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綠內障)은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시야가 점점 좁아져 실명에까지 이르는 병이며, 백내장,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을 초래하는 안과 3대 질환 중의 하나이다. 질병 이름에 푸를 녹(綠)자가 들어 있어 눈이 푸르게 변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푸른색과 무관하다. 녹내장은 인구의 약 2% 내외에서 발병되는 흔한 질환이며 국내에 약 100만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주변부의 시야가 좁아져 말기엔 시력의 장애가 오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실명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성으로 오는 약 10%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기에 자각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다가 다른 이유로 우연히 안과를 방문하였다가 진단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행히 요즘은 과거에 비해 녹내장의 위험성에 대해 홍보가 많이 이루어지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분들이 늘어남에 따라 조기발견이 점점 증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녹내장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현재까지 시신경이 손상되는 두 가지 기전으로 압력에 의한 기계적 손상과 혈류장애에 의한 허혈손상 모두가 관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기계적 손상은 눈 속의 압력인 안압이 높은 경우 눈 속의 시신경이 압력에 의해 눌려서 죽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 받고 있는 녹내장 치료법도 안압을 낮추는 치료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혈압이 높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이 아니듯 안압이 높다고 하여 모두 녹내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이런 경우를 녹내장과 구별하여 고안압증이라고 한다). 또한 안압이 정상인 사람에서도 녹내장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이런 경우를 정상안압녹내장이라 부른다).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에서는 녹내장 중에서 정상안압녹내장이 안압이 높은 고안압녹내장에 비해 월등히 더 많으며 이는 서양인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또한 당뇨병 환자에서 녹내장의 발생빈도가 높고 정상안압녹내장 환자에서 고안압녹내장에 비해 시신경유두출혈의 빈도가 3배 이상 높으며 말초혈액순환장애의 증상이 흔한 사실은 녹내장의 발생기전에 시신경으로의 혈류장애가 관여할 것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녹내장의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녹내장의 위험인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안압이다. 그 밖에 부모, 형제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는 사람, 고령, 당뇨병이 있는 사람, 고혈압이 있는 사람, 근시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녹내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녹내장은 초기에 증상이 없다. 그 이유로서 첫째는, 약 90%의 녹내장이 안압이 서서히 오르거나 정상인 개방각녹내장이어서 급격한 안압상승의 증상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초기의 시야 장애는 주변부부터 시작되므로 환자가 이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압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약 10%의 녹내장에서는 급격한 안압상승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안통, 두통, 메스꺼움, 구토 등이 나타나며, 각막주위 흰자위의 충혈이 발생하고 각막이 붓기 때문에 시력저하와 불빛을 쳐다볼 때 불빛 주위의 달무리현상이 나타난다. 동공은 중간정도로 산대되어 눈에 불을 비추어도 동공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녹내장이 진행하여 시신경의 대부분이 손상된 말기가 되면 시야가 좁아져서 중심부의 시야만 남게 되는데 주변을 못 보더라도 시력에 중요한 중심이 살아있으므로 어느 정도 시력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을 헛딛거나 길을 다닐 때 옆에서 오는 자동차나 사람을 볼 수 없게 된다. 더욱 진행할 경우는 이러한 중심시야 마저 잃게 되면서 갑작스런 시력감소를 느끼게 된다.
녹내장의 진단은 안압검사, 시신경유두검사, 시야검사, 전방각경검사를 이용하여 하게 되며, 이 중에서 녹내장의 조기발견을 위하여 필수적인 검사는 안압검사와 시신경유두검사이다. 안압의 정상범위는 혈압의 약 10분의 1 수준인 10~21mmHg이다. 안압은 눈 속에서 순환하고 있는 물 성분인 방수의 압력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하수도에 해당되는 부분에 문제가 생겨 물이 눈 밖으로 잘 배출되지 못할 경우 안압이 오르게 된다. 정상보다 높은 안압의 경우 녹내장에 대한 정밀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안압이 정상인 녹내장이 더 많으므로 안압이 정상이더라 하더라도 시신경의 모양을 확인하는 시신경유두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정상적으로 시신경유두의 중심부에는 웅덩이 모양의 함몰부(cup)가 있는데 녹내장이 진행할수록 함몰의 크기가 커진다. 특히 녹내장의 초기에는 시신경유두의 위쪽과 아래쪽으로 들어오는 신경섬유들이 먼저 손상되므로 위쪽과 아래쪽 신경조직의 소실로 인한 함몰의 증가가 상하방향으로 일어나며, 이러한 상하방향으로 길쭉한 웅덩이 모양은 초기 녹내장의 특징적인 소견이다(그림 1). 안압검사와 시신경유두검사로 녹내장이 의심되면 시야검사(그림 2) 및 망막신경섬유층촬영(그림 3)으로 확진을 하게 된다.
녹내장은 종류가 다양하여 수십 가지로 분류될 수 있으나 크게 네 가지, 원발개방각녹내장, 원발폐쇄각녹내장, 선천녹내장, 이차녹내장으로 나눌 수 있다. 원발개방각녹내장은 전방각(각막과 홍채가 이루는 각)이 열려있는 녹내장으로 안압상승은 섬유주부위의 방수유출 저항의 증가로 인하여 일어난다. 안압이 정상범위에 있는 정상안압녹내장도 전방각이 열려 있으므로 이 부류로 분류된다. 전체 녹내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안압은 정상이거나 서서히 상승하므로 안압상승으로 인한 증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원발폐쇄각녹내장은 각막과 홍채가 이루는 전방각이 폐쇄되어 안압이 상승되는 녹내장이며 급격한 안압상승으로 인한 특징적인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선천녹내장은 선천적인 섬유주부위의 이상으로 인하여 출생 직후 혹은 유아기에 안압이 상승되는 녹내장이며 안구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증가되는 것이 특징적인 소견이다. 선천녹내장 때 안구가 커지는 이유는 성인에 비해 흰자위와 각막조직이 부드럽고 잘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차녹내장은 당뇨망막병증, 포도막염, 백내장 등의 안구 질환에 이차적으로 발생되는 녹내장을 의미하며 원인질환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대부분의 녹내장은 약물치료를 우선적으로 하게 되는데 녹내장의 약물치료 중 현재까지 효과를 확실하게 인정받고 널리 쓰이고 있는 치료법은 안압을 낮추는 치료법이다.
안압을 낮추는 약제는 크게 점안제와 전신약제로 나뉘며 전신약제는 전신부작용발생이 우려되어 점안제가 우선적으로 쓰인다. 점안제는 하루 한 번 점안하는 약제부터 하루 두 번 또는 세 번 점안하는 약제까지 다양하며 한 가지 약제로 안압하강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두 가지 이상을 함께 처방하기도 한다.
안압이 녹내장에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으나 혈류장애가 녹내장의 발병기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시신경으로의 혈액공급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전신질환으로 당뇨병, 고혈압, 저혈압을 들 수 있다. 당뇨병 환자에서 녹내장의 유병율이 높게 보고되고 있고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이차녹내장인 신생혈관녹내장이 발생하므로 당뇨병 환자의 경우 당뇨에 대한 철저한 치료가 녹내장의 치료 및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할 수 있다. 저혈압은 시신경으로의 혈류를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저혈압에 대한 내과적 치료를 받아야 하며, 고혈압환자에서의 과도한 치료는 밤중에 저혈압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주의를 요한다.
최근 시신경세포인 망막신경절세포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로서 신경보호치료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신경보호치료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연구는 녹내장의 발생기전에 관계없이 신경세포가 사멸하는 최종공통경로가 밝혀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신경보호치료가 임상에 쓰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임상시험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녹내장 환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우선 처방된 약물을 정확하게 사용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근거리 작업을 오랫동안 할 경우 안압이 상승할 수 있으므로 눈을 너무 피로하게 하지 않으며 40~50분 간격으로 적절한 눈의 휴식을 단 몇 분이라도 갖도록 한다. 머리에 피가 몰리는 자세 혹은 복압이 올라가는 운동은 안압을 상승시킬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으며 등산, 조깅, 수영, 에어로빅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이 너무 졸리는 넥타이나 상의 역시 안압을 올릴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담배는 시신경에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음은 안압 변동의 폭을 크게 하여 시신경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금연과 절주가 필요하다. 항산화작용이 있는 비타민과 음식은 시신경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충분한 양을 섭취할 것을 권한다.
병의 진행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신경검사와 시야검사를 적어도 1년에 1~2회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하며 병이 많이 진행된 환자는 더 자주 시행한다. 시신경손상의 진행여부는 시신경 및 망막신경섬유촬영을 연속적으로 비교하여 판단하며 최근 시신경유두 및 망막신경섬유층에 대한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시신경유두분석기들이 보조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약물로 안압조절이 불충분하거나 병이 진행할 경우는 레이저 치료 혹은 수술적 치료로 안압하강을 고려해야 한다. 수술은 방수가 눈 밖으로 빠져나가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녹내장은 거의 대부분 초기에 증상이 없는 흔한 질환이므로 정기적인 눈 검진이 녹내장의 조기진단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엔 서양과 달리 안압이 정상인 녹내장이 더 흔하므로 안압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시신경검사를 꼭 받아야 하며 녹내장이 의심될 때에는 시야검사를 통하여 확진을 하여야 한다. 일단 진단이 되면 안과의사의 지시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정기적인 검사를 받음으로써 병의 진행을 막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