찬미와 흠모’로 ‘아동의 정서 및 시심을 육성’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시는 ‘객관적 사상의 의미 파악과 理智的 해석’과는 거리가 먼, 창작뿐 아니라 수용에 있어서도 매우 주관적이고 정의적인 예술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를 ‘객관적 사상의 의미 파악과 理智的 해석’을 하는 방식은 독자의 몫이 아니라, 시를 단순히 학문의 차원에서 ‘파악’하고 ‘해석’하는 문학연구자, 혹은 문학비평가들의 이해 방식이자 행태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동요와 동시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시(詩)적 구조를 갖추었느냐, 요(謠)적 구조를 갖추었느냐의 차이다. 물론 여기서 구조란 내적 구조, 외적 구조 둘 다 싸잡아서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시’는 글말로 표현하고 읽히기 때문에 언어를 이중화기호화하기 쉽고, 따라서 언어를 훨씬 자유스럽게 구사하고 배치할 수 있다. 반면, ‘노래’는 글말로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소리, 즉 입말로 구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탓에 더욱 정형화된 리듬형식이 필요하며 메시지도 단선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12) 바로 여기서 시는 의미적으로든, 형식적으로든 언어의 이중기호화를 통해 노리는 중의성, 즉 문학성13)을 그 생명으로 하며, 노래는 문학성보다는 외형적인 구연형식, 곧 리듬형식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노래는 리듬형식에 매임으로써 필연적으로 갖게 된 ‘문학성의 결핍’ 탓에 문학 갈래 밖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도 시와 노래, 혹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일반적인 차이점이 될지언정, 동시와 동요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될 수 없다. 미리 동요와 동시에 대한 정의를 통해 암시했듯이 이 둘은 ‘동심’, 혹은 ‘아동성’이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동성’이라 함은 ‘어린이다움’ 즉, 시적자아에 관련된 문제다. 대체로 동요와 동시의 시적자아를 보면, 둘 다 ‘대리화자’14)라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동시의 시적자아가 동요의 그것보다 훨씬 어린이답다는 것이다. 어린이다움은 바로 어린이다운 상상력과 어린이다운 표현으로 확보된다. 그래서 이 어린이다움이야말로 동시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성의 자질이자 요소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동시에서의 문학성이란 시다움, 즉 시성과 어린이다움, 곧 아동성을 의미하는 것이다.15) 서덕출 창작동요가 품고 있는 이러한 동시로서의 문학성을 발견해내기만 한다면, 그의 창작동요는 리듬형식에 상관없이 충분히 동시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나는 일찍이 서덕출의 동요가 이 무렵 여느 동요작가의 그것처럼 요적 구조와 기능뿐만 아니라 시적 구조와 기능, 곧 문학성까지 갖춘, 이른바 ‘자유동시’로 전환하는 뚜렷한 징후를 발견하고 그를 예사롭지 않게 주시했던 것이다. 들머리에서 서덕출을 우리 동시사에서 전환기적 작가라고 일렀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3. 서덕출 동시의 문학성
다행히 서덕출의 동요는 이 시기 사뭇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또는 동심천사주의에 빠져있던 여느 순수창작동요와 정치적 목적의식에 너무 치우쳤던 프로동요에서 살짝 비껴 서있다. 그의 동요를 동시에서의 문학성, 즉 ‘시성’과 ‘아동성’을 모두 갖춘 동시로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가장 널리 알려진「봄편지」가 이런 희망을 먼저 전해준다.
련못가에 새로핀
버들닙을ㅅ다서요
우표한장 붓처서
강남으로보내면
작년에간 제비가
푸른편지보고요
됴선봄이 그리워
다시차저옴니다
-<봄편지> 전문16)
이처럼 <봄편지>는 형식에서부터 당시 창작동요의 주종을 이루던 7.5조나 4음보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성을 보인다. 4음보 한 행을 두 행으로 나누는 행갈이를 하고, 그 한 행의 2음보를 띄어쓰기 없이 한 음보로 처리함으로써 3음보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3음보 동요가 서덕출 동요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데,17) 이는 서덕출이 당시 창작동요의 형식적인 율격에서 탈피하고자 꽤 고심했음을 엿보게 한다.18)
무엇보다 「봄편지」는 이재철과 신현득도 인정했던 대로19)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언어의 참신함과 함께 시 전체가 중의성을 띤, 곧 ‘문학성’이 도드라진 수작이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이 시가 내포하는 중의성이란 ‘조선광복에 대한 희망과 그리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봄편지’는 ‘광복(봄)의 희망적인 메시지(편지)’인 셈이다. 그리고 ‘연못가에 핀 버들잎을 따서 우표를 붙여 강남으로 보내면 제비가 그 편지를 받아보고 찾아올 것’이라는 시적 상상력은 참으로 어린이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시에서는 제비(대상)를 사람(자아)과 동격체로 보는 물활론적 사고가 엿보이는데, 이는 아동성의 한 속성인 ‘동일성’20)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서덕출 자신이 그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줄곧 아동성, 즉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았으리라는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음 시를 읽어보자.
송이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피어 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나 뜰 위에나
동구 밖에나
골고루 나부끼니
보기도 좋네
송이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피어 오는
하얀 꽃송이
크고 작은 오막집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부끼니
보기도 좋네
-「눈꽃 송이」전문
연보에 따르면, 서덕출은 장덕조의 구혼 여파로 두 번의 가출 끝에 1934년 11월 1일 울산읍 병영의 규수 전필남(全必南)과 혼인하게 된다. 이보다 앞선 그해 1월에 이 시가 지어졌으니, 두 번이나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큰 충격 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그 후유증이 채 아물기도 전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이 ‘눈꽃송이’처럼 마냥 맑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다니, 그의 천성이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 시에서도 서덕출 동시의 미덕인 세상에 대한 희망과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다가와 그의 성치 않았던 몸과 파란만장한 삶에 겹치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하늘에서 핀 꽃송이로 여기는 그의 티 없는 동시적 상상력과 시정(詩情)을 너무 일찍 거두고 귀천하셨으니, 미인박명을 그에게서도 새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누가 익일까 장깸보
장님은 누구일까 장깸보
옳지 옳지 이겼다 돌레 돌레 이겼다
장님 장님 장님은 못난이가 디엇다
잡힐나 잡힐나 살작 살작 피하자
요리로 요리로 살작 살작 피하자
못난이 이 장님 요걸 요걸 못잡나
까막눈 이 장님 요걸 요걸 못잡나
오냐오냐 못잡아 네까짓걸 못잡아
까불까불 까불새 쏘치기만 하여라
옳지 옳지 잡혔다 까불새가 잡혔다
이젠 이젠 잡혔다 까불새가 잡혔다
-「까막 잡기」전문
이 동시? 맞다. 이제 ‘동요’가 아니라 ‘동시’다. 이쯤에서 나는 서덕출의 동요를 동시라 부르는 데 망설이지 않겠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러기를 제안한다.21) 아무튼, 이 동시는 서덕출의 유일한 동시집인 『봄편지』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으로서 그가 남긴 원고뭉치에 있는 것을 한정호가 『서덕출 전집』에 실어놓았다.
먼저「까막 잡기」의 짜임새를 보면, 4·3조, 또는 4음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1연 1행과 2행에서는 4음보 가운데 한 음보를 빼서 3음보를 만듦으로써 마치 4음보에서 휴지부를 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종 4·3조, 또는 4음보를 유지했다면 사뭇 단조롭고 밋밋했을 텐데, 이렇게 변화와 일탈을 시도함으로써 일순, 시에 생동감과 긴장감이 돌게 했다. 놀이를 소재로 하는 동시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 시도는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 읽힌다. 그만큼 서덕출은 매우 용의주도한 시어 구사력을 터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오늘날 동시에서도 흔히 쓰는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자유자재로 부려 쓰고 있지 않은가. 그의 시적 인식이 이미 자유동시의 세계에 성큼 다가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지 시의 짜임새나 시어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동시의 문학성이란 다름 아닌 어린이다움, 즉 아동성에 있다고 했다. 보다시피, 이 시의 화자는 ‘까막 놀이’밖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 자신, 참여자가 되어 놀이에 푹 빠져있다. 동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못난이’도, ‘까불새’도, 시인인 화자도 놀이하는 동심 속에서 오롯이 한 몸이다. 어디에서고 세계와 자아의 분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시적 원리, 또는 시의 속성이랄 수 있는 ‘동일성’ ‘현재성’ ‘집중성’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시의 속성, 즉 시성은 아동의 고유한 사고 특징인 ‘아동성’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했거니와22), 이제 서덕출 동시의 문학성을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은 새삼스럽기조차 하다.
『서덕출 전집』에 따르면 이 동시는 1932년 10월 7일에 써졌다. 서덕출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봄편지」는 이보다 훨씬 앞서 1925년 『어린이』4월호에 처음 실렸다. 그런데 이재철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그는 初期의 몇 篇의 佳作으로 創作童謠의 출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그의 특수한 身體上의 조건은 오히려 많은 愛讀者를 갖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自己感傷과 自己劣等意識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한 채, 童詩人이 아닌 短命의 童謠作家로 始終하고 말았다.23)
서덕출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오해이거나 편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 또는 동시를 본질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피상적인 단견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사실, 여전히 존재하는 서덕출 동시에 대한 편견과 폄훼는 어린이문학연구에서 차지하는 이재철의 독보적 지위와 영향력에서 아직도 어린이문학연구자들이 썩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보건대, 이재철은 어린이문학연구에 평생을 바쳐왔지만, 개별 문학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정작 어린이문학의 대상인 어린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물론 이 일은 그의 몫이 아니라 후학들의 몫이다. 그 분의 공로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현대아동문학사’를 열정적이고 선구적으로 정리한 것만으로도 빛난다. 그러나 서덕출을 일러 “동시인이 아닌 단명의 동요작가로 시종하고 말았다.”고 단정하는 견해에는 어린이문학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4. 서덕출 동시의 지역성
서덕출은 1907년 2월 9일 경남 울산시 중구 교동에서 아버지 서형식과 어머니 박향초 사이에서 5남 4녀 가운데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덕출의 아버지는 <시대일보> 기자를 지내고 당시 청년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으며, 『일청집』이라는 문집까지 낸 것으로 보아 꽤 인정받는 지식인이었던 모양이다. 1912년, 서덕출이 6세 되던 해 그의 가족은 교동 큰댁에서 학산동으로 분가했는데, 이 무렵 서덕출은 대청마루에서 놀다가 미끄러져 왼쪽다리를 다친 끝에 염증이 척추에까지 번져 장애의 몸이 되고 말았다. 이 일로 해서 그의 아버지는 울산 복산동에 새 집을 지어 이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24)
이후, 서덕출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대로 당시 ‘개벽사’ 기자이며 소설가였던 장덕조의 구혼에 따른 번민 끝에 금강산 장안사로 가출한 일과 2년 뒤 양산 통도사로 잠깐 가출한 일을 빼고는 고향 울산을 떠난 적이 없었다. 울산에 붙박아 사는 그를 방정환, 윤석중, 윤복진, 신고송 등, 당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오히려 찾아오기도 했으니, 악보로 전해진「슯흔 밤」은 서덕출의 집에서 윤석중, 윤복진, 신고송이 함께 지은 합작품이다. 당시의 정경을 윤석중은 이렇게 썼다.
얼굴도 보지도 못하고 편지로만 친해 오던 동무를 찾아서, 8월 7일 울산까지 무사히 도착되었읍니다. 덕출씨댁에서 언양서 오신 신형을 뜻밖에 만나 가지고, 이날 밤 참외를 먹어 가면서 밤 깊는 줄 모르고 재미 있게 놀았읍니다.
× ×
8월 9일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읍니다. 점점 비는 더 몹시 퍼붓는데, 그 비를 주룩주룩 맞으면서 집에 들어 오는 사람이 있읍니다.
“누굴까?”
하고 모두들 내어다 보니, 아아, 그이는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을 알고, 없는 돈에 노비를 마련해 가지고 대구에서 일부러 찾아온 윤 복진씨였읍니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못 놀리는 불우의 동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대구, 언양, 서울, 세 곳 동무가 모여든 것입니다.
× ×
밤-비 오는 밤, 뜰앞에 심은 오동나무 가지가 비에 부대껴 울음 우는 밤! 비 쏠리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이렇게 또 모이기는 졸연ㅎ지 않은 일이니, 이번 이 모임을 기념하여 노래를 짓자”
그리 하여 손에 손에 붓과 종이를 들고 모여 앉아서 기침 하나 아니하고 있는 중에 새로 한 시를 쳤읍니다.25)
당대 최고의 어린이문학가들이 서덕출의 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기침 하나 아니하고’, 시를 짓는 이 순간, 울산은 한국 어린이문학의 중심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앙’은 구체적 지명인 ‘서울’이 아니라, ‘중심’의 개념이어야 옳다. ‘중앙’은 실체가 없는 관념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가 삶을 영위하고, 작품을 생산하는 구체적 현장은 ‘지역’이다. 바로 이 ‘지역’이야말로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세계’다. 글쓰기에 관여하는 세 가지 요소를 ‘자아’, ‘세계’, ‘언어’로 봤을 때, ‘세계’는 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주체인 작가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어떻게 보면 모든 글은 글을 쓰는 자아의 세계에 대한 관계인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서덕출에 있어서 가장 크고도 중요한 세계일 수밖에 없는 울산의 구체적 지명은 다음 두 시에서 직접 드러난다.
해가 해가 빠졌네
태화강에 빠졌네
문수산을 넘다가
발병 나서 빠졌네
-「해가 해가 빠졌네」전문
비야 비야 궂은 비야
갈미봉에 오는 비야
제발덕분 오지 마라
먼 길 가는 우리 누님
붉은 치마 얼룩지면
어머니께 꾸중 듣고
눈물 지어 울어 싸면
나의 마음 슬퍼진다
-「궂은 비」전문
읽다시피, 「해가 해가 빠졌네」의 ‘태화강’과 ‘문수산’ 그리고「궂은 비」의 ‘갈미봉’이 그것이다. 이 무렵 여느 창작동요들이 애상적인 관념이나 설교조의 교훈,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체를 노래했던 것과는 달리 서덕출의 시에서는 이처럼 ‘울산’이라는 특정지역의 구체적 지명들이 호명되고 있다. 이 또한 서덕출의 창작동요가 동시로 진화하는 뚜렷한 증거다. 현대시는 ‘서정성’과 ‘리얼리티’를 그 본질로 삼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구체적인 지명이 들어간 사실만으로 한 작가의 지역성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학작품에서 지역성을 이루는 더욱 중요한 요소는 작가가 터 잡고 있는 지역을 세계로 삼은 작가의 세계관이다. 자아가 시인인 경우엔 시적 세계관이 될 테다. 시적 세계관이란 자아와 세계를 곧잘 동일화하는 의식이다.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받아들여 일체화하는, 시적 세계관이야말로 시정신의 요체다. 이런 시정신은 세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지니기 힘들다. 그래서 시인을 일러 “다름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서덕출의 세계, 즉 ‘울산’이라는 지역에 대한 서덕출의 특별한 애정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지역이란 특정한 구역의 자연, 사람, 그리고 문화, 언어로 구성될 테다. 서덕출의 동시에 나타나는 자연, 즉 들과 산과 강은 구체적인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더라도 바로 울산의 들이요, 산이요, 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서덕출이 유달리 자연과, 이웃과, 놀이 등의 풍습을 즐겨 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만큼 그의 고향 울산을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래저래 서덕출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뚜렷한 지역성을 가진 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5. 현대동시의 선구자-서덕출, 한국동시문학의 요람-울산
마지막으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서덕출이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동시사가 어떻게 되었을까? 서덕출이 십년, 아니 오년만 더 살았더라도 그즈음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자유동시를 주도하는 동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울산이 우리 현대동시의 요람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연구자로서 순전히 학문적 상상력으로 던져보는 질문이다. 이를 현실화해내는 일은 후속연구자와 창작자, 그리고 울산 시민들의 몫이다. ‘현대동시의 선구자 서덕출’ ‘한국동시문학의 요람 울산’ 이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는 길지 않은 평생이지만 줄곧 여기 울산에 붙박여 살면서 창작동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그 자신 이미 자유동시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래봐야 서덕출에 대한 본격적인 각론의 운을 뗀 정도다. 더 이상의 세부담론, 예컨대 서덕출 동시의 문학성과 지역성에 대한 더욱 세밀하고 깊이 있는 탐구가 활발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 물론 서덕출 동시의 언어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도 반드시 누군가의 손이 닿아야 할 연구과제다. 울산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음직한, 방언을 읽어내는 일이 이방인인 나로서는 꽤 힘들었다. *
--------------------
1)이재철, 『한국현대아동문학사1』, 일지사, 1978, 265쪽. 신현득,「韓國 童詩史 硏究」, 단국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98쪽. 여기서도 서덕출은 기타 작가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2)한정호, 『서덕출 전집』, 경진, 2010.
3)안성길, 「서덕출 동요연구」, 『울산작가』2006년호 참조.
4)김지은, 「서덕출의 삶과 동시」,『지역문학연구』1998(제3호), 27~57쪽 참조.
5)한정호, 「신월 서덕출의 삶과 문학」, 앞의 책, 203~255쪽 참조.
6)신현득, 앞의 논문, 2001, 65~156 참조. 7)신현득, 앞의 논문 6쪽의 동시의 ‘형태적 계보’를 보면, 이후 창작동요는 일반창작동요, 동화요, 동시조로 분화되나 이는 말 그대로 동시의 형태상의 계통을 밝힌 데 따른 것이지, 동요 자체는 현실적으로 문학에서 음악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 분명하다. ‘동화요’와 ‘동시조’는 정형동시라는 점에서 일반창작동요와 닮은꼴이긴 하지만, 그 내용이나 형식상 창작동요에서 파생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8)이재철, 『兒童文學槪論』개정판, 서문당, 1998, 124쪽. 9)이재철, 『兒童文學槪論』개정판, 서문당, 1998, 124쪽. 10)김대행, 『노래와 시의 세계』, 역락 , 1999, 저자는 이 책에서 문학사적으로 시의 원형과 변화과정을 살피며 “노래는 시의 존재론적 본질이며 시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11)이재철, 앞의 책, 1998, 124쪽. 12)시의 이런 ‘언어의 이중기호화’, 곧 문학적 장치의 자유스러움 때문에 창작동요에서 자유동시로 전환이 이루어졌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동시창작자의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13)문학성은 ‘문학의 예술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예술적인 것과 비예술적인 것을 먼저 가려볼 필요가 있겠다. 김수업은 예술과 비예술, 즉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뜻겹침’과‘짜임새’여부를 들고 있다. “‘예술인 것’과‘예술 아닌 것’을‘뜻겹침을 일으키는 짜임새’라는 잣대로 가려볼 수 있을 듯하다. ‘뜻겹침’을 일으키는 짜임새를 갖추었으면 마땅한 예술이고, 뜻겹침과 짜임새 둘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아예 예술일 수 없으며,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갖추지 못하면 예술이기 어렵다는 말이다.”(김수업, 『배달말꽃-갈래와 속살』, 2002, 12~16쪽 참조). 이를 시에 대입시켜보면, 시는‘뜻겹침(중의성)’과 시로서의 고유형식, 즉 리듬형식을 갖추어야 시가 된다는 말인데, 모든 언어는 리듬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시는 외형율이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내재율을 가진다는 점을 상기하면, 시는 외형적인 리듬형식에 상관없이 중의성 여부가 바로 문학성의 척도가 된다. 음수율, 음위율, 음보율, 시행 따위는 모두 문자로서 리듬을 구현하기 위한 방편들이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시는 이런 외형적인 리듬형식보다 내재율을 중시하는 추세다. 자유시, 산문시들이 모두 이런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동시의 출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14)오인태,「동시의 시적 자아」,『어린이와 문학』7월호, 2006, 105쪽 다음과 같이 쓴 부분 참조. “실상, 동시의 화자, 즉 시적 자아는 대개 어린이를 가장한 어른이다. 물론, 어른 자신이 직접 시의 화자가 되는 동시도 있다. 그러나 그건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경우다. 그래서 나는 동시의 화자를 ‘대리화자’ 또는 ‘의사화자’라고 규정한 바 있다. 동시는 어른이 어린이를 가장하여 동심을 표현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그 가장이 그럴듯할수록 동심을 가진 어린이 독자의 공감대는 넓어지며, 어른 독자들도 깜빡 그 동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15)“어린이는 모두가 시인이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아동성(兒童性)과 시성(詩性)의 연관성을 탐색한 내 연구에 따르면 아동의 고유한 사고 특징, 곧 ‘아동성’은 시의 속성, 즉 ‘시성’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이른바 ‘동일성’ ‘현재성’ ‘집중성’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동시의 문학성은 아동성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인태,「어린이시의 생성 심리와 표현상의 특징」, 경상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참조. 16)『어린이』(1927년 제4권 4월호), 5쪽을 안성길의 앞의 논문에서 재인용. 17)안성길, 앞의 논문에서 인용 18)안성길은 이를 두고 앞의 논문에서 “서덕출의 동요는 율격면에서 ‘가사동요시’지만, 그 단점인 ‘규격성’을 ‘행 가름’과 ‘3음보’등에 집중함으로써 형태에 대한 ‘의식적 미의식’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이재철, 앞의 책, 1978, 265쪽. 신현득, 앞의 논문, 98쪽 참조. 20)오인태, 앞의 논문, 2007 참조, 이 논문에서 연구자는 어린이의 사고특징, 즉 아동성의 속성을 ‘동일성’ ‘현재성’ ‘집중성’으로 파악했다. 이 가운데 ‘동일성’이란 어린이 특유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세계와 자아를 쉽게 동일화하는 속성을 말한다. 이는 바로 시정신, 혹은 시적 원리인 ‘세계의 자아화’ 즉 ‘동일화’와 상통하는바, 어린이들이 스스로 아동성에 따라 쓰는 ‘어린이시’가 매우 강한 ‘시성’을 띠는 것은 바로 이런 의식성향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물활론적 인식도 ‘동일성’에 따른 사고나 다름없다. 21)이건 중요한 문제다. ‘이원수 동시’, ‘강소천 동시’, ‘권태응 동시’라고 하면서 ‘서덕출 동시’라고 부르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리고 지금 이 토론회는 바로 그 타당성과 근거를 밝히는 자리이지 않은가. 22)주석 15) 참조. 23)이재철, 앞의 책, 1978, 267쪽에서 인용. 24)한정호, 앞의 책, 205~206쪽 참조. 25)정일근·안성길 엮음, 서덕출 탄생 100주년 기념 복간『봄편지』, 2006, 97~98쪽에서 발췌. 윤석중의 이 글은 1952년에 처음 나온『봄편지』의 머리말 대신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인태/ 19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91년 문예지『녹두꽃』추천으로 시인이 된 뒤,『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혼자 먹는 밥』『등뒤의 사랑』『아버지의 집』과 같은 시집을 펴냈다. 진주교대와 진주교대대학원을 나와 경상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고 어린이시에 관한 논문으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와 경남작가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여전히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면서 틈틈이 시와 동시, 평론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