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사상을 미국에 심는 뉴욕 주립대 스토니 부룩 박성배 교수
장소: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 캠퍼스 박성배 교수 연구실
일시: 1989년 8월 25일
면담자: 이윤홍
창간 특별인텨뷰에 박성배 교수를 모시고 한국불교에 관한 박교수의 견해를 들었다. 박교수의 의견은 미주한국불교 정착화를 위해 나아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좋은 조언이 될 것이다. 박교수는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캠퍼스에서 한국학과 발전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한국불교전문가 육성과 한국사상 연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스토니 부룩 대학에 한국학과가 설립된 계기와 그 현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 저는 1977년에 이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78년 5월에 스토니 부룩대학에서 제 전공분야인 원효사상에 관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연 인원 300여명이 참가한 성공적인 회의였지요.
총장을 비롯한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의 호응은 뜻밖이기 만큼 대단했었죠. 여기서 한국종교사상은 학술적 개발의 의의가 큰 것이라는 교수들의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마버거 총장과 로버트네빌 인문대학장의 적극적 지우너으로 한국 종교사상 연구소 설립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스토니 브룩을 한국학의 명문으로 키우기 위한 계획이 총장의 인준을 받게 되었고 학교의 투자와 한국 교포사회의 적극적 모금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1987년 9월에 한국의 역사 문화 사상전반에 걸친 연구교육을 수행하는 한국학 과정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학과의 현황은 교수진으로 제가 한국 철학과 종교를 담당하고 있고 한국 문학의 최익환교수, 한국어, 한국문화, 예술, 경제, 기독교 등을 담당하는 여섯명의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과 몇 명의 외래 강사를 초빙하고 있지요. 박사과정 학생들과 몇 명의 외래 강사를 초빙하고 있지요. 박사과정의 대학원생 6명은 비교문학이 2명, 비교종교가 4명입니다.
학부에서는 약 200명의 학생들이 한국학과목을 수강하고 있고 이번 가을 학기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이 새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전반적으로 한국학 강좌에 대해 학생들의 호응은 점차 놓아져가고 있습니다. 스토니 브룩대학의 한국학은 미국내 다른 대학의 한국학 연구과 달리 한국의 사상을 비교학적인 측면에서 다룬다는데에 역점으루 두고 있지요.
이: 미국 불교학계의 한국불교에 관한 관심과 학문적 성과는 어떻습니까?
박: 유감스럽게도 이제까지 미국 불교학계의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은 본격적인 것이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불교 연구는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보다는 주변국가, 중국, 일본 불교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어져온 실정이지요. 즉 한국 불교사상을 형성시켜온 원효, 보조, 지눌, 서산대사, 만해 등 사상사의 주역들에 본격적인 연구라기보다는 중국, 일본 불교와의 관계라는 한국불교 외적인 측면에서 부수적으로 다루어져온 형편입니다.
심지어는 한국불교사상이란 실체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없이 화려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앞세워 한국, 중국, 일본 불교의 역사적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유행하고 있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한국불교 자체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지 않는 상태의 이런 주변적 논의는 공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 불교사상 자체의 개발이란 내적인 면이 보다 시급한데 동북아시아 불교의 사회. 문화. 역사적 관계라는 외적인 면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한국의 비중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커가고 있고 한국 전반에 대한 관심이 다방면에서 고조되고 있듯이 미국에서도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젊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좋은 학자들도 양성되고 있으므로 장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을줄 압니다.
이: 미국내 한국불교 학자들을 소개해 주시죠. 또 이들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앞서 지적하신대 미국 불교학계의 그런 경향속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연구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박: 한국불교 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버클리대학( U.C. Berkeley)의 루이스 랑케스터(Lewis Lancaster),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엔젤레스 분교(U.C. L.A)의 로버트 버스웰, 하바드 대학교에서 원측의 유식학을 연구중인 전 동국대학 교수 이민용씨가 있으며, 박사과정에 연구중인 젊은 학인들로서는 위스콘신 대학교의 정희수, 천장길,씨 스토니부룩 대학의 윤원철씨 등 외에 미국인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수가 있습니다.
랑케스터 교수는 과거 버클리대학 시절 나의 은사였고 해인사의 8만 대장경을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한 분이지요. 버스웰 교수는 30대 중반의 젊은 학자인데 순천 송광사의 구산스님 제자였고 직접 출가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요. 한국불교 학자들의 당면과제는 한국불교사상의 주역들이 남긴 해석학적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많이 해온 문헌학적 연구는 초기단계에 있는 한국불교 연구의 기초 작업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과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학문의 대상이기 이전에 현재 살아있는 종교이고 구체적인 신앙체이며 또 불교사상은 2,500여년에 걸친 불교인들의 종교적 체험의 총화입니다. 이렇게 볼때 불교의 연구는 불교라는 종교의 내용,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그 신앙과 수행의 윤리적, 사회적, 역사적 본질을 실질적인 대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불교학계를 포함해서 20세기 현 세계 불교학계의 대다수의 학자들이 사용하는 발표 수단은 과거 기독교 신학계에서 발달된 문헌학적 방법론에 얽매여 있을 뿐 불교사상사의 주역들이 기록한 종교적 체험을 현대의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한채 문헌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이런 공전현상이 극복되어야만 불교가 서양에 제대로 이해될 수 있고 동양내에서도 불교연구가 활기를 띨 수 있지요. 이에 대한 극복 역시 미국내 한국불교학계의 미래적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미국의 남방불교 학계는 경전해석에 있어서 인간학적 사회학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북방불교와 비교해 볼 때 이런 관심이 제기될 수 있는 배경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습니까?
박: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신앙과 수행에 관한 정의와 관련된 차이에서 살펴볼 수 있겠는데요. 종교와 사회 민중과의 관계에서, 북방불교 특히 한국불교는 조선조 이래 사회 주체세력에서 탈락되면서 사찰과 민중의 생활은 이원적으로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신앙과 실사회생활이 별개의 차원으로 이분화되면서 사회일반에 대한 관심이 불교외적인 문제로 교계밖에 머물렀을 뿐 내부에 수용되지 못해왔습니다. 즉 민중이 생활속에서 겪는 인간적, 사회적 갈등이 수행이라는 신앙의 실천적 행위속에 포섭되지 못한거지요. 반면에 불교국가 체제를 유지해 온 남방불교는 위정자들이나 국민들의 신앙과 수행이 국가체제는 물론 사회생활 전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제도를 포함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곧 불교내적인 문제로 수용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민중의 생활과 불교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온 남방불교의 종교적 전통에서 볼 때 남방불교의 경전연구에서는 자연스럽게 인간학적 사회학적 관심이 대두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양 불교의 신앙과 수행에 대한 전통적 입장과 정의의 차이가 경전해석이란 학문적 영역에 까지도 반영되는 것입니다. 남방불교의 역사적 전통과 비교해 반성해 보자면 한국불교는 일시적 현상으로 부득이하게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불교원래의 사상에서는 모든 이원론적 사고방식과 체계는 용납될 수 없다는 근본 가르침에 비추어 볼때 한국불교의 과거 역사에는 명백히 시정되어야 할 측면이 있는 거지요.
이: 1987년 8월 버클리대학에서 열렸던 세계종교인대회에 시인 고은, 강건기(전북대), 오강남(캐나다 레지나대), 정봉길(원불교), 삼우스님 등 시인, 종교학자, 종교인들이 참석하여 <기독교 불교의 대화>라는 토론회를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조직하셨던 이 토론회의 주제는 민중불교였는데 이때 대체적으로 어떤 논문들이 발표되었습니까?
박: 종교의 사회적 참여를 강조하는 논문과 민중불교와 기독교의 민중신학과의 관계를 다룬 논문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모임은 랑케스터 교수가 조직했었고 저는 옆에서 좀 도왔을 뿐이지요. 한국을 주제로 한 것으로는 처음갖는 만남이었고 구체적인 성과를 걷기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화>의 성격을 지닌 모임이었지요.
이: 교수님께서는 한국 민중불교의 전망과 발전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박: 일단 불교란 말이 붙는 이상 자기 믿음에 대한 성찰은 항상 견지되어야 합니다. 지금 민중불교가 고뇌해야 할 문제점은 그 믿음의 자세가 불교의 전통적인 신앙관에서 이탈하여 맑시즘적인 사회관에 입각한 믿음으로 변색되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불교 본래의 일원적 화합력을 상실한 이원론적 대립구조에 빠지므로써 일반 불교인들의 광범한 호응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민중불교는 고비에 봉착해 있습니다. 앞으로 민중불교는 정치, 사회적 이원론의 관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그 미래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 하지만 현 한국사회가 민중불교에 요청하는 바와 이에 따른 민중불교의 긍정적인 기여 역시 마땅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박: 물론입니다. 민중불교가 역사의 전개에 대해 안이했던 전통적 보수 불교계에 경종을 울려준 것은 소중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불교계 역시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적 우를 범한 채 사찰에만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민중불교가 이런 아이한 자세의 보수불교계에 일침을 가하고 사회를 향한 관심을 촉구한 것은 한국불교계에 일으킨 신선한 충격입니다.
이:교수님은 기존 불교계의 안이한 수행자세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럼 기존 불교계와 민중불교, 이들 양자에게 무엇이 바람직한 수행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박: 한국불교계 재래의 병폐로 사찰과 국가.민중을 별개의 대상으로 보는 수행관, 그리고 또한 요즈음에 유행하고 있는 맑시즘적 사회과학이론에 입각해서 사회적 모순만 제거되면 인간의 제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처럼 보는 민중불교의 신념, 이 양자 모두가 극복되어야 할 이원론적 수행의 자세입니다. 불교 고유의 부정의 논법에서 본다면 양부정(兩否定)이란 원래 있을 곳을 주지 않는 것이거든요. 어떤 방편을 취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힘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효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사회적 관심도 순수한 불교신앙에서 나와야 합니다. 결국 올바른 수행의 자세는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안주처를 구하는 법도 없고 불교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방편적 이념도 부정하는, 양극단을 대하는 중도(中道)에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중도를 모색하는 데에 넓은 층의 불교인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 점은 특히 민중불교가 나아가야할 미래에 당부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민중불교에 관해서 여러 견해를 피력하셨습니다. 기존 교계에서 종종 강조하는 불교의 실천적 역할이라는 호국불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호국불교와 민중불교가 대치되는 개념으로 잘못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이는 호국불교란 말이 자칫 위정자를 위한 불교로 오해되고 또 그렇게끔 기능하기도 한 탓입니다. 원래적인 의미의 호국불교는 호민불교를 뜻하지요. 즉 전통적인 호국불교는 민중불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고승들이 파악한 국가란 곧 인민의 집합체이자 인민이란 동체로 이루어진 형식으로 보았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대별되고 대립될 수 있는 계급의 결속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처럼 국가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란 이원론적 갈등관계속에서 파악하게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민(民)과 국(國)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전통적인 불교의 국가관에서는 호국불교는 곧 호신불교이지요. 하지만 요즘 실제 호국불교란 말을 앞세워 기층민과 대립관계에 있는 집권세력에 결탁하고자 하는 불교계 일부에 의해 그 원래적 의미와 기능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호국불교세력은 전통불교의 입장에서도 마땋히 척결시켜야 할 현 한국불교계의 문제입니다.
이: 한국 현대사에서 토착종교인 불교는 외래 종교인 기독교의 급격한 팽창과는 대조적으로 위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종교적, 사회적 역사적 요인들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우선 불교계 자체가 반성해야할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박: 간단히 말하기에는 아주 복잡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위축되고 퇴락되어온 문제의 원인은 바로 내가 24시간 가지고 다니는 몸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불교인은 믿음에 대한 점검이 없었습니다. 내가 믿는 대상과 믿는다는 행위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 시도되지 못한 채 종래의 선지식이 남겨논 말을 그대로 주문처럼 외우는 믿음, 일상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관념적 신비에 사로잡힌 믿음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원래 불교의 선지식이 말한 신비란 일원적 각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지금 내가 살아 움직이는 지점을 떠나서는 어디에서도 구해질 수 없는 신비입니다.
바로 믿음의 점검은 구체적인 현실성과 관계가 없는-주술화되고 관념적으로 신비화된 -신앙에 이성적인 성찰과 비판을 가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란 어떤 혼란이나 혼선도 용납하지 않으니 만큼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인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인 현실에다가 모든 논리를 초월한 신비적 경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불교이지, 현실의 엄정한 논리성과 종교적 신비를 배타적으로 대립시켜 어느 한쪽을 버리거나 취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적 가르침은 중도입니다. 이 중(中)의 의미는 극단의 양부정을 통해 자기를 부정하는 혁명을 일으켜 보다 고차적인 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논리만에 의존한 이성주의자의 차가운 신앙도, 또 미신적인 신비주의자의 믿음도 다 부정하여 자기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혁명의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해 한국불교는 다시 소생해야 합니다.
이: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고국에 있는 한국불교학자들이 해외 불교학계의 연구활동에 기여해주실 수 있는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박: 종교학의 연구는 먼저 서지학적 연구(Bibligraphical Research)와 문헌비평(Textual criticism)그리고 문헌학 일반(Philology)과 해석학(Hermeneutics)적 단계를 거쳐 새로운 비평이론이나 비교문학 비교사상 등 비교학 일반으로 전개됩니다. 고국의 불교학계에서 서지학적 연구의 대표적 학자는 작고하신 조명기 박사이신데 이 분야는 상당히 진척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계의 현 단계는 문헌비평과 Philology의 중간 지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고국의 학자들이 주력해 주실수 있는 분야는 Philology와 historical approach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불교인들이 남겨놓은 저술들을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는 작업입니다. 아주 엄밀하고 책임있게 번역해 내야만 해외학계에서 학술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아주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입니다.
이: 듣고보니 고국에 계신 불교학자들께서 해주실수 있는 작업은 또한 그분들의 과제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앞서 한 질문과 중복되는 것 같습니다만 미국불교학계의 연구풍토는 어떻습니까?
박: 미국 학자들의 결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들은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전에 불교사상을 해석하는 이론을 먼저 배우고, 그 짜여진 이론의 틀을 가지고 불교문헌을 분석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논문을 읽어보면 정교하게 서술된 인상을 받게 됩니다만, 종교사상의 순수한 이해를 추구했다기 보다는 인격의 자리가 빠져버린 기계적 이론의 적용과 전개에 치우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종교사상의 이해란 기계적인 분석적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법입니다.
학자의 학문적 방법론에 앞서 종교적 가치에 대한 부단한 인격적 실험이 자기 내면에서 또 실천적 행위로 수행되어야만 참다운 종교사상의 이해와 체험이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학문외적인 주장으로 들릴리 모르지만 오히려 미국대학과 학계전반에 만연된 지적병폐를 지적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대학은 분명히 20세기 문명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에 봉사해야만 하는데서 오는 구조적 제한과 지적 제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제한과 제약이 자연히 학생들의 관심사나 학자들의 연구풍토가 관련되기 마련이지요. 어떤 사상에 대한 인격적 접근이 결여된 단순한 방법론만 문제삼는 연구풍토는 불교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서 발견될 수 있는 20세기 미국대학의 고민거리입니다.
이: 교수님은 한국학계와 미국학계에서 모두 연구와 교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후학들에게 각별히 당부하고 싶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박: 국내 학계에서 학자의 기본적 소양으로 philology(주:고전과 언어학에 대한 소양)에 대해 무척 강조하고 있고 이에 대한 훈련 역시 몇세기에 걸쳐 발달되어 왔습니다. 우리 한국은 philology의 역사가 상당히 길고 광범위합니다. 옛날 사람의 교육이 바로 philology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미국의 학계와 신학문이 과거의 우리 교육체제와 교육내용을 대체하면서 우리의 고전에 대한 소양과 한문교육 일반이 박약하리만치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한문공부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곳 미국학생들이 학문의 기초에서부터 시작해서 편지쓰기, 작시까지 1년 정도의 단기간에 습득하는 것을 제가 U.C. Berkeley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한문공부가 영어공부보다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우리는 과거의 유산이라면 무조건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서 부정했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 새롭게 다시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는 앞으로는 학문적 성취를 위해 특히 우리 고전과 학문에 대하여 인식을 새롭게하여 철저하게 공부해 달라는 겁니다.
이: 이제 우리의 관심을 이곳 미주교포불교인들에게 돌려야 하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불교교단에 대해서 평소에 느끼시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 특별히 한국불교계와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한국불교계의 연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계의 좋고 나쁜 점이 있다면 역시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가지 이민사회의 불교라는 현장감과 현장에 대한 올바른 관찰이 한국에서와는 달리 요청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가령 포교사업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현장에 대한 이해- 미국인과 미국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 가 특별히 요구되겠지요. 그리고 일반 신자들의 신앙자세는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믿음에 대한 검증을 거친 생활과 신앙, 안팎이 일치된 일원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소수민족의 종교로서 미국의 한국불교가 가진 문제점과 제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본지 <미주현대불교>기 창간되었습니다. 본지가 지켜 나가야 할 자세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박: 이런 언론출판활동은 결국 많은 사람을 위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을 위한다고 하는 것, 타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나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하는 점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가치관은 인문, 사회고학적 가치와는 달리 먼저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되고 증명되고 또 실천되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는 사회개선을 위한다는 교육, 언론, 출판활동뿐만 아니라 또 민중불교나 민중신학 같은 진보적 종교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기 증명과 실험이 없이 남을 위한다는 것은 자칫 자기기만이나 위선으로 빠질 수가 있는 법입니다. 또 실제적으로 사회일각에서 자기 기만적인 추행과 위선을 저지르는 많은 종교계 인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자기 증명과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사회개선이란 결코 힘을 가질수가 없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천적 자세를 잃징않는 미주현대불교를 기대하겠습니다.
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수님 자신의 지난 삶과 최근의 학문적 관심을 소개해 주십시오.
박:저는 1933년 전남 보성에서 유교적 가장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학년때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다 아다시피 광복직후의 한국사회는 일대 사상의 혼란기- 각종 사상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좌우의 대립, 신(新 )구(舊)의 갈등, 보(保).혁(革)의 알력이 난무하는 시대풍조 속에서 뚜렷하고 일관된 가치관을 습득할 수 있는 사춘기를 가질 수도 없었고, 오히려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민족상잔을 겪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격변에 따라 우리 세대가 다 경험했듯이 부단한 좌절과 투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20대 초반에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세계관에 깊이 접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의과대학 예과에 재학중이었는데, 전후의 암울한 시대상황과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자적인 갈등에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버렸습니다. 급기야는 신경쇠약으로 절에 가서 휴양해야 할 정도로 건강을 해쳤습니다. 요양생활을 했던 절에서 심신의 회복과 함께 불교의 가르침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후 전강스님을 찾아 해남의 대흥사에 내려가 출가하였습니다. 얼마의 수행생활 뒤에 좀더 공부하고자 환속하여 동국대학교 철학과로 전과했고 1960년 대학원을 마친 뒤 1962년부터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몇 년간 교단에 섰습니다.
1966년 교수생활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해인사의 성철스님을 찾아 재출가를 했지요. 미국에 온 것은 1969년입니다. 처음에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남감리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의 신학부 (Perkins School of theology)에서 2년 반 동안 기독교 신학을 공부했어요. 이곳에서 공부한 이유는 미국의 정신적 배경과 서양종교사상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버클리대학으로 와서 원효사상 연구로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77년 이래 스토니부룩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학문적 관심은 한국사상의 양대지주인 불교와 유교의 상호관련과 영향에 대한 연구입니다.
구체적으로 12~13세기 고려시대의 고승보조지눌과 16세기 조선의 대성리학자 퇴계의 사상을 비교연구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몇세기를 떨어져 있는 한국사상계의 두 거인이 사상적으로 매우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평생토록 씨름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밝혀놓으면 한국의 철학종교사상사의 맥락을 밝히는데에 크게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원효전집번역 작업, 이상 두 가지가 최근의 제 학문적 주관심사입니다.
이: 바쁘신 중에도 장시간의 면담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한국불교의 발전에 많은 기여와 미국의 한국불교학 정착을 위한 보다 큰 공헌을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1989년 10월 창간호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