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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39강 - 1 (2013. 5. 6.)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四
賢首品 第十二之一
二. 賢首菩薩의 偈頌答(현수보살게송답)
11. 無限大用(무한대용)
(6) 四攝法三昧(사섭법삼매)
마. 利行(이행)
(7) 世間三昧(세간삼매)
가. 身(신)
나. 外道(외도)
다. 語業의 大用(어업대용)
上講禮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諸佛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尊法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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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 龍樹菩薩略纂偈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忉利天 夜摩天王兜率天
化樂天王他化天 大梵天王光音天 遍淨天王廣果天
大自在王不可說 普賢文殊大菩薩 法慧功德金剛幢
金剛藏及金剛慧 光焰幢及修彌幢 大德聲聞舍利子
及與比丘海覺等 優婆塞長優婆夷 善財童子童男女
其數無量不可說 善財童子善知識 文殊舍利最第一
德雲海雲善住僧 彌伽解脫與海幢 休舍毘目瞿沙仙
勝熱婆羅慈行女 善見自在主童子 具足優婆明智士
法寶髻長與普眼 無厭足王大光王 不動優婆遍行外
優婆羅華長者人 婆施羅船無上勝 師子嚬伸婆修密
鞞瑟胝羅居士人 觀自在尊與正趣 大天安住主地神
婆珊婆演主夜神 普德淨光主夜神 喜目觀察衆生神
普救衆生妙德神 寂靜音海主夜神 守護一切主夜神
開敷樹華主夜神 大願精進力救護 妙德圓滿瞿婆女
摩耶夫人天主光 遍友童子衆藝覺 賢勝堅固解脫長
妙月長者無勝軍 最寂靜婆羅聞者 德生童子有德女
彌勒菩薩文殊等 普賢菩薩微塵衆 於此法會雲集來
常隨毘盧遮那佛 於蓮華藏世界海 造化莊嚴大法輪
十方虛空諸世界 亦復如是常說法 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世主妙嚴如來相 普賢三昧世界成
華藏世界盧舍那 如來名號四聖諦 光明覺品問明品
淨行賢首須彌頂 須彌頂上偈讚品 菩薩十住梵行品
發心功德明法品 佛昇夜摩天宮品 夜摩天宮偈讚品
十行品與無盡藏 佛昇兜率天宮品 兜率天宮偈讚品
十廻向及十地品 十定十通十忍品 阿僧祗品與壽量
菩薩住處佛不思 如來十身相海品 如來隨好功德品
普賢行及如來出 離世間品入法界 是爲十萬偈頌經
三十九品圓滿敎 諷誦此經信受持 初發心時便正覺
安坐如是國土海 是名毘盧遮那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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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湘祖師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意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오늘 현수품 공부 들어가기 전에, 나눠드린 “화엄 요해” 라는 것 있지요? 화엄경은 워낙 방대해서 그야말로 큰 바다와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 경전인데요. 그 전에 나눠드린 “화엄경 구성 표” 저기도 붙여놓고 그랬는데요. 공부화엄경 구성 표를 보면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공부하시면서 가끔 화엄경 구성 표를 눈여겨보시고, 그 다음에 그보다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된 것이 바로 “화엄경 요해” 입니다.
이것은 39품 매 품절로 요긴한 그런 내용을 설명을 해서, 우리가 한 품을 시작하더라도 세월이 한참 걸립니다. 한 품이 다른 경전 한 가지하고 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하나의 독립된 경전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참 본문 속에 빠져서 허덕이다 보면, ‘이것이 화엄경인가? 우리가 지금 화엄경 어디쯤에 와 있는가?’낯선 관광지에 가서 한참 그 어떤 관광에 즐기다보면 출입구도 모르고, 나가는 길도 모르고 해가지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허다히 있습니다. 화엄경도 또한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주 세밀하고 알뜰하게 부분ㆍ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저의 강의가 주로 그렇게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전체를 또 조망할 수 있는 그런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전체 속에서 ‘우리가 어느 부분에 공부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추려서 개발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렇게 “화엄 요해” 도 준비를 해서 스님들에게 나눠드렸습니다. 한 번씩 “요해” 를 읽으면 전체를 간추려서 보는데 아주 좋습니다. 또 그 안에 도표가 하나 있어가지고, 전체 39품을 “구성 표” 형식으로 그려놓은 것도 있고 해서 전체를 파악하는데 아주 요긴한 내용입니다. 스님들도 어디서 인연 따라서 화엄경을 가르칠 수도 있으니까 그러한 길을 헤매지 않도록 하는 지침서도 되고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또 오늘 반야심경사경 책을 나눠드렸는데요.그 동안 사경지가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에 나와 있습니다. 저도 사경지를 만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가 만들어졌었는데요. 만들었을 때마다 늘 뭔가 마음에 좀 미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를 한 결과, 지금까지는 가장 친절하고 또 가장 이상적인 “사경 본이다.” 라고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까 참 잘 됐고,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또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늘 그렇게 하듯이 이것을 저기다 비치해 놓을 테니까 필요한 만치 가져가셔서 신도님들에게 또 가르치고, 이것을 가지고 강의하기도 딱 좋고요. 그러면서 또 쓰고요. 한 자ㆍ한 자 뜻을 알고 쓰고, 뜻 모르고 사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사실은 그림 그리는 것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한 자ㆍ한 자 무슨 자인지 뜻 알고, 또 ‘전체적으로 어떻게 해석이 되는가?’ 이런 것들도 아주, 하여튼 최대한 친절하게 만든다고 만들어진 사경본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이렇게 하는 것은 스님들이 여기서 보시고, 각자 스님들 절에서 신도들을 가르칠 때 = 불교를 가르칠 때, 조금이라도 좀 본보기가 되도록 하자고 하는 그런 뜻에서 저는 나름대로 고심을 많이 하고, 연구를 그렇게 해서 이렇게 나눠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가서 그대로 복사해서 쓰셔도 좋고, 여기서 가져가서 쓰셔도 좋으니까 뭔가 우리가 신도들에게 불교를 가르칠 때에, 그래도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가장 최선의 어떤 교재, 말하자면 공부하기 가장 편리하고 친절한 교재를 늘 마음에 두고 계속 연구를 하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면서 그렇게 전해주는 것, 이자세가 참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말하자면 포교이고 전법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한번 만들어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 보문 품 게송ㆍ법성게, 이것을 계속, 지금 출판사에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신도들에게 지도 할 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특별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賢首品 - 361쪽. 利行(이행)이라고 하는 과목부터인데요.
현수 품을 공부해 보니까 현수 품 내용이 참 정말 좋습니다.
앞에서 정행 품도 좋았지만, 현수 품에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
長養一切諸善法(장양일체제선법)
斷除疑網出愛流(단제의망출애류)
開示涅槃無上道(개시열반무상도)라. 고 하는 그 유명한 그런 내용도 있고, 특히 信爲法藏第一財(신위법장제일재). (37-2) 제가 참 감명 깊게 받아들이는 구절인데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법의 창고에서 제일가는 재산이 된다. = 第一財. 그랬습니다. 제일가는 재산이 된다. 하는 그런 구절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구절하며, ‘어떤 품보다도 내용이 참 돋보인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利行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어떤 방법으로, ‘어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이롭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것이지요.
360쪽 제일 위에 과목을 보면 四攝法三昧(사섭법삼매)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布施ㆍ愛語ㆍ利行ㆍ同事. 그런데 순서가 布施ㆍ愛語ㆍ同事ㆍ利行.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 중에서 상대가 이롭도록 해주는 그런 배려ㆍ그런 교화방법, 참 중요하지요. 물론 보시도 중요하고ㆍ애어도 중요하고ㆍ동사도 중요하지만, 또 利行. 상대에게 이롭도록 해주는데 그 사람, 안 따를 사람 없습니다. 상대를 늘 손해보이고, 자기가 이롭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그러잖아요. 대개 그렇습니다. 신구의 3업을 전부 자기 이롭도록 하고, 남은 두 번째로 그렇게 하는데요. 남이 이롭도록 하는 마음을 우선으로 하는 그런 보살행위. 이러한 내용들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지요.
마. 利行(이행)
若有不識出離法하야 不求解脫離諠憒면
菩薩爲現捨國財하고 常樂出家心寂靜이니라
家是貪愛繫縛所니 欲使衆生悉免離일새
故示出家得解脫하야 於諸欲樂無所受니라
菩薩示行十種行하며 亦行一切大人法과
諸仙行等悉無餘하나니 爲欲利益衆生故니라
若有衆生壽無量하야 煩惱微細樂具足이면
菩薩於中得自在야 示受老病死衆患이니라
或有貪欲瞋恚痴하야 煩惱猛火常熾然이면
菩薩爲現老病死하야 令彼衆生悉調伏이니라
如來十力無所畏와 及以十八不共法과
所有無量諸功德을 悉以示現度衆生이니라
記心敎誡及神足이 悉是如來自在用이라
彼諸大士皆示現하야 能使衆生盡調伏이니라
菩薩種種方便門으로 隨順世法度衆生이
譬如蓮華不着水니 如是在世令深信이니라
若有不識出離法(약유불식출리법)하야,
만약 어떤 사람이 出離法을 알지 못한다. 出離法 =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것.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도리. 그것을 알지를 못해서
不求解脫離諠憒(불구해탈이훤궤)면,
해탈도 구하지 아니하고 또 시끄러운 것. 번뇌 망상으로 인해서 시끄러움을 떠날 줄도 모르면, 그럴 것 같으면
菩薩이 爲現捨國財(보살위현사국재)하고,
보살이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나라와 그리고 자기의 재물을 보시해서 = 버리고,
常樂出家心寂靜(상락출가심적정)이니라. 그랬습니다.
항상 출가를 즐겨해요. 출가라고 하는 것은 꼭 집에서 떠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형식적인 것도 포함됩니다만, 정말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남을 위해서 이롭게 할 수가 있고, 자기는 돌보지 않는,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것이 출가 아니겠습니까? 자기 위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래서 마음이 적정함을 나타내 보인다.
그러니까 보살은 형식적인 출가도 중생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도 중생을 위해서 했고, 집에서 출가한 것도 중생을 위해서 했고, 그렇게 해석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정한 보살은 출가도 중생을 위해서 출가한 겁니다. 중생을 위한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출가가 아닌 것이지요. 도피지요. 앞에서, 정행 품에서 우리가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중생을 위해서 행위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게송.
家是貪愛繫縛所(가시탐애계박소)니, 그랬습니다.
집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가정이라고 하는 것, 형식적인 어떤 건물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탐욕과 애착. 그로부터 속박되는 장소가 된다. 家是貪愛繫縛所. 그러한 장소가 된다. 토굴만 하나 만들어놔도 거기에 매달려 가지고 꼼짝달싹 못하고, 조그마한 절하나가지고 있어도 꼼짝달싹 못하고, 오히려 큰 절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더라고요.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물며 세속의 어떤 가정을 이루고 있는 처지라고 하면, 그 집착이 오죽 하겠습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ㆍ자기가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그것 우리가, 스님들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이해해줘야 됩니다. 그것 정말 이해해줘야 됩니다. 스님들은 그런 처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貪愛와 繫縛의 처소가 된다.
欲使衆生悉免離(욕사중생실면리)일새.→ 욕사중생실면릴새.
중생을 위해서 모두 다 면하고 떠나고자 할 세.
故示出家得解脫(고시출가득해탈)하야,
그래서 출가하여 해탈을 해서,= 出家得解脫해서,
於諸欲樂無所受(어제욕락무소수)니라.
모든 欲樂에서 받아들이는 바가 없음을 보이느니라. 이러한 것을 보살이 보여주는 것이지요. 보살이 출가한 것은 바로 그러한 본보기를 보이기위해서 출가한 것이다. 그 다음에
菩薩示行十種行(보살시행십종행)하며, 보살이 十種行을 행하며
亦行一切大人法(역행일체대인법)과, 또 일체 大人法과 그리고
諸仙行等悉無餘(제선행등실무여)하나니,
仙行이라고 하는 것은 신선의 행이니까 부처님을 大仙 = 큰신선.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역시 부처님의 행, 이러한 것들을 보여서(바로 위에 있는 示자를 여기다 새기지요.) 그러한 것들을 보여서 悉無餘 = 남음이 없게 다 원만히 보인다. 그런 말이지요. 그래서
爲欲利益衆生故(위욕이익중생고)니라.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그렇습니다. 여기 十種行이라고 하는 것은 의외참정 5종이 있고, 의외참정ㆍ의내참정 이런 등등으로 까다롭게 나누는 경우가 있는데요. 대강 말씀드리면,
첫째는 無罪利行(무죄이행)이라. 아무 허물이 없는 어떤 이로운 행. 그 다음에 不轉(부전)利行이라고 해서 어디에 끄달리지 않고 굴러다니지 않는 변화가 없는 그런 利行. 漸次(점차)이행. 變行(변행)이행. 여음.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주는 그런 이로운 행. 이것이 다섯 가지이고, 그 다음에 또 다섯 가지가 뭔가 하니
모든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심을 일으켜서, 마음으로부터 즐겁게 생각하도록 그렇게 利行을, 이로운 행을 행한다. 여기 利行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十種行이 상대를 이롭게 하는 행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 다음에
모든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所作. 짓는 바 일이 이로운 것을,
이로운 것이 비록, 자기가 고통을 많이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에 싫어하거나 게을러함이 없는 것. 그래서 深生歡喜(심생환희). 깊이 歡喜心을 내게 하는 것. 그것이 모든 중생을 위한 이로운 행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安處最勝第一位(안처최승제일위) 라고해서 자기가 처해있는 가장 소중한 지위에 안처해 있으면서, 쉬운 표현으로 자기가 “주지다.” 이런 경우, 그러면서 제일 스스로 겸손하고 下心(하심)하는 것이지요. 자식과 같이 下心하고 종과 같이 下心하는 겁니다. 주지노릇하면서 공양주처럼 下心하고, 청소하는 무슨 처사님같이 下心하고, 부목이나 경비처럼 下心하고, 우리 주변의 쉬운 예를 들자면 그런 뜻입니다. 그것이 교만을 떠나는 이로운 행이다.
참 중요한 것이지요. 여기 十種行에 그러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心無愛(심무애)라. 마음에 어떤 애착의 물듦이 없어가지고 헛된 짓을 하지 않는다. 헛되고 거짓된 짓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 대개 허풍 떨고 거짓스러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기가 뭔가 어떤 자존심이라든지 이로움이라든지 이런 데 대한 애착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래서 상대를 진실하게 애민이 여겨서 이로운 행을 행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필경에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자비심. 또 상대를 연민히 여기는 그런 마음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이로운 행을 행하는 것이다.
十種行이 이렇게 대강 열 가지로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게송.
若有衆生壽無量(약유중생수무량)하야,
만약 어떤 중생이 수명이 無量해요. 아주 뭐 수 100년, 수 1000년 산다.
그러면서
煩惱가 微細해서 樂具足(번뇌미세락구족)이면,
번뇌가 아주 많아요. 말하자면 “먼지처럼 아주 많이 끼어있다.”
그렇게 微細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연에 낙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具足할 것 같으면
菩薩이 於中에 得自在(보살어중득자재)하야,
그런 상황에서 보살은 自在함을 얻어요.
사람들이 오래 살면요? 망상이 많고 욕심이 더 많아요. 왜냐? 경험이 많고, 쌓인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고 하다 보니까 여기는 또 번뇌도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보살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자재 함을 얻어가지고서
示受老病死衆患(시수로병사중환)이니라. 이랬습니다.
老ㆍ病ㆍ死 =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그런 온갖 근심거리를 받는 것을 보여준다. 보살이 일부러 그러한 고통을 받는 것은, 그것이 말하자면, 오래 살면서 번뇌 망상이 많고, 사람으로서 아주, 말하자면 뭐라고 할까? 어떤 의미에서 정신이 쓰레기통과 같은 그런 삶을 사는, 늙어서 아주 못쓰게 된 그런 삶을 老獪(노회)라고 하나요? 참 어찌하지 못하는 그런 인생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이들에게 어떤 “교훈으로 보여준다.” 그런 말입니다.
경전에 이런 말이 있지요.
어떤 사람이 죽었어요. 그는 절에서 살면서 중노릇을 상당히 하느라고 했는데, 공부는 제대로는 못해가지고 죽어서 결국 염라대왕한테 갔습니다. 염라대왕이 추궁을 합니다. “너는 왜 그동안 공부를 못해가지고 내한테까지 불려왔느냐?” 그러니까 핑계를
“나는 선지식을 못 만났다.” 는 겁니다. 평소의 핑계처럼, “좋은 스승을 못 만나서 나는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이 하는 소리가 그겁니다.
“그래? 너는 살아오면서 옆에 병든 사람을 혹시 못 봤느냐?” 그러자
“병든 사람 많이 봤지요.”
“그래? 그 훌륭한 선지식을 보고도 그것이 선지식인줄 몰랐단 말이냐?
일생 살아오면서 네 주위에 죽는 사람을 혹시 못 봤느냐?” 그랬습니다.
“죽는 사람 무수히 봤고, 가서 시달림도 해주고, 49재도 지내주고 많이 했습니다.”
“그래? 그 사실이야말로 더 이상 훌륭한 선지식이 있을 수 없는 그런 정말 뛰어난 선지식인데, 죽음, 그 자체는 참으로 큰 선지식이다. 어떤 경전, 어떤 법문이 그보다 더 큰 선지식일 수 있느냐? 그런 선지식을 무수히 친견하고도 공부를 못했다면 그것이 무슨 소리냐?” 아~ 근사한 법문이지요. 염라대왕이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선지식이 없다ㆍ공부를 못했다ㆍ인간을 잘못 만났다.” 등등, 그런 것 핑계 대는 사람 제일아주 용열하고, 못난 사람이지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 老ㆍ病ㆍ死를 받는 것을 보여준다. 고통 받는 것을 보여주는 그것이 말하자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利行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
제가 허리가 아파서 수술을 해가지고 하~~ 다 죽어가는 것을 도반들이 보고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수술은 안한다.’ 수술하는 것을 경계하는 그런 것을 본보기로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수술 안합니다. 제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죽어도 수술 안합니다. 수술은 정말 어떤 수술도 잘해야 그저 본전이고, 대개의 경우는 현상보다 훨씬 못할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일종의 큰 교훈이지요. 주변의 사람이, 예를 들어서, 비근한 예로 그런 건강 문제를 가지고도 우리에게는 큰 스승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그런 내용인데요.
或有貪欲瞋恚痴(혹유탐욕진에치)하야,
혹 어떤 이가 탐욕이 많고, 嗔心(진심)과 어리석음, 이런 것들이 아주 많아서
煩惱猛火가 常熾然(번뇌맹화상치연)이면,
번뇌의 猛火가 항상 熾然하게, 아주 맹렬한 불이 불타오른다. 이겁니다.
그러면
菩薩爲現老病死(보살위현로병사)하야,
보살에 의한 老ㆍ病ㆍ死입니다. 보살이 그 사람을 위해서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나타내 보여요. 그래서
令彼衆生悉調伏(영피중생실조복)이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 그 중생으로 하여금 調伏하게 한다. 모두 다 調伏하게 한다.
그렇습니다. 염라대왕법문 그대로입니다.
네가 생전에 병든 사람 못 봤느냐?ㆍ죽는 사람 못 봤느냐?ㆍ늙는 사람 못 봤느냐? 낱낱이 따지며, 老ㆍ病ㆍ死. “이보다 더 큰 선지식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큰 법문을 듣는다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 실지로 체험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 보다 더 큰 경책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상황 때문에 출가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요?
그 다음에
如來十力無所畏(여래십력무소외)와,
부처님의 = 여래의 열 가지 힘, 그리고 두려움이 없는 것.
及以十八不共法(급이십팔불공법)과,
그리고 十八不共法과 그리고
所有無量諸功德(소유무량제공덕)을,
그 외 한량없는 부처님에 대한 그런 공덕들을
悉以示現度衆生(실이시현도중생)이니라.
다 나타내보여서 중생을 제도하나니라.
이것은 “攝受(섭수)할 사람은 攝受하고, 調伏할 사람은 調伏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攝受할 이는 攝受하고 = 받아들일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 調伏시킬 사람은 調伏시킨다. 그것이 或慈或威(혹자혹위)라고 해서 관세음보살을 표현할 때도 혹 자비롭게도 하고, 혹 위엄스럽게도 중생에게 나타난다. 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줄곧 그냥 “오냐ㆍ오냐.” 하는 그런 자비로운 모습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或慈或威입니다. 혹은 위엄으로써 調伏할 사람은 調伏시킨다.
그것이 그 밑의 말이
記心敎誡及神足(기심교계급신족)이,
기억하는 마음ㆍ敎誡 = 가르침. 그리고 신통 = 神足. 그리고
悉是如來自在用(실시여래자재용)이라.
이런 것들이 다 여래의 자재한 自在한 用이라. 자재한 작용이라.
彼諸大士皆示現(피제대사개시현)하야,
저 모든 보살들이 다 나타내보여서
能使衆生盡調伏(능사중생진조복)이니라.
다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들 조복 시키느니라. 그래 調伏할 이는 調伏시킨다. 위에는 攝受할 사람은 가르쳐서, 十力無所畏ㆍ十八不共法. 이런 것으로써 攝受할 사람은 攝受한다. 밑에는 調伏할 사람은 調伏한다. 그래야 됩니다.
菩薩이 種種方便門(보살종종방편문)으로,
보살이 갖가지 방편 문으로
隨順世法度衆生(수순세법도중생)이,
세상 법을 隨順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 이것이
譬如蓮華不着水(비여연화불착수)니,
비유하건데,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으니,
보살은 중생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 다 살아도, 보살은 우리들처럼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방편으로 보일 뿐이고,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그런 어떤 방편으로써 그런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이지, 우리처럼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화엄경 근사하잖아요. 화엄경 참 좋습니다.
如是在世令深信(여시재세령심신)이니라.
이와 같이 세상에 있으면서 하여금 깊이 믿게 할지니라.
이런 게송 얼마나 참~~ 멋집니까? 그래 화엄경은 제가 그동안 보아온 것 중에서ㆍ알아온 것 중에서 제일 보물입니다. 최상의 보물. 이 화엄경보다 더 보물은 없습니다. 통째로 그냥 수 억만금 나가는 다이아몬드가 그냥 꽉꽉 박혀있는 것이 화엄경입니다. 그 다음에
世間三昧(세간삼매)라고 제목을 그렇게 했는데요.
世間三昧. 이것은 말하자면 “세간과 함께하는 삼매다.” 이 말입니다.
세속일입니다. 보살은 세속일과 똑 같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은 세간살이와 함께하면서, 세상과 함께하면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 이 뜻이지요. 그 다음에 처음에 身입니다.
(7) 世間三昧
가. 身(신)
雅思淵才文中王이요 歌舞談說衆所欣이라
一切世間衆技術을 譬如幻師無不現이니라
或爲長者邑中主하고 或爲賈客商人導하며
或爲國王及大臣하고 或作良醫善衆論이니라
或於曠野作大樹하고 或爲良藥衆寶藏하며
或作寶珠隨所求하고 或以正道示衆生이니라
若見世界始成立에 衆生未有資身具어든
是時菩薩爲工匠하야 爲之示現種種業이니라
不作逼惱衆生物하고 但說利益世間事호대
呪術藥草等衆論의 如是所有皆能說이니라
一切仙人殊勝行을 人天等類同信仰이어든
如是難行苦行法을 菩薩隨應悉能作이니라
身 = 몸.
‘몸은 세간과 함께하면서 중생을 이익하게 한다.’ 그 뜻입니다.
雅思淵才文中王(아사연재문중왕)이요.
雅思 = 아주 맑은 생각. 그리고 깊은 재주. ←이것은 글 가운데 왕이고,
말하자면 아주 문장가ㆍ글 잘 쓰는 시인들.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보살이 시도 쓸 수 있고, 소설도 쓸 수 있고 극본도 쓸 수가 있고, 온갖 여러 가지 예술적인 것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歌舞談說衆所欣(가무담설중소흔)이라.
歌舞 = 노래 부르고 춤추고, 談說 = 만담, 이야기꾼.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들은 대중들이 기뻐하는 바라. 옛날에 이야기꾼. 요즘은 글쎄 요즘도... 강의 잘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강의 잘하는 사람들 요즘 백도식? 그것도 자기 경험 이야기하는데, 5분간 하나요? 거기에 사람들 얼마나 감동시킵니까? 그런 것도 있고요. 요즘 또 이름 들먹거리긴 뭣 하지만 아주 유명한 강사, 유튜브 같은데 조회가 막 몇 100만 건이 오르고 하는 그런 아주 유명한 강사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여기 말하자면 談說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우리 아주어릴 때, 여러분 아마 그런 것 못 보았을 겁니다.
그림 한 장 걸어놓고, 이야기 듣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 그림이, 예를 들어서 “삼국지 한 대목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해가지고 100만 군중에서 막 이리저리 그냥 헤치고 나오는 그런 그림, 그야말로 “조자룡이 썩은 무 베듯이 한다.” 하는 그런 말도 있듯이, 그런 그림한 장 걸어놓고는 그 주변 상황 이야기를 다 하는 겁니다. 얼마든지 이야기가 가능한 겁니다. 오호대장 이야기도 다 할 수가 있고, 5장군, 삼국지에 나오는 다섯 명의 유명한 장군이야기. 그 사람을 통해서 다 이야기하고, 그 전쟁이 왜 벌어졌는가? 그리고 가슴에 품어서 나온 구해온 아이, 나중에 후부가 되지요. 뒤에 유비를 이어서 왕이 되는데, 그 사람 이야기까지.
그 아이가 멍청하잖아요. 멍청해서 촉나라가 완전히 망한 것이지요.
그것이 어린아이를 전쟁 통에서 막 그냥 정신없이 구해 나오는 과정에서, 유비가 그 아이를 땅에 던져버립니다. 이 내 자식 때문에 조자룡이 죽을 뻔 했다고, 100만 대군 안에서 싸우다가 뻔 했다고 이까짓 것이 뭐라고 하면서 자식을 땅에다 던져버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가 멍청해진 겁니다. 그래가지고 촉나라가 그냥 망해버리잖아요. 저는 삼국지를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런 등등의 이야기를 딱 그림 한 장 걸어놓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야기꾼입니다. 여기 談說.
옛날에 놀 거리가 아무 것도 없었잖아요. 선방에서도 이야기 잘하는 스님이 하나 있으면, 방선 시간에 그 사람 앞에 다 모입니다. 모여가지고...
그 사람은 재미있으니까 있는 이야기도하고 없는 이야기지어내기도 하고요. 옛날엔 그랬었습니다. 아무튼 보살은 그런 일까지도 다 중생을 위해서...
여기 보면 그 다음에
一切世間衆技術(일체세간중기술)을,
일체 세간의 갖가지 기술들을
譬如幻師無不現(비여환사무불현)이니라.
비유하자면 보살이 그 幻師. 마술사 같이 나타내지 아니함이 없나니라.
마술사가 온갖 것 다 보이잖아요. 그와 같이 나타내지 아니함이 없다.
스님들은 경전공부ㆍ참선하는 것, 그 다음에 염불하고ㆍ기도하고, 순수 불교적인 것 외에 하는 것을 절대,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각을 한다ㆍ글씨를 쓴다ㆍ그림을 그린다ㆍ침을 놓는다. 등등 그런 세속잡사 많잖아요. 그런 것으로... 스님들이 무수히 많아요. 오늘도 어떤 스님 조각해가지고 갖다가 자랑합디다만... 그것도 저는, 그 안의 내용은 다 불교내용이지만, 그것도 불교를 전하기 위한 한 방편이긴 해요. 여기에다 비추면 완전히 보살정신으로 하면 좋아요. 그런데 그것이 좋아서하면, 사진 찍는 것이 좋아서하면, 하모니카 부는 것이 좋아서하면, 그것은 아니다 이것이지요.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런 방편을 쓸 수는 있다 이겁니다.
여기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 문제를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포교당 세워놓고는 무슨 “선무도 한다ㆍ다도 한다.” 엉뚱한 것 이런 것, 요즘 문화포교라 해가지고 불교 외적인 것부터 먼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망하는 겁니다. 판판이 망하는 겁니다.
기도하고ㆍ참선하고ㆍ경전 가르치고, 그저 신심을 증장시키고ㆍ신심을 물러 일으키는 일부터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모든 상황이 안정이 딱~ 돼서, 여러 해가 흘러서 상황이 안정이 딱~ 되면 그 때는 합창단도 만들고, 무슨 다도 반도 만들고, 서도 반도 만들고, 꽃꽂이 반도 만들고, 이렇게 순서가 있는 것이지, 처음에 가자마자 무슨 꽃꽂이 반 만들고, 다도 반 만들고, 선무도 만들고 해가지고 법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래가지고 포교당 다 망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데요.
스님들은 다 포교당 운영하시고, 아무리 작은 토굴이라도 토굴 운영하고 계시니까... 불법 안에 主體(주체)가 뭔지? 주 바라밀이 뭔지? 제가 그랬잖아요. 主바라밀ㆍ助바라밀. 뭘 하더라도 主바라밀부터 힘을 실어놔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여기도 또,
或爲長者邑中主(혹위장자읍중주)하고,
혹 보살이 長者가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邑中主. 시장도 될 수가 있고, 심지어 대통령될 수가 있습니다. 邑中主라는 것은 시장 아닙니까?
읍장도 되고 시장도 되고, 면장, 도지사도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或爲賈客商人導(혹위가객상인도)하며,
혹은 賈客. 장사꾼도 되고, 큰 장사꾼을 商人이라고 그래요.
賈客은 다니면서 파는 상인 = 옛날 보따리 장사. 그것이 賈客이고요.
商人 = 차려놓고 파는 장사를 商人이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 보살은 그런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는 그런 리더가 되기도 해요. 그 다음에
或爲國王及大臣(혹위국왕급대신)하고,
혹 국왕도 되요. 그리고 대신노릇도 한다고요. 장관노릇도 하고요.
或作良醫善衆論(혹작양의선중론)이니라.
혹 아주 훌륭한 의사 = 良醫가 되기도 하고, 善衆論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말을 잘하는 사람. 아까 저 위에 談說은 만담, 이야기꾼 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강설이라든지, 차원이 조금 다른 어떤 이론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그런 것도 되나니라. 그런데 이것은 世間三昧잖아요. 세간하고 부동한 그런 삼매 문인데요. 이것도 ‘보살이라고 하는 그런 자기중심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중생 제도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런 뜻입니다.
或於曠野作大樹(혹어광야작대수)하고,
혹은 曠野에 큰 나무가 될 수도 있어요.
或爲良藥衆寶藏(혹위량약중보장)하며, 혹은 良藥.
좋은 약이 되기도 하고요. 혹은 아주 여러 가지 보물이 들어있는 창고.
그 보물을 함유하고 있는 창고가 되기도 해요.
或作寶珠隨所求(혹작보주수소구)하고, 혹은 보배구슬.
아주 뛰어난 보배구슬이 되어서 隨所求라. 구하고자 하는 바를 전부 만족시켜준다. 따르기도 하고,
或以正道示衆生(혹이정도시중생)이니라.
혹은 정도로써, 여기 正道라는 말이 있네요.
그럼 그 위에 것은 전부 非道(비도)라는 뜻입니다. 正道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살은 방편으로 한다. 이 뜻입니다.
或以正道로써 示衆生이니라. 正道로써 중생을 보이나니라. 그 다음에
若見世界始成立(약견세계시성립)에,
만약 세계가 成立할 때에, “지구가 처음 생겼다.” 이겁니다. 그러면 차츰차츰 식었잖아요. 몇 억년이 흘러가고 그러면 하나씩ㆍ하나씩 생물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러다가 동물까지 생기고 그 다음에 사람도 생긴 겁니다.
衆生未有資身具(중생미유자신구)어든,
그 당시는 중생들이 未有資身具. 말하자면 원시시대니까 옷도 없고, 무슨 농사지을 도구도 없고 완전히 동물하고 유사한 그런 입장이다. 이 말입니다. “資身具가 없다.” 이 말은요.
지금은 몸을 돕는, 이 몸을 위한 도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이 전부 몸을 위한 도구지요. 굴러다니는 차부터... 그럴 때,
是時菩薩爲工匠(시시보살위공장)하야,
그때 보살이 工匠 = 공장의 장인이 된다. = 기술자. 이 말입니다.
여기서 工匠이라는 匠자는 기술자. 기술자가 됩니다. 농사짓는데 기술자도 되고, 옷 만드는 기술자도 되고, 밭 가는데 기구 만드는 기술자도 되고, 보살이 그런 기술자도 될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爲之示現種種業(위지시현종종업)이니라.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가지가지 業을 示現하기도 한다.
보살의 사업이 참~ 아주 다양하지요? 그렇다고 선후를 잊어버리고, 또 主바라밀ㆍ助바라밀을 잊어버리고 지엽적인 것부터 먼저 하면...
그 전에 제가 말씀드린 일본 徒然草(도연초)에 법사가 되고 싶어가지고 꿈을 꾸는 젊은 스님이 법사가 되니 말 타고 다니더라. 해가지고 말 타는 것 배우고 공부는 나중으로 미뤄놨더니, 나중에 말만 탈줄 알았지 법사가 법문할 공부는 하나도 못하는 그런 책이... 앞뒤가 바뀌는 그런 수가 생기는 것이지요.
不作逼惱衆生物(부작핍뇌중생물)하고,
중생들을 逼惱케 하는 그런 물건들을 만들지 말아야 돼요.
총도 만들지 말고, 폭탄도 만들지 말고, 활ㆍ칼ㆍ창ㆍ핵무기ㆍ원자력 발전, 이런 것 절대 만들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중생들을 괴롭게 하는, 중생들을 핍박하는 그런 물건들을 만들지 말고,
但說利益世間事(단설이익세간사)호대,
다만 세간을 이익케 하는 이야기만해요. 세간 이익케 하는, 어떻게 하더라도 인생의 참 이치ㆍ진리를 깨우쳐줘서 바르게 가도록 하는 그런 이야기만 해준다.
呪術藥草等衆論(주술약초등중론)의,
呪術, 그 다음에 藥草, 주문이라든지 약초라든지 그런 여러 가지 이론들의
如是所有皆能說(여시소유개능설)이니라.
이와 같은 所有를 다 능히 설하느니라.
우리는 그렇다고 이상한 주문이나 그런 것을 권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이 뭡니까?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 축생을 봐도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이고, 잘못해서 모기나 파리를 한 마리 죽여도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아니면 나무아미타불이고, 관세음보살이고, 지장보살. 이것이 우리가 할 수가 있는 말하자면 주문입니다. 그 보다 더 좋은 주문은 없는 것이지요.
一切仙人殊勝行(일체선인수승행)을, 일체 부처님의 수승한 행을
人天等類가 同信仰(인천등류동신앙)이어든,
人天 = 사람이나 천인들이 함께, 그런 類들이 함께 信仰하거든,
如是難行苦行法(여시난행고행법)을, 이와 같은 난행과 고행의 법들을
菩薩隨應悉能作(보살수응실능작)이니라.
보살이 따라 맞춰서, 응해서 다 능히 지을지니라. 보살은 보살정신만 잊지 않고 굳게 가지고 있으면 그런 방편으로 ‘세속적인 일을 해도 좋다.’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근기로써는 참 주의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제가 중언부언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여기 外道(외도)라고 되어있습니다.
나. 外道
或作外道出家人하고 或在山林自勤苦하며
或露形體無衣服하야 而於彼衆作師長이니라
或現邪命種種行하야 習行非法以爲勝하며
或現梵志諸威儀하야 於彼衆中爲上首니라
或受五熱隨日轉하고 或持牛狗及鹿戒하며
或着壞衣奉事火하야 爲化是等作導師니라
或有示謁諸天廟하고 或復示入恒河水하며
食根果等悉示行호대 於彼常思己勝法이니라
或現蹲踞或翹足하고 或臥草棘及灰上하며
或復臥杵求出離하야 而於彼衆作師首니라
如是等類諸外道에 觀其意解與同事하야
所示苦行世靡堪을 令彼見已皆調伏이니라
外道. 시도외도구피사단이라.
시 = 外道들에게 뭔가 함께 하는 것을 보여 가지고, 그 다음에 삿된 무리들을 구제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或作外道出家人(혹작외도출가인)하고,
혹은 외도 집에 출가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다음에
或在山林自勤苦(혹재산림자근고)하며,
혹 山林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부지런히 고행도 해요.
或露形體無衣服(혹로형체무의복)하야,
혹 形體를 드러내요. 의복이 없어서 나체를 다 드러내고, 인도에 그런 외도들ㆍ그런 종교인들 많잖아요.
而於彼衆에 作師長(이어피중작사장)이니라.
혹 그런 사람들한테 들어가서, 그들 대중들에게 스승노릇을 한다 이 말입니다. 그것도 보살의 하나의 방편입니다.
或現邪命種種行(혹현사명종종행)하야,
혹 邪命 = 삿된 직업. 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정당하게 살지를 않고, 삿되게 사는 것. 그것을 邪命이라고 그럽니다. 邪命의 種種行을 나타내어서
習行非法以爲勝(습행비법이위승)하며,
非法을 習行해서, 법 아닌 것을 익혀 행해가지고, 그런 경우 많지요?
以爲勝 = 그것을 수승한 것으로 여기며,
或現梵志諸威儀(혹현범지제위의)하야, 혹은 梵志 = 바라문 교도들.
그들의 여러 가지 威儀를 나타내어서
於彼衆中에 爲上首(어피중중위상수)니라.
그러한 대중들에게서 上首가 되나니라. 그렇습니다. 또
或受五熱隨日轉(혹수오열수일전)하고,
五熱이라고 하는 것은 오체. 우리 신체를 갖다가 태양에 쬐는 그런 고행외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隨日轉 = 해를 따라서 굴린다 이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늘이 지잖아요. 해를 쬐고 있으면 어느새 그늘이 지면 또 햇빛 있는 데로 가는 겁니다. 그~~ 뜨거운 인도의 햇볕아래, 그늘에 있어도 땀이 나는 판인데, 햇볕 따라서 자꾸 간다그래서 隨日轉입니다. 해 따라서 굴러간다. 五熱 = 오체. 오체를 태양에 쬐는 그런 외도들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도 받고, 또
或持牛狗及鹿戒(혹지우구급록계)하며,
이것은 戒가, 소의 계가 있고, 개의 계가 있고, 사슴의 계도 있고 그래요.
소의 계라고 하는 것은 소가 풀 먹으려고 풀 뜯다가, 어떤 스님이 경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어요. 경을 옆에다 두고 잠이 들었으니까 소가 와서 풀인 줄 알고 코로 바람을 일으켜가지고 책장을 넘겼어요. 경전책장을 넘겼다고요. 아니, 화엄경책장을 콧김으로써 책장을 넘긴 그 공덕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겁니다. 아~~, 대단하잖아요? 이 화엄경은 그런 경전입니다.
하하하 소가 콧바람을 불어가지고, 그것이 무슨 풀인가 하고 콧바람을 불어가지고 책장을 한 둬 장 넘겼는데, 그 공덕으로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런 전설을 듣고는 어리석은 중생이 자기도 소가 돼가지고 소처럼 행동하면서, 경전을 콧바람으로 넘기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이것이 牛戒입니다. 소 牛자, 牛戒.
개 狗자, 狗戒는 뭔가 하니 어린 아이가 塔前(탑전)에 똥을 쌌어요.
개가 와서 아이 똥을 핥아먹었어요. 그러니까 塔前이 깨끗해졌잖아요.
아~,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래서 개가 천상에 태어났네요. 이것이 狗戒입니다. 개의 계입니다. 별별 戒가 다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 한 치우친 생각으로 단면만을 보고는 ‘아~ 이것 塔前에 아이들이 똥 싸게하고 거기 가서 개처럼 똥을 핥아먹는다.’ 이것이 戒를 지키는 것으로 아는 겁니다. 그것이 狗戒입니다. 牛戒ㆍ狗戒. 이것이다 그런 것입니다.
그 다음에 鹿戒는 모르겠습니다. 청량스님 소초에도 안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사슴이야기는 경전에 참 많은데, 무슨 이야기를 갖다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슴이야기도 역시 아마 그와 유사한 것일 겁니다. 그 다음에
或着壞衣奉事火(혹착괴의봉사화)하야,
혹은 떨어진 옷을 입고 불을 섬긴다 이 말입니다.
인도에 그런 경우의 외도들도 많잖아요.
爲化是等作導師(위화시등작도사)니라.
이러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도사가 된다. 그 다음에
或有示謁諸天廟(혹유시알제천묘)하고,
혹은 어떤 이는 諸天廟에다가, “하늘에다 제사지낸다.” 하는 그런 天廟에다가 배알하기도 하고, 배알함을 보이기도 하고,
或復示入恒河水(혹부시입항하수)하며,
혹 다시 항하강의 물속에다 들어가는 것을 보이기도 해요. 이런 것들이 외도들이 여러 가지 그런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食根果等悉示行(식근과등실시행)호대,
뿌리라든지, 나무뿌리ㆍ나무과일 등을 먹어서 다 어떤 행을 보이되,
於彼에 常思己勝法(어피상사기승법)이니라.
그들에게서 항상 자기의 수승한 법을, 말하자면 생각할지니라.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지요. 우리는 부처님의 정법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자나 깨나 잊지 말고, 그런 일을 하는 겁니다. 어디 天廟에 제사도 지내고, 예를 들어서 하다못해 경우 따라서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정법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그 전에도 말했지만, 옛날에 성철스님하고 자운스님 이런 이들이 봉암사에서 결사했다고 하는 것. 지금도 그 결사정신을 잇자고 야단을 하는데, 거기도 모순이 있는 것이 산신 없애고ㆍ칠성 없애고, 그런 운동을 했다고요. 산신ㆍ칠성ㆍ용왕, 이런 것 다 없애고... 불법이, “그것이 어디 정법이냐?” 해가지고 막 없앴습니다.
화엄경도 안 봤는지? 그것이 다 중생제도를 위해서, 칠성 좋아하는 사람은 칠성단으로 끌어들이고, 산신 좋아하는 사람은 산신 단으로 끌어들이고, 그래서 결국은 정법으로 돌아오게 하면 되는데, 그것을 그 자리에서 없애가지고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 생각이 넓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큰 절에 가면 법당이 여러 가지 많이 있잖아요. 어디 용왕 당 같은 데는 들어가지도 못하잖아요. 그냥 용왕 당이라고 조그맣게 촛불만 켜놨지요. 그래도 그것을 좋아하는 중생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필요하다 이겁니다. 그렇다고 무당같이 막 그냥 떠벌릴 것은 아니로되, 그런 것들을 우리가 넉넉하게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或現蹲踞或翹足(혹현준거혹교족)하고,
蹲踞 = 의자에 걸터앉듯이 아니면 나무 가지에 걸터앉듯이 그렇게 나무에 걸터앉는 것.= 蹲踞. 그 다음에 或翹足 = “교족정진” 이라고 발뒤꿈치 딱~~ 들고 합장하고 서서 정진하는 것. 아란존자가 옛날에 七葉窟(칠엽굴)에서 제일 결집할 때 가섭존자가 “너는 도통도 못한 놈이 여기 있어? 나가라.” 고 쫓아냈지요. 아란존자가 쫓겨나가지고 저~ 기 다른데 가가지고 교족정진을 일주일 했잖아요. 발을 탁~~ 세워가지고 합장 딱 하고, 그런 그림 있잖아요. 계율에 뒤꿈치 딱~~ 들고... 그것이 제일 정신집중 되는 것이지요. 정신집중에 제일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그것이 翹足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일주일 만에 말하자면 깨달음을 성취해가지고 막아놓은 七葉窟을 그대로 통과해서 500아라한들이 결집하는데 거기에 딱 들어 가가지고 자기도 부처님에게 들은 경전내용을 자기가 전부다 외우면서 그래서 비로소 결집이 성취되었다. 이런 경전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翹足이 그런 것이고, 또
或臥草棘及灰上(혹와초극급회상)하며,
혹은 풀이나 가시넝쿨위에 눕기도 해요. 외도들 고행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몸을 학대 하는 것. 그리고 灰上 = 재 위에 눕기도 하고요. 잿더미 속에 막 들어가고, 또 몸을 파묻기도 하고 그래요. 목만 내놓고 몸 파묻는 그런 경우. 그 다음에
或復臥杵求出離(혹부와저구출리)하야,
혹은 망치ㆍ방망이, 杵 = 울퉁불퉁ㆍ울퉁불퉁하게 해서 쉽게 그것을 깔고 누울 수 없는 그런 방망이지요. 그냥 나무토막 하나라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 위에 눕고, 그것으로써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그런 외도들도 있다.
而於彼衆에 作師首(이어피중작사수)니라.
그러나 보살은 대승 정신을 잊지 아니하고, 정법의 정신을 잊지 아니한 상태에서 그들의 대중 중에 가가지고서 그들의 스승노릇을 한다. 이런 말입니다. 이것은 좋지요.
如是等類諸外道(여시등류제외도)에,
이와 같은 類들의 온갖 외도들에게
觀其意解與同事(관기의해여동사)하야,
그들의 意解, 뜻과 이해를 잘 살펴가지고 함께 같이 일을 해요.= 同事.
동사섭이지요? 함께 같이 일을 한다.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선 이렇게 이런 일들도 하는 것이지요. 해서
所示苦行世靡堪(소시고행세미감)을,
보인 바 고행을 세상에선 견딜 수 없는 것. 차마 세상에선 견딜 수 없는 그런 온갖 모진 고행들을
令彼見已에 皆調伏(영피견이개조복)이니라.
그들에게 다 보인 뒤에,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해서 ‘내가 이러한 고행을 너희보다 훨씬 잘한다. 가시넝쿨 좋다. 너희는 한 시간 누워 있으면 나는 두 시간 누워 있는다. 땅속에 묻히는 것, 너희는 한 시간 묻혀 있으면 나는 두 시간 묻혀있다. 교족정진, 너희는 하루 하면 난 이틀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서 그들을 다 조복한다.= 皆調伏이니라.
이쯤 돼야 참 박력있고, 아주 뛰어난 보살이지요.
다. 語業의 大用(어업대용)
衆生迷惑稟邪敎하야 住於惡見受衆苦어든
爲其方便說妙法하야 悉令得解眞實諦호대
或邊呪語說四諦하고 或善密語說四諦하며
或人直語說四諦하고 或天密語說四諦하며
分別文字說四諦하고 決定義理說四諦하며
善破於他說四諦하고 非外所動說四諦하며
或八部語說四諦하고 或一切語說四諦하야
隨彼所解語言音하야 爲說四諦令解脫이니라
所有一切諸佛法을 皆如是說無不盡하야
知語境界不思議니 是名說法三昧力이니라
衆生迷惑稟邪敎(중생미혹품사교)하야,
중생들이 미혹해가지고서 삿된 敎를 稟 받아요. 받아들인다 이 말이지요.
住於惡見하야 受衆苦(주어악견수중고)어든,
惡見에, 잘못된 소견에 머물러서 온갖 고통을 받게 되거든, 그래 참,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고 하듯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소견이 보배입니다.
소견이 잘 들어서야 됩니다. 특히 우리가 불교를 받아들였다면, 불교에 입문 했다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아예 불교를 접하지 아니하고 그냥 자연인으로 산다면 탈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소견이 하나 성립되기 시작해서 잘못될 경우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정법ㆍ정법ㆍ정법구현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가 그런데 있습니다. 잘못될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지요.
爲其方便說妙法(위기방편설묘법)하야,
그들을 위해서 방편으로 妙法을 설해요. 미묘한 법을, 아주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을 설한다. 이겁니다. 인생의 참 이치ㆍ진리를 설해서
悉令得解眞實諦(실령득해진실제)호대,
그들로 하여금 다, 그들에게 眞實諦. 진실한 진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진실한 참 진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무엇이 진정한 참다운 이치인가? 이해하도록 한다. 그런 이해시키도록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제를 가지고 설하는데, 苦集滅道(고집멸도). 사제를 설하는데,
或邊呪語로써 說四諦(혹변주어설사제)하고,
或邊呪語라고 하는 것은 저~ 기 남인도, 인도 남쪽변방.
남쪽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이 교화를 펴든 갠지스 강 유역 말고, 그 외에는 전부 邊呪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방의 주문이다.” 못 알아들으니까 呪자입니다. 지방마다 사투리 못 알아듣잖아요. 인도는 공식 언어가 몇 10개라든가? 그렇다니까요. 옛날에는 교통이 어려워서 제대로 소통이 안 돼가지고, 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잘못 가요. 서로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그 지역에서는 계속 자기들끼리 통하는 말을 가지고 살았어요.
그쪽 지역에는 또 그쪽 지역대로 그렇고요. 그러다보니까 말이 여러 수 100가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하물며 손바닥만 우리나라도 그런데요.
邊呪語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지방 사투리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或善密語(혹선밀어)로써 說四諦하며,
善密語 = 아주 뛰어난 密語. 이것도 일반화되지 아니한 말이지요.
그런 말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或人直語(혹인직어)로써 說四諦하고,
直語 = 바른 말ㆍ곧은 말로써, 이것은 표준말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표준말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或天密語(혹천밀어)로 說四諦하며,
天密語, = 천신들이 쓰는 비밀스러운 말. ←이런 뜻인데요. 천신들이 쓰는 비밀스러운 말로 四諦를 설하기도 하며,
分別文字(분별문자)로 說四諦하고,
분별하는 문자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그 다음에
決定義理(결정의리)로써 說四諦하며,
결정적인이치 = 義理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善破於他(선파어타)에 說四諦하고,
저 사람ㆍ상대를 잘 깨뜨려요. 상대의 소견을 잘 言破(언파).
말하자면 말로써 깨뜨리는 그런 것으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그 다음에
非外所動(비외소동) 說四諦하며,
이것은 외도가 움직일 바가 못 되는 그런 아주 확고한 이론으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며,
或八部語(혹팔부어)로써 說四諦하고,
八部神將(팔부신장). 화엄경에 八部가 나오잖아요.
八部神將의 말로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或一切語(혹일체어)로 說四諦하야,
일체 말로써, 모든 말로써 四諦를 설하기도 하고,
隨彼所解語言音(수피소해어언음)하야,
저 이해한 바를 따라서, 이해한 바의 언어를 따라서, 말과 소리를 따라서,
자기 이해하는 바, 또 상대방이 이해하고 있는 말, 그렇지요. 미국 가서는 영어를 잘했으면 좀 좋겠습니까? 일본 가서는 일어 잘하면 좋고, 중국 가서는 중국어 잘하면 좋고, 이렇게 해서
爲說四諦令解脫(위설사제령해탈)이니라.
그들을 위해서 四諦를 설하느니라.
爲說四諦令解說이니라. 그들을 위해서 四諦를 설해가지고 四諦를 해설하게 한다.
지금은 세계가 한 울타리가 돼가지고, 말은 쫓아가지 못하고 한 울타리가 되긴 됐는데, 불교를 아는 것을, 어느 나라에 가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면참 좀 좋겠습니까? 특히 요즘은 영어가 만국 공통어가 됐으니까 아무리 자기 소견이 정법이고 또 고준하다 하더라도 그 고준한 자기 그 불교적 견해를 영어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것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못하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전통있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 사실은 대승불교가 들어왔지, 선불교가 들어왔지, 그래서 불교의 어떤 이치 면에서, 불교의 소견ㆍ견해의 면에서는요? 중국불교ㆍ한국불교ㆍ일본불교를 덮을 길이 없습니다. 사실은 최고입니다. 그런데 혼자최고라면 뭐해요? 영어나 불어나 독일어로 그냥 사정없이 그 사람들의 소견을 능가하는 그런 이론을 구축하거나, 그런 정설을 내놓지 못하면 소용없어요. 우물 안 개구리, 이불 덮어쓰고 만세 부르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아잔 브라함 같은 스님이라든지 지금 낫, 그런 이들이 와서 그냥, 이 훌륭한 불법의 토양에 와가지고 설치잖아요. 그 사람들이 지금 내일 모레 범어사도... 지금 월정사에서 수행하고 있어요. 이 순간에 전통 1700년의 한국불교는 없습니다. 없다고요. 그들 불교만 있는 것이지요. 왜 그러냐? 영어를 못해서 그래요. 영어를 못해서... 이런 상황입니다. 틱 낫한. 그것도 한문입니다. 釋一行(석일행)입니다. 그 분은 베트남 사람이니까 베트남도 한문 권이잖아요. 釋一行을 베트남 발음으로 한 겁니다. 우리는 뭔지도 모르고 “틱 낫한ㆍ틱 낫한” 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 훌륭한 불교에다가 영어를 얹어서 영어로 포장을 해가지고, 영어모르는 저 기독교 문화권이라든지 이런데 가서 막 설명하니까 ‘이것이 도대체 천상에서 내려온 이론’ 인양 싶어가지고 모두 감동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중국이라든지 한국이라든지 일본스님이 세상에 틱 낫한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그런 뛰어난 스님이 없잖아요. 그런데 속으로는 그 사람들 보다 훨씬 우수한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수좌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아~, 그것 별 것 아니라고 이러고 있거든요. 사실은 소견은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푼짜리라도 세상에다 설명할 수 없으면 그것은 소용없는 것이지요. 지금시대는 그렇다고요. 지도자의 최고의 소견을 가졌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확실하게 설득시킬 수 없는 그런 언어의 능력이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래 영어 잘하는 스님, 다른 조각 하지 말고 불법을 영어로 설명을 하고 그러세요. 한국불교의 그 깊이는 아주 대단한 불교입니다. 중국불교ㆍ일본불교ㆍ한국불교가 대단해요.
베트남불교ㆍ태국불교ㆍ티벳불교, 못 따라 와요. 그런데 이것이 소개할 줄 아는 기능이 그만 없는 겁니다. 기능이 없어요. 지금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여기는 그들이 이해하는 바의 언어를 따라서, 그들을 위해서 四諦를 설하여해설해 준다. 하~~ 이것 중요한 말입니다.
所有一切諸佛法(소유일체제불법)을, 있는바 일체 모든 부처님 법을
皆如是說無不盡(개여시설무불진)하야,
이와 같이 설해서 다하지 아니함이 없어요. 있는 대로 다 설명한다.
여기 所有一切諸佛法. 이렇게 했잖아요.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위에서 四諦이야기만 했잖아요. 기본. 아주 기본이고, 유치원생에게 아주 기초적으로 설명해주는 四諦설명을 한 겁니다. 어디 화엄경이 四諦뿐입니까? 事事無碍(사사무애)라든지 그런 것을 이런 식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고,
所有一切諸佛法을 모두 다 이와 같이 다 낱낱이 설명을 한다. 그래서
知語境界가 不思議(지어경계부사의)니,
말, 언어라고 하는 그 경계가 불가사의함을 안다. 그렇지요. 말의 경계도 불가사의합니다. 知語境界가 不思議니, 말을 아는 경계가 불가사의니, 그렇게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아는 경계. 말을 아는 세계가 불가사의함이니,
是名說法三昧力(시명설법삼매력)이니라.
이것이 說法三昧力이다. 설법삼매력이다. 현수 품이 두 권으로, 80권 중에 두 권으로 썼습니다. 지금까지 본 현수 품도 내용이 아주 뛰어납니다.
한 권 일단 끝났으니까 잠간 쉬었다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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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아~~!!! 참으로 수고 많으십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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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에 글번 12383번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출가--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남을 위해서 이롭게 할 수가 있고, 자기는 돌보지 않는,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것.
老ㆍ病ㆍ死.가 가장 큰 선지식이다.
主바라밀과 助바라밀을 혼동하지 말라.
석대원성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자기 위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래서 마음이 적정함을 나타내 보인다...고맙습니다 _()()()_
老ㆍ病ㆍ死. “이보다 더 큰 선지식은 없다.
서푼 짜리라도 세상에다 설명할 수 없으면 그것은 소용없는 것이지요. 지금 시대는 그렇다.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若有不識出離法하야 不求解脫離諠憒면 菩薩爲現捨國財하고 常樂出家心寂靜이니라..만약 어떤 사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도리를 알지 못해서 해탈도 구하지 아니하고 번뇌 망상으로 인해서 시끄러움을 떠날 줄도 모르면 보살이 그들을 위해서 나라와 자기의 재물을 버리고 자기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이 적정함을 나타내 보이니라] [示受老病死衆患이니라..老, 病, 死를 받는 것을 보여준다(고통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老, 病, 死...이보다 더 큰 선지식은 없다]
고맙습니다_()()()_
爲其方便說妙法하야 悉令得解眞實諦호대 _()()()_
너무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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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불교를 영어로 포교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문으로 경전을 잘 이해하고 공부하여 정법전법할 수 있도록 공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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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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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慈或威 ...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우보익생 중생수기득이익 개으르지말자 고맙습니다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
斷除疑網出愛流, 開示涅槃無上道
-信爲法藏第一財-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或慈或威 마냥 자비로울수만은 없는데.. 조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감사합니다
示道外道求彼邪斷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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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老ㆍ病ㆍ死. “이보다 더 큰 선지식은 없다.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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