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선구자>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1300년전 1877년 조선사람들이 처음 용정에 이주하여 1886년 용두레 우물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용정이라 하였다지요. 선구자 노래는 1933년 용정 교사시절 윤해영이작사하고 조두남이 작곡하였답니다. 일제 강점기시대이니 선구자는 조선이 독립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았을까요.
일송정은 용정시내 서남쪽 4키로 떨어진 비암산 정상에 있으며 용정지역은 항일의지의 심장이었습니다.일본군은 항일독립의지를 꺾고자 일송정 파괴를 시도 하였습니다.50년후 1991년 한국의 한 단체와 용정시는 일송정을 복원하고 소나무 한구루를 심었으나 곧 죽거나 중국정부에 의해 잘려나갔고, 현재 소나무는 2001년 심은 나무라합니다. 비록 아직은 어린 소나무지만 선조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영원히 우리 민족을 이어주는 역사깊은곳이 되길 기대하면서 길을 돌아 내려왔습니다. 차로 가서 10정도 걸어 올라가면 도착하지요 . 해란강과 용정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연길 기차역에서 내리니 6시 53 분 어제밤 침대 기차를 타고 왔더니 몸이 찌부등하고 꾀재재 하여 목욕탕을 갔다가 아침을 먹기로 하고 9시 30분에 만나요 18원목욕비 때밀이 20원이라니 조선족 아주머니들에게 몸을 맏기고 뜨거운물에 씻고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찜찔방이 한국보다도 더 깨끗하고 시설이 좋은데 시간이 없어 구경만 하고 나오게 되어 우리 여자들은 아쉬워했답니다.
역전 앞 간판 한글과 함께 표기해야 한다니 중국말 못하는 우리들은 좋아요.
육개장,순두부,보신탕을 각자 취향에 따라 먹고 대성중학교로 갔습니다.
윤동주 시비 그 유명한 서시를
대성중하교 예전에 백두산 가느라 들렸던곳인데 그대로 인것 같군요.
안중근의사
중학교에 걸린 백두산 사진을 찍어 왔어요.
대성중 학생들이 만들어 판다고 하여 옥으로된 헨드폰 고리를 하나 사왔습니다. 후학들을 위해 모두 각자 약간의 후원금을 내고 설명을 열심히 해 주던 이쁜 목소리의 아가씨 생각이 납니다.
일송정 기념비
날씨가 춥다고 많이 껴입고 다녔던 하얼빈에 이어 용정에서도 뚱보가 되었네요.
일송정에서 바라본 용정시내 날씨가 야간 흐리기에 시내가 잘 보이지 않네요.
노래에 등장하는 해란강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가게 화장실.....
차를 타고 가면서 찍은 풍경
우리가 머물 호텔
이도백하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걸어서 나왔습니다.
케이시님이 데리고간 갈비탕집. 고기에 각종 야채와 버섯을 넣어서 탕처럼 먹는게 고기가 부드럽고 참 맛나요. 갑자기 청포도 사랑을 부르기 사작하여 노래방 분위기가 되어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으니 어찌나 더운지 목도리를 벗고 겉옷을 벗고 하여간 너무 더워서 힘들었던 식당에서 우리가 너무 시끄럽하여 옆 좌석에서 민원이 들어와 (자기들은 더 떠들던데) 한국 노래방을 소개해 준다 하여 5원 주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노래방에 올라가니 시간당900원을 달라하였다니 우릴 봉으로 알고 .....실랑이를 하다가 우리 여자들이 싫다 하여 모두 호텔로 와서 각자 잠을 잤다. 나는 노래방을 좋아하질 않고 노래부르길 싫어하여 속으로 아이고 잘됐다 생각하며 좋아했지요 다른분들께 죄송합니다. 결국 주인과 실랑이를 하다가100원을 그냥 주고 왔어요. 황당하지요.
10원 주고 택시를 타고 오면서 소나무 숲에 조명을 너무 이쁘게 해 두어 사진 찍고 싶었는데 혼자 갈수도 없고 택시에서 쳐다보면서 돌아오는 마음이 영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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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빛방울 원문보기 글쓴이: 빛방울
첫댓글 난 사진 안 찍길 잘 했어...
체력고갈로 일찍 골로 갈뻔...휴유...
그 밤에 소나무숲을 아쉬어 하다니...ㅎ
상세하고 정성이담긴여행기 고맙습니다...
다음 여행자에게 큰 도움이 될것 같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