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복동이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강 이냐시오 부제
우리와 함께 열일곱 달을 동거 동락했던 복동이가 얼마 전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죽기 바로전날 저녁식사 시간 때 복동이는 평소와 다른 행동으로 몸을 곧게 세운 다음 작은 입은 수면위로 나온 상태에서 가픈 숨을 내쉬는 듯 보였습니다. 저러다 괜찮아 지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얼마 못살 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식사시간마다 우리의 침묵과 어색함을 달래주었던 복동이의 숨은 공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신학원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지요.
복동이와 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열일곱 달 전 신부님과 수사님들은 어려운 신학원 경제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낚싯대와 그물을 들고 강화도의 명물인 망둥이와 새우 잡이를 나섰습니다. 망둥이와 새우는 저희에게 기꺼이 좋은 먹거리가 되어주었으며 제철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수사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물과 낚시에 걸러 온 고기들 중에는 반갑지 않은 녀석들도 있었는데 바로 복동이도 그 중 한 녀석 이였습니다.
한번 키워 보라시던 신부님의 권유에 “아이고, 이 한 몸 굴리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물고기를 키우다니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녀석의 운명이 저의 손에 달린지라 그래 키워 보자라고 마음먹고 그날 밤부터 우리의 불편한 동거는 시작 되었습니다.
저의 수고는 얼굴 씻는 분홍색 대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소금을 조금 썩어 넣어 주는 것이 고작 이였습니다. 솔직히 그땐 “살려면 살고 말라며 죽어라”라는 마음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준비를 위해 반찬으로 사온 생선살과 홍합 살을 먹이로 주었던 것이 큰 화근 이였습니다. 가득이나 낮선 환경 탓에 복동이는 먹잇감을 먹지 않아 생선살이 부패하면서 물위에 하얀 거품과 막이 생겨났으며 그로인해 물속의 산소를 결핍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신학원 물탱크의 조절 박스가 낙뢰를 맞아 수리중이라 물도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한 밤중에 고요함을 깨우는 생존의 몸부림, “쿵” 하는 소리에 저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복동이는 썩은 물이 가득 찬 대야에서 필살의 탈출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대야 밖으로 튕겨 나온 복동이의 배는 야구공처럼 부풀어 있는데 눈과 입은 자그마한 것이 그 모양새가 너무 웃겨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른 대야의 썩은 물을 버리고 새물을 받으려는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 물탱크가 고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녀석의 몸은 점점 더 커져 축구공으로 변하였고 저러다 터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비염치료로 콧속을 세척하기 위해 사온 생리식염수와 주사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재빨리 식염수를 대야에 부은 다음, 복동이를 집어넣고 산소를 발생시키기 위해 주사기를 밀고 당기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드디어 복동이의 부풀은 배가 줄어들었고 거칠게 내쉬던 숨도 안정적으로 호흡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그 사건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복동이는 저에게 마음의 여유와 생명을 돌보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었으며 저는 어항도 기증받고 산소발생기도 구입하여 최적의 환경을 복동이에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느새 복동이는 좁디좁은 어항 속 환경에 잘 적응하였고 먹이로 사온 보리새우도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을 써야하고 부지런해야 하는지를 어릴 때 강아지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뭔가 키우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어머니를 졸라 강아지를 키우게 됩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니가 밥도 주고 똥도 치워야한다.” 라며 당신은 제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한 번 다짐을 받아 내십니다. 언제나 저의 대답은 청산유수로 “응”이였지요. 귀엽고 데리고 놀기는 좋은데 밥 주고 똥도 치우고 개집도 청소해야하는 번거로움은 3일을 넘기지 못한 채 온전히 어머니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철없던 그때부터 “내가 키울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키우지 않는다.”는 생각이 늘 제 머릿속에 각인 되어졌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아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의 일이 하나 더 느는 샘이니까요. 하지만 살아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키우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순수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수련 때 수련장신부님이 사주신 사랑이(행운목)가 제 방안을 밝게 해주고 있습니다. 돌보는 일은 스프레이로 촉촉히 물주기와 일주일에 한번 샤워시키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사랑한다. 사랑아!” 라는 애교 섞인 거름을 늘 주곤 합니다.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데 저의 욕심으로 너무 커면 방 옮길 때도 힘들고 보기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차일 피 미루고 있습니다. 작은 화분에 빚져 나온 뿌리들을 보면 답답해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기만 하네요.
“사랑아! 올봄엔 꼭 큰집으로 이사시켜줄게, 사랑한다.”
첫댓글 부제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아마도 복동이도 부제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거예요... 남은 사랑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시겠네요...고맙습니다.
그렇군요. 많이 섭섭하시겠어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하찮은 물건이든 마음주고 정성들인 것은 애착이 가기 마련이지요.
작은 정성으로 물을 주고 가꾼 화분에서 잎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고 감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부제님 글을 읽으면서 당신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우리가 대하는 모든 것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희망하면서...
저도 어릴 때 집에서 병아리며,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것들이 죽는 것을 보며 생명있는 것은 키우지않는다는 결심을 했지요...키울때는 좋아도 죽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파요...^^*
복동이도 수사님과 함께 해서 행복했을거예요~ 이별한다는것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가 그림자처럼 같이 하나봐요.
-열일곱 달 전 신부님과 수사님들은 어려운 신학원 경제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낚싯대와 그물을 들고 강화도의 명물인 망둥이와 새우 잡이를 나섰습니다.-
오히려 경기사정이 않좋다는 신학원 사정이 더 제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ㅠ0ㅠ
저는 예전에 금붕에 길러 보았는데요 마찬가지로 죽기 전에 숨을 가쁘게 쉬고 잘 움직이지 못했읍니다.
그 금붕어하고는 매우 친해서 내가 금붕어 머리를 살짝 눌러주면 장난하는 줄 알고 신나게 몸을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그런데 죽기 하루전 그 금붕어가 저를 보면서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정말 느낀대로요) 그동안 즐거웠고 나 이제간다 합니다.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비록 동물이지만 그래서 모든이들의 영혼의 존재를 믿음이 정말로 진리 입니다.
사랑의 아픔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아픔속에서 승화시키고 진정 사랑이며 모든 생명과 만물의 창조자이시자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앞으로 계속해서성장하는 우리에게 주실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의 삶을 살도록 매진해야겠읍니다.
직접보고 사랑하고 키우신 당사자의 아픔이 정말 클태지만요(비록 동물이나) 힘내 십시오. 저도 불러 봅니다. 옹야야~
저는 복국을 좋아 합니다. 복은 독이 있지요? 부제님도 복국 드시나요?
부제님의 섬세하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옵니다.. 복동이를 잃으신 부제님 마음을 위로드리며..
이제부터 사랑이가 부제님의 마음을 밝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아 복동이가 어떤 동물일까!!! 한참 생각을 했었는데 얼굴이 축구공처럼 부풀어 오른다고 하시고 해서 복어인가 했어요 맞나보네요 전 복동이를 본적이 없어서요. 복어를 그렇게 키우셨군요. 17개월을 키우셨다니 오래 잘 키우셨던게 아닌가요? 물고기는 잘 몰라서요 ㅎㅎㅎ 부제님 마음이 한동안 허전하시겠어요..
녜 저도 행운이라는 시추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딸아이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리지 못하고 키우기 시작한거이 벌써 13년째네요 내 생명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정성과 애로 정말 만만치 않음을 잘 알지요 부제님 그 정성과 애정의 대상과의 이별, 저도 미리부터 겁나네요 정을 뗀다는 그 아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