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포착하는 삶(사도행전 16:6-10)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우리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분명한 목적 중의 하나가 우리와 친구처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시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셨던 아버지의 생각이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끝을 낸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예수님께서도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수시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기대하지 않거나, 그 음성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근원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성령을 통한 세미하고 평안한 인도하심-믿음 소망 사랑-연결)', 둘째는 '나 자신의(자아) 음성(나의 고집, 과거의 경험, 내면의 욕망에서 비롯된 소리)', 셋째는 '사탄의 음성(불안과 의심을 조장하며 거짓을 심어주는 파괴적인 소리)'입니다. 이 세 가지가 뒤섞여 있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과 그의 전도팀은 제1차 전도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제2차 전도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들의 야심 찬 계획은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성령님에 의해 사역이 막히고 멈춰버린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시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쓸 때 예수의 영이 또다시 그들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선한 일, 심지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음에도 성령님은 '아니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 멈추어 섰을 때, 비로소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바울은 그 즉시 자신의 계획을 접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하며 마게도냐로 떠납니다. 철저한 준비 속에 진행되던 일조차 성령께서 막으실 때 즉각 멈추고 방향을 트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음성에 대한 민감함'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무디어지면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실 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갑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삶의 자리에서 영적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무리 내 열심으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행해도, 그 방향이 '아버지의 뜻' 즉 성령의 음성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불법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실패가 아닌 성공적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다섯 가지 영적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겸손함입니다. 내 완벽한 계획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어리석음을 인정함 (벧전 5:5)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내 계획이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어리석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선교 전략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겸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굳건한 믿음입니다. 문을 닫으신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문을 여심을 신뢰함. 히 11:6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와 비두니아의 문을 연속해서 닫으셨을 때,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닫으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루어지지 않은 은밀한 죄를 회개하여 영적 렌즈를 닦음. 시66:18은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신앙의 모토를 통해서 잘 나타나 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을 통해 본인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 그는 평소 죄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하는 소중한 고백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9장 27절을 통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때때로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삶에 다루어지지 않은 죄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 위선과 정직하지 못한 태도로 나왔을 때 예수님이 대답을 거절하셨듯, 영적인 귀를 열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해 우리 마음의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넷째,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의지의 운전대를 주님게 완전히 넘겨드림. 지체없는 순종.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다는 것은 내 의지의 운전대를 그분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았을 때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지체 없는 순종, 철저한 자아의 포기가 있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를 그분의 목적지로 이끄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각적임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말씀하실 때까지 묵묵히 대기함. 바울은 길이 막혔을 때 드로아에 머물며 기다렸습니다. 구약의 사울 왕은 기다리지 못해 자신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려 버림받았지만,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빠른 응답과 성공을 추구하는 이 시대 속에서, 기다림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필수적인 '영적 훈련의 학교'입니다. 내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하기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충분한 시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닫힌 문들이 있습니까?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한 드로아의 밤을 보내고 계십니까? 그곳은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새로운 마게도냐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멈춰 세우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겸손과 믿음으로 우리의 영적 주파수를 성령님께 맞추십시오. 내 고집을 꺾고 기다릴 때, 세미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포착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을 통해 유럽 복음화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듯,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에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