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에 대해 쓰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읽는 것도 힘들었다.
책을 주로 밤에 주루룩 읽는데... 도무지 밤에 읽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마음까지 들면서.
토욜 반포에 결혼식을 잠깐 다녀오고 내내 읽었다. 짬짬이 긴 쉼을 가지며.
오래 전, 제주에서 빈첸시오 활동하면서 만난 4.3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도 쉬쉬하던 이야기였다.
꿈으로 시작해서 현실과 꿈이 오가는 느낌,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 찐득하게 따라붙는다.
책과 놀지 못한, 불편한 독서였다.
이렇게 시작한다.
*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력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9쪽)
* 건강해 보여도 방심할 수 없어.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그러다 횃대에서 떨어지면 이미 늦는 거래. (112쪽)
*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 대상이 된 사람들이 가입된 그 조직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치적인 강연에 청중으로 참석한 것도 가입 사유가 되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할당 인원을 채우느라 이장과 통장이 임의로 적어 올린 사람들, 쌀과 비료를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포함되었고, 1950년 여름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했다.
(273쪽)
*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이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317쪽)
첫댓글 고통의 역사를 마주 할 용기가 없어 저는 자꾸만 피하게 됩니다~
피하고 싶은 사실을 알려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지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잘 읽힙니다. ^^
지난 봄 제주도에 갔다가 4.3 평화공원에 들렀어요.
너무나 잔인한 사건들을 그때 속속들이 눈으로 보았어요.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었어요.
<작별하지 않는다> 구입해서 읽어야겠네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요.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명아래 미군이 저지른 제주 4.3사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사건처럼 어린아이 까지 죽이다니
억울한 영혼들 앞에 자신들은 몇 천을 더 살겠다는 건가요?
무식은 최악의 죄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