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김동원
네 그렇게 올 줄 알았다
장미는 너를 베었고
그녀는 피를 묻었다
달빛에 젖은 건
기껏, 색色이었더냐
몸이 칼을 받는 구나
늑골에 물이 괴었다
또 귀鬼가 보이는 구나
쓸어버려라, 바람아!
네 그렇게 갈 줄 알았다
불길보다 더 빨리 타 올라
관棺을 덮으리라
어둠 속 손을 넣은 자者,
오, 발목이 잘린 시여!
하몽하몽
김동원
흐르는 재즈의 몸속에 붉은 단풍이 번지고
촛불 곁엔 푸른 암고양이가 야옹거리고,
유리벽에 빗물이 타고 흘러내린다고 상상해 봐
노란 우산을 들고 그녀가 몸을 찢고 걸어 나올 거야
노을은 천 개의 손가락,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고
하몽하몽 퍼지는 입술은 붉은 입술을 포개고
가을 침대에 누워 구름을 유혹한다고 떠올려 봐
샤또 마르고에 취해 샤갈의 염소들이 첼로를 켤 겨야
폭설이 내리는 그녀의 무릎 위에 꽃잎은 쌓이고, 쌓이고…
이 시인 놈아
김동원
닥쳐요, 잊히면 좀 어때요.
진짜 시인이라면 구름에게 명령해요.
입금 좀 제때 하라고요.
집세가 없어요, 여보!
제발 노을에게 부탁이라도 해 봐요, 우리.
넷이서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먹을 순 없잖아요.
달무리라도 덮고 실컷 울고 싶어요.
당신이야 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
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시인의 아내는 뭐예요.
그만, 그만,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
허황한 그딴 소린, 집어치워요. 제발!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이 시인 놈아!
작부酌婦
김동원
술집 작부 치마폭에 쌓인 것 맨키로, 볼또그리 취한 강구항 밤 야경. 어판장 뒷골목마다 그 옛날 홍등에는 야화夜花가 피어 흥청망청했지. 속초로 울릉도로 고깃배 타다 뭍에 내리면, 낮부터 술판에 젓가락 장단에 홍도야를 불렀지. 작부 년 분 냄새에 불뚝불뚝 아랫도리 힘은 뻗쳐, 그 어부들 주장군主將軍 명태 대가리만 했네. 소주 막걸리에 떡이 되면, 영순 아버지 마누라 새끼들 까맣게 잊어먹고 곱사춤을 추었지.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은 작부 엉덩이는 얼마나 컸던지, 고랫등만 했네. 아니, 아니 밤바다 보름달만 했네. 그 겨울 폭설에 대구 명태 방어 잡아 번 돈, 구삥에 도리짓고땡에, 그년들 치마폭에 다 녹아들었지. 새벽 오줌 누러 나와 어둑어둑한 방파제 파도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면, 그때서야 동해에 밥 찾으러 나간 아비 기다리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얼굴이 등댓불처럼 눈앞에 깜박깜박 비추는 거라.
모란
김동원
스님 예?
눕는 게 좋아 예
서는 게 좋아 예
미친년!
스님 예?
물 관리는 어떻게 하여요
옮긴다!
어디로 예?
업業에서 심心으로 옮긴다
호 호 호, 홋 홋
나는 구름에서 꽃 샅으로
번지어요
황진이
김동원
진이,
그대는 가야금 침향무를 뜯게
나는 그대의
치마폭 위에 분홍 진달래꽃을 치겠네
노을로 번진 눈물을 치겠네
흔들리는 그 바람의 무늬를 치겠네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피어 노는
저 비슬산 꽃의 한 생生 다 떨어지기 전,
진이,
그대는 침향무를 뜯게
나는 엉망진창 술에 취해
대견봉 그 둥근 달빛에 붓을 적셔
그대 치마폭 위에
분홍, 분홍, 분홍, 분홍, 그렇게 번지겠네
노을 irony
김동원
오, 장님 언어여, 더듬어라! 그 부조리를, 그 신음을 은폐하라. 들리는 곳으로 번지거라. 이상하구나, 여자여! 매화가 피더니 한강에 남자가 뛰어들고, 폭설이 내리니 차가 굴러 저승으로 줄줄이 들어가네. 흉흉하여라. 아편을 물고 모란이 꽃대를 빨고, 허공이 작대기로 노을 불을 붙이고 있구나. 아이고! 죽은 아이들 눈깔을 독수리가 파먹네. 불이 뚝 뚝 그 바다 위에 떨어지네. 이상하구나. 어제는 태양의 흑점이 끓더니, 오늘은 밤하늘 위에서 남자가 꽃 피네. 잘했다. 그래, 자알했다, 인간들아!
격발
김동원
그 여자의 무릎에 누워 화경花莖을 들어서야만 했다. 다가서니 형形이 없구나. 하늘에 바람의 두 다리가 걸려 있다. 그렇게 번지거라, 붉은 언어여! 쪼개지리라. 장미의 격발擊發, 그 피의 흰 나비여! 추상은 추상의 거리만큼 아득한 순수. 꽃의 피살, 교활하구나 혀여! 멀어서 낯선 언어여!