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의 비밀
유병덕
2015harrison@naver.com
하늘에 제트기가 지나고 나면 하얀 포물선이 그려진다. 어디론가 향하여 날아간다. 그립을 잡고 골프공을 쏘아 올리면 마치 공이 제트기를 쫓아가는 것 같다. 착륙 지점이 그린이면 통쾌하다. 한때 골프에 빠졌었다. 로마가 오랜 세월 걸려 건설되듯 골프 운동도 내공이 쌓여 이루어진다. 더욱 홀인원은 운까지 따라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우연히 골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가난하여 골프채도 없을 때였다. 뜬금없이 지인이 골프장을 예약해놓고 오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양했다. 삶이 고달퍼서 골프가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다. 골프채를 준비하였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란다. 사양도 한두 번이다. 성화에 못 이겨 송아지가 장에 끌려가듯 했다. 자가용도 없어 택시를 타고 갔다.
난생처음 골프장방문이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이방인처럼 시선이 집중된다. 모두 좋은 자가용을 타고 오는데 택시에서 내리니 골프장 직원이 인사도 없다. 다른 골퍼들이 힐끔힐끔 처다 보며 지나간다. 초청한 지인이 입구에서 웃으며 손잡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내 모습이 물 위에 기름처럼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클럽하우스에서 파란 잔디가 내려다보였다. 환상적이다. 산자락을 끼고 휘감은 골프장은 한 폭의 그림이다. 잘 다듬어진 파란 잔디 위에 예쁜 집 한 채 지어 살고 싶었다. 그 사이로 솟구치어 오르는 분수가 시선을 고정시킨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편안하게 해준다. 알록달록한 골프복을 입고 걷는 모습이 딴 세상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보였다. 적어도 골프채 스윙감은 익히고 가야 예의다. 세심한 골퍼는 파-쓰리 골프장이나 퍼블릭 골프장에서 연습하고 간다. 정규 홀, 그것도 회원제 골프장으로 바로 간 것이다.
어쨌든, 골프를 쳐야 했다.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쓴다. 여기는 아마추어 골퍼가 온다며 편안하게 걷기 운동하란다. 클럽하우스 아래 티업하는 골퍼를 가리키며,
“봐요, 저 골퍼 헛 스윙했네요.”
멋진 골프복장을 한 중년 남자가 스윙했는데 날아가는 공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이라 긴장되고 초조했다.
우리 팀 차례가 되었다. 캐디가 간단한 준비운동을 시키더니 순서를 정한다. 그들은 나를 거듭 안심시킨다. 앞에서 치는 것 보고 따라 하면 된단다. 첫 번째 올라간 골퍼가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빨랫줄처럼 볼이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두 번째, 세 번째 모두 굿-샷이다. 골프채가 흔들림 없이 리듬감이 일정하다. 오랜 구력이 엿보인다. 내 티샷 차례다. 마치 촌놈이 서울 역에서 내려서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가장 어렵다는 드라이버를 두 손으로 잡고 흔들어 보았다. 어린 시절 도리깨질이 생각났다. 리듬에 맞추듯 어깨 위로 올려 스윙해보았다. 한 번 더 해 보려는데 캐디가 채근한다. 뒤에서 다른 팀이 기다린다며 빨리 치란다. 왼손으로 그립을 꽉 잡고 스윙했다. 생각과 몸이 따로 논다. 첫 공을 맞히지 못했다. 헛스윙이다.
두 번째 샷이다. 캐디가 오비-티를 가리키며 칠 번 아이언을 가져다준다. 겨우 공 머리를 때렸다. 공이 뜨지 않고 뱀처럼 땅으로 기어갔다. 동반자들이 굿-샷이라며 위로한다. 캐디는 영 못마땅한 눈치다. 그린에 올리지 못하고 첫 홀이 끝났다. 그렇게 홀마다 그린에 올리지 못하고 라운드가 끝났다. 나는 동반자에게 미안했다. 아무 준비 없이 갔던 모습이 부끄럽다.
그 이후 사무실 일은 뒷전이다. 머릿속에 골프만 있다. 잠자리에 누우면 파란 잔디가 펼쳐진다. 골프공이 제트기처럼 하늘로 종횡무진이다. 용돈을 아껴서 골프채를 마련했다 채를 싣고 다닐 승용차를 빚을 내서 샀다. 개가 웃을 일이다. 퇴근하고 야간에 불 켜고 운동하는 골프장을 찾아다니며 연습했다. 지인이 골프장 예약 하였다고 초청이 오면 새벽잠을 설치고 동살를 보며 따라갔다. 가슴의 갈비뼈 근육이 찢어져 한의원 치료도 받았다.
오 년 만에 행운이 찾아왔다. 청주에 있는 D 골프장으로 초청받았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삭풍이 제법 불었다. 작은 티에 볼을 올리고 칠 번 아이언으로 스윙한 것이 142m 홀컵으로 공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살짝 뒤땅을 때렸다. 뒤에서 바람도 불었다. 순간 보지 못했으나 캐디가 지켜보다 깡충깡충 뛰면서,
“홀인원, 홀인원….”
앞뒤 홀 골퍼들이 그 소리를 듣고서 모여든다. 클럽하우스에서도 왔다. 큰절을 올리라 하여 그린 위 홀컵을 향해 절했다. 홀인원 증서를 받아들고 골프장을 나서는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기쁨이 가득하다. 훈장이나 박사학위 받은 기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처음 골프장 갔을 때 그린에도 올리지 못한다고 눈치 주던 캐디의 얼굴이 스친다.
홀인원의 비밀이다. 홀인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력은 기본이다. 그리고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샷이 제대로 맞았다면 홀인원을 할 수 있었을까. 뒤에서 바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홀컵으로 공이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사 노력은 기본이고 운이 따라야 한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홀인원은 샷을 잘하여 들어간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초청한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도 주변에 도와준 지인이 있듯 골프운동도 동반자가 있어야 할 수 있다.
홀인원 기념패 하나가 지금도 오롯이 서재를 지키고 있다. 오랜만에 홀인원 기념패에 입을 맞추어 본다. 처음 골프에 초대해준 지인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홀인원 동반자에게도 고마운 인사 올린다. 멀리서 빈다. 그간 함께한 동반자들의 건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